180.
180.
공공 집행본부 건물 지하에 있는 허름한 방, 스피커에서 기계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보시죠.
마고였다.
기계음을 걷어내도 원본의 목소리와는 다를 것 같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까지 일일이 태클을 걸었다가는 옆에서 짜증 가득한 얼굴에 주름을 잔뜩 만들어내고 있는 위타천의 분노를 뒤집어쓸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마고에게 얘기를 먼저 했단 말이지······. 그걸로 모자라서 내 집에 쳐들어오고······.”
위타천의 중얼거림을 듣고 있자니 등줄기에 소름이 쭈뼛 돋을 지경이었다.
“누구를 더 우선순위에 두려고 한 게 아니라 상황이 그렇게 된 겁니다. 애초에 주가조작 혐의로 제가 여기 불려왔을 때 담당이 마고가 아니었다면 물고 늘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내 말에 위타천이 얼굴에 있던 주름 몇 개를 지우고 스피커를 향해 물었다.
“그 건이 네가 직접 나설 정도였나? 주가조작은 뻔하고 시시하다면서 손 안 댄 지 꽤 된 것 같은데.”
스피커는 잠잠했다.
위타천이 쏘아붙였다.
“후배를 엮어 넣으려고 수를 쓰다 스스로 걸려 넘어졌군. 그러게,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무작정 들이대지 좀 말라니까.”
말 안 되고 무작정 들이박는 걸로는 네오-서울에서 위타천과 겨룰 사람이 없을 건데 뻔뻔스럽게도 그렇게 말을 하는 걸 보고 울컥하고 있자니 나랑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건지 몰라도 스피커에서 격해진 마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매번 자기는 지능적이니, 두뇌파니 해놓고 일 처리 하는 꼬라지 하고는!”
-뭐요? 당신처럼 일단 부수는 것보다는 훨씬 낫거든요?
“파괴는 창조의 전조이기라도 하지! 그저 어떻게든 가두고 감시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니 될 일도 안 되는 거 아니겠나?”
-지금 해 보자는 건가요? 최근 3년간의 각 공공 집행자별 피해보상 및 물밑배상 금액을 따져보면······.
“네오-서울을 지킨다는 이가 그렇게 쪼잔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게 통탄스럽네.”
-당신은 뒷일을 신경도 안 쓰니까 그런 말이나 하지! 양심은 있어요?
공공 집행자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네오-서울의 치안 유지에 기여한다.
지금 상황을 보면 ‘각자의 방법’이라는 그 말이 자기 말고 다른 공공 집행자를 존중한다는 뜻은 아님은 분명하다.
애초에 마고는 위타천을 몸 쓰는 막가파로, 위타천은 마고를 규제와 통제에만 집착하는 꼰대로 인식하고 있었지.
초거대 권역이자 세계에서 손꼽히는 첨단 도시인 네오-서울의 안전과 치안이 미취학 아동들의 싸움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이들에게 좌우된다니 가슴이 옹졸해지다 못해 명치에 옴폭한 구멍이 생길 지경이다.
결국 내가 나서서 그리 크지 않은 방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볼륨이 높아진 스피커와 그 스피커를 향해 삿대질하는 위타천을 말려야 했다.
“그만! 그만! 그만! 두 분 서로 견제하고 의심하는 건 저 떠난 뒤에 하세요. 어차피 지금 서로 열심히 캐내고 있을 거잖아요. 맞죠?”
마고가 야타가라스의 흔적을 찾은 것 같다면서 공공 집행본부에 와달라고 했을 때, 나는 마고에게는 위타천이, 위타천에게는 마고가 의심된다는 말을 전했다.
아마도 네오-서울의 치안 관련 행정력이 소모되고, 어떻게 보면 내부 분열을 유도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그런 부정적인 효과를 감안해도 공공 집행본부에 파고든 트라이포드를 드러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미 야스민 공이 애써주고는 있지만, 공공 집행본부 내부의 일이니만큼 야스민 공도 손을 댈 수 없는 부분에서는 이 두 명이 서로 견제하며 파내는 게 훨씬 신속하고 파괴적일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지금 보니 내부 분열은 이미 예전부터 일어나고 있던 일인 것 같고.’
둘이 조금 진정한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두 분 다 100% 신뢰한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트라이포드와 큰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서로보다는 아직 알려진 게 없는 야타가라스 쪽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게 제 생각이긴 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고와 위타천이 서로 자기는 보여 줄 만큼 다 보여주지 않았냐, 트라이포드인지 뭔지와 관련 없다고 아우성을 치는지라 다시 잠잠하게 하느라 다시 한번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야 여기 모인 목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보시죠.
왜인지 데자뷰처럼 느껴지는 마고의 말과 함께 마고의 목소리가 나오던 스피커에서 렌즈 하나가 밖으로 나와 벽으로 빛을 뿜었다.
-대림 에어리어 26구역의 CCTV 영상 중 하나를 건졌어요.
누군가가 더러운 뒷골목을 달리고 있었다.
규칙적이지 못한 몸의 들썩임, 서로 무게감이 다른 발소리, 발소리를 덮을 것처럼 커다란 삐걱거림.
위타천이 입을 열었다.
“균형이 맞지 않아. 의족이 형편없거나 사용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군.”
-맞아요. 그리고 이 부랑자의 신원을 유추할 만한 건······.
화면이 멈추더니 전체적인 화질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떡진 머리칼 사이로 뻗은 귀 끝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엘프군요.”
-맞아요.
그리고 영상이 끊어졌다.
-아무리 대림 에어리어가 낙후 지역이라고 해도 전력 공급이 끊기지는 않아요. 그러니 이런 식으로 갑자기 영상이 끊긴다는 건 외부의 침투 시도가 있거나―.
마고의 말을 이어받았다.
“공공 집행자가 그 지역에 나타날 때.”
-알고 계시는군요.
위타천을 바라보며 마고의 말에 답했다.
“나중에 들었습니다. 누구랑 처음 조우했을 때 저랬다고요.”
특유의 하와이안 셔츠 허리춤을 벅벅 긁은 위타천이 스피커를 향해 물었다.
“그래서, 이 영상이 야타가라스의 흔적이라는 건가? 고작 이걸 보여주려고 부른 거라면 실망인데.”
-오해하지 마요. 저는 그쪽 부른 적 없어요. 오메가 씨가 마음대로 부른 거지. 여튼, 부족한 건 맞아요. 그 대신.
화면이 바뀌었다.
똑같이 엘프의 뒷모습이 보였지만, 시점이 확 아래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화면 아주 가까이에서 소리가 났다.
야오옹
-야옹이 캠은 꺼지지 않죠.
“야옹이캠? 설마 살아있는 고양이를 CCTV로 개조해서 쓰는 겁니까?”
-누가 들으면 오해할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요. 자연사한 고양이들의 사체를 이용하는 거니까.
그것도 썩 좋게 들리지는 않지만 어쨌든 살아있는 애들을 쓰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지.
설명을 들은 위타천이 질문을 던졌다.
“나는 저런 게 있다고 알지도 못했는데.”
-제가 개인적으로 운용하는 시스템이니까요. 그리고 그쪽이 뜨면 그 지역에 있는 야옹이캠은 다 철수 시켜요. 몇 대나 해 먹은 줄 알기나 해요? 어쨌든 보기나 하세요.
시점이 다시 확 높아졌다.
고양이가 어디 쓰레기 더미 위에라도 올라가 있는 모양이었다.
엘프의 옆모습이 드러난 순간, 나는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샴록?”
“리벨리온의?”
“네. 마데르노가 WSS를 휩쓴 이후로 행적이 묘연하다고 들었는데 살아있긴 한 모양이었네요. 그런데 샴록이 야타가라스와는 무슨 관계죠?”
말이 끝나기 무섭게 새카만 무언가가 위쪽에서 떨어져 샴록의 뒤에 안착했다.
마치 새카만 깃털로 이루어진 망토를 몸에 휘감은 것 같기도 했고, 일렁이는 그림자가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심지어 얼굴마저 그림자에 가려 확실히 식별하기 힘들었다.
“야타가라스가 맞나요?”
위타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영상에서는 야타가라스가 팔을 뻗고 있었다.
앙상한 팔과 손, 그 끝에 익숙한 무기가 들려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어?”
화면 속의 무기는 내가 차고 있는 칼자루와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것의 시커먼 검날이 드러났을 때 나는 직감했다.
존속살해.
내 검을 깨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아들 검.
도대체 어떤 연유와 과정을 거쳐서 야타가라스의 손에 들어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위올란트가 주의하라고 했던 그 검의 존재감은 화면 너머로도 확연히 뿜어지고 있었다.
샴록이 수인을 맺으려 했으나 야타가라스는 그때 이미 칼자루의 끝부분으로 샴록의 배를 강하게 찌른 이후였다.
샴록의 몸이 접히나 싶더니 축 늘어지고, 야타가라스의 다른 앙상한 손이 뻗어 나와 샴록을 들고 어깨에 올렸다.
야타가라스의 손에 들린 새카만 광자 검날이 움직이나 싶더니―
삐이이이-
화면에 실금이 잔뜩 생기며 멈췄다.
처음 보는 심각한 표정의 위타천이 중얼거렸다.
“야타가라스가 검술의 달인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무장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 게다가······.”
위타천의 시선이 내 칼로 향하고 있었다.
-마지막 행동을 보면 야옹이캠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건 메시지인 거죠.
“진오와 샴록의 리벨리온은 분명 트라이포드의 하부조직이었지만 반기를 들었어요. 그 결과는 아시다시피 샴록이 지배하던 WSS 암흑가는 마데르노에 의해 초토화됐고, 진오의 해적질 거점은 지금 형태도 찾아볼 수 없죠. 진오의 생사가 불분명하기도 하고요. 만약, 야타가라스가 트라이포드의 수장이라고 한다면 그들을 응징하기 위해 직접 나선 걸까요?”
“그렇다면 이 영상에 찍힌 건? 마고의 말로 미루어 보면 의도적인 것 같은데.”
“더 이상의 방해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걸까요? 어쩌면 이렇게 보란 듯이 흔적을 남겨도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 혼란스럽네요.”
오늘 이 회합을 절대로 함구하기로 하고 말을 맞춘 뒤 공공 집행본부를 벗어나 바이크에 몸을 싣고 사무실로 향했다.
사실, 위타천과 마고에게 맞춰 이래저래 말을 했었지만, 영상을 본 이후 내 정신은 야타가라스의 손에 들려 있던 새카만 광자 검날의 검에 쏠려 있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검으로 항공모함을 베는 검사이자 전쟁 영웅,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가 내 목숨을 노리는 트라이포드의 수장일지도 모른다.
스로틀을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공포나 두려움에서 기인한 떨림이 아니었다.
앨리스가 나보고 뇌에서 위험을 감지하는 부분이 어떻게 된 것 같다고 했던가.
기묘한 설렘과 기대감 때문에 손이 떨리고 있었다.
고속의 바이크 위에서 맞는 역풍도 내 몸을 휘감는 긴장과 전율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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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 강동 에어리어 비행장, 초 단위로 비행계획이 잡혀있는 곳이기에 많은 이들이 바쁜 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젊은 커플 중 남자가 한 곳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와······.”
그걸 본 여자가 짜증을 냈다.
“다른 여자 보지 말랬지?”
“아니, 자기야. 여자 안 봤어.”
“그럼 남자를 보고 그런 감탄사를 뱉었다고? 오빠 미쳤어?”
“아니······너도 봐봐!”
남자가 손을 뻗은 방향을 바라본 여자의 짜증 가득했던 얼굴이 스르륵 풀렸다.
“어머······.”
멋들어진 황금색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 수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선글라스, 과하지 않은 패션센스, 옷 너머로도 알 수 있는 떡 벌어진 어깨를 비롯한 균형 잡힌 몸까지.
남녀, 심지어 제3의 성별을 지닌 이들까지 비행장에 있는 이들 모두가 사자 수인을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던 사자 수인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사자 수인을 바라보는 문제로 싸울 뻔한 커플이 있는 곳이었다.
커플이 얼어붙어 있는 사이, 어느새 다가온 사자 수인이 입을 열자 감미로운 목소리가 쏟아졌다.
“잠깐 말씀 좀 묻겠습니다.”
목소리마저 끝내준다는 생각을 한 남자가 답했다.
“예. 무슨 일이신지?”
“꽤 급한 일이라서 염치불구하고 말씀드립니다.”
“네. 말씀하세요.”
“옆에 계신 분은 여자친구분인지요?”
“네. 그렇습니다만.”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여자친구분과 교미 행위를 해도 괜찮을지요.”
사자 수인의 이름은 나르시스.
아다의 스승이자, 가리지 않고 범하던 아다와 달리 오로지 타인의 연인만을 노리는 취향이 확고한 이였다.
같은 밀교승들의 파트너도 노려대는 탓에 아다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 밀교 내부의 정론이었다.
편애주의자 스승 밑에서 박애주의자 제자가 나왔으니 밀교의 복인지 흉인지 참으로 기묘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