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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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를 직접 만났다고?”
네오-서울 강남 에어리어, 루트 건물 최상층의 소회의실.
간만에 보는 타이린드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컥 물었다.
“네.”
간단하게 대답했더니 타이린드의 곁에 있던 스냅샷은 물론이거니와 나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딴청을 피우던 엘림마저 마고 소리가 나오니 이쪽을 곁눈질로 바라보고 있다.
스냅샷도 눈이 동그래져서 내게 물었다.
“어, 어, 어 어떻게 생겼습니까? 종족은요? 정령? 소문의 전기쥐? 아니면 역시 마도공학 유물에서 태어난 초고대 AI? 저는 마지막이라고 봅니다.”
입을 다시 열기 전, 타이린드가 다시 폭풍처럼 물었다.
“눈코입귀는 다 있어? 성별은? 남? 여? 트랜스? 바이섹슈얼? 논바이너리? 정확히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었겠지? 혹시 알아챘어?”
정보 조직의 구성원들 아니랄까 봐 하나라도 캐내려는 모습이 참으로 열정적이다.
심지어 엘림도 어느새 의자 아래 달린 바퀴를 이용해 슬그머니 가까이 와 있었다.
손을 휘저어 내 곁에 찰싹 붙은 타이린드와 스냅샷을 떼어내고, 발로 엘림의 의자를 밀었다.
“내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 더는 안 돼.”
그러자 엘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무실 부지와 건축 비용을 제공한 게 이쪽인데, 좀 야박하군요.”
“아주 잘 쓰고 있긴 한데, 그건 네가 조직관리를 엉망으로 한 탓에 발생한 출혈이잖아. 원인과 결과를 착각하지 말자고. 자! 부탁한 건 준비들 해 오셨나?”
엘림이 못마땅한 얼굴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치자 회의실 사방에서 암막커튼이 내려오고 그중 내 반대편에 있던 벽이 스크린으로 변했다.
스냅샷이 스크린 옆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누구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나도 카지노 지배인이 하는 프레젠테이션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어디선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술 향기가 풍겼다.
엘림이 한 손에 들어올 만한 스테인리스 술병을 품에서 꺼내 뚜껑을 열고 있었다.
엘림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보고 놀렸다.
“안 깨지는 걸로 바꿨네?”
“그때 그 술병. 비싼 거였습니다. 누가 또 깨 먹을지 모르니 저렴한 걸로 마련했습니다.”
“소탈해 보이고 좋네.”
엘림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이, 스크린 곁에 선 스냅샷이 손짓하자 화면에 사진 다섯 장이 떴다.
각각 노덴스, 나다, 위타천, 마고, 야타가라스의 사진이었다.
마고의 사진에는 어린아이의 실루엣이, 야타가라스의 사진은 아예 검은색 배경에 물음표만 떠 있었다.
스냅샷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미리 주의를 드리자면, 여기서 들은 브리핑은 이 방을 나가는 것과 동시에 잊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들의 세부 프로필이나 작전 내용들은 알게 되셨더라도 모르는 척하는 게 상책입니다. 떠들어서 좋을 게 없어요. 게다가 앨리스를 통해서 미리 전해 받은 자료와 결부시키면······.”
트라이포드라는 비밀 조직의 존재와 그들의 영향력이 공공 집행본부에까지 뻗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이들에게 공유한 상황이었다.
엘림이 중얼거렸다.
“해로즈가 담당하던 고객 중에 예공방의 그 라미아 이사도 있었지.”
“해로즈?”
“고블린 말입니다.”
“아아. 그런 이름이었던가. 여튼, 수연이랑 선이 있었다는 말이네?”
“네. 그 라미아, 지금은 자취를 감춘 지 조금 됐지만요.”
“루트에도 손을 뻗으려던 속셈이었던 건가? 스케일이 갈수록 커져.”
그리고 스냅샷에게 물었다.
“노덴스나 나다는 빼도 괜찮다고 했던 것 같은데?”
“처음부터 배제하는 건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면서 다 해야 한다고······.”
“누가?”
스냅샷이 고개를 까딱인 곳에 술을 홀짝이는 엘림이 있었다.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형의 뒤를 합법적으로 캘 수 있는 기회인데 놓치기는 아깝잖아요? 나중에 걸려도 VIP의 부탁이었다고 둘러대면 되고?”
나는 손을 들어 팔랑거렸다.
“치워, 치워. 뒤에 세 명 들어보고 느낌 안 오면 그때 보던가 하자고. 위타천부터 시작해.”
타이린드가 내 의견에 힘을 실었다.
“나도 동의. 노덴스는 실제로 몇 번 봤는데 털어서 나올 게 거의 없을 거야. 나다는―.”
엘림이 바로 반응했다.
“우리 형을? 형은 저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는데? 일적으로 봤습니까? 아니면 사적으로 봤습니까?”
“그런, 그런 의미가 아니라!”
부인하는 타이린드의 얼굴은 어찌나 빨개졌는지 스크린의 빛만 있어서 어둑어둑한 회의실에서도 확연하게 알아챌 정도였다.
그런 건 끝나고 따로 얘기하라고 내가 목소리를 높인 후에야 분위기가 조금 진정됐다.
우리 눈치만 보고 있던 스냅샷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위타천의 작전 및 출동 내용과 그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엮인 이권단체들 내역입니다. 이권단체라는 말로 뭉뚱그렸지만, 합법인 곳은 일부고 대부분은 불법이었습니다.”
“폭력단, 갱 뭐 이런 애들?”
“그렇습니다. 국제 마피아도 있고, 유령 명의만 있는 밀수 조직도 있고 다양하긴 합니다. 일단 보시죠.”
스크린 가득 빽빽한 글자들이 밀려 올라왔다.
간결한 사건 개요들이었다.
그리고 사건들의 결과란에는 파괴, 사상, 붕괴, 실종 등의 글자들이 가득했다.
혀를 내둘렀다.
“나갔다 하면 뭐 하나 부수거나 누구 하나 패 죽이고 복귀 하는구만.”
“아무래도 가장 과격하기도 하고 가장 대외적인 활동을 많이 하는 공공 집행자이기도 하니까 케이스가 많았습니다.”
스냅샷이 다시 손을 흔들자 사건 개요 중 몇몇 개가 굵게 강조되었다.
“그럼 지금부터는 외부 세력과의 접점이 의심되는 케이스만 따로 짚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좀 재밌어지려고 하네.
내가 목을 좌우로 돌리며 나는 우두둑 소리, 타이린드가 팔짱을 끼며 뒤척거리는 소리, 엘림이 술을 홀짝이는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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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에 걸친 브리핑을 다 듣고 루트 건물 지하 주차장에 세워 둔 바이크를 향해 내려가면서 앨리스와 통신을 연결했다.
-오래 걸리셨네요?
“한 명만 있어도 훑어보기 빡셀 텐데, 다섯 명이나 있으니 오래 걸릴 수밖에 없더라.”
-셋이 아니라요?
“어째어째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루트 쪽에서 준비를 많이 했더라고. 마고 쪽에서는 따로 연락 없었어?”
-자기는 야타가라스 쪽을 맡아서 살펴보겠다고 그랬어요.
앨리스의 말을 들은 나는 혼잣말을 흘렸다.
“야타가라스······.”
실제 모습을 본 사람이 극히 적다는 마고도 그간의 활동을 통해 그나마 가닥을 잡을 이런저런 브리핑이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야타가라스의 경우는 다른 공공 집행자와 비교하면 준비된 자료의 볼륨이 매우 빈약했다.
네오-서울 수도방위사령부 전역, 기타 몇 건의 케이스를 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 외에는 모두 불분명했다.
심지어 지원팀도 없이 단독으로 움직여서 주변 인물도 없는 수준.
-위타천 님은 사실······.
앨리스가 말끝을 흐렸다.
“내가 그나마 좀 알지 않냐고?”
-네.
바이크를 끌고 지상으로 나왔을 때, 나름대로 질서정연하게 빌딩 숲 사이를 지나다니는 소형 수송기들 사이를 종횡무진 돌파하는 수송기가 보였다.
비상점멸등이라도 켜서 항의할 법하건만, 다른 수송기들은 군말 없이 길을 텄다.
당연하다는 듯 열린 하늘길을 이용하는 수송기는 나도 몇 번 본 적 있는, 위타천이 타고 다니는 것이었다.
“위타천 자택이 강남 에어리어라고 그랬던가.”
-네. 가연 씨가 그쪽으로 들어간 걸로 알아요. 말이 약혼 사이지. 거의 신혼부부던데요.
“오늘 가연 씨 스케줄 체크 좀 해봐. 딱히 별다른 거 없으면 집에 있겠지?”
-그럴걸요? 잠깐만요. 가연 씨 본인한테 확인해 볼게요.
앨리스가 다시 연락하기를 기다리며 바이크를 타고 강남 에어리어 이곳저곳을 돌다 보니 건물 벽에 붙은 입주업체 리스트가 눈에 띄었다.
㈜영원 PMC
눈두덩이 아플 정도로 힘을 주고 바라보면서 기억을 되짚었다.
“어디서 봤더라······. 아!”
뭔가 떠오를 때, 다시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연 씨 오늘 쉬신대요.
“강남 에어리어에서?”
-네.
“알겠어.”
-그런데 가연 씨 스케줄은 왜요?
“약혼자가 옆에 있으면 내가 아주 조금 선 넘어도 나를 패 죽이진 않을 거 아니야.”
-······그냥 대놓고 물어볼 생각은 아니죠?
“첫 번째 선택지. 뒤를 캐다 위타천한테 걸린다. 두 번째 선택지. 약혼녀 앞에서 그냥 툭 까놓고 물어본다. 어떤 거 고를래?”
-세 번째. 일단 다른 공공 집행자들 조사에 집중한다. 어때요? 아니면 야스민 공이나 신시아 언니로부터 추가 정보를 기다린다. 이것도 있는데.
“야타가라스는 마고가 맡고, 마고는 루트에서 맡고. 남는 건 위타천뿐인데? 그리고 내가 강남 에어리어까지 나올 일이 많냐고. 온 김에 끝내야지.”
-방구석외톨이는 마고가 아니라 사장님이었네요. 그래도 대놓고 의심하는 티는 내지 말아요. 이번만 기회가 아니잖아요.
“날 뭘로 보고.”
㈜영원 PMC를 보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혹시 몰라서 안전장치도 하나 준비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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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루다는 거북이 수인이다.
오메가에게 엮여 나락까지 갔다가 다시 오메가와 엮여 나락에서 끌어 올려져 지금은 소속 PMC 기업인 ㈜영원 PMC의 핵심 요원 중 하나로 대우받고 있었다.
브리가드의 습격에서 전원 생존했던 보르스나탄 탐사단의 부 호위대장이라는 경력은 굉장히 비싸게 먹혔고, 브리가드가 아예 공중분해가 된 지금은 조금 몸값이 주춤하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각 권역의 탐사단에서 펠루다를 모시기 위해 출혈경쟁까지 하는 판국이었다.
“오늘도 날이 좋네.”
회사에서 제공해준 성동 에어리어의 한강뷰 오피스텔에서 펠루다는 커피 한 잔을 든 채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카타 권역의 탐사 일정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받은 꿀 같은 휴가의 시작을 즐기려는데, 그의 손목에 걸린 업무용 통신 디바이스가 울렸다.
“연락 안 한다고 했으면서 회사도 정말 너무하네. 능력 있는 용병의 삶이란 이런 건가. 파하하하.”
펠루다가 통신을 연결하자 회사 오퍼레이터는 누군가 펠루다를 급히 찾는다고 말했다.
“기껏 일 마치고 휴가 갔다 온 사람을 호출할 정도로 저를 찾는 사람이 대단해요?”
-펠루다 씨가 예전에 그쪽 연락이 오면 어떤 상황이든지 무조건 알겠다고 하라고 하셔서······.
“제가 언제······.”
펠루다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그렇게 설정해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펠루다의 기억에 그 사람은 성질이 매우 급하고 더러웠다.
지금 이렇게 대기하는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빠, 빨리 연결해주세요. 빨리!”
연결 대기음 첫 음이 들리기 무섭게 끊어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야. 전화도 하기 힘들고, 많이 컸다?
“대장!”
오메가였다.
-눈물의 해후 이런 건 필요 없고, 너를 좀 고용할까 하거든. 네가 너희 회사에서 맷집은 알아준다며. 내가 예전에 봤을 때도 그랬던 것 같고.
자신을 인정하는 오메가의 말에 펠루다는 계속해서 위로 솟으려는 입꼬리를 내려 앉히려 애써야 했다.
“아니 뭐······. 제가 최고는 아니지만······그래도 어느 정도는······.”
쑥쓰러워 하는 펠루다의 말을 오메가가 단박에 자르고 본론부터 던졌다.
-그럼 너 위타천이 널 패려고 해도 막을 수 있냐?
“네? 공공 집행자 위타천요?”
-아니지, 정확하게 하자. 모종의 이유로 위타천이 나를 공격하는데, 그 상황에서 내가 너를 쉴드로 쓰면 나는 살릴 수 있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