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74화 (175/258)

174.

174.

“조금······은 의외군요.”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내가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내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높은 목소리로 반박했다.

“뭐가요. 저 스스로 무능하다고 인정 한 거요? 이 말이 그렇게 제 입에서 듣고 싶으셨어요? 어쩜 사람이 이렇게 무례해요? 오메가 씨라는 인간, 알면 알수록 최악이고 최저네요.”

“아니 그게 아니라······그쪽 성별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마고가 코웃음 쳤다.

그 바람에 그녀가 입고 있는 온통 새카만 테크웨어와 반대되는 백색의 단발이 격하게 찰랑였다.

“이거 봐, 이거 봐. 아직도 이렇게 고리타분한 성적 고정관념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다른 공공 집행자들이 남자라고 저도 다 남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제 공간에서의 아바타만 봐도 딱 알지 않나요? ‘여성이구나.’ 하고? 제 어릴 때 모습을 아바타로 만든 건데?”

얘기를 들으니 그 어린 소년의 얼굴 태가 마고의 얼굴에서도 보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것 같은 그 소년은 남성이었던 것 같은데······.

왜냐면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었던데다가 몸의 굴곡이······.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며 마고를 보자 마고는 갑자기 자기 가슴을 감싸 안으며 벌컥 성을 냈다.

“어머, 어머 미쳤나 봐! 지금 봤죠! 내 가슴 본 거 맞죠!”

“전체적으로 본 겁니다. 거기만 본 거 아니에요.”

“왜 봐요! 뭘 봐요! 내 멘탈을 어디까지 몰아세울 셈이죠? 이런 식으로 상대방의 취약점을 파고들어 가스라이팅 하는 게 오메가 씨 영업 방식인가요?”

자기 공간에서는 안 이랬던 것 같은데 밖에서 보니까 영 피곤한 스타일이다.

따지고 보면 얘만 그런 게 아니다.

위타천도 그렇고 나다도 그렇고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 선정 방침에 심각한 구멍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이런 종자들만 골라 뽑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던가.

이 정도면 나름대로 평범한 기억만 남겨줬던 노덴스도 사실 몇 군데 나사가 빠져 있지는 않은가 의심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다.

“과대망상이랑 헛소리는 집어치우시고요. 왜 온 건지 얘기나 해보세요. 다른 공공 집행자들도 당신의 이······.”

“몸뚱이?”

“······가상공간에만 있지 말고 현실로도 좀 나오고 그래요. 누가 자기 신체 보고 몸뚱이라는 표현을 합니까.”

“정기적, 혹은 비정기적 영양 섭취를 통해 지속성을 확보해야 하는 비효율 과다 유기물 집합체?”

소파 뒤에서 ‘오······그럴듯한데?’라며 작게 맞장구치는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본체라고 합시다. 본체. 그 남자애, 아니 꼬맹이는 아바타라고 하고요.”

“그건 싫은데요.”

“왜요?”

“샌디 비치에서 정의한 구분법이니까요.”

아닌 척하더니 매티슨이랑 딥스페이스 의식 엄청나게 하고 있네.

“부탁인데 무가치한 논쟁은 하지 맙시다. 날 찾아온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전에 그 음흉한 시선 좀 치워주실래요?”

내가 황당해하는 동안, 뒤에서 가만 듣고 있던 앨리스의 일방적 언어폭력이 시작됐다.

“뭐가 있어야 보든가 하지.”

마고가 바로 도끼눈을 떴다.

“뭐?”

앨리스가 패드를 조작하자 사무실 벽면 한쪽이 스크린으로 바뀌더니 플라워즈 호텔에서 팔짱을 낀 신시아와 내가 리셉션 홀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재생됐다.

카메라가 우리 둘의 모습을 가까이 잡는 순간, 화면이 멈췄다.

앨리스가 내가 봐도 재수 없는 웃음을 그려내며 마고에게 물었다.

“누군지 알죠?”

“······신시아 야스민.”

“비교가 돼요?”

날이 날이었던지라 풀메이크업, 헤어까지 세팅을 마친 신시아는 굉장히 예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과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가 일품이었지.

앨리스가 패드를 만져 일부러 신시아의 상체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가슴이 노출되지는 않았지만, 드레스가 살짝 트여있는 부분이었다.

아니······왜······.

“우리 사장님이 저기에도 눈길 한 번을 안 줘서 무성애자나 고자 아니냐는 루머가 퍼질 뻔했는데 그쪽 거에 눈이 갈까요? 안 갈까요? 망상은 그만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적나라한 대화······너무 무섭다.

얼굴이 시뻘게진 마고가 눈을 이리저리 돌렸지만 대장군 앨리스는 가둬놓고 패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고 씨. 친구 없죠?”

아니!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돼.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일 수 있다고.

더 이상 달아오를 곳도 없어 보이던 마고의 얼굴은 이제 3초 정도 후에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가 되었다.

“네트워크, 가상공간, 온라인 커뮤니티. 다 재밌고 좋죠. 직관적으로 정보 얻기도 쉽고. 근데요. 거기가 세상 전부는 아니에요. 극단적으로 흐르기도 쉽고 감정적으로 변하기도 쉬운 거 알잖아요. 그곳 역시 세상의 일부인데 왜 일부만 보고 많은 걸 일반화해서 단편적으로만 바라봐요.”

처음에는 단호하던 앨리스의 목소리가 차츰 부드러워졌다.

안쓰러워하는 걸까.

사무용 안드로이드에게 동정받는 네오-서울 공공 집행자라는 그림이 이상했지만, 나는 주제넘게 끼어들지 않았다.

“그 안에서는 늘 무언가에 분노하고 누군가를 혐오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 거, 마고 씨도 알고 있죠? 마고 씨의 진짜 모습을 본 사람은 네오-서울에 10명도 안 된다는데 여기까지 온 거면 큰 결심 하고 온 걸 거잖아요. 그렇죠? 우리 사장님이 가끔 보면 이상할 때는 있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경계심은 좀 내려놔요. 고정관념과 편견,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 실체 없는 피해 의식. 이런 걸로는 아무것도 해낼 수 없고 아무것도 못 바꿔요.”

청산유수처럼 말을 쏟아내는 앨리스를 숨만 쌕쌕거리며 바라보던 마고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갈래요.”

그리고는 말릴 틈도 없이 거친 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앨리스에게 말했다.

“너무 힘줘서 패는 바람에 애 뼈가 부러진 것 같은데.”

앨리스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가볍게 답했다.

“세상을 온라인에서 배우는 애들이 있어요. 설마 그 공공 집행자 마고가 그런 타입일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요. 저런 애들한테는 충격을 줘서 알껍데기에 균열을 만들어 줘야 해요.”

“균열을 만들면?”

“밖으로 나오면 새가 되는 거고―.”

앨리스의 말끝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다.

“되는 거고. 못 나오면?”

“그대로 썩는 거죠.”

네오-서울 치안의 큰 부분을 담당하는 한 축을 내가 데리고 있는 안드로이드가 작살내버린 게 아닐까 하는 공포심의 파도가 나를 휩쓸었다.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아래로 늘리고 있는 나를 보던 앨리스가 한마디 했다.

“이것도 통하는 애들한테나 말하지, 안 통할 것 같았으면 말도 안 꺼냈어요.”

“통할지 안 통할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알죠. 마고 씨도 인간이니까요.”

외형으로 봤을 때 마고는 인간 여성이긴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데?”

“아마 네트워크망이나 가상공간 침투, 방어를 위해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는 있겠지만, 마고 씨의 기본 몸뚱이는 인간이란 말이죠.”

“본체.”

몸뚱이라는 단어를 본체로 정정해주었다.

“네, 본체. 마고 씨는 대부분의 시간을 가상공간에서 보낸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럼 본체의 조종? 컨트롤? 뭐라고 해야 하지. 하여튼 본체를 통제하는 것에 능숙할까요? 물리적인 부분이나 감정적인 부분 모두에서요. 아니죠. 수십 년씩이나 신체의 움직임을 의식과 일치시키려 노력하는 구도자나 수도자도 하기 힘든 일을 종일 가상공간에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실제로 몸을 움직이는, 친구 없는 방구석외톨이가 해낼 리가 없죠. 실제로 그랬고요.”

앨리스의 설명은 나를 궁금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디서 그렇게 느꼈는데?”

“동공의 반응, 호흡의 깊이, 혈류량, 심박소리, 떨리는 손끝,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 징후 등등?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무의식중에 발산하는 비언어적 신호를 읽기 굉장히 쉬운 종족 중의 하나가 인간이니까요.”

“······혹시 나도 그런 시선으로 보고 있니? 너무 적나라한데.”

“궁금해서 몇 번 관찰해봤는데 사장님은 저랑 대화할 때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 말고 평소에는 대부분 단세포 생물이 아닐까 할 정도로 평온하고요. 관찰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이 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뒀어요.”

“맞아. 지금도 스트레스 좀 받는 것 같아.”

“적당한 스트레스는 오히려 신체에 자극을 줘서 수행 능력 증진의 원천이 된다는 연구 결과는 수도 없이 많아요.”

한 마디도 안 지니까 내가 스트레스를 받지.

“그럼 너는 마고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압력을 넣었다는 거네?”

“예측했던 선보다는 더 적게 넣었죠.”

“잘했어.”

앨리스가 잠깐 멈칫하고 답했다.

“사장님이 보일 반응으로 예상했던 것 중에 가장 의외의 방향인데요.”

“마고랑 나는 어차피 서로 첫인상을 조졌단 말이지. 그걸 다시 기워 붙이고 멀쩡하게 만드는 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번거롭게 기싸움하고 싶지도 않고. 차라리 이렇게 충격요법으로 관계 리셋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서로 민망하니까 최소한의 예의는 차릴 거 아니야. 당장 나도 다음에 마고를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해.”

“그······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사장님도 진짜 악랄한 데가 있다니까요.”

“이건 비상한 거야.”

“그런데 다시 볼 일이 아예 없어지면 어떻게 하죠?”

“다시 찾아올 거야. 절대로.”

“그렇게 자신감 있게 말하는 건 제가 해야 하는 거고 사장님은 두루뭉술하게 모르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무슨 일로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시지?”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무능력하다는 소리 들은 걸로도 모자라서 충격요법으로 수치까지 당하고 갔는데 그대로 넘어갈까? 아주 치열하게 반박하고 싶어 할걸. 그 욕구가, 다시 모습을 보이는 창피함을 이길 거야.”

“알껍데기를 깨고 나올 거라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그런데 되게 당당하시네. 마치 경험해보신 것처럼.”

“그런 애들 많이 봤어.”

서리얼 시절 나도 앨리스 못지않은 대장군이었지.

그때의 내게 뭉개진 몇몇이 고대로 보여줬던 것이니 틀림없을 거다.

“그런데 너 아까 말 줄줄 잘도 하더라? 듣는 내가 깜짝 놀랐잖아.”

“그거요? 유명해요.”

“나는 못 들어봤는데. 어디서 유명하길래?”

“다크웹 잡담 게시판요.”

떡이 목에 걸린 듯 말이 턱 막혔다.

“거기 다 익명이라며.”

“그렇죠.”

“커뮤니티 그만하고 바깥으로 시선 좀 돌리라는 얘기가, 이용자 전부 익명인 다크웹 잡담 게시판에서 나온다고? 너는 그걸 그대로 따라 한 거고? 그게 말이 돼?”

“원래가 그런 곳이에요. 다들 안 그런척하면서 일침 한번 놓고 싶어 한다고요.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공공 집행자한테 충고하는 건 말이 되고요?”

아······스트레스.

진짜 머리가 아파서 손으로 관자놀이 근처를 만지작대고 있으니 앨리스가 묻지도 않은 걸 조잘조잘 설명했다.

“사장님 고자 설은요. 한 사람이 계속 퍼트리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플라워즈 호텔 영상 퍼지고 여초 커뮤니티에서 사장님 괜찮게 생겼다고, 만나보고 싶다는 글들 막 올라오니까 누가 그거 싫어서 퍼트린 거 있죠?”

“여론 대응은 네가 하기로 했잖아. 잘 마무리됐어?”

“네. 추적했더니 최초 유포자가 수련 언니였어요. ‘신시아까지는 경쟁 상대로 인정하겠지만! 뭇 여인네들이 낭군에게 관심 가지게 놔둘 것 같으냐!’ 하는 논리를 펴는 게 얼마나 웃기던지.”

“내가 고자······아니 성불구자가 아니라는 건······.”

“대응하지 않았어요. 그런 건 대응하려다 삐끗해서 불붙어버리면 답도 없거든요. 그리고 지금 사장님 하는 거 보면 사실상 성불구자 아닌가요?”

거기까지 듣고 나는 소파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앨리스야······.”

“네?”

“나 진짜로 스트레스 너무 받아서 머리가 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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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두통이 사라진 걸 확인하며 사무실로 내려가 보니 마고가 이미 와 있었다.

어제와 비슷한 검은 테크웨어에 오늘은 마스크와 짙은 선글라스까지.

자기 보호를 위한 심리적 방벽이겠거니 하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린 후, 그녀의 반대편에 앉으며 말했다.

“오늘은 가급적 일 얘기만 합시다.”

고개를 끄덕인 마고가 내게 서류 봉투를 내밀었다.

“데이터로 가져왔으면 편할 텐데, 그렇게 되면 추적 위험이 있어서 아날로그 방식을 이용해야 했어요.”

봉투에서 쏟아지는 서류들을 대충 훑고 있을 무렵, 마고가 요점이 담긴 말을 던졌다.

“의도적으로 제 시선을 돌리려는 시도가 있었어요. 실제로 일부는 성공했고요. 이것들은 제 시선 바깥에 있던 것들을 찾아 긁어온 자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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