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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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이 나설 일이 아니다!”
숨 한 번 고를 틈도 주지 않고 몰아치는 내 파상공세에 맞서며 웨리바흐가 간신히 외쳤다.
“외부인? 나?”
내가 휘두르는 검의 궤적을 피하려고 몸의 균형이 무너진 웨리바흐의 옆구리를 향해 몸을 틀었다.
후―
숨을 뱉는 짧은 사이, 시야를 메울 듯 쏟아지는 눈발 사이로 내 목표 지점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검을 단단히 잡기 위해 힘을 주었던 오른손에서 힘의 이동이 시작됐다.
손끝, 손목, 팔꿈치를 통과해 어깨에 이른 급류가 순식간에 몸통과 하반신을 거치며 거대해졌다가 손바닥을 편 왼손에 이를 때 즈음에는 나조차도 한순간 집중력을 잃으면 중심을 잃고 빨려갈 것 같은 거대한 와류渦流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손바닥이 웨리바흐의 옆구리에 닿는 찰나에 와류가 담고 있던 힘을 격하게 발산했다.
[대력장 - 가차요]
그의 옆구리에 난 흰색 털이 내 손바닥에서 나온 기의 흐름에 살짝 흔들리나 싶더니 곧 그 자리에서 수십 회의 타격음과 폭음이 터졌다.
웨리바흐는 신음 한 번 낼 겨를 없이 튕겨 나갔다.
그에게 부딪힌 나무들이 부서지며 얹고 있던 눈을 와르르 쏟아냈다.
대충 봐도 다른 늑대인간들보다 약 1.3배는 더 큰 웨리바흐를 단박에 날려버린 왼손이 후끈했다.
고통이나 통증이 아니라 전투의 열기였다.
그런 왼손을 털며 나는 감탄했다.
‘미쳤다.’
템페시르나의 가르침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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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이제 내력을 일으킬 수 없어서 껍데기 신세라느니 무도의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에 제자를 들일 생각은 없다고 말은 했지만 내가 병문안을 가면 템페시르나는 아주 기꺼워하며 내 움직임을 봐주거나 자기 경험을 얘기해주곤 했다.
맨몸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무도를 쌓아갔던 인물이라 기공을 보조 스킬로 자주 활용하는 내 입장에서 특히나 권拳이나 장掌에 관한 얘기는 귀 기울일만한 것들이 많았다.
그중 재밌는 것은 템페시르나도 젠과 비슷한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움직임은 결과를 보이는 데에 치중하고 있구나. 그래서는 안된다. 지금도 훌륭하나 어찌하여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말이다. 이해가 없으니 개선하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모르겠지.”
스킬의 사용, 결과로 이어지는 내 매커니즘을 꿰뚫는 템페시르나였다.
자주 사용하는 스킬들의 위력이 조금 강해진다거나 발동 시간이 줄어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숙련도가 증가했다는 것을 체감할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엄청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파천황]으로 여러 계열의 스킬을 융합하는 시도를 멈출 수 없기도 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템페시르나가 멀쩡한 팔을 들어 검지를 뻗은 뒤 내 가슴을 가리켰다.
“아이는 퓨어이지 않느냐. 모두가 부러워하는 몸을 가지고 있는데 왜 들여다보지 않는 것이냐. 들고 나는 숨이 몸의 어디로 가는지, 피가 어떻게 순환하는지, 근육과 뼈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그것들 사이의 길을 통해 이동하는 기의 운용이 더욱 쉬워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지.”
이후, 나는 일이 없으면 템페시르나를 찾아갔다.
계속해서 대화하며 어느 날은 여러 방법으로 숨만 쉬다 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아주 느리게 체조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면 때때로 유적지에서 반지를 착용했을 때 순간 스쳐 간, 내 몸 안을 들여다보는 감각에 도달하기도 했다.
젠과의 대련을 통해 얻은 것이 힘을 어떻게 방출하는 것인가였다면 템페시르나와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은 것은 힘을 어떻게 몸 안에 받아들여 적재적소로 보낼 것인가였다.
이야기하면 때로는 스킬의 보조를 받아 곧잘 시행하는 나를 보고 템페시르나는 굉장히 신통해했다.
정말 단전이 없는 게 맞냐고 몇 번이나 되묻기도 했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흘리는 것이었다.
“단전이 없는데도 기공을 운용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몸. 심지어 타고난 순수함으로 배움을 모두 빨아들이기까지······. 무도의 길을 위해 하늘이 내린 몸. 이것이 천무지체天武之體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날, 병실을 나서며 나와 템페시르나의 대화를 위해 잠시 자리를 피해주었던 가연에게 말했다.
“템페시르나 님 배게 뒤에 무협지 숨겨두신 것 같거든요? 확인 한 번 해보세요. 무료하신 건 아는데 사람이 온종일 무협지만 붙잡고 있으면 좀 그렇잖아요. 게다가 어떻게 보면 템페시르나 님 삶 자체가 무협지인데 말년에 쉬셔야지 저걸로 다시 불이 붙으면 어떻게 해요. 제가 일렀다는 말은 하지 마시고요.”
가연의 고운 눈썹 양 끝이 치켜 올라가나 싶더니 그녀가 거친 걸음으로 템페시르나의 병실로 들어갔다.
살짝 열린 틈으로 둘의 대화가 새어 나왔다.
“제가 무협지 보지 말랬죠. 아버지! 그래서 안정이 되겠냐고요.”
“네가 하도 그래서 빌려놓은 거 다 반납했잖느냐.”
침구류를 뒤적대는 소리.
“이건 뭔데요.”
“······네 남편 될 놈이 알려준 것이냐? 너한테 말할 거였으면 빌려다 주지를 말던가! 딸이고 제자고 내 편 하나 없으니 서러워 살겠나!”
위타천이 장인한테 점수 좀 따려고 몰래 가져다준 모양인데, 나는 이제 모르겠다.
.
.
.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 정확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사용자인 내가 생각했을 때 그나마 유사한 정의는 ‘스킬 등급 상승’이 아닐까.
다만 템페시르나나 젠과 함께하며 얻은 깨달음은 작게 보면 몸의 움직임과 기공, 넓게 확장해도 검술의 영역까지 밖에 이르지 않았다.
물론 움직임이 더 정교하고 세밀해졌기 때문에 익히고 있는 많은 스킬들에 영향을 주고, 그것들이 서로 맞물리고 맞물려서 전체적으로 큰 시너지를 내는 것은 맞다.
내심 마법의 영역까지 닿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도 드는 것이 사실이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이 늑대인간들에게 포위되어 있는 다대일 상황에서는 익히고 있는 화염계 마법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이 어쩔 수 없었다.
[밀푀유]
손끝에서 피어난 불이 종잇장처럼 넓고 하늘하늘하게 변해 늑대인간들이 나를 향해 공간을 좁히는 걸 막았다.
놈들 중 몇몇은 커다란 나무 잔해 아래 깔린 웨리바흐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그 틈을 타서 마치 불로 된 망토를 입은 것 같은 형상을 한 스펜서에게 접근했다.
그의 주변은 열기가 눈을 녹여서 온통 진창이었다.
기차 안에서보다 훨씬 길고 강력한 불꽃을 날름거리며 그가 말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하겠습니다.”
군인 아니랄까 봐 딱딱한 인사를 건네는 스펜서에게 잉그리드가 내게 준 긴 깃털을 꺼내 보였다.
그걸 본 스펜서를 감싸고 있던 불의 망토가 일순간 출렁였다.
“어디까지 알게 되었습니까.”
“전부.”
“그렇군요.”
“비밀 사이에 제가 끼어들어서 서운합니까?”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감정이 들었을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는 꽤 든든하군요. 천군만마가 와도 이런 기분은 아닐 겁니다.”
“저에 대한 평가가 꽤 후한데요.”
“아뇨. 깃털을 보낸 분을 신뢰하는 겁니다.”
“신뢰란 깃털보다 가볍다고들 하던데······.”
스펜서가 내 말을 잘랐다.
“말장난은 여길 벗어난 후에 하시죠.”
내가 날아오는 탄환을 베고, 접근하는 늑대인간 둘의 각각 허리와 골반을 틀어놓는 동안, 스펜서 대령도 불이 붙은 주먹으로 자신을 향해 돌격하는 근육질 늑대인간의 턱을 돌려놓았다.
돌아간 턱에 불이 붙어 눈밭을 뒹구는 늑대인간의 모습이 어찌 보면 제법 안타까웠다.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아직 포위망을 풀고 있지 않은 늑대인간들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스펜서에게 말했다.
“평소에 체력 단련 좀 하시나 봅니다. 제가 아는 연대장들은 3km 뜀걸음도 힘들어하셨는데.”
“군인에게 체력은 유사시에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요건입니다. 어느 부대 연대장님이신지 모르겠지만 지휘관이 그래서는 병사들이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스펜서에게만 들릴 만큼 작게 속닥거렸다.
“자유인들과 갈등을 빚는 줄 알았는데 사실 우호적인 연대장일지라도 말이죠.”
분명 들었을 것 같은데 스펜서는 내 말을 단번에 무시하고 자기 할 말만 했다.
“예정 시간에 제가 도착하지 않았고 통신도 되지 않으니 부대에서 곧 수색조를 보낼 겁니다. 문제가 있다면 그동안―.”
스펜서의 시선이 향한 곳은 내가 웨리바흐를 날려 보낸 곳이었다.
'쾅' 하는 충격음과 함께 웨리바흐에게 휩쓸려 꺾이고 부서진 나무들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웨리바흐가 몸을 일으켰다.
뼈가 튀어나올 정도로 엉망이 된 그의 옆구리에서 살점이 꾸물꾸물대나 싶더니 꺾인 뼈가 제대로 붙고 살점과 피부가 그 위를 덮었다.
“얼씨구?”
내가 황당해하자 스펜서가 빠르게 설명했다.
“저놈을 비롯한 이 포위망에서 버텨야 한다는 거죠.”
“방금 상처가 회복된 것 같던데요. 마법이나 신성력은 아니죠?”
“웨리바흐는 초재생인자를 지니고 있습니다. 웬만한 손상은 모두 복구하죠. 주의해야 할 건 그게 아닙니다. 이종異種, 특히 깃털을 주신 분이 사냥했던 것들의 흔적을 몸에 박아넣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내가 궁금해했던 부분은 스펜서가 답해주기 전, 실감 나고 생생하게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웨리바흐가 왼손을 털어내자 그의 팔에서 단단한 뼈 같은 것이 밀려 올라와 활의 형상을 이루었다.
제 할머니처럼 화살이 걸려 있지 않은 시위를 힘껏 당기며 웨리바흐가 외쳤다.
“산과 눈에 맹세컨대 너희를 여기서 죽이겠다!”
시위에서 그의 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무형의 화살이 발사되었다.
그리 멀지 않는 거리를 날아오는 화살이 얽혔다 떨어졌다 하는 공기의 흐름이 눈에 들어왔다.
검을 완전히 전개했다.
“불 좀 빌립시다.”
스펜서가 대답하기도 전, 검날이 아닌 등 부분이 위로 향하게 해서 스펜서가 두르고 있는 불로 된 망토를 세차게 긁었다.
엄청난 양의 불티가 튀어 오르는 동시에 그것들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화살의 흔적이 한층 더 눈에 띄었다.
[빗방울 베기]
세 발의 화살을 모두 베어냈을 때, 나는 검을 내리지 않았다.
아직 희끄무레한 빛을 잃지 않은 불티와 내리는 눈이 섞인 불분명한 시야 사이로 흰색 털이 날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활을 쏘자마자 달려든 웨리바흐였다.
뼈로 덮였던 그의 손은 이제 양손 모두 날카롭고 거대한 가시가 가득했다.
잉그리드의 부탁을 생각했다.
죽이지는 말았으면 한다.
‘즉, 목숨만 붙여도 괜찮다. 초재생인자인지 뭔지 회복도 빠르니 여기저기 잘리거나 부러져도 괜찮을 것 같다.’
[만사재시 매사필종]
아래에서 위로 올려 벤 검이 목표한 것을 베는 감각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가시 달린 웨리바흐의 팔목이 잘려 나갔다.
광자 검날로 인해 단면에서는 피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단면의 살점은 꿈틀대며 없어진 부위를 재생하려 들었다.
초재생인자인지 뭔지 아주 질기고 귀찮은 능력임이 분명했다.
전신을 통제하려 애썼다.
빠르게 위로 향하던 검이 멈추었다.
콧등에 잔주름을 잔뜩 만들어 내고 나를 향해 적의를 내비치는 웨리바흐의 모습이 보였다.
“나보고 외부인이랬지.”
내 말을 들은 웨리바흐의 눈가가 움찔했다.
혈계조검술로 검에 피를 덧씌워 대검의 형태로 만들었다.
워낙 추운 날씨 때문인지 피는 곧 얼어붙었고, 곧 날카로운 얼음결정을 지닌 몽둥이 같은 형상이 되었다.
“사랑의 매도 외부인이 아니라 가족한테 맞을 때가 덜 아플 거다. 맴매 맞자, 우리 똥강아지.”
피 얼음 몽둥이가 늑대인간의 전신 구석구석을 탐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