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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59화 (160/258)

159.

159.

마데르노의 몸에서 나를 향해 뻗어 나온 것은 뭐라고 정의하기 참 어려웠다.

시커먼 기름 웅덩이에서 치솟은 괴물 같기도 했고, 곡식을 향해 달려드는 굶주린 메뚜기 떼 같기도, 심지어는 부패한 동물 같기도 했다.

어느 하나 몸에 가까이하기 싫은 것들 뿐이었다.

[고속 이동]과 [회피기동]으로 몸을 빼자 내가 있던 곳으로 저주가 쏟아졌다.

등판 가득 흐르는 고래의 피에 저주가 닿기 무섭게 썩은내가 확 올라왔다.

뒤통수가 서늘했다.

광자 검날이 몸 바깥을 향하도록 하게 팔 옆에 단단히 붙인 후, 몸을 돌렸다.

어느새 인기척도 없이 내가 있는 곳까지 접근해 있던 마데르노가 손에서 기다란 창을 뽑아내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를 찌르고 있었다.

[원영신]

분신이 몸의 앞으로 밀려 나오는 것과 동시에 나는 그 반작용으로 살짝 뒤로 밀렸다.

푸욱-

저주의 창이 원영신으로 만들어 낸 분신의 목을 꿰뚫었다.

분신이 허물어지는 틈새로 보이는 마데르노의 눈이 이글거렸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지.

“뭘 찌르시는 겁니까. 그건 제 분신입니다만.”

그러자 마데르노가 그 자세 그대로 나를 향해 쇄도했다.

검으로 막아 세우자 그 사이에서 발생한 충격파가 발목 부근에서 찰랑대는 고래의 피 위에 여러 겹의 파문을 만들어 냈다.

룩템 입고 왔다고 조롱하긴 했는데, 검을 통해 느껴지는 마데르노의 기운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강했다.

위올란트가 강화한 이후로 대부분의 마법을 찢고 부수던 검도 마데르노의 창에서 뻗어오는 저주들을 파훼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저주 역시 검의 범위 안쪽으로는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마데르노는 그게 더 놀라운 모양이었다.

“그 검······달라졌군요.”

“보는 눈은 있네. 죽이지?”

짧은 탐색전 이후 우리는 간격을 만들며 뒤로 물러섰다.

이수련의 목소리가 들렸다.

“낭군!”

공중제비를 도는 잠깐 사이 이수련의 전신을 뒤덮던 로봇 외장은 등 쪽으로 모두 빨려 들어가고 그녀의 아홉 꼬리가 바짝 섰다.

수면 위를 밟고 선 이수련의 꼬리들이 갈대처럼 흐늘거리자 순식간에 몇 가지의 법술이 서로 엮여들더니 이내 오랏줄 같은 형상을 이루어 마데르노를 향해 쏘아졌다.

주머니에 있던 거울을 꺼내 이수련이 쏘아낸 법술 쪽으로 던졌다.

거울을 통과한 오랏줄이 수십 가닥으로 늘어났다.

<환상 거울>이라는 아이템이다.

스킬의 양을 증대시켜주는 아이템이지만 환상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원래 사용한 스킬 하나만 진짜다.

나머지는 철저하게 위장용이고 위력도 없지만, 외형 하나만큼은 원래의 것을 그대로 복제하기 때문에 모르고 보면 당황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알아도 당황한다.

미리 말해준 이수련도 놀라는 걸 보면 틀림없다.

저주로 나를 덮으려던 마데르노는 법술에 똑같이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들고 있던 창과 슈트 덕에 오랏줄을 거의 다 쳐내긴 했지만 대부분 환상이라 맥없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진짜 오랏줄이 마데르노의 발목에 감겼다.

떨쳐내기 위해 마데르노가 창으로 찌르고, 돋아있던 날개를 퍼덕거렸으나 오랏줄은 팽팽해지기만 할 뿐, 마데르노를 놔주지 않았다.

마데르노가 고래의 등판으로 올라올 즈음부터 걷히고 있던 안개가 마침내 말끔히 사라졌다.

비로소 전체를 눈에 담을 수 있게 된 고래의 넓디넓은 등판은 엉망이었다.

부서진 수송기와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 보이는 해치를 열고 브리가드 인원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수련이 작업을 마무리하는 동안 나는 접근하는 놈들을 모조리 이승 하직시키고 있었다.

어느새 다시 생겨난 이수련의 로봇 헤드 눈에서 불빛이 번쩍였다.

고래의 등 위에서 낮게 날며 수송기들을 격추하던 원격 조종 로봇들이 이수련의 신호에 반응해 마데르노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이수련의 명령이 생생하게 들렸다.

“감히 낭군을 납치한 놈이다. 흔적조차 남지 않게 삭제하라.”

로봇들이 외장을 열고 마데르노를 향해 빔을 비롯한 온갖 무기들을 쏟아냈다.

고래 등판에 올라와 있던 다른 브리가드들이 기겁하며 로봇을 공격했다.

쉴드에 쓸 에너지도 모두 빔에 때려 붓는 것인지 로봇 몇 기는 아무런 보호 장벽 없이 그런 공격을 받아내면서도 빔 집중을 멈추지 않았다.

빔이 만들어 낸 엄청난 눈부심이 조금 가실 즈음, 저주로 이루어진 신체가 절반 정도 무너져버린 마데르노가 보였다.

“본좌가 처리하겠노라!”

이수련의 몸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기다려요!”

마데르노의 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아이템일 터.

마데르노는 아이템을 쥔 손을 들어 그대로 가슴에 박아 넣었다.

조금 전, 나와 마데르노가 충돌했을 때 발생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파가 마데르노를 중심으로 터져 나왔다.

기세 좋게 달려 나갔던 이수련도 튕기듯 뒤로 밀려나는 바람에 내가 몸을 날려 받아내야 했다.

마데르노의 몸을 감싸던 저주가 꿈틀거리나 싶더니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주욱 늘어나 퓨전 코프의 로봇 하나를 삼켰다.

이수련이 명령을 내려 로봇을 뒤로 물리려 했지만 그때는 이미 마데르노의 저주가 로봇 절반 이상을 빨아들인 이후였다.

그것으로도 부족한지 저주는 수송기 잔해, 시체를 가리지 않고 마데르노를 향해 끌어들이고 있었다.

게걸스럽게 주위를 집어삼킨 저주는 마데르노의 몸을 향해 압축되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데르노가 아이템을 박아넣으며 생긴 상처에서 핏줄이 검게 두드러지더니 그의 얼굴을 타고 올랐다.

핏줄이 마데르노의 뺨을 넘어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두건에 닿았다.

흰 곳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얼룩덜룩했던 두건이 방금 세탁이라도 한 것처럼 말끔한 흰색으로 변했다.

기절한 척을 하며 내게 안겨있던 이수련을 거의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았다.

내 눈은 마데르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뒤틀린 모래시계>였나.’

횟수 제한이나 재생 불가 옵션이 걸려 있는 아이템이라도 단 한 번 원래 상태로 복구해주는 아이템이다.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성공한다고 해도 제한 시간 내에 주어지는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 기존 아이템이 파괴되기 때문에 보통 강심장이 아닌 이상 시도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아이템.

‘마데르노가 알고 한 건가?’

두건이 파괴될까 봐 시행하지 못했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어쨌든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도박 수를 던졌고, 성공했다.

던져지고 나를 째려보던 이수련도 마데르노의 변화를 보더니 목소리를 가라앉혔다.

“불길하고 사이하구나. 본좌가 마주한 것 중 수위에 들 정도이니라.”

저걸 눈앞에 두면 이제 막 뛰기 시작한 벡이라도 그런 말 정도는 할 수 있을거라고 한 마디 타박하려는데 새하얀 두건을 둘러쓴 마데르노의 고개가 내 쪽으로 향했다.

그의 입이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고 있었다.

온몸을 지배하는 불길함.

재빨리 이수련을 걷어차다시피 옆으로 밀고 나도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내가 조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 저주가 터져 나왔다.

유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재빨리 [파천황]을 사용해 화염계와 빙결계 마법으로 맞섰지만 저주는 그때처럼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철벅-

심지어 그 당시 저주를 조종하느라 온 힘을 쏟던 것과 다르게 마데르노는 저주를 계속 만들어 내며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과 부딪혀 튀어 오른 저주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걸 뒤집어 쓴 브리가드 인원들이 순식간에 미라처럼 변해 쓰러졌다.

‘닿으면 끝이다. 막을만한 게······.’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잡히는 것이 있어 꺼내 보니 손바닥만 한 크기의 얼굴 없는 조각상이었다.

마데르노는 여전히 저주로 이루어진 몸을 움직여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조각상을 꽉 쥐었다.

“이거면 될지도?”

계속해서 나를 향해 날아오는 저주를 베거나 피하며 이수련에게 외쳤다.

“로봇 좀 내 주변으로 붙여 봐요!”

로봇 한 기가 날아오길래 더 크게 외쳤다.

“있는 거 전부!”

법술로 이루어진 방패를 만들어 저주에서 몸을 지키던 이수련이 꼬리를 휘두르자 모든 로봇들이 내 곁으로 모여들었다.

이수련 앞에 빙벽을 세운 후, 외투와 신발을 벗어 이수련에게 떠맡겼다.

“주머니에서 뭐 안 흐르게 조심!”

그리고 흐르는 피 중에서도 마데르노의 저주에 오염되지 않은 부분으로 가서 조각상을 적셨다.

피가 뚝뚝 흐르는 조각상을 로봇 하나하나에게 찍은 후―

[동작]

발아래에서 흐르던 고래의 피가 로봇을 타고 올랐다.

로봇이 피에 녹아드는 것인지 피가 로봇을 녹이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둘은 자연스레 섞였다.

그리고 로봇이 녹은 피가 내 몸으로 몰려들어 착 달라붙는 강화복 형태의 갑옷을 만들었다.

사용한 아이템은 <융화 갑옷>.

재료를 섞어 일시적인 갑옷을 만드는 아이템이다.

갑옷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시간이 일반적인 재련이나 제작보다 압도적으로 짧고 들어간 재료가 좋을수록 효율이 좋은 아이템이지만 문제는 이것으로 만들어진 갑옷이 일시적이라는 것이었다.

좋은 재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두고두고 쓸 좋은 갑옷으로 만들지 일회성으로 써버리기는 아깝기에 제대로 사용되는 일은 거의 없는 아이템이 바로 이 <융화 갑옷>이었다.

‘마도공학 유물을 담고 다니는 거대한 고래의 피, 최첨단 공학 기술이 집약된 로봇. 이런 재료라면······.’

역할을 다한 조각상이 부서졌다.

갑옷이 머리까지 덮는 순간, 저주 한 가닥이 내 심장을 향해 찔러 들었다.

닿는 것을 다 오염시키던 저주가 흐르는 피의 갑옷을 뚫어내지 못했다.

이 갑옷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마치 갓 태어난 아이가 저절로 호흡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레 습득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세를 낮추고, 손으로 칼자루를 꽉 쥐었다.

신체 뒤편의 등과 종아리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느낌이 들어 살짝 봤더니 이수련의 로봇이 비행할 때 쓰는 분사 노즐이 만들어져 있었다.

‘간다.’

생각만 했을 뿐인데 노즐이 만들어 낸 추진력이 내 몸을 앞으로 강하게 밀었다.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지만 갑옷이 전신을 단단히 보조하고 있어 몸에 느껴지는 부담은 거의 없었다.

한없이 가벼운 옷을 입었다는 정도밖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나를 향해 걸어오던 마데르노가 어느새 눈앞에 있었다.

놈이 날개를 퍼덕여 내 간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만사재시 매사필종]

검의 움직임이 먼저였다.

놈의 옆구리를 깊숙하게 벤 감각이 생생했다.

그곳에서 저주가 거의 분사되듯 흩뿌려졌지만, 갑옷은 계속해서 흐르며 오염된 부분을 떨쳐내 버렸다.

마데르노는 새하얗게 변한 두건이 다시 얼룩덜룩해질 정도로 흑마술을 쏟아냈지만 발악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이후로는 일방적인 유린이었다.

“왜! 어째서!”

로봇 외장이 솟아난 손으로 꺾어버린 날개와 검으로 베어버려 길이가 달라진 팔을 휘두르며 마데르노가 분통에 찬 괴성을 터트렸다.

처음에는 잘라내도 곧잘 복구시키더니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재생보다는 오로지 나를 공격하는 것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봐야 뉴비의 역량이다.

나를 만족시키기는커녕 차게 식게만 만들 뿐.

“당신만 나를 도왔다면! 그런 능력을 가지고도······크윽!”

주절거리던 마데르노의 어깨에 검이 박혀 들었다.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쥐고 마데르노의 가슴팍에 꽂자 주먹 주변의 갑옷이 스스로 망치 같은 형태로 변형해 강력한 모터가 있는 것처럼 짧은 타격을 여러번 만들었다.

마데르노가 뒤로 넘어졌다.

그의 가슴을 밟았다.

몸을 뒤틀길래 검을 더 강하게 쑤셔 박았다.

머리 부분의 갑옷을 없앤 후, 마데르노에게 말했다.

“누군가 그랬다지. ‘거대한 문제 앞에 이루어져야 할 결단은 피와 철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도 동의해. 피랑 철로 만든 강화복이 있으니까 이렇게 일이 쉬울 줄이야.”

손을 뻗어 놈의 눈을 가리고 있던 두건을 쥐었다.

“하지 마! 안돼! 안돼애! 늦지 않았어! 당신만 있다면 이 망할 세계를―.”

아직도 그 소리인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손에 힘을 주어 그대로 뜯어냈다.

“삼키지도 못할 떡을 먹으려고 하니까 체하는 거 아니야. 뱉어낼 기회도 줬는데 그때 이후로 쳐다보지도 말았어야지.”

두건을 벗겨낸 마데르노의 눈으로 저주가 모여들었다.

그리고 시체를 파먹는 벌레처럼, 저주는 마데르노의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집어삼켰다.

그때, 마침내 지속시간이 끝났는지 고래가 낙하하기 시작했다.

“낭군! 이쪽이니라!”

이수련이 가리키는 방향, 퓨전 코프의 마크가 그려진 수송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부드럽게 비행해서 수송기에 안착한 뒤, 낙하로 인해 엄청난 크기의 물기둥을 만들고는 아무 움직임도 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고래를 바라보았다.

이수련이 중얼거렸다.

“저걸 어쩐다······.”

“통신 된다고 했죠?”

“끊기긴 하지만.”

“신시아한테 연락해서 여기 좌표 알려주고 브리가드 기함이 가라앉았다고 해요. 그럼 야스민 가문에서 알아서 처리할걸요.”

이수련도 눈이 반짝였다.

“본좌도 낄 수 있겠느냐.”

“그건 이수련 씨 협상 능력에 달린 거죠.”

뒷일은 다른 이들에게 맡기고 수송기에 타고 네오-서울로 향하는 길, 몸을 감싸던 갑옷이 사라졌다.

옆에 있던 이수련이 말을 더듬었다.

“나, 낭군! 꼴이 그게 무엇이냐!”

하반신을 내려다보니 바지가 다 녹아있었다.

팬티와 티셔츠가 녹지 않은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나는 지금 팬티와 티셔츠만 입고 한 손에는 검을 들고 있었다.

“외투랑 신발 맡겨놓길 잘했네요.”

내 너스레에도 이수련은 경악하는 얼굴이었다.

입가를 움찔거리고만 있었다.

“왜요.”

“머리가······.”

그 말에 손을 들어 머리를 쓸었―.

손이 멈췄다.

매우 이질적이었다.

풍성했던 그것들이 잡히지 않았다.

“뭐야!”

벌떡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보다 수송기 내부의 창문으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얼핏 비치는 내 머리는 매끈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의, 간단한 무기, 대머리.

썩은물 룩이지만 이걸 현실에서 하고 다니는 놈이 어딨냐고!

애꿎은 머리만 쓸다가 이수련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목소리가 먹먹했다.

“다시 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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