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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교신에 불응하면 항모전단을 출격시켜 격추하겠다는 WSS 측의 최후 통보가 있었습니다.”
“무시하세요. 항공모함도 없는데 항모전단이라는 이름을 쓰는 쭉정이 따위.”
고속으로 비행 중인 위그선 내부, 마데르노가 앞에 펼쳐진 대해와 간헐적으로 보이는 섬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마데르노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중화권의 권역들이 피 터지는 내전을 벌여 서해에 대한 제어력이 약해진 사이 WSS는 항모전단을 기습적으로 출범했다.
항모와 이지스함, 잠수함, 방공구축함, 군수지원함 등으로 이루어진 항모전단이 서해 전역을 순회하는 모습은 장관이라고 해도 부족했다.
무력 시위를 위해 산동반도와 요동반도로 향하기라도 하면 톈진 권역, 옌타이 권역, 다롄 권역의 격렬한 항의가 WSS로 몰려들 정도였지만 WSS 측에서는 일절 반응하지 않았다.
외교는 힘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현실에 그려낼 수 있다면 WSS의 항모전단이 그 예시였다.
WSS와 네오-서울 간의 전쟁 중에 항공모함이 침몰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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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 체제로 국제 질서가 재편된 이후, 네오-서울의 군부軍部는 수도방위사령부였다.
수도라는 명칭 자체가 과거의 잔재라고 주장하며 수도방위사령부라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모든 것이 첨단과 개혁,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휙휙 뒤바뀌는 시대에 묘하게 앤틱한 수도방위사령부라는 이름을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기에 다행히도 수도방위사령부는 자신들의 이름을 지켜낼 수 있었다.
네오-서울 내부의 무력은 공공 집행본부가, 바깥의 무력은 수도방위사령부가 담당한다는 암묵적 인식이 자리 잡은 것도 이쯤이었다.
그리고 WSS와의 전쟁은 수도방위사령부의 역량을 세계 곳곳에 알리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그 정점에 있는 일이 바로 군부 내의 초인들로 이루어진 정예 특수부대가 WSS의 항모전단에 침투해 해상에서 침몰시킨 일이었다.
도대체 항모전단의 물 샐 틈 없는 감시탐색망을 어떻게 뚫고 들어간 것인가부터 시작해서 어떤 특수부대인지, 구성원이 누구인지, 무슨 장치와 능력을 갖췄길래 항모를 침몰시킬 수 있는 건지에 대해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렸다.
해당 사건에 대한 수도방위사령부의 공식 브리핑은 짧았다.
-작전 완료. 차기 작전 계획 진행 중-
WSS 측의 전쟁 의지를 꺾는 브리핑이었다.
그렇게 두 권역 간의 전쟁은 네오-서울의 압도적인 우위를 확인하며 끝이 났다.
전쟁 후 수십 년, 당시 작전에 관련된 문서들은 여전히 1급 기밀이었지만 사람들의 입은 막을 수 없는 것이라 조금씩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졌다.
대부분은 허풍과 거짓말이었기에 수도방위사령부에서는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입 중에는 진실을 말해버린 가벼운 입들도 있기 마련이었다.
당시 작전을 진두지휘했던 특수부대의 팀장은 보장된 출셋길과 엄청난 명예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전역을 택했다는 얘기였다.
네오-서울 외곽의 싸구려 술집, 가벼운 입이 다시 열렸다.
“그래서, 그 대단하신 분은 지금 뭐 하냐고?”
가벼운 입을 지닌 이가 취한 눈으로 바닥을 보이는 술병을 흘끔거렸다.
그의 얘기를 들어주던 다른 취객이 새로운 술을 주문해 뚜껑을 따서 가벼운 입의 잔에 흘려주었다.
불규칙적으로 떨리는 손으로 새로 채워진 잔을 들어 올려 마신 가벼운 입이 상체를 잔뜩 숙인 뒤 작게 말했다.
“당신만 알고 있어. 공공 집행본부의 야타가라스가 그 사람이야. 어때? 놀랍지?”
하지만 듣고 있던 취객은 놀라지도,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치지도 않았다.
그저 가벼운 입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풀려있던 상대 취객의 눈이 어느샌가 맑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가벼운 입이 황급히 몸을 뒤로 뺐다.
“너······는! 설마!”
하지만 몸을 다 펴기도 전, 가벼운 입이 휘청이며 테이블 위로 쓰러졌다.
그의 몸이 파들파들 떨리는 통에 술병이 넘어져 담겨 있던 술이 쿨럭대며 쏟아졌다.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게 타겟 맞춤형으로 제조한 살상용 독이 녹아있는 술의 색은 마치 바다처럼 푸르렀다.
가벼운 입의 호흡이 끊긴 것을 확인한 상대방이 일어섰다.
싸구려 술집 안, 그 누구도 다른 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취객으로 위장했던 이가 술집을 빠져나갈 때, 수도방위사령부 기무대에 암호화된 약식 보고가 도착했다.
-기밀 유출 및 비밀 유지 서약 위반 전역자 처리 완료-
-이적행위 확인으로 인한 병역기록 말소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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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모를 재건조하면 네오-서울에서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전쟁 시기보다 훨씬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WSS는 항모를 재건조하는 일을 눈치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바로 아직 항모전단이라는 명칭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의지와 실제는 다른 법, 항모 없는 항모전단은 마데르노와 같은 범죄자들도 가볍게 무시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마데르노는 축주백건 아래로 보이는 볼품없이 마른 입술을 꾹 물었다.
아무리 힘 빠진 항모전단이라지만 긴급출항한 함선이나 항공기에 대고 일일이 운운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의 정체가 밝혀졌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었다.
‘루트를 건드릴 수도 없으니······.’
오메가를 유인하기 위해 네오-서울로 진입했을 때, 루트의 감시망 안에 들었다는 것을 마데르노도 알았다.
목표한 대로 오메가를 빅웨일 내부로 끌어들였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무력 행사라도 해서 루트를 떨쳐내고 싶었지만 누구에게나 중립을 표방하는 정보조직인 루트를 건드린다는 것은 마데르노에게도 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결국 흑마술로 부대원 전체를 숨긴 채 WSS까지 이동했지만 타이린드를 필두로 한 루트의 기동타격대와 신시아의 지시를 받는 야스민 가문의 흡혈귀 부대는 브리가드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내고 WSS 시의회에 전달했다.
철저한 정체 은닉과 은밀 기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리가드의 방침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지만, 마데르노는 지금 상황에 그런 위험과 급박함을 따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메가는 빅웨일의 혈관을 개조해서 만든 격리 혈관에서 죽어가고, 그동안 자신은 네오-서울에서 수연을 기다릴 뿐인, 간단하고도 심플한 계획.
죽은 오메가의 시체를 넘겨주고 수연에게서 ‘정화’된 네오-서울에 있는 마도공학 유물을 모두 넘겨받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오메가의 동선에 있던 함정이 작동하고 유물을 사용한 공간 전이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만 해도 끝난 줄 알았다.
드디어 류정의 복수를 한다고 생각해 기쁨의 소리까지 질렀던 마데르노다.
그런데 아무도 살아나오지 못했던 격리 혈관에서 오메가가 나왔단다.
심지어 유물 보관 구역이 뚫리고, 세계 각 권역이 기를 쓰고 찾아내려 했던 브리가드의 기함 빅웨일이 공중에 떠서 모습을 드러냈다는 소리에 마데르노는 ODC의 유적지에서 도망쳐 나온 이후 생긴 편두통이 심해지는 걸 느꼈다.
머리 안쪽에서 정을 대고 망치로 박아대는 것 같았다.
“뱀에게서 전언입니다.”
빅웨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지원받은 톈진 권역의 잠수함 전력을 보낸 수연이 보낸 짧은 메시지다.
메시지를 확인한 이가 더듬거렸다.
“퓨전 코프의 로봇과 비행체 확인. 격추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함. 추적 우려 있어 퇴각.”
“크윽”
거세지는 편두통을 이기지 못한 마데르노가 고개를 앞으로 떨궜다.
위그선 한쪽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빅웨일의 신호가 잡힙니다!”
위그선이 속도를 줄였다.
그 뒤에서 다른 부대원이 탄 수송기가 속속 모습을 드러냈고, 뒤이어 잠행 중이던 브리가드 잠수함들도 해저에 정박했다.
해무가 끼었다.
고래가 뿜어내는 피 때문에 온통 붉은 해무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바다 위를 덮었다.
빅웨일이었다.
마데르노가 입을 달싹여 흑마술 주문을 완성하자 공중에서 헤엄치던 빅웨일이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이는 것을 멈췄다.
등과 숨구멍에서 흐르는 피가 빅웨일의 몸을 따라 아래로 흐르다 바다로 떨어졌고, 피냄새를 맡은 물고기들이 빅웨일의 밑에 몰려들었다.
안쪽에서 가져온 아이템 중 목소리를 부풀려주는 <확성기>를 사용한 오메가의 목소리가 온 바다에 쩌렁쩌렁 울렸다.
“너네 고래 탑승감 죽이더라!”
“나 죽이려고 머리 좀 쓴 것 같더라! 근데 어쩌냐! 이렇게 멀쩡하네?”
“고생했는데 그냥 나오긴 그래서 너희가 모아 놓은 것들 든든하게 챙겨 나왔다! 브리가드 인심이 우리 사무실 앞 국밥집 이모보다 더 좋아!”
몰아치는 고통이 편두통 때문인지, 아니면 성질 긁는 말만 골라서 하는 오메가 때문인지 마데르노는 알기 힘들었다.
그가 버럭 외쳤다.
“죽이세요. 모든 걸 동원해서!”
“시계視界가 좋지 않아서 빅웨일로의 접근이 쉽지······.”
“모든 걸 동원하라고 했을 텐데요!”
마데르노의 성화에 수송기들이 붉은 해무를 헤치고 빅웨일에게 접근할 때, 그들의 레이더에 반응이 있었다.
“등에서 뭔가 움직인다!”
하지만 발견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대기중이던 이수련과 그녀의 로봇들이 수송기를 향해 일제히 빔을 발사했다.
근거리에서 직격당한 수송기들이 추락하기 시작하고, 안에 타고 있던 인원들이 허겁지겁 뛰어내렸다.
피가 흘러 질척한 빅웨일의 등판, 살아서 내려온 이들이 서로 등을 맞붙이고 주변을 경계했다.
안개 너머로 오메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앞만 보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발밑도 보고 그래야지. 그럼 누가 떨어트린 동전이라도 주울 수 있을지 모르잖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발목 근처에서 작은 폭발음이 났다.
계속해서 피가 흘러나온다는 점을 이용해 오메가가 미리 설치해 둔 <천렵川獵 기뢰>였다.
살상력은 부족하지만, 발목을 날리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발목이 날아간 자들은 비명도 제대로 지르기 전에 이수련의 법술에 눌려 구겨졌다.
탈출하기 위해 기를 쓰고 도망가던 놈들도 오메가의 검에 꿰뚫리는 신세가 되었다.
위에서 벌어지는 참상에 대한 보고를 들은 마데르노가 말했다.
“유물을 다 가져오세요.”
혹시 몰라서 가져온 유물들이 그의 주변에 놓였다.
부상 의자 아래 마데르노의 그림자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치 걸신들린 아귀처럼, 마데르노의 그림자가 주위에 놓인 십수 개의 유물들을 향했다.
유물들이 부서지며 내는 우두둑 소리와 빠직 소리가 멈췄을 때, 마데르노는 서 있었다.
꿈틀대는 저주가 그의 뒤틀린 신체를 뒤덮어 정교하게 보조하고 있었다.
저주로 이루어진 보조 슈트를 입은 것 같은 모양새.
하지만 안쪽에서부터 끓어 넘치는 힘은 보조 슈트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마데르노가 고개를 빅웨일의 위를 향해 들자 저주가 등에서 괴악한 날개를 뽑아냈다.
저주는 형상화되는 것을 넘어 마데르노의 의지를 그려내고 있었다.
몇 번의 날갯짓만으로 위로 치솟은 마데르노가 피가 가득한 빅웨일의 등에 내려섰다.
<천렵 기뢰>가 몇 번이나 터졌으나 마데르노의 몸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사이 해무가 서서히 걷혔다.
악마라 해도 믿을 것 같은 마데르노의 모습을 본 오메가가 씨익 웃고 말했다.
“종결템을 가져와도 모자랄 판에 룩템을 입고 오면 어떻게 하니. 뉴비야. 룩템은 고인물들이 쓰는 건데.”
수십여 가지의 흑마술이 마데르노의 몸에서 터져 나와 오메가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