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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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서빙된 순대를 하나 집어 우물거리며 내 앞에 앉은 팬더 수인을 살폈다.
“익인이라고 들었는데?”
“제거 수술 했수다. 덩치에 비해 날개가 너무 작았거든. 작은 날개로 퍼덕거려봐야 이 덩치가 뜨지도 않고. 그런 건 가오가 안 살잖아.”
익인翼人은 날개 달린 사람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다.
혈연이나 그에 따른 생김새, 정서로 무리 지어지는 다른 종족들과는 조금 개념이 달랐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날개의 존재 여부였다.
원래 종족이 인간이든 드워프든 엘프든 오크든 수인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심지어 날개 형태의 분사 장치나 부양 장치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도 스스럼없이 익인으로 받아들여 주곤 한다고 들었다.
돌연변이로 날개가 형성되어도, 추후에 약물이나 수술로 날개가 자라나도 일단 익인이라는 큰 분류에는 들어간다.
그래서 익인들은 서로 상당히 옅은 소속감이나 동질감을 공유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기존 종족과 또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중 국적 같은 느낌이라나.
“제거했으면 익인이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냐?”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팬더 수인을 내세우기는 참 애매하거든. 생김새는 육식성 수인인데 먹는 건 초식성 수인들처럼 풀을 먹잖아. 어디를 택해도 반박받기 딱 좋아. 게다가 정치는 되도록 많은 사람이랑 접점을 만들어놔야 한다더라고. 그래서 혈연 학연 지연 흡연 다 찾는 거라나? 그런데 익인을 내세우면 닿을 수 있는 범주가 넓어져.”
“그럴듯하네.”
“어릴 때는 어깻죽지에 손바닥만 한 날개가 달려 있어서 놀림 받곤 했는데, 지금은 그게 도움이 된다니 아이러니해.”
“초식성이면 순대랑 수육도 못 먹겠네?”
“그렇지.”
“이 맛있는 걸 못 먹는다니 불쌍허이.”
이번에는 수육을 입에 넣어 씹고 있으니 러쉰이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안쪽에 번쩍거리는 금 송곳니를 내보였다.
제법 순해 보이기까지 했던 러쉰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늘 새벽 댁이 썰어버린 놈들. 그놈들 데려오려고 내가 돈을 얼마나 쓴 줄 아나?”
“투자라고 생각해. 사업한다며? 그럼 알겠네. 투자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잖아. 그리고 내가 보기에 당신은 투자 대상을 잘못 찍었어.”
“당신한테 먼저 접촉했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런 자기 PR은 아니었어. 꼭 내가 아니어도 상관없었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브리가드는 아니야. 범죄자······.”
범죄자라는 단어를 말하다 잠깐 멈칫했다.
러쉰은 불법적인 사업체를 몇 개나 운영한다.
명백하게 범죄자라 하기는 힘들지 몰라도 범법자다.
나도 좋게 좋게 넘어가서 그렇지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범죄나 범법에서 아주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해결사는 늘 깨끗하기 힘든 직종이었다.
러쉰이 내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입가에 비웃음을 담았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범죄가 흠이 되나?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면 같이 일할 놈 몇 안 남아. 필요할 때 쓰고 필요 없어지면 치우면 그만이야. 그것들이 브리가드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
“브리가드 쪽에서 당신에 대해 굉장한 악감정을 내비치던데, 둘 사이에 어떤 앙금이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러쉰의 커다란 주먹이 테이블을 찍었다.
반찬 몇 개가 엎어져 테이블 위를 물들였다.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러쉰의 눈가가 매서웠다.
“내 선거를 이용해서 당신 좋을 대로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다른 건 참아도 헛돈 쓰는 건 못 참거든. 이 선거는 내가 했던 사업 중 가장 큰 사업이야. 방해 말고 꺼져.”
내가 에이들리 선거 캠프에 도움을 주는 입장이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유권자라고 가정하고 에이들리와 러쉰 중에 누구를 찍을 거냐고 물어보면 둘 다 직접 겪어본 입장에서 러쉰을 고를 것 같았다.
자기 편한 대로 반말과 존댓말을 오가는 에이들리보다는 그래도 일관성 있는 가오를 보여주는 러쉰이 정치인으로는 더 나아 보였다.
판세와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도 발군이지 않은가.
다른 뒷배경은 일단 제외하고 내가 겪은 감상만을 풀어 놓으면 그랬다.
그런데 감상은 감상이고 여기서 냉큼 그러마 할 수는 없었다.
나도 내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까.
슬슬 바닥을 보이는 순대국 뚝배기를 들고 남은 국물을 원샷한 다음 뚝배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내가 에이들리를 돕는 이유는 네가 싫어서가 아니라 네가 불러온 브리가드와 결판을 내기 위해서야. 브리가드랑은 해묵은 악연이 있거든.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내게 씩씩대는 거긴 하지만. 네가 그쪽과 손 턴다고 하면 나도 깔끔하게 빠지지.”
“그딴 소리는 놈들을 죽이기 전에 했어야지! 일을 이렇게 벌여놓고 어떻게 손을 털어!”
분노를 드러내는 러쉰을 향해 낮은 목소리를 던졌다.
“어이.”
시선이 얽혔다.
“서로 바쁜 몸 아닌가? 그쪽 입장 확인했고, 내 입장 확인했으니 얘기는 여기까지 하지. 나는 분명히 말했어. 손 터는 게 좋을 거라고.”
유적지에서 마주했던 브리가드를 떠올렸다.
군대를 떠오르게 하는 조직력과 개개인의 무력, 마데르노 궤를 달리하는 흑마술.
당시 아이템을 빌려 새로운 경지에 진입하지 못했다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브리가드가 운용하는 부대는 호버부대 이외에도 몇 개가 더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셈이 빨라 보이는 이 팬더 수인은 브리가드와 마데르노의 위험성을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내가 아니라 그쪽을 위해서 하는 말이야. 나는 그쪽이랑 에이들리 중에 누가 의원이 되든 상관없어. 솔직히 말해? 그쪽이 더 낫다는 생각도 들어. 지금은 브리가드가 당신을 위하는 것 같지? 그것들은 누굴 위하는 놈들이 아니야. 애초에 유물 탈취를 위해 탐사단을 공격하고 사람을 죽이는 놈들이라고. 그쪽이 하는 사업이 얼마나 어둡고 험한지 모르겠는데 걔네들 쉽게 보지마.”
러쉰이 나를 보던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충고인가?”
“아니 오지랖이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 게 뻔한데 보고만 있자니 그래서.”
“내가······새우?”
“너랑 에이들리. 둘 다.”
일어섰다.
“잘 먹었다. 남은 건 싸 가라. 계산은 네가 할 거니까.”
그날 저녁, 사무실로 통신 하나가 걸려 왔다.
타이린드였다.
-WSS에서 다시 대림 에어리어로 흘러 들어오는 놈들이 있어.
“규모는요?”
-우리도 발각 위험 때문에 근접할 수는 없어서 정확히 확인하긴 힘들지만, 최소 100 이상. 지금은 여기저기 분산해서 몸을 숨겨서 정확한 위치 파악은 힘들어.
“인력만 왔나요?”
-아니. 트레일러나 트럭에 이것저것 싣고 들어온 것 같은데 그것도 파악이 힘들어. 투시나 감지가 안 먹더라고. 사람이나 장비를 다 써봤는데도 말이야.
“제대로 해볼 모양이네······.”
-그러게. 선거 운동이랍시고 대림 에어리어 개판 나는 건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행사긴 한데 이건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어. 정말 브리가드 맞아?
“거의 확실해요.”
-가치만 따졌을 때 엄청난 정보라서 엘림이 좋아할 것 같긴 한데 심상치가 않은 것도 사실이네.
“어떻게든 해봐야죠. 어쨌든 고마워요. 혹시라도 변동사항이나 도울 일 있으면 바로 알려줘요.”
-그래. 수고!
조금 더 늦은 밤, 타이린드가 사무실로 암호화된 메일을 보내왔다.
앨리스가 메일을 열어 스크린에 띄웠다.
간신히 한 장 건졌다는 타이린드의 설명과 함께 아주 멀리서 찍은 것을 확대한 듯 굉장히 화질이 좋지 않은 사진이 한 장 있었다.
메일 아래쪽에 작게 타이머가 있어 시간이 줄어들고 있었다.
사진 속에 있는 것은 낮에 봤던 러쉰, 그리고 또 다른 인물이었다.
다른 인물의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특유의 부양하는 장치는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데르노였다.
사진만으로 속단할 수는 없었지만 러쉰과 마데르노의 사이는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러쉰이 관계를 끊으러 간 거라면 마데르노가 가만둘 것 같지 않은데 일단 살아있는 걸로 봐서 낮의 대화는 그다지 귀 기울여 듣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앨리스에게 물었다.
“이거 언제 찍힌 건지 알 수 있어?”
“사진 데이터는 약 3분 전이네요. 제 선에서 확인할 수 있는 조작 흔적은 없고요.”
그때 타이머의 숫자가 0이 되었고 메일은 자가 삭제됐다.
앨리스를 보며 말했다.
“이래서 충고나 오지랖은 최대한 아껴야 해. 기껏 생각해서 해줘도 듣는 놈이 받아들일 생각이 없으면 다 헛수고거든.”
“사장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네요. 이래서 거울 치료, 거울 치료 하나 봐요.”
반박하려고 했지만 말문이 턱 막혀서 괜히 성질을 부려야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스콰이어랑 키클롭스 아재한테 연락해서 사무실에 사람 좀 보내달라고 해. 건물 보안도 신경 쓰고. 나야 내 한 몸 어떻게든 건사할 수 있지만 너는 아니잖아.”
“저도 제 한 몸 건사할 수 있거든요?”
“뭘 어떻게 하는데.”
앨리스가 한쪽 다리를 뻗어 무릎을 굽히자 철컥 소리와 함께 굽혀진 무릎에서 총구가 솟아났다.
“뭐야!”
“요즘같이 험한 세상에 호신용 파츠 하나 없이 다니는 게 말이 되냐면서 수련 언니가 달아줬어요.”
“호신은 개뿔! 대충 봐도 살상용이잖아!”
순식간에 몸을 원래대로 돌린 앨리스가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사장님도 앞으로 조심해요.”
진심인 것 같아서 침만 꿀꺽 넘기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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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거리 유세가 본격적으로 허용되는 날이었다.
드디어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바이크를 타고 에이들리의 선거 캠프로 향하는 길, 유독 도로변에서 싸움박질하는 놈들이 많았다.
각자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지지자들끼리 감정이 격해지다 못해 벌어지는 일이었다.
심지어는 그런 상황을 정리하러 온 사설 집행자들도 싸움판에 끼는 상황도 몇 번이나 목격했다.
대림 에어리어에서만 열 명이 넘게 뽑히는 에어리어 의원 선거도 이 지경인데 에어리어에서 단 한 명 뽑히는 행정관 선거 때는 죽는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나온다고 한다.
‘이럴 거면 후보자 둘을 링 위에 올려서 완타치 한방씩 번갈아 때리게 하고 오래 버티는 놈 당선 시키는 게 사회적 손실이 적지 않나?’
자기네 후보 뽑으라고 지원 유세하는 차량들을 몇 개나 지나쳐 선거 캠프 근처의 공영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걸어 나올 무렵, 내디딘 발이 닿은 보도 주변이 갑자기 쑥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응?”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짧은 시간, 내 주변의 지대가 무너지고 있었다.
‘싱크홀? 갑자기?’
[명경지수]
걸리는 것이 없었다.
환각이나 진법의 영향 안에 들어온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검을 완전 전개해서 떨어지는 구멍의 옆면에 박아넣었다.
제법 매끈한 것으로 봐서 인공적인 구조물이었다.
맨홀보다는 조금 큰, 사람 두어 명이 드나들 규모로 보였다.
위쪽에서 뚜껑 같은 것이 움직여 그나마 여길 밝혀주던 햇빛의 유입을 막았다.
그때,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벽을 타고 내게 접근했다.
[흡착]
검을 들지 않은 손을 벽에 대서 밸런스를 맞추고, 박혀 있던 검을 뽑아 감각에 의지해 날아오는 것을 베었다.
충돌에 의해 발생한 브지직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암적응]
잘린 것이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먹물로 이루어진 조그마한 괴수였다.
샴록말고는 본 적 없는 기술.
하지만 그 괴수의 몸은 먹물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 잠식되어 있었다.
점점 멀어지다 바닥에 널브러진 괴수의 시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움직이는 그림자처럼 꿈틀대는 저것은 분명 마데르노의―
“유적지로 향하기 위해서는 땅을 파고 길을 만드는 건 당연히 갖춰야 할 소양이죠. 브리가드에는 그 전문가들이 아주 많답니다.”
어디서 들려오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마데르노의 목소리와 함께 쿠르릉 소리가 나더니 작은 진동이 몸에 전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이 나를 짓뭉개려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건지 디바이스 통신도 먹통이었다.
“미로는 취향이 아닌데.”
[흡착]을 해제하며 아래로 뛰어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