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
150.
대림 에어리어 15구역.
우리 사무실이 있는 23구역의 우중충한 분위기와는 달리 비즈니스용 고층 건물이 밀집해있는 곳이다.
한강 기계 지구와 기계 교단 대림 성지와 가까워 기계공학이나 로봇공학의 기세가 셀 것 같지만, 바로 붙어있는 대림 13, 14구역과 더불어 생명공학 기업들의 연구소들이 몰려 있는 지역이기도 했다.
에이들리라는 사람의 선거 캠프는 그곳에 있었다.
앨리스가 말해줘서 알게 됐지만 에이들리는 ABT라는 거대 생명공학 기업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다 퇴임했단다.
그 덕에 생명공학 기업 진영의 지원을 든든하게 받고 있다나.
그것만으로 선거 캠프를 대림 에어리어 15구역에 차리긴 쉽지 않을 텐데, 알고 보니 야스민 공이 중화권 권역으로부터 돈을 받아먹은 생명공학 기업들에 대해 칼을 휘두른 덕에 중견 의료, 바이오 기업들의 재정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대림 영업소나 연구소를 철수하게 되면서 공실이 많이 나왔단다.
에이들리는 그중 한 곳에 선거 캠프 사무실을 차린 것.
행정관에서 에어리어 의원으로 눈을 돌린 것도 야스민 공의 칼춤과 관련이 있었다.
에이들리의 후원회의 한 자리씩을 차지했던 생명공학 기업들이 경영악화로 발을 빼거나 아니면 도산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20년째 행정관 선거에 도전 중인 에이들리도 자금 상황이 좋지 않아졌고, 이번에는 의원직을 확보하자는 쪽으로 전략을 수정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가셔서 얘기 나누실 때 괜히 행정관 선거는 왜 포기하셨냐 이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예민한 부분일 테니까요.”
스크린에 대림 에어리어의 지도까지 띄워놓고 설명하는 앨리스였다.
“생각보다 요래조래 재밌는데? 정치라고 해서 따분하고 지루할 줄 알았더니.”
사무실에 와 있던 신시아도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저희 저택이 있는 성북 에어리어는 투표는 요식행위고 순번을 정해서 방계 가문이 돌아가면서 맡거든요. 레비 오빠가 폐관수련 들어가기 전에 행정관 해보고 싶다고 난리를 친 것 빼면 약 300년 이상 그런 식이었어요. 아니, 그런 식이었대요.”
그건 선거가 아니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와 달랑거렸지만 일단 참았다.
사무실에 얼굴을 보이지 않던 신시아는 요새 다시 오고 있다.
이수련이 출장에서 돌아와 매일 우리 사무실로 출근한다는 소식을 앨리스가 ‘굳이’ 알려준 덕이다.
서로 얼굴 보기가 되게 어색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수련이 득달같이 ‘왜 뽀뽀했느냐! 낭군은 본좌와 혼인할 것이다!’라고 난리를 치고 신시아가 밀리나 싶더니 ‘그런 게 어디 있냐! 오메가 님 맡아놨냐!’하고 반격을 시작한 덕에 어색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중간에 낀 나만 난처하고 이 수라장을 보면서 오일 샌드 가져와서 씹는 앨리스만 신이 났다.
어쨌든 사무실은 평소의 분위기였다는 소리다.
“20년 동안 도전한 것도 대단하고 계속 떨어진 것도 굉장하구나. 그렇다면 그동안 여기 행정관이 된 사람은 누군지도 알 수 있느냐?”
흥미를 보이는 나랑 신시아와는 달리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한 모양인지 소파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턱을 괴고 있는 이수련이 한 말이었다.
앨리스가 곧장 답했다.
“행정관 임기가 4년인데 20년간 2명이 거쳐 갔네요.”
나도 모르게 눈썹을 찌푸렸다.
“한 사람이 계속한 게 아니라 사람이 바뀔 동안 에이들리라는 사람은 한 번을 못 이겼다고? 그 정도면 그 사람한테 문제가 있는 거 아니야?”
“일단 행정관 연임은 3선 제한이 있어서 12년 이상 못하는데요. 각각 전전 행정관이 12년, 전 행정관이 4년 했고 지금 행정관이 4년째네요. 올해 차기 행정관 선거가 있을 예정이고요.”
“중간에 단임도 있네. 기존 행정관이 연임에 실패했으면 에이들리라는 사람이 되어야 했던 거 같은데?”
“에이들리에 대한 평판은 나쁘지 않아요. 다만 맞붙는 진영이 너무 강할 뿐이죠.”
그 진영이 어디냐고 내가 묻기 전, 손가락을 꼽아보던 이수련이 나보다 더 빨리 앨리스에게 질문했다.
“어째서 거쳐 간 사람이 2명이라고 하는 것이냐? 전전, 전, 현. 다해서 3명 아니더냐.”
“전 행정관이 전전 행정관 부인이예요. 현 행정관과 전전 행정관은 동일 인물이고요. 한 번 건너뛴 징검다리 4선으로 연임제한을 피한 거죠.”
기가 막힌 꼼수에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런 우리를 본 앨리스가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는 꼼수에도 못 끼어요. 책략이죠. 그리고 교체 시기에 반대 진영에게 행정관이 넘어갈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잖아요.”
“근데 어쨌든 에이들리라는 양반은 못 뺏어 왔다는 거잖아.”
“그렇죠.”
“에이들리는 생명 공학 측 지원을 빵빵하게 받는다며. 반대 진영이 어디길······.”
떠오르는 곳이 하나 있었다.
화면이 바뀌고 앨리스가 말했다.
“그런 기업들을 이길 곳이 여기 말고 대림 에어리어에 또 있을까요?”
기계 교단 대림 교구 성당이 화면에 떠 있었다.
“헤지르 대주교님은 대림 에어리어 선거를 직접 챙기는 걸로 유명해요. 오죽하면 정치공학 대주교라는 별명도 있더라고요.”
기업 진영 vs 종교 진영의 대리 선거전.
대단하다! 네오-서울! 대단하다! 대림 에어리어!
“잠깐만. 올해 행정관 선거가 있다며. 그럼 에이들리는 왜 행정관 선거가 아니라 에어리어 의원 선거에 도전하는 거야?”
신시아의 질문에 앨리스가 준비했다는 듯 답했다.
“부군이신 야스민 공께서 바이오엔지니어링, 바이오테크에 입힌 타격이 심대하기 때문이죠. 현재도 구조 개편 중인 기업이 많아서 올해 행정관 선거에 역량을 집중하기 쉽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헤지르 대주교 님이 내년 정도에 은퇴한다고 하니 은퇴 전 마지막 행정관 선거에 총력을 기울이실 거고요.”
앨리스의 말을 이어받은 것은 놀랍게도 줄곧 시큰둥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수련이었다.
“어차피 질 행정관 선거이니 깔끔하게 포기하고 파워는 조금 떨어지더라도 생명 공학 기업들의 권익을 보호해줄 수 있는 에어리어 의원이라도 확보하자는 생각인 게로구나. 대주교의 은퇴 이후를 노려보겠다는 계산도 깔린 것 같고 말이다.”
앨리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수련 언니가 잘 알고 계시네요.”
“그리고 아마 이번 의원 선거구에 에이들리의 반대 인사는 기계 교단과 관련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도 맞아요. 상대측은 사업가라는데 뒤가 구려요. 지하조직이나 갱, 마피아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의혹이 있어요.”
그러자 멍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신시아를 향해 이수련이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치는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이다. 기업 운영에도 예외는 아니지. 본좌 같이 산전수전 겪어봤다면 자연히 알 수 있는 것이니라. 아! 좋은 집안의 영애로 태어나 풍파와 시련을 겪어보지 못한 누구는 알기 힘들 수도 있겠구나.”
그걸 들은 신시아의 가지런히 정리된 눈썹 끝이 치켜 올라갔다.
“이 여우 같은 게 잘난 척을······! 미리 공부하고 왔지! 바른대로 말해!”
“본좌는 여우 같은 게 아니라 여우이니라.”
이수련이 관자놀이 주변을 터치하자 바이저가 내려오며 그녀의 얼굴 앞에 반사 스크린이 만들어졌다.
스크린 위에 뜬 것은.
ᕦ(ツ)ᕤ
어딘가 보는 사람을 열받게 만드는 특수문자 이모티콘이었다.
“야! 이수련!”
신시아가 이수련에게 달려들었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나서 앨리스에게 인사했다.
“약속 시간 됐다. 나 갔다 올게!”
앨리스는 신시아와 이수련을 보고 웃느라 내게 고개를 까딱할 뿐이었다.
#대림 에어리어 15구역에 있는 에이들리 선거 캠프로 가는 길, 나는 버스 안이었다.
빠아아앙-
끼어들기를 시도하는 택시를 향해 버스 기사 아저씨가 클락션을 눌렀다.
여다함이 만천화우를 갈기기 위해 패널에 주먹을 꽂은 것보다 강했으면 강했지 절대 약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택시 기사가 운전석 문을 열고 뛰어와 버스 앞문을 발로 차댔다.
“야! 열어! 내가 못 할 짓 했어? 왜 빵빵거리고 지랄이야!”
사납게 생긴 늑대 수인 택시 기사가 성질을 냈으나 알파카 수인인 버스 기사 아저씨는 운전석 한쪽에 놔둔 풀 뭉치를 집어다 쩝쩝 씹으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버스 기사 아저씨는 앞문을 조금 열어 틈을 만들었다.
늑대 택시 기사가 그 좁은 틈으로 손을 비집고 들어오며 용을 썼다.
“넌 뒤졌다.”
그때, 택시 기사를 향해 고개를 돌린 알파카 버스 기사 아저씨가 앞문의 틈으로 침을 뱉었다.
퉷.
늑대 택시 기사는 이마에 정통으로 침을 맞았고, 잠깐 멈칫하나 싶더니 자기 택시로 뛰어갔다.
어떻게 하려나 하고 창문을 열고 팔 한쪽과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서 보니 놀랍게도 택시 기사는 뒷자리에 탄 손님을 내보내고 버스 앞으로 택시를 몰아 차를 세워버렸다.
내 입에서 순수한 감정이 언어로 화해 피어올랐다.
“지랄 났다. 지랄 났어.”
허구한 날 갈아엎어지는 대림 에어리어의 도로 공사 상황과 그에 따른 극심한 교통 정체는 유명했다.
바이크를 타고 다니면 요리조리 요령 있게 피해 다닐 수라도 있지, 이렇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이런 상황을 마주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천재지변이겠거니 하고 통신 디바이스를 켜서 오늘의 운세나 보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버스 안의 승객들은 별다른 동요를 하지 않고 있었다.
바이크만 있었다면 이런 꼴은 안 당했을 거라는 생각에 불만 섞인 혼잣말이 중얼중얼 나왔다.
“이 정도 했으면, 타게 해줄 만도 하잖아. 내가 못 타는 동안 빌려 간 정현이랑 자코만 신났네. 아니, 그리고 영감님도 선거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선거 이후에 민생도 신경 써야지. 꼴이 이게 뭐냐고. 위정자가 아니라 위선자야 위선자.”
그때, 귀걸이가 진동했다.
“네에. 오메갑니다.”
-오신다고 말씀을 들었는데 어디쯤이신가 해서 확인차 전화했습니다.
피츠였다.
“뭐······가고는 있는데, 쉽지 않아 보이네요.”
-네? 에이들리 님은 시간 약속을 중요시하세요. 절대 늦으시면 안 됩니다.
“저도 시간 약속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근데 상황이 안 따라주는 걸 어떻게 합니까. 열심히 가보겠습니다.”
정 안되면 내려서 다시 택시라도 잡아야지.
그래도 제 시간에 도착할지는 좀 의문이지만.
-알겠습니다. 그리고 종전에 저희에게 말씀해주신 조건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대로 받아들이긴 조금······.
그렇지 않아도 막히는 도로 위에 있어서 열 받는데, 피츠의 말을 들으니 짜증이 팍 솟았다.
“먼저 접촉한 건 그쪽이었습니다.”
-그래도 서로 오가는 게 있어야 할 텐데 이건 너무······.
이 새끼, 말끝 흐리는 것도 열받는다.
“피츠 씨. 드릴 말씀이 있는데 말입니다.”
-예.
피츠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내가 고분고분하게 조정할 거라고 생각한 걸까?
어림도 없어요.
“아직도 제가 착수금만 먹고 떨어지라고 하면 어영부영 고개 끄덕이는 사람으로 보입니까?”
-······.
“미리 다 알아보고 오셨죠? 제가 페룬 마탑, 기계 교단이랑 꽤 친하다는 거요. 그래서 캠프에 저 넣어서 대림 에어리어 학교 건축 사업도 홍보로 써먹고, 나중에라도 혹시 모를 기계 교단과의 충돌도 방지하려던 거, 맞죠? 그게 먼저고 반대 진영 정리하는 건 나중이잖아요.”
스냅샷과 타이린드가 쫙 뽑아다 준 정보다.
그래도 양심적으로 야스민 가문이나 공공 집행자들을 언급하지는 않았다.
체급이 안 맞잖아, 체급이.
“끊고 에이들리라는 양반한테 가서 말하세요. ‘오메가라는 해결사 뭐시기가 안 한답니다. 그래서 선거 계획의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합니다.’ 이렇게요. 됐죠? 끊습니다.”
피츠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듬뿍 묻어났다.
-아이! 왜 그러십니까! 착오! 착오가 좀 있었나 봅니다.
“무슨 착오요. 대충 후려치면 될 거라는 계산 착오요?”
-말씀이 심하십니다. 왜 그렇게 스스로를 깎아내리십니까.
“깎아내린 건 제가 아니라 그쪽이죠. 피츠 씨.”
계속 피츠가 떠들어댔으나 나는 건성으로 대답했다.
확실하게 사과 박고 내가 제시한 조건을 다 수용하겠다고 먼저 말할 때까지는 꿈쩍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때, 열려 있는 버스 창문 뒤로 우웅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내밀어 돌아보니 호버보드를 탄 녀석 하나가 꽉 막힌 도로 사이를 요리조리 파고들고 있었다.
‘바이크 못 타는 동안 임시로 저거라도 사서 타고 다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보고 있자니 녀석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버스 곁을 스쳐 가며, 놈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튕겼다.
똑같은 방법을 목격한 적 있었다.
ODC, 서라벌 권역의 유적 탐사에서 브리가드의 호버보드 부대가 이런 식의 움직임을 보였었다.
[에어 글러브]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내 자리로 들어오려는 걸 낚아채니 삐삑거리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시부럴.”
-예? 아니 해결사님. 아무리 그래도 그런 말은 좀 심한 거 아닙니까?
곧바로 창문을 통해 몸을 밖으로 빼낸 후, 버스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택시로 달려갔다.
칼자루를 두 번 뒤틀어 검을 완전히 전개한 후, 택시 운전석 문짝을 양단했다.
버스 출입구를 발로 차던 기세등등함은 어디 갔는지, 나와 눈이 마주친 늑대 택시 기사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외쳤다.
“미안해! 미안해! 급한 줄 몰랐어! 미안해!”
버스 탄 사람 중에 안 급한 사람이 어딨어!
일단 검을 역전개하고 택시 기사를 끌어냈다.
안쪽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손에 든 폭탄을 던져넣고 뒤로 돌아 엎드렸다.
퍼엉-!
가벼운 폭발과 함께 택시가 들썩거렸다.
“내 택시!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잖아!”
절규하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22구역에 돼지 마크 달고 있는 청소업체가 있는데, 고물도 매입하니까 거기 가면 값은 잘 쳐줄 겁니다.”
“그게 할 소리······!”
택시 기사의 말을 다 들을 새는 없었다.
이건 선전포고다.
브리가드, 정확히는 마데르노의 선전포고.
나는 저 멀리 가는 호버보드의 꽁무니에 대고 외쳤다.
“야, 이 씨부럴 새끼야!”
-······.
아무 말이 없던 피츠가 통신을 종료하는 소리가 귀걸이를 통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