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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49화 (150/258)

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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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어 자신을 피츠라고 소개한 남자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사무실이 많이 달라졌군요.”

네오-서울은 3권분립이 되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다들 ‘시청’이라고 부르는 행정부의 입김과 영향력이 매우 강한 편이라서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공무원 대우가 상당히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네오-서울 공무원은 네오-서울의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사기업에 밀리지 않는 연봉체계를 보여주는 것과 동시에 정년 보장까지 되니 취직 피라미드의 정점이라고들 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으니, 수명 연장에 따른 인사 적체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심한 곳은 20세에 입직한 9급 공무원이 100세가 다 되도록 7급을 달지 못한 곳도 있다고 한다.

호봉은 꼬박꼬박 쌓인다고 하니 승진에 큰 욕심 없다면 나쁘지 않을지도?

이런 인사 문제와 연금 수령 문제 때문에 공무원 사회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건 그쪽에서 알아서들 할 문제다.

다만 피츠라는 이 남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여기 대림 에어리어에서만큼은 공무원에 대한 인식과 취급이 극도로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뇌물을 먹어놓고도 주점에 불시 검문을 나왔다고 경찰서에 수류탄을 까 넣고, 신규 카지노 허가를 안 내준다고 에어리어 행정관청에 바주카를 갈기는 것들이 대림 에어리어에는 득실거렸다.

자연스레 정상적인 공무원들은 정신질환이나 PTSD를 호소하며 사라졌고, 그 빈자리는 공무원 조직 내에서도 답 없는 꼴통이나 사고를 몰고 다니는 이들이 채웠다.

하루하루 칼날 위를 걷는 대림 에어리어 무뢰배들과 뭔 짓을 해도 정년까지 잘리지는 않지만 제대로 된 곳으로 재발령받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직감한 막장 공무원들의 콜라보레이션은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다.

대림 에어리어 공무원과 지역 사회 간의 끈적한 유착이 시작된 것.

그 유착은 시작점을 찾는 것도 힘들었고 해결방안을 찾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유착의 일례를 들자면, 공직자 재산 조사를 했을 때 새로 부임한 대림 세무서장이 네오-서울의 모든 공직자 중 가장 큰 재산 상승 폭을 보일 정도였단다.

그나마 파악이 되는 것만 저 정도니, 뇌물이나 향응은 그에 못지않을 것이다.

이런 행위가 발각되어 시청에서 해당 공무원에게 중징계를 때리고 한직으로 발령 내려고 해도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다른 곳에서 사고를 친 공무원을 박아넣으면 또 금세 물들어버리거나 아니면 사표를 내는 일의 반복이라 시청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위타천이 공공 집행자를 그만두면 대림 에어리어 행정관이나 감사관으로 부임시킬 계획도 세웠다고 한다.

행정관은 지역민들의 투표로 뽑히는 선출직이지만 대림 에어리어에 한해서 긴급 조치를 발동할 수도 있다는 것.

위타천이라면 마음에 안 드는 종자들을 다 패고 다니니 제법 그럴듯한 계획 같았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계획은 무효로 돌아갔다.

자기 관심 없는 일에는 나서지 않는 위타천이 만일 행정관으로 부임한 뒤 아예 손을 놔버리거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무뢰배들의 뒤를 봐주기라도 한다면 대림 에어리어의 상황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예측 보고서 때문이라던가.

믿기 힘든 계획과 결과지만 저번에 나다가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던 중에 한 말이니 신뢰도는 매우 높다고 할 수 있었다.

여튼 이렇게 약이라도 거하게 맞은 것 같은 방식으로 이가 빠진 톱니들이 맞물려 굴러가기 때문에 대림 에어리어 공무원은 돈, 술, 뇌물, 유흥에 미친 인간들 정도로 생각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막장 무뢰배들보다 더한 것이 대림 에어리어 공무원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이권과 관련이 있는 공무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지, 녹지는커녕 작은 텃밭 가꾸려고 땅만 갈아놔도 누군가 폐기물과 쓰레기들을 가져와서 거기다 쏟아버리는 대림 에어리어에서 녹지사업소 과장이라는 이 남자, 핏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것 같았다.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운이 좀 따랐죠.”

“겸손하시긴. 저도 다 듣는 귀가 있습니다. 요새 대림 에어리어에서 해결사님 이름 모르면 간첩입니다. 간첩.”

핏츠는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우리 사무실에 방문했었다.

내 나름대로 깔끔하게 처리했는데, 당시의 내 입지로는 해결 방법을 노출하면 여러 가지 머리 아픈 일에 얽힐 것 같아서 핏츠에게는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것 때문에 핏츠는 문제가 해결된 것이 내 덕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그리된 것으로 생각해서 착수금만 넘기고 성공보수와 사례금은 주지 않았다.

올가 할머니네 건물을 사용하는 후앙네 청소업체와 사무실 건물 아래쪽에 입주한 상가에서 매달 꼬박꼬박 임대료를 받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당시는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을 겨우 탈피한 시점이라 조금의 돈이라도 아쉬운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앨리스는 그 당시 사건의 전말을 설명하려는 내게 고개를 저어 보였지만 이후 며칠 정도는 ‘그냥 다 말씀하시고 성공보수까지 받는 편이 좋았을까요?’라고 내게 되묻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앨리스가 나와 피츠의 앞에 각각 내놓은 커피의 색이 조금 달라 보였다.

피츠의 커피 쪽이 조금 더 갈색을 띠는 건 내 착각이겠지.

‘설마 그때 일 때문에 멀쩡한 커피 머신 놔두고 저쪽만 인스턴트커피 준 건가?’

예전 사무실에서 박스로 사놓고 쓰던 걸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온 인스턴트커피가 있었는데, 참고로 신시아는 우리 사무실에서 이걸 처음 먹어봤단다.

커피가 이렇게 달달할 수도 있냐면서 놀라던 신시아의 모습을 보고 나는 더 놀랐다.

각설하고, 커피의 진실은 앨리스만 알고 있게 놔둬야겠다.

“아드님 학교생활은 별다른 문제 없죠?”

“예. 그 이후로 잘 다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똥통 학군 말고 전학을 보내고 싶은데 다른 에어리어로 보내면 학비 지원이 팍 줄어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습니다. 허허허······.”

피츠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앨리스에게 말했다.

“커피 맛이 좋네요.”

“감사합니다.”

눈은 웃고 있지만 나는 봤다.

앨리스의 어깨가 아주 가늘게 움찔하는걸.

아마 내 예상이 적중한 모양이다.

잔을 내려놓은 피츠는 사무실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내주길 바라는 얼굴이다.

아무리 한직에 있다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명함 내밀면 무시는 안 받는 네오-서울 공무원이라는 건가.

아오, 공무원 마인드 영 피곤하네.

키클롭스 아재가 술자리에서 술만 좀 들어가면 공무원 욕을 그렇게나 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그런데 나도 숙이고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저런 모습이 더 얄미웠다고나 할까.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저희가 영업 방침을 바꾼 터라 기존 고객님들의 소개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신규 고객 유치를 하지 않고 있어서요. 사무실 초기의 인연으로 안으로 모시긴 했지만 대기 중이거나 기존 고객님들에게 소개를 부탁 중인 잠재 고객분들이 알게 되시면 저희도 곤란해집니다.”

모시는 분 어쩌고저쩌고하는 얘기를 분명 들었다.

공무원이 누굴 모신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물어보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의뢰 한 건 한 건이 아쉬웠던 예전과는 달리 쏟아지는 의뢰를 쳐내는 입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쪽에서 나를 원한다며?

생각보다 내 태도가 뻣뻣한 것에 놀랐는지 리츠가 잘 여민 셔츠 깃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여유 공간을 만들며 말했다.

“허허······서론이 긴 걸 좋아하지 않으셨죠. 제가 깜빡했습니다.”

제 위치를 자각한 사람에게 굳이 더 압박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사이의 인연이 또 있지 않습니까. 너무 야박하게 굴 수는 없죠. 의뢰할 게 있으신 모양인데, 들어보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앨리스가 치고 들어왔다.

“상담은 절대 외부로 노출되지 않고 비용이 청구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상담이 곧 의뢰 승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점. 미리 고지 드립니다.”

그리고 패드에 내 서명이 적힌 상담의 비밀 엄수와 유지에 관한 전자 계약서를 띄워 피츠 앞에 가져다 놓았다.

피츠는 망설임 없이 빈 서명란에 서명했고,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에이들리 님이라고 들어보신 적 있으시죠? 20년 가까이 행정관 선거 도전하는데 잘 안 되고 계신 분. 행정관은 어렵다고 판단하셨는지 이번에 에어리어 의원에 도전하십니다.”

네오-서울은 소규모 특수 에어리어와 자치 에어리어를 포함해서 약 40개의 에어리어가 존재하고 각 에어리어의 시민들은 투표를 통해 에어리어를 관장하는 행정관을 선출한다.

행정관은 행정 영역에 국한된 직위로, 대한민국에 비유하자면 시장이나 도지사 정도에 해당한다.

이런 행정관들을 통솔하는 사람이 행정 영역의 수장인 네오-서울 시장이다.

그렇다면 입법과 사법 영역의 자리도 있을 터.

네오-서울 중앙의회에서 활동하며 입법을 맡는 사람들이 에어리어 의원이다.

행정관은 에어리어 당 한 명만 있는데 반해 에어리어 의원은 선거구에 따라 나오기 때문에 한 에어리어에서 많게는 10명 이상이 나올 수도 있었다.

대신 행정관에 비해 파워가 꽤 밀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직 캠프가 꾸려지지는 않았지만, 저는 참모 역할로 에이들리 님을 도울 예정입니다. 그분께서 잘되어야 저를 끌어주실 거고,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대림 에어리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요.”

피츠는 탈脫 대림이라는 거대한 꿈을 꾸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의뢰 내용은요?”

“에이들리 님도 해결사님에 대한 좋은 말들을 들으셨는지 한 번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을 꺼내셔서 말입니다. 마침 제가 일전에 들른 적도 있고 해서······.”

말끝을 흐리는 피츠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잠깐 내 눈을 마주하나 싶더니 피츠의 시선이 흔들리다 다른 곳으로 떨어졌다.

“그······행정관 선거뿐만 아니라 의원 선거도 꽤 치열한 거, 알고 계시죠?”

민주주의네 투표네 어쩌네 해도 선거철만 되면 금권선거와 폭력선거가 어우러진 대환장쇼가 펼쳐지는 곳이 대림 에어리어다.

여기 애들은 ‘모두 소중한 한 표의 가치를 가졌으니까 반대편 애들을 죽이거나 투표장에 못 나오게 하면 내 표의 가치가 올라가네?’라는 생각과 행동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말인즉슨, 나보고 정치 깡패 역할을 해줄 수 있겠냐는 얘기다.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그래도 내 이름을 대면 끗발 좀 세울 테니 반대편의 공세를 미리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근데 막말로 내가 이런 일 할 그런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찬밥 더운밥 가리던 시절은 지나가고, 볶음밥이랑 국밥도 먹고 할 때 아니겠냐고.

만약 내가 저 일을 해서 에이들리란 작자가 의원이 됐다고 치자.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도 있겠지.

그런데 나한테 필요한가?

나름대로 대등한 관계에서 맺어 놓은 든든한 인맥들이 있는데?

에어리어 의원이 내 인맥들보다 더 유능하고 힘을 잘 쓸 것 같지도 않다.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부분을 받아들이긴 어렵겠습니다. 정치적인 일에 관련되기에는 제 그릇이 작아서요. 마음으로 응원한다는 말씀 정도 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지 피츠는 놀란 얼굴을 하더니 곧 일어서서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

이틀 뒤, 나는 저택에 한 번 들르라는 야스민 공의 뜻에 따라 성북 에어리어로 향했다.

아직 앨리스의 진노가 풀리지 않았기에 바이크 없이 택시를 이용해서······.

저택 서재에 들어서자 야스민 공의 분리된 자아들이 반갑게 나를 맞았다.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말했다.

“이번 대림 에어리어 의원 선거에 외부의 자금과 인력이 몰려들고 있는 정황을 파악했네. 특히나 WSS 쪽의 유입이 대단해. 대림 에어리어의 판세를 재정립할 정도야.”

“혹시 근래에 암흑가를 점령한 조직도······.”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 아마 움직이지 않을까 싶어. 네오-서울의 에어리어 중 WSS와 가까운 곳이기도 하니 그쪽에서 보기엔 좋은 진출 기회지.”

“시청도 의원 선거에 적극적인 개입은 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자칫하면 행정부가 입법부에 입김을 미친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개입만 있을걸세. 게다가 악명 높은 대림 에어리어다 보니 행정력을 많이 투입하는 것 자체가 시청으로선 부담일 수도 있고. 자네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선거 기간에는 조심해야 할 것 같아 알려주려고 불렀네.”

큰 부담 없이 외부 세력이 네오-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

게다가 의원 선거라는 특수성 때문에 시청은 방조에 가까운 태도를 보일 예정.

앨리스의 추측대로 수연이나 마데르노가 나를 향해 이를 갈고 있다면 그들에게 판을 깔아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멍하니 있다 당할 생각은 없었다.

나도 대비를 해야 했다.

저택을 나오면서 앨리스에게 통신했다.

“에이들리인지 비들리인지 거기 아직 연락돼?”

-피츠 씨 연락처 받아놓긴 했어요.

“내가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알려줘.”

-그거 하시게요?

“대신 내가 벌이는 일의 뒷감당은 그쪽 캠프에서 해야 한다는 조건 달아. 선거 승패와 관련 없다는 조항도 넣고.”

-야스민 공과 무슨 말씀을 나눈 건지 모르겠지만 사장님 진짜 악독하네요.

“널 보고 배우니까 이렇게 되더라.”

-······바이크 압수 1주일 추가.

“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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