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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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돌아왔을 때, 위올란트는 가느다란 숨만을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다.
그의 몸을 이루는 금속과 불길은 대부분 사라지고, 다 타버린 작은 드워프의 가슴이 힘겹게 오르내렸다.
한쪽 눈만을 비스듬히 뜬 위올란트가 내게 말했다.
그의 고개는 나를 향해 있지만, 시선의 끝은 내게 닿아있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걸까, 아니면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것을 보고 있는 걸까.
“잘 끝난 것 같군. 주위가 잠잠해.”
아르기는 죽었다.
실력 좋은 마법사고, 강인함으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몸을 가진 용인이라지만 위올란트가 만들어 내게 쥐여준 검이 그려내는 별의 쏟아짐을 감당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 둘만 알고 있어야 할 비밀을 떠들어댈 것 같아서 처리했지. 후환을 남겨두면 찜찜해서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와.”
“예전에도 이런 성격이었나? 바로 어제같이 선명한 것 같으면서도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아.”
“내 예전이 어땠는지는 나도 몰라. 지금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바빠서 예전 생각이 날 틈이 없어.”
떨리는 근육으로 힘겹게 입가에 웃음을 그려낸 위올란트가 맞장구쳤다.
“좋은 자세야.”
그의 목소리가 차차 말라붙었다.
“내 검은 어땠지?”
칼자루를 비틀어 광자 검날을 없애고 허리춤에 꽂은 뒤에 답했다.
“너무 오래 쉰 거 아니야? 감 다 죽었어. 무게 중심은 미묘하게 뒤쪽에 있고 좌우 축도 살짝 뒤틀려서 파지 하기 불편해. 손 볼 곳이 많아. 다 늙은 노인네처럼 그렇게 등이나 붙이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라고.”
“내가 말 하지 않았나? 나는 네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어. 다 늙은 노인네처럼이 아니라 진작 늙은 노인네라고. 노인학대로 잡혀가고 싶은 게 아니면 날 더 이상 부려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
“아직 말 안 끝났어. 그렇게 묘하게 불편한데도 내가 손에 들어본 것 중에는 제일 마음에 들어. 이런 걸 20개 정도는 더 만들어줬으면 해.”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열받게 하는 말투는 변하지 않았어. 말만 좀 곱게 했어도 널 잡겠다고 으르렁대는 유저들이 반은 줄었을 것 아니냐.”
“그럼 내가 패고 다니던 놈들 숫자도 절반이 줄잖아. 그건 아쉬운데.”
“네가 내 검을 들고 날뛰는 걸 더 보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건 힘들 것 같네.”
“개시는 봤잖아. 원래 뭐든 시작하는 때가 중요한 거야.”
“그렇지. 그렇지.”
굴러다니는 모듈박스 하나를 끌어다 걸터앉았다.
내 과거와 현재를 알고 있는 이의 마지막을 지켜 보고 싶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보통 개판을 쳐놓은 게 아닌 것 같네. 게다가 아르기도 죽였다니 한동안 시끄럽겠어. 어쩌면 한동안 발사대가 멈출지도 몰라.”
“멈추라지.”
“시끄러워. 내 말 들어. 아르기의 집무실은 가봤지?”
“응.”
“책상 두 번째 서랍을 빼내면 안쪽에 작은 칩이 있을 거야. 아르기가 스파이봇을 이용해 확보한 촬영물과 도청 데이터야. 외부랑 연결되지는 않았을 거니까 바로 파기해. 그게 새어 나가면 네가 귀찮아질 거야.”
“그걸 어떻게······.”
“아르기가 스파이봇을 이용해서 발사대 내부를 통제하는 것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찾아와서 부탁하길래 몰래 시스템에 침투한 적이 있었어. 아르기의 그런 행동을 막아내지는 못했지만, 놈의 약점 정도는 알게 됐지. 너는 내 제보를 받고 발사대 내부의 부정을 조사하러 왔다가 의견 충돌로 이렇게 된 거야. 내가 방금 한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해. 그럼 남겨진 사람들이 알아서 할 거야. 핵심 데이터는 없어졌지만, 시스템과 주변 기기들이 남아있을 테니 태양청년단에서도 이 일을 아르기 개인의 부정과 일탈로 덮어버릴 것이고. 여긴 권역들의 힘이 미치기 어려운 곳이라 태양청년단 본단에서 덮으려고 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어.”
댐이 터지듯 말을 쏟아낸 위올란트가 힘겨운지 쌕쌕거리며 숨을 몰아쉬며 미소를 그려냈다.
“사라진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까 이게 좋겠지?”
“포에 미친 척은 다 해놓고 뒤로는 아주 대단한 일을 하고 계셨네.”
“할 말 있으면 지금 해. 진짜 마지막 같으니까.”
무슨 말을 할지 잠깐 고민했다.
무거운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 의미 없이 떠드는 일상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검 말인데.”
“노인학대라고 했는데도 끝까지 부려 먹을 생각인가 보구만.”
“이 검에 대한 게 아니야.”
이수련이 들은 소문에 관한 것이었다.
“이거랑 똑같은 검을 만든 적 있어? 쌍둥이라고 해야 하나 형제라고 해야 하나. 여튼 이것과 짝을 이루는 검을 본 사람이 있대.”
위올란트가 눈을 감았다.
“위올란트!”
“기다려. 아직 안 죽었어. 생각 중이야.”
그럼 눈이라도 뜨고 생각하던가.
깜짝 놀랐네.
다시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린 위올란트의 대답은 제법 충격적이었다.
“있어. 동시에 만든 건 아니고, 나중에 만든 게.”
“그래?”
“그것도 가지고 싶어 하는 눈치인데? 아쉽지만 그걸 모아도 합쳐지거나 하지는 않아.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다만······. 혹시라도 그걸 보게 된다면 한 번은 조심해.”
“업그레이드도 못 한 구형 무기를 조심할 필요가 있나?”
“네 것과 그 검의 관계는 따지자면 부자 관계라고 할 수 있어. 나머지 검의 이름은 ‘존속살해’. 네가 들고 있는 걸 베기 위해 만든 검이야.”
“작명 센스 한 번 괴악하구만. 그런 걸 만드는 취향도 끔찍하고. 그럼 이거 이름은 뭔데. ‘자신의 콤플렉스를 자식에게 투영해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그런 거냐?”
“내 작명 센스보다 더 끔찍한 게 너한테 있었네. 네가 차고 있는 검의 그 이름은―.”
위올란트가 맑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를 위한 선물’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적당하네.”
얘기를 나누는 동안 무너지던 위올란트의 몸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잘 들리지도 않는 그의 말이 바람에 실려 흩어졌다.
“할 얘기가 남았지만, 아쉽게도 여기까지인 것 같네.”
아래턱과 위턱에 힘을 꽉 주고 고개를 끄덕였다.
위올란트는 계속해서 말을 멈춰야 했다.
“내 마지막······무기. 잘······써라. 오랜만에 봐서······좋았고······즐거웠다. 하고 다니는 꼬라지로 봐서······순탄치는 않겠지만······그래도 응원하마. 오메가.”
그가 나를 오메가라고 부른 것에 놀랐을 때, 위올란트는 마침내 재가 되어 바람에 실려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몸이 다 흩어지기 전,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나도 간만에 봐서 즐겁고 좋았다. 잘 가라. 검은 잘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일어섰다.
마음 같아서는 며칠이고 여기서 추모하고 싶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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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청년단 한반도 중부 발사대가 장기간 운영 중지에 들어갔다.
태양청년단 본단에서는 한반도 중부 발사대의 책임자였던 아르기의 강압적인 통제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본단이 적절한 개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통감한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그런 아르기에게 대항하기 위해 물밑에서 노력했던, 포격에 미쳐 있던 어느 고위 정령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올랐다.
트라오윈이라는 이름이었다.
외부의 조력을 받기 위해 트라오윈이 불러들인 오메가라는 해결사가 있다는 것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오메가가 참고 조사인으로 공공 집행본부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알려지고 플라워즈 호텔 사건에서 주목받았던 사람이란 것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자 사무실에 다짜고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대부분 블로거지나 사이버 렉카라고 불리는, 관심이 고픈 개인 방송인들이었다.
메이저든 마이너든 그나마 기자나 언론인 직함을 달고 있는 이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커머라시 야스민의 압력 덕이었다.
하지만 사무실 주변을 맴도는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취재를 포기했다.
그 주변에 있으면 인생 막장처럼 보이는 파충류 수인들이 드잡이질한다는 이유였다.
물론 그들은 스콰이어가 보낸 이들로, 아주 거친 친구들이었지만 사무실 식구들에게는 깍듯하게 대했다.
당장 어마어마한 쓰레기를 처리할 곳이 사라지자 네오-서울에 쓰레기 배출량 저감 정책이 긴급 제정되는 등 제법 큰 변화들이 있었지만, 막대한 금액을 내는 대신 6개월 기간 한정으로 태백권역의 영구동토층과 빙하에 쓰레기를 동결시킨다는 딜을 성공한 덕에 시민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없다고 해도 좋았다.
태양청년단도 4개월 안으로 한반도 중부 발사대의 운영을 재개하겠다고 했으니 문제는 없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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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벨리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한반도 서해의 섬.
최근에는 조금 잠잠해졌지만, 진오와 샴록이 오메가의 도움을 받기 전만 해도 극심한 해적질의 중심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었다.
“이래서 가축에게 사람대우를 하면 안 되는 건데.”
그곳에 상륙한 수연이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저 멀리 섬의 산등성이를 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섬을 깎아내 만든 요새로 향하는 리벨리온 소속 인원들이었다.
요새 안쪽, 거신족 혼혈의 거대한 모습을 드러낸 진오가 수연이 있는 곳을 향해 커다란 바위를 집어 던졌다.
수연의 뒤편으로 펼쳐진 바다에서 무언가가 수면을 가르고 떠올라, 날아오는 바위를 향해 레이저를 쏘았고, 바위는 깔끔하게 양단되어 바닷가에 떨어졌다.
텐진 권역에서 수연에게 지원한, 하지만 톈진 권역의 마크는 깔끔하게 지워진 잠수함이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거둬준 은혜도 모르고 주인을 배신하려 하는 개새끼는 필요가 없답니다. 다 죽여 버릴 겁니다.”
수연의 말과 함께 잠수함의 외장이 열리거나 변형되며 방수 처리된 레이저 포대와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 드러났다.
그걸 본 진오가 외쳤다.
“다른 섬들에 지원 요청해! 그때까지 버텨야 한다! 개새끼에게는 개새끼의 긍지가 있지 않겠냐! 우리를 이용해 먹던 년한테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는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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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WSS 암흑가, 샴록의 몸에 있는 문신에서 떨어져 나온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위로 솟았다.
숨을 몰아쉬는 샴록의 옷은 곳곳이 찢어져 있었으며 무엇보다 그녀는 새카맣게 변한 한쪽 다리를 질질 끌고 있었다.
습격이었다.
어두운 골목, 샴록의 것이 아닌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새가 간 곳에는 뱀이 한 마리 먼저 갔을 건데. 괜찮을까?”
목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지만 발소리는 나지 않았다.
낮게 웅웅거리는 기계음뿐.
골목의 그림자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는 사지가 비틀려 있었으며, 얼룩 가득한 두건으로 눈을 가린 채 부양하는 휠체어 위에 앉아 있었다.
두건 아래, 화상과 동상이 얽힌 상처가 선명한 뺨 아래로 마데르노가 싸늘하게 읊조렸다.
“최근에 오메가를 만났다지? 그에 대해 아는 걸 다 뱉어야 할 거다. 내가 놈을 죽이기 위해 몸소 왔다는 것을 알릴 길이 있다면 더 좋고.”
샴록은 이를 질끈 물며 수인을 맺었고, 그녀의 몸에 그려진 괴수들이 일제히 튀어나와 마데르노를 덮쳤다.
마데르노는 발음을 하지 않은 채 입만을 움직여 영창을 완성했다.
그의 그림자가 뻗어나가며 괴수들의 몸을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내 신조와 취향에는 맞지 않지만, 일단은 임시 동맹 상태라서.”
괴수들을 먹어 치운 저주가 샴록을 향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