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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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곳곳에 존재하는 거대 크레인으로 포격 장치에 옮겨지기 전,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거대한 쓰레기 산 사이의 좁은 도로를 질주했다.
트레일러나 트럭들이 쓰레기를 놓고 가기 위해 만들어진 이 도로와 섬 중심부의 포격 장치, 요새처럼 생긴 섬 왼편의 생활공간과 거대 크레인들을 제외하면 발사대의 통로나 시설들은 대부분 지하에 있었고, 곧 태양청년단 마크를 단 바이크나 경량화한 차들이 지하에서 튀어나와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당신은 태양청년단의 시설에 무단으로 침입했으며! 지시에 불응할 때는······!”
뒤에서 확성기를 통해 윙윙대는 그들의 말과 함께 앨리스의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사장님! 지금 어디서 뭐 하세요! 네오-서울에 없다고 떠요! 긴급 발부된 이 교통 법규 위반 딱지들은 뭔데요! 이게 다 몇 개야!
“나중에 설명할게. 일단 플레어 사출해줘.”
동시에 바이크의 방향을 확 틀었고, 무릎이 도로에 닿을 만큼 낮게 미끄러졌다.
바이크의 좌우측 외장이 열리면서 교란용 불꽃이 쏟아졌다.
나를 잡기 위해 따라붙던 태양청년단 차량들이 바이크에서 쏟아져 나온 불꽃을 피하려고 순간적으로 감속하자 여기저기서 마찰음이 터져 나왔다.
어두워지는 밤을 헤집는 불꽃은 내 바이크와 도로가 마찰하며 생겨난 불티 같았지만, 온갖 탈 것 스킬로 떡칠 중인 지금의 내겐 운전 미스 같은 건 없다.
기울어진 바이크가 쓰러져 무릎이 도로에 갈려 나가기 1mm 전!
[균형 조정]
[오뚝이]
[공기 저항 최소화]
[진동 해소]
[하체 중심 강화]
허벅지로 바이크 시트를 꽉 조이고 몸을 앞으로 붙였다.
가슴 바로 아래에 위치하게 된 엔진이 공기를 빨아들이고, 노즐을 향해 밀어붙이는 옅은 진동이 심장 박동과 공명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나는 이 녀석과 한 몸이었다.
-수평유지장치 허용 범위 이상!
앨리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그럴 리가.”
스로틀 옆, 작은 덮개를 위로 밀어 올렸다.
버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헤지르 대주교가 ‘미치도록 달리고 싶은 날’이 아니라면 절대 누르지 말라고 당부했던 버튼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엄지를 뻗어 힘껏 눌렀다.
“모드 그리즐리.”
.
.
.
“영감님, 모드 럼버잭은 그렇다고 치자고요. 나무꾼이라는 이름처럼 톱이 나와서 다 써니까. 근데 이건 단거리 부스터라면서 왜 이름이 그리즐립니까? 곰이잖아요.”
바이크를 만지작거리던 헤지르 대주교가 내게로 돌아서서 설명했다.
“순간 출력을 높이면 바이크의 안정성이 심하게 떨어지네. 그래서 모드에 맞춰서 바이크 외장을 재조정하면 원래의 모습보다는 조금 우람해질걸세.”
“그게 곰 같아서 그리즐리입니까?”
다시 몸을 돌려 바이크를 만지는 헤지르 대주교가 중얼거렸다.
“자네가 회색곰을 못 본 모양인데, 생각보다 단거리에서 빠른 동물이라네.”
.
.
.
그르르르르
노즐이 뿜어내는 소리가 달라졌다.
바닥에 닿을 듯 옆으로 누웠던 바이크가 폭발적인 출력을 바탕으로 일어섰을 때, 외장은 재조정을 마친 상태였다.
바이크에 몸을 바싹 붙인 탑승자를 보호하기 위해 옆과 위로 솟은 모습.
곁에서 보면 곰이 두 발로 일어서서 털을 부풀린 것 같으려나.
버튼은 아직 눌려 있었다.
그대로 스로틀을 감았다.
그르렁대는 소리를 사방에 울려대는 바이크는 순식간에 도로 경계를 넘어섰다.
내가 향하는 곳은 근처에 있는 쓰레기산 중 가장 거대한 산의 정상이었다.
도로로 가면 태양청년단원들에게 포위된다는 계산이었다.
끼이이익-
거대 크레인들의 우악스러운 집게가 내 머리 위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콰아아앙-
모드 그리즐리의 순간 속력을 따라오기는 힘들었는지 내가 지나온 쓰레기 산의 경사로에 크레인의 집게가 박혔다.
엄청난 힘 때문인지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코를 주먹으로 후려치는 것 같은 강렬한 냄새가 퍼졌다.
후두둑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니 후미등과 리어 윙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가 날아와 붙은 것이 보였다.
“씨발.”
정현이랑 자코가 바이크 한 번만 타보게 해달라고 애걸복걸을 하던데, 세차 싹 해놓고 왁스칠까지 해놓으면 태워준다고 해야지.
쓰레기 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이크 몇 개 정도는 잡히기만 하면 한 번에 뭉갤 정도로 거대한 크레인 집게가 파고들었다가 뽑혀 나오기도 했고, 모드 그리즐리의 바이크가 엄청난 출력을 아래로 내뿜고 있기도 했다.
무너지는 쓰레기 산 위에서, 나는 정상을 향해 질주했다.
정상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뛰어올랐을 때, 쓰레기 산이 무너지며 굉음과 악취를 뿜었다.
-제한 고도 이상! 이대로 착지하면 바이크 하부 다 작살나요! 수리 보증 범위도 아니라고요! 사무실 운영비에서는 한 푼도 안 내줄 거예요! 대체 어디서 뭐 하길래 이런 정보가 뜨냐고요! 사장니임!
모드 그리즐리는 종료되고 바이크는 원래의 형태로 돌아왔다.
발동 버튼도 덮개에 덮인 상태.
아래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제한 구역임을 알리는 수많은 철조망과 위험 안내판이 보였다.
그리고 고개를 앞으로 들자 도로가 아닌 쓰레기 산을 타고 오른 이유가 보였다.
아마도 위올란트가 있을 포격 장치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플레어 한 번 더 되나? 연막도 같이 터트리면 좋고.”
-······돌아와서 다 설명해야 할 거예요.
“나는 항상 빠짐없이 설명하잖아.”
-빠짐없이 설명을 들어도 황당한 짓만 골라서 일으키니까 그렇죠······마지막 플레어니까 예공방이랑 페룬 마탑에 발주 넣어놓을게요.
“굿.”
플레어와 연막이 동시에 터져서 외부의 시선으로부터 나와 바이크를 가렸다.
[표르긴]
얼음의 길이 바이크 아래 생겨났다.
기계 교단의 지하에서 처음 사용했을 때는 살얼음 같아서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지만 지금은 바이크가 올라 있어도 끄떡없었다.
영원빙정이 몸에 다 녹아들기도 했고, 딥스페이스에서 제한 없이 스킬을 난사했던 것이 숙련도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의 길을 따라 바이크를 몰았다.
포격 장치의 바로 위에 닿을 즈음, 아래쪽에 불꽃을 잔뜩 부풀린 위올란트가 보였다.
그 앞에는 몸을 띄운 채로 주위의 것들을 위올란트에게 날려대는 아르기가 있었다.
아르기가 날려대는 물건들의 끝에 담배 연기로 만들어진 사슬이 달려있어 위올란트의 몸을 휘감았다.
다시 한번 속력을 높여 아래로 향해 바이크를 탄 그대로 아르기의 등짝을 받아버렸다.
내가 접근했을 때 즈음 아르기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봤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아르기가 저기 어디로 처박힌 뒤, 몸을 둘러싸고 있는 연기 사슬을 뜯어낸 위올란트에게 말했다.
“내가 좀 늦었나?”
사슬이 꽂혀 있던 자리에서 끈적한 불을 흘리던 위올란트가 나를 슬쩍 보고는 퉁명스레 말했다.
“너무 일찍 왔어. 자정에 오라고 했잖아.”
“오늘 완성된다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있어야지.”
“아직 마무리가 남았어. 그러니까 그동안 저 미친 용인 좀 막아.”
콰아앙-
아르기가 처박혔던 곳에서 물건들이 솟구쳤다.
이어서 몸을 공중에 띄운 아르기가 나타났다.
같은 용인인 페테르는 몸에 엄청난 질량의 초압축 외골격 밴드를 차고 있고, 강인한 용인의 신체로도 그대로 받아내기 어려워 몸 곳곳에 소형화한 부양 장치를 붙이고 있었다.
그렇기에 페테르 역시 지금 보이는 아르기처럼 지상에서 조금 떠 있는 상태로 움직였다.
하지만 둘은 조금 달랐다.
페테르는 움직일 때마다 조금씩 둥실거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아르기는 그런 일체의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움직여야 한다는 듯, 흔들림 없는 절제된 움직임으로 공중에 박힌 듯 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내게 닿았다.
“네가 그 ‘유저’인가. 너 역시 나를 향해 헌신한다면 네 비밀은 묻어주지.”
아르기의 손가락 주위에 담배 연기로 그려진 마법진이 맺히고, 그녀 주변에 떠 있던 물건들이 궤적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질량에 이끌려 주변을 공전하는 위성의 움직임처럼 보였다.
바이크를 세워 놓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지랄하고 있네. 뭘 훔쳐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나가서 지껄여봐라. ‘아, 예. 그러시구나.’하고 사람들이 너 피해 다닌다. 그 정도로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고.”
아르기의 수염이 까딱였다.
위성처럼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것 중, 몽키스패너 하나가 뒤에 사슬을 단 채로 위올란트에게 쇄도했다.
[스카디]
내 손끝에서 뿜어진 냉풍이 주위를 뒤집으며 나아갔고, 몽키스패너는 성에가 가득 낀 채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얼른 검 완성해서 가져와. 손이 근질근질해.”
위올란트가 포격 장치 아래의 자신의 공간으로 뛰어 들어갔다.
문이 잠기며 나는 철컥 소리가 아르기와 나 사이의 묵직한 분위기 사이로 파고들었다.
아르기가 수염을 부르르 떨며 분노에 찬 목소리를 흘렸다.
“왜 이리 멍청한 놈들 뿐인지.”
“태양에 꼬라박겠다는 놈보다 멍청할까.”
힘을 주어 왼손의 중지와 엄지를 튕겼다.
아주 작은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왼손을 앞으로 뻗은 채로 오른손으로 번개를 잡아 뒤로 주욱 늘렸다.
‘아직 현실에서 쓸 정도의 완성도는 아니지만.’
[파천황]
파천황은 내가 가진 서로 다른 계열의 스킬들을 융합하는 스킬이다.
익숙한 화염계와 빙결계의 융합만 사용하고 있었지만, 비행 마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아르기에게 적중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았다.
그래서 꺼내 들었다.
어쩌면 현재까지 딥스페이스에서 얻은 것 중 가장 큰 소득일 수도 있는 스킬.
뇌전 도술과 궁술의 융합.
[궁뢰窮雷]
손끝을 떠난 뇌전 화살이 쿠르릉대는 천둥소리와 함께 수천 갈래로 갈라져 포격 장치 주변을 긁어댔다.
아르기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공중에서 뇌전 화살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지만, 작은 날벌레들이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뿜으며 바닥으로 낙하했다.
“날 찍으려면 사무실에 연락해서 허가부터 받아. 우리 안드로이드가 허가 내줄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하군! 네놈과 위올란트가 있다면 우주로 나아가는 것도 꿈이 아니―.”
제멋대로 떠들던 아르기의 배에 내가 다시 쏘아 보낸 뇌전 화살이 틀어박혔다.
익숙하지 않은 스킬을 쓰는 것도 모자라 위력을 올리기 위해 융합해서 사용하는 반동으로 손가락 끝에서 어깨까지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자가 회복 계열의 스킬들이 용을 쓰고 있으나 신체가 손상되는 정도가 더 빨랐다.
하지만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목표 고정]
[속사]
수십 발의 뇌전 화살이 한 점에 꽂혀 들어갔다.
아르기가 비명을 지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그녀 주변의 물건들이 마구잡이로 던져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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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헉―
위올란트가 입에서 무언가를 뿜었다.
각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정순한 그것은 그의 몸 곳곳에서 울컥거리며 새어 나오고 있었다.
아르기가 준비한 마법에 당한 흔적이었다.
담배 연기를 매개 삼아 아르기가 사용한 것은 마법이라고 부르기에 몹시도 위험하고 불길한 것이었다.
고위 정령인 위올란트를 복속시키기 위해 아르기가 손을 뻗은 곳은 개성 권역이었다.
평양 권역과 근접해 있어 거의 항상 전투 태세를 유지하는 개성 권역에서는 전쟁 범죄에 가까운 무기나 마법도 지불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구하는 것이 가능했다.
거금을 들여 고대 정령술, 흑마술, 세뇌 마법까지 섞여 들어간 부적을 구한 아르기는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비행에 특화된 물질계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마법사라면 그 부적에 흐르는 끈적하고 불쾌한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 없었기에.
정령술사들이 봤다면 기겁을 하고 악독한 것을 당장 치우라며 화를 냈을 정도의 물건.
그것들이 위올란트의 몸에 낸 상처는 아물지 않고 그의 얼마 남지 않은 정수를 바깥으로 흐르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올란트는 손에 쥔 오메가의 검을 놓지 않았다.
용광로에서 꺼내어 망치질할 때마다 정수가 몸에서 솟구쳐 올랐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스스로를 녹여 단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장인의 삶은 그것으로 족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온 정수가 검에 닿을 때마다 망치질은 거세졌으며 담금질 또한 속도를 올렸다.
밖에서는 아르기와 오메가의 전투 때문에 포를 발사하는 것 같은 진동이 계속해서 위올란트가 있는 작은 공간을 뒤흔들었으나 위올란트는 미동도 하지 않고 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내 검이 용광로의 불빛을 모두 잡아먹은 순간, 위올란트는 잔뜩 달궈진 검을 가슴으로 안았다.
최후를 앞둔 그의 불길들이 검을 품어 어루만졌다.
철컥-
문을 열고 나온 위올란트가 본 것은 문 앞을 막고 서 있는 오메가의 등이었다.
그 너머에는 아르기뿐만 아니라 태양청년단원들이 각자의 무기를 들고 오메가를 겨누고 있었다.
고개를 뒤로 돌린 오메가는 그사이에 작아져 버린 위올란트를 볼 수 있었다.
아르기와 대치할 때만 해도 천불 같았던 위올란트는 이제 다 타버린 재처럼 부스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검을 건네는 그의 눈빛.
그 눈빛만큼은 시뻘건 열기를 풀풀 피워내는 잉걸불 그 자체였다.
오메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친구의 유작을 소중히 받아든 후, 늘상 하던 대로 오메가는 칼자루를 두 번 비틀었다.
거침없이 솟아오르는 광자 검날.
검을 어깨높이로 치켜든 오메가가 중얼거렸다.
“옛날 생각나네.”
문에 무너지듯 기대앉은 위올란트가 답했다.
“포격 기능은 없으니까 직접 가서 베어야 할 거야.”
“딱 내 스타일이야.”
아르기가 다시 한번 위올란트를 향해 담배 연기 사슬을 날려 보냈다.
오메가가 가로막고 검을 휘둘렀다.
광자 검날에 얽힌 담배 연기 사슬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어정쩡한 마법은 무효화 할 수 있게 만들어놨으니까. 날뛰어봐. 배터리 걱정도 하지 말고.”
위올란트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오메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오메가가 해야 하는 일은 친구의 유작이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몸소 보여주는 것이었다.
광자 검날이 어느새 어두워진 밤을 수놓았다.
유성우였다.
거대 크레인에 달린 조명들이 오메가를 비추었으나 광자 검날은 그 빛마저 삼켰다.
위성처럼 아르기를 맴돌던 것들이 쏟아지는 유성우를 맞고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 위성들의 중심부, 행성 역할을 하던 아르기도 자신의 마법을 아랑곳하지 않고 파고드는 유성우 세례를 버틸 수는 없었다.
흐려지는 시야로 그걸 바라보던 위올란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역시 물건은 쓸 줄 아는 놈한테 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