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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45화 (146/258)

145.

145.

당신이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한다던가.

발사대에서 위올란트를 만나고 자정이 되면 그곳을 방문하는 며칠간, 해가 지고 사무실의 영업을 끝낼 시간이 되면 나도 모르게 정신이 맑아지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사라진 것으로 치부했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7시 반이다! 문 닫자!”

마음 같아서는 오후 3시에 문 닫고 싶지만 그래도 저녁시간까지는 불이 들어와 있어야 사람들이 영업하는 걸로 인식한다며 앨리스가 극구 반대한 덕에 우리 사무실의 마감 시간은 오후 7시 반이었다.

평범한 직장 같으면 퇴근 시간 늦다고 욕이란 욕은 다 했겠지만, 내가 사장이니 아침에 앨리스가 호출하지 않으면 11시나 12시쯤 사무실로 기어 내려오는 게 일상이니 퇴근 시간에 대한 불만은 딱히 없었다.

게다가 외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고 직주초근접이니 뭐······.

오늘 내내 사무실 소파에서 뒹굴대다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갈 준비를 하던 이수련이 나를 향해 눈꼬리를 세웠다.

“왜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는 것이냐! 무언가 있다! 낭군은 본좌 몰래 신시아와 데이트라도 하는 것이냐!”

“데이트는 무슨. 일의 연장선입니다. 나름대로 야근이고 연장근무라고요.”

“낭군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서 하는 연장근무는 없다!”

“자기 일에 애정을 가지면 할 수 있답니다.”

“핑계다! 신시아도 아니면 몰래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킁킁대던 이수련이 펄쩍 뒤로 뛰며 멀어졌다.

“윽! 냄새!”

냄새?

그럴 리가 없는데.

발사대에 다녀오면 항상 입었던 옷은 잘 빨아두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나 쓰레기장의 냄새가 남을까 싶어서 근처 콤퓨타크리닝 세탁소에까지 맡긴다고.

게다가 새로 받은 티셔츠는 자동으로 항균 탈취 기능도 있다고 했는데?

실제로 몸 이곳저곳을 킁킁거려도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았다.

개과 수인의 특유한 후각에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는 건가?

“빤다고 빨았는데 쓰레기 냄새가 다 안 빠졌나 보네요. 요새 밤에 나가는 곳이 발사대라고 쓰레기가 많은 곳이다 보니까······.”

“쓰레기 냄새가 아니다!”

이수련이 인상을 쓰며 평소에는 숨기고 다니는 꼬리를 모두 꺼냈다.

그녀의 허리춤에서 물결치듯 뻗어 나온 아홉 개의 꼬리가 사무실 한쪽을 가득 채웠다.

쓰고 다니던 바이저를 터치하자 꼬리 2개의 끝에 정밀한 기계 장치가 생겼다.

나머지 7개의 꼬리는 각자 움직이며 갑골문처럼 생긴 상형문자를 그려내고 있었다.

“움직이지 말거라.”

기계 장치에서 흘러나온 빛이 내 몸을 위아래로 몇 번이나 스캔했다.

이수련이 신음을 흘렸다.

“흐음······부정적인 냄새가 나고 있거늘. 통상적이지 않은 마법이나 술법이 분명하다.”

“그런 게 있으면 제가 먼저 알아챘겠죠.”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는 이수련.

“본좌조차도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거늘 이 무슨 오만한 발언이더냐. 하늘 위에는 우주가 있고 우물 아래로는 지하수가 있는 법이니 낭군은 겸양을 익혀야 할 것이다.”

“오늘 돌아가기 아쉬우니까 괜히 또 분위기 한 번 잡는 거 아니죠?”

“본좌를 무엇으로 보는 것이냐!”

갑자기 벌어진 소동이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사무실 정리를 하던 앨리스의 목소리가 저쪽에서 들렸다.

“뭘로 보긴요. 또 땡깡 시작했구나 하죠.”

이수련이 사무실 영업 종료하고도 자기 심심하다며 이런 식으로 강짜를 부리는 꼴을 하도 많이 봐서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평소 같으면 신시아가 휘어잡아 진압할 텐데 신시아는 일이 바빠 요새 사무실에 들르지 못하고 있었다.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일은 핑계고 리셉션 홀에서의 일 때문이란다.

‘일단 저질렀는데 수습이 힘들어서 사장님 얼굴을 못 보는 상태’일 거라고 한다.

“그냥 뻔뻔하게 나오면 되는데. 그죠, 사장님?”

몰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여튼 이수련의 강짜나 땡깡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꼬리까지 다 꺼내놓은 적은 없었다.

일단 수습은 해야겠다 싶어서 말했다.

“저녁 먹고 가고 싶은데 말 꺼내기 민망해서 그렇죠? 어차피 시간 좀 있으니까. 저녁 먹고 가요. 순대국 먹을 거죠? 앨리스 너도 먹을래?”

“아뇨. 조금 전에 오일 샌드 까먹어서 배불러요. 그리고 저 오늘 저녁에 수련 언니랑 같이 샌디 비치에 갈 거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사무실 정리 끝내고 충전하고 있을 테니까 다 드시면 부르세요. 내려갈게요.”

딥스페이스에서의 내 계정 복구와 일렉트로닉 코마 상태의 재발 방지를 위해 앨리스는 꾸준히 매티슨과 협력 중이었다.

계속 나를 스캔 중이던 이수련의 꼬리 두 개의 범위에서 벗어나 사무실 문을 열고 나섰다.

“둘이서 먹어야겠네요.”

힘이 실린 이수련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그대로. 움직이지 말거라.”

나는 한쪽 다리를 앞으로 뻗은 자세였다.

“이······대로요?”

이수련이 몸을 낮춰 내 신발 근처로 얼굴을 가져갔다.

“찾았느니라.”

“아니······누가 신발 밑창까지 신경 쓰냐고요. 너무 예민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신경 쓰이면 올라가서 물로 한 번 씻어내고 올게요.”

이수련은 아무 말도 없이 손을 뻗어, 내 신발 밑창에서 뭔가를 떼어냈다.

그리고 그걸 자신의 눈앞으로 가져가자 한층 길어진 이수련의 꼬리들이 그것을 둘러쌌다.

“모기? 거기 날벌레가 워낙 많아서 어쩔 수가 없······.”

말문이 막혔다.

이수련의 꼬리들이 움직여 세심하게 분리하고 있는 모기 사체는 너무나 인위적이었다.

날개를 이루는 얇은 필름, 깨져버렸지만 눈을 이루는 렌즈, 탄성이 좋아 보이는 긴 다리까지.

“스파이봇이니라.”

상형문자가 맺힌 이수련의 다른 꼬리들이 모기의 근처로 다가가자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물리적으로 부족한 감청 능력을 다른 방법으로 증폭한 흔적이구나. 술법은 아닌 것 같고······마법이 아닐까 하노라.”

모기를 이리저리 살피던 이수련이 인상을 한층 더 찌푸렸다.

“이거, 권역 내부에서 움직이는 것이 발견된다면 난리가 날 물건이다. 네오-서울이 아니라도 말이다. 규제, 협약, 프로토콜, 확산 방지 조약 기타 등등을 모조리 무시한 물건이니라. 게다가 구성품들도 통일성이 없구나. 요즘 세상에 이런 무식한 걸 만드는 곳이 있다니······낭군이 한다는 일, 괜찮은 것이냐?”

이수련의 말을 듣고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인 나다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권역 간 불가침 영역.

주변 권역들의 쓰레기가 밀려 들어오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부품 조달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곳.

권역이나 마탑에 속하지 않은 별도의 마법사 집단을 보유한 단체.

태양청년단 발사대.

총 책임자가 마치 왕처럼 행세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왕국.

한반도 중부 발사대의 책임자인 아르기, 그리고 그 아르기를 유독 피하려던 위올란트까지.

‘이상하리만치 날벌레가 많다고 생각하긴 했다. 설마 대화 내용이 새어 나갔나?’

만약 그런 일이 벌어졌다면, 아르기는 위올란트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이전에,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미안한데, 저녁은 나중에 먹죠. 급하게 가봐야 할 것 같아요.”

한 번에 계단을 몇 개씩이나 건너 뛰어 1층의 차고에 도달한 나는 순식간에 헬맷을 쓰고 바이크 위에 올랐다.

차고의 문이 열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스로틀을 있는 힘껏 감았다.

바이크가 웅웅거리는 공명음을 내며 발사되듯 도로로 뛰쳐나갔다.

딱지 몇 개를 끊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15분 안쪽으로 끊을 생각이었다.

#

저 멀리 노을이 뉘엿뉘엿 지는 너머로 오늘도 발사대는 굉음을 내뿜으며 쓰레기를 태양으로 날려 보냈다.

야간에도 발사를 할 수는 있지만, 주변 행성들의 자전과 공전에 따른 인력, 척력 계산과 그 외에도 혜성 같은 우주 천체들의 움직임에 따른 복잡한 발사각 수정 및 동력 조절, 그에 따른 마법진 재조정 때문에 웬만큼 일이 밀리지 않는 이상 해가 완전히 사라진 20시 이후부터 04시까지는 발사대의 포격도 멈춘다.

따라서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위올란트가 포격 장치의 통제탑에서 내려온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실, 그는 근래 포격 장치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래쪽에 있는 그의 개인 용광로에서 달궈지고 식히고 담금질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검 때문이었다.

포격 장치가 운용되지 않는 시간에만 만지기로 스스로와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계속 그쪽으로 흐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헤아리기도 어려운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만난 친구가 부탁한 일이었다.

자신의 손에서 나온 것들을 누구보다 잘 쓸 줄 알았던 친구의 부탁.

몸에서 이글대는 불꽃이 어제보다 오늘 더 작아지고, 어제의 불꽃은 그제보다 더 작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위올란트는 그렇기에 검을 더 완벽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친구의 움직임이 더 빛날 테니까.

오늘 밤만 지나면, 드디어 새로이 태어난 검을 넘겨줄 수 있었다.

아마 죽기 직전에도 포를 쏴대고 있겠지만, 그 검은 위올란트가 만진 마지막 근접 무기가 될 것이었다.

아마도 해결사 오메가의 검으로 유명해지겠지만, 당사자인 오메가만큼은 위올란트의 검으로 기억할 그런 무기였다.

맥주를 꺼내든 위올란트는 어서 개인 공간으로 내려가려 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완성시켜 보이고 싶은 마음이었다.

“트라오윈.”

위올란트는 그 이름을 듣고 잠시 뒤에 반응했다.

며칠 동안 오메가가 부르는 위올란트라는 이름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뒤를 돌았을 때, 비행 마법을 통해 떠있다가 부드럽게 착륙하는 아르기가 있었다.

“오늘도 해결사 손님이 오시나?”

“그렇습니다.”

“무슨 얘기를 하지?”

“개인적인 얘기입니다.”

담배를 빼서 문 아르기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길게 빨아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를 세워 담배를 끼워 입에서 빼냈다.

드리우는 어둠 너머, 아르기의 손에 들린 담뱃불이 빨갛게 끝을 태웠다.

연기를 길게 뿜어낸 아르기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개인적이라. 태양청년단의 누구와도 길게 얘기를 한 적 없는 네가?”

“길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얘기를 길게 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니까요.”

위올란트가 몸의 불꽃을 부풀렸다.

아르기는 위올란트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이 크지 않은 섬의 왕이 아르기라면 위올란트는 그런 왕을 돕는 귀족 같은 존재다.

아르기가 태양청년단 내부에서 강한 영향력과 발언권 가지는 것은 네오-서울, WSS, 개경 권역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상당히 거대한 도시 권역들의 쓰레기를 완벽에 가깝게 처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것은 위올란트가 포격 장치를 계속 유지 보수하며 신기술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왕은 귀족을 계속해서 견제하고 의심했으나 귀족은 본인의 소임말고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최근 외부의 사람이 다녀간 뒤로, 귀족은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라졌다.

담배를 끼우기 위해 뻗은 아르기의 손가락 위로, 잠자리 하나가 날아와 앉았다.

겹눈 전체가 초소형 렌즈 덮여있는 스파이봇이었다.

“나는 이곳의 왕이고 아랫것들은 내게 감추는 게 없어야 해. 설령 너 같이 조금 특별한 아랫것이라도 말이다. 트라오윈. 아니지. 위올란트가 맞겠지?”

표정이 굳은 위올란트의 말이 짧아졌다.

“도청을 한 거냐.”

“아니. 도청은 불법일 때 쓰는 말이야. 여긴 내가 곧 법이니까 감청이지.”

용인 특유의 현묘하고 깊은 눈빛은 어디 가고, 탐욕과 아집으로 물든 눈빛의 아르기가 욕망을 뱉어냈다.

“위올란트. 너는 여기서 포격 장치나 만지고 있으면 안 돼. 무기와 장비는 한끝 차이잖아. 날 위한 장비를 만들어. 나와 함께 우주로 나아가자. 태양을 시작으로 우주를 내 아래에 두겠어. 그때가 되면 네가 원하는 대륙, 아니 행성을 주지.”

“단단히 미쳤군.”

“이제 알았나? 여기 있는 사람 중에 안 미친 사람 찾는 게 더 힘들걸?”

싸늘하게 아르기를 바라보던 위올란트의 입이 떨어졌다.

“내가 만든 것들은 내가 인정한 놈에게만 준다. 넌 아니야.”

단호한 거절에도 아르기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생각은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아르기의 특기는 비행이고 비행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중력에 대한 저항, 무게에 대한 타고난 감각이다.

그녀는 탁월한 물질계 마법사였기에 자신의 반경 내에 있는 것들도 ‘비행’시키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아는 정령사들이 말하길, 고위 정령도 복속시킬 수는 있다고 하더라고. 규제가 어떠네, 지탄을 받네 어쩌네 하던데. 그건 ‘바깥’에서나 그런 거 아니겠어?”

그녀가 뿜어내던 담배 연기가 마법진을 그리고, 주위의 공구들이 위올란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연장 한 번 잡아 본 적 없으면서 감히!”

위올란트가 거센 호통을 치며 불꽃을 키워 몸에 닿은 공구들을 녹여낼 때, 아르기의 디바이스를 통해 통신이 연결됐다.

강가를 향해 있는 다리를 관리하는 부서, 그중에서도 네오-서울 쪽 다리를 관리하는 팀이었다.

-호버바이크 한 대가 고속으로 검문소를 돌파했습니다! CCTV 확인 결과 해결사 오메가로 파악됩니다!

왕에게 탄압받는 귀족을 구하기 위해 기사가 오고 있었다.

말이 아니라 바이크를 탄 기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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