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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44화 (145/258)

144.

144.

화륵

나다의 봉을 품고 있던 용광로가 뜨거운 숨을 뿜어냈다.

그 바람에 튀어나온 불티가 끔뻑거림으로 어둠을 잠시 밝히다 위올란트의 몸에서 넘실대는 화염으로 끌려 들어갔다.

똑바로 바라보고 있으면 찔러 들어오는 불빛에 눈이 아릴 법도 하건만, 위올란트는 미동도 없이 새빨갛게 달궈진 나다의 봉만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봉 녹겠다능······.”

나다가 초조해하며 움찔댔지만 위올란트는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나는 나다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얹고 말했다.

“찾고 있는 겁니다.”

“무슨 말이냐능?”

과거, 다른 유저들에게서 거둔 아이템들을 맡기러 가면 위올란트가 저것과 똑같은 자세를 몇 시간 동안이나 유지하고 있던 걸 보곤 했다.

열기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도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으면 위올란트는 한참이나 답이 없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들었던 말을 나다에게 똑같이 해주었다.

“무기가 말을 거는 순간을요.”

위올란트가 용광로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그의 신체 중 팔뚝에서 어깨까지 연결되어 있는 금속 부위가 조금 달아올랐으나 위올란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용광로 안쪽의 봉을 만지작거리는지 그의 팔에서 불티가 일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마침내 그의 입이 열렸다.

“스님. 그냥 붙이기만 하면 되는 거요?”

“다른 것도 할 수 있냐능.”

“선택지는 두 가지요. 원상복구 아니면 위올란트식 강화.”

나다가 번뇌에 빠진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 것 같았다.

그 몇 초도 아까웠는지 위올란트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나마 종교인이라 원상복구라는 선택지를 준 거요! 일반인이었으면 고르라고도 안 해! 빨리 정하쇼!”

“강화하면 되돌릴 수 있냐능!”

“그런 건 강화라고 안 해! 되돌아갈 수 없어야 강화인 거야! 이거 하나는 장담하지! 이전에 쓰던 놈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기깔나는 놈이 나올 거요!”

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

“부탁한다능!”

“기가 막힌 놈으로 뽑아주지!”

위올란트 전신을 휘감던 불길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그 불길들은 모두 용광로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느 순간, 위올란트가 계속해서 용광로 안쪽에 집어넣고 있던 손을 쑤욱 뺐다.

그의 손에는 거대한 불꽃에 휩싸인 나다의 봉이 들려 있었다.

그웨지안이 잘라낸 부분은 흔적도 없이 말끔하게 붙어있었다.

나다의 봉을 든 채 눈을 감은 위올란트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식이란 말이지. 이렇게 바꾸면 되겠군.”

그 말과 함께 봉을 휘감던 불꽃이 모두 위올란트에게로 돌아갔다.

당장이라도 주변을 태울 것처럼 솟아오르던 그의 불꽃이 잠잠해지자, 위올란트는 나다를 향해 봉을 던졌다.

가볍게 낚아챈 나다는 절단됐던 곳을 쓸어보고는 이리저리 휘두르고, 크기를 조절하더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훨씬 가벼워졌다능.”

그새 맥주 한 병을 비운 위올란트가 가볍게 말했다.

“법력을 주입해보쇼.”

“봉이 버티지 못할 거라능.”

“그 봉이 스님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데도?”

망설이던 나다가 심호흡을 한 뒤 봉을 꽉 쥐었다.

그의 뒤통수에 어른거리던 빛이 손을 타고 봉으로 흘러 들어갔다.

봉 주위에 범어가 맺히나 싶더니 사람 상반신만 한 불화(佛畫:불가와 관계되는 회화)가 그려졌다.

네 명의 사람이 각기 비파, 여의주, 칼, 탑을 들고 있었다.

나다가 기쁜 목소리로 외쳤다.

“사천왕이라능!”

근엄하고 험상궂게 생긴 사천왕의 모습이 변했다.

나다의 목소리가 떨렸다.

“이건······!”

“대체 봉이 왜 그런 걸 말하나 싶긴 했는데, 그러려니 하고 최대한 봉이 알려준 대로 만졌수다.”

사천왕들은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네 명의 마법 소녀가 되었다.

마법 소녀들이 지닌 물건들이 빛나자 위올란트가 첨언했다.

“위에다 쏘쇼.”

위올란트가 벽의 버튼을 누르자 천장 일부가 열렸고, 머리 위의 포격 장치 너머의 하늘이 드러났다.

나다는 봉을 그쪽으로 돌렸고, 마법소녀 사천왕이 들고 있는 법구에서 네 개의 구체가 발사되었다.

저기 어디 쓰레기장에 떨어졌는지 멀리서 굉음과 함께 불났다며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위올란트는 신경도 쓰지 않는 표정으로 말했다.

“포격을 빼면 섭섭하지. 너무 자주는 못 쓸 거요. 끽해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려나. 법력을 조금 넣어보고 반발력이 느껴지면 곧바로 중지하쇼. 고장이라도 나면 나 말고 손댈 수 있는 작자도 없을 테니.”

어느새 봉을 품에 꼭 껴안은 나다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다능! 지국, 광목, 증장, 다문쨩들은 일주일에 한 번!”

피식 웃은 위올란트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손은 풀렸으니 검은 두고 가. 그리고 매일 이 시간에 찾아오면 된다. 근처에 살면 왔다 갔다 하던지, 아니면 내가 아르기에게 말하면 며칠 정도 머물 곳을 내줄 거다.”

드론과 사람들이 계속해서 방역 작업을 하고는 있다지만 발사대를 이루는 섬은 중심부의 포격 장치와 섬 왼쪽의 요새처럼 생긴 생활 건물을 제외하면 지상 대부분이 쓰레기장이었다.

이런 곳에서 며칠이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다랑 올 때 대충 가늠해보니 차만 좀 덜 막힌다면 바이크 타고 한 시간 안쪽으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왔다 갔다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아르기에게 말해 통행권을 끊어달라고 말해주지. 적어도 쓰레기 트레일러 사이에서 기다릴 필요는 없을 거야.”

허리춤에서 칼자루를 풀어 위올란트에게 내밀었다.

칼자루를 용광로 안에 던져 넣은 위올란트는 슬슬 포격이 시작될 시간이라며 나와 나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다시 사쿠라쨔응을 타고 네오-서울로 돌아오는 길, 나다는 입가에 걸린 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그렇게 좋아요?”

“내 봉에 마법 소녀, 아니 불법佛法소녀가 있다능! 으허허허!”

#

다음 날, 자정 가까울 시간에 다시 위올란트의 공간으로 찾아갔다.

용광로는 안쪽에서 뜨거운 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문이 절반쯤 닫혀 있어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본 위올란트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일까지는 계속 달궈야 할 거야.”

그리고는 내 눈치를 스윽 봤다.

“그럴 거면 오늘은 왜 불렀냐고 물어볼 것 같은데, 아닌가? 나는 몰랐는데 어제오늘 들어보니 그쪽 이름이 제법 유명한 것 같더라고. 성깔 있는 해결사라던가?”

“성깔은 잘 모르겠고, 해결사긴 합니다.”

주위의 잡동사니를 치우고 대충 앉을 곳을 만든 내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유가 있으니 보자고 했겠죠. 아닙니까?”

오늘도 여전히 달라붙는 모기와 파리를 여럿 쳐냈다.

어째 어제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저도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했거든요.”

“우린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고 있군.”

위올란트가 일어서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 물었다.

“술은 좀 하나?”

“도깨비용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면요.”

곧 내 앞으로 차게 식힌 병맥주가 날아왔다.

낚아채서 옆에 있는 공구를 이용해 펑 소리가 나도록 병맥주 뚜껑을 날려 보내고 한 모금 들이켰다.

나와 비슷한 행동을 한 위올란트와 시선이 맞았다.

우리는 동시에 말했다.

“당신, 정체가 뭐야.”

내려앉는 적막과 그 사이를 질주하는 긴장.

화염과 금속으로 이루어진 위올란트의 얼굴이 마구 일그러졌다.

“나는 무기에 새겨진 기억을 읽는다. 용광로 안에 있는 저 검은 꽤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주인을 거쳤더군. 특출난 사람은 없었어. 하지만 해결사 오메가, 너는 다르다. 정확히는 어느 시점 이후에 ‘달라졌지’. 그렇지 않나?”

나는 위올란트를 응시했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얼굴에 드러낸 위올란트는 입에서 불꽃이 튀는 것도 알지 못하는지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분명히 퓨어인데 검술에 능숙하고 자유자재로 마법을 사용한다. 게다가 설명되기 힘든 움직임과 행동을 하지. 다른 사람은 속여도 나는 못 속여. 정확히는 네가 늘 들고 다니던 저 검, 검의 기억은 못 속여.”

화륵하는 소리와 함께 위올란트의 전신에 있는 불꽃이 부풀어 올랐다.

“나는 너와 같은 이들을 알고 있다. 지금의 종족들과 비슷하지만, 그들은 분명 달랐어.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아마 몇 없을 거다. 어쩌면 내가 유일할지도 모르지. 그들 역시 사라져버려서 나마저 그 시절을 한때의 꿈으로 치부했지만. 다시 보게 되니 분명해. 오메가 너는······.”

“유저다. 정확히 말하면 유저였지.”

혼란스러워하는 위올란트와 다르게 나는 후련했다.

마구 뛰어다니며 기쁨을 표현하고 싶다고까지 생각했다.

이 세계가 내가 알던 세계의 연장임을, 저기 있는 정령이 내가 알던 때와 모습은 달라졌지만 어쨌든 본질은 그 장인임을 확인했다는 기쁨이었다.

내보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위올란트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빼꼼 고개를 내밀던 복잡한 감성이 한순간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너를 알고 있다. 위올란트.”

“거짓말.”

거짓이라고 말하는 위올란트의 눈가가 떨리고 입가가 씰룩거렸다.

“검의 기억을 읽었다면 내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고 있을 텐데.”

“이런 방식의 ‘스킬’을 사용하는 건 그놈밖에 없었어!”

스킬이라니.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새어 나올까 봐 속으로만 감추던 말을 다른 사람의 입에서 듣게 되니 간질거렸다.

“그럼 내가 그놈이겠지.”

위올란트가 주춤대다 간신히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의 입에서 그리운 단어가 튀어나왔다.

“□□□□□.”

서리얼에서 사용했던 내 캐릭터의 이름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고 먼지가 앉은 장난감을 꺼냈을 때 나는 삐걱거림처럼 어딘가 매끄럽지 않았다.

“이젠 그것보다 오메가가 더 듣기 편해.”

맥주를 한 병을 그대로 마시고 빈 병을 구석에 던져버린 위올란트가 눈을 끔뻑이며 나를 바라봤다.

“이런 젠장. 불과 철에 미쳐 육신을 버리고 정령으로 다시 태어났을 때보다 더 놀랍군. 어떻게 된 거지? 유저들은 왜 사라졌고 당신은 어떻게 여기 있는 거야.”

“내게 물어본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들이 아냐. 나도 모른다고. 눈 떠보니 이런 꼴이었다는 게 내가 아는 전부야.”

그 뒤로 우리는 맥주를 홀짝이며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무슨 얘기를 하든지 ‘그때는 그랬었지.’ 하는 방향으로 대화가 흘러가는 바람에 서로 바로잡기 위해 애를 많이 써야 했다.

“그런데, 왜 포에 집착하는 거야?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진정한 치유는 고통의 근원을 제거하는 거라지? 제대로 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원거리에서 적을 제거할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의 무기 아니겠어?”

그리고는 위올란트가 나를 흘겨봤다.

“네가 사라진 것도 한몫한다고.”

“나? 내가 뭘 했다고.”

“내가 만들어낸 무기들을 제대로, 완벽하게, 아름다울 정도로 활용한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더 만들어봐야 어중이떠중이들이 사용할 텐데, 그럴 바에는 그냥 근거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은 만들지 않기로 결심한 거지. 그래서 포격과 포에 집착했는데, 이제는 그 자체가 그냥 좋아졌어.”

원한다면 고간에 포를 달아주겠다는 위올란트의 발칙한 제의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죽는다는 얘기는 뭔데.”

“말 그대로야. 수도 없이 맞이하고 보냈던 하루하루의 무게가 달라졌어. 이런 몸이 된 이후로 잠든 적은 없지만, 지금처럼 태양을 맞이하기가 힘든 적이 없다고. 늙어버린 게지. 그리고 노인은 스스로 죽을 때를 알아.”

용광로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위올란트가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때를 기억하는 이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까지 내가 살아있는 이유. 그건 어쩌면 오메가라는 이름이 편해진 너를 만나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눈에서 이글대는 불꽃은 용광로의 빛과 열기를 잡아먹을 듯 매서웠다.

“내가 만든 검이 네 손에서 춤추는 걸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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