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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43화 (144/258)

143.

143.

수십 회나 이어진 발사 이후, 포격 장치 주변에서 사이렌이 울려댔다.

위올란트 혼자 사용하기에는 너무 넓다고 생각했던 포격 장치 하부의 공간에 다른 사람들이 쏟아져나와 포격 장치의 이곳저곳을 점검하고, 열을 식히느라 뛰어다녔다.

하나 같이 아르기와 같은 태양 그림을 문신으로 새겼거나, 하다못해 옷 위에 프린팅이나 자수가 놓아져 있었다.

“아직 더 쏠 수 있다! 포격은 장비가 아니라 기합과 근성으로 하는 거다!”

외쳐대는 위올란트에게 누군가 양동이로 물을 뿌렸고, 효과가 있었는지 금속으로 된 부분에서 수증기를 뿜으며 조금 잠잠해진 위올란트가 구석에 있는 다 무너진 소파에 몸을 던졌다.

“말씀들 나누시죠. 시간 되면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안내인이 우리 둘의 등을 위올란트 쪽으로 밀고는 슬쩍 다른 곳으로 사라졌다.

그걸 본 나다가 내가 속닥거렸다.

“스승님이 봉을 고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그랬는데, 저건 그냥 포격에 미친 사람 아니냐능······.”

“나다랑 비슷한 부류 아닐까요?”

“어딜 봐서 그렇냐능!”

“나다는 애니메이션. 만화 덕후고 저 사람은 화력덕후니까요.”

내 말에 나다는 반박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어느 정도 수긍하고 말았다.

“취향은 존중하지만······여튼 비슷한 건 아니라능.”

위올란트에게 다가갔다.

안쪽에 냉각장치가 되어 있는지 냉기가 솟는 소파에 늘어져 병맥주를 때려 붓고 있는 위올란트가 시선만 위로 올려 나와 눈을 맞췄다.

이 모습도 서리얼에서의 모습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평범한 의자, 주석 잔에 담긴 맥주였고 무엇보다 위올란트의 몸이 불규칙적으로 튀어 오르는 화염과 그것을 막은 것처럼 얼기설기 붙어있는 금속판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일까.

위올란트가 빈 맥주병을 위로 휙 던지자 비행 드론이 낚아채 발사대 위로 올리기 위해 크레인에 잡혀있는 쓰레기 더미로 가져갔다.

그가 불꽃과 함께 우렁찬 트림을 내뱉으며 말했다.

“포격 말고는 인생의 낙이 없는 이 트라오윈에게 손님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군. 끄어어어억.”

“대림 에어리어에서 해결사 사무실을 운영 중인 오메가입니다. 템페시르나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템페시르나? 기공이니 무공이니하면서 허우적거리던 엘프 녀석? 놈은 잘 지내는 거냐?”

템페시르나가 내력을 잃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태가 됐다는 것은 알려지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위올란트는 아예 플라워즈 호텔에서 벌어진 사건 자체를 모르는 눈치였다.

간단히 얘기해주자 위올란트는 혀를 찼다.

“기공 같은 과거의 유산에 집착하니까 그렇게 힘든 일을 겪지. 몸에 자동 포탑이나 간이 곡사포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됐을 거다.”

위올란트의 외형 때문에 알 수 없는 친근감을 느끼고 있던 나는 여기서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서리얼에서 내가 알던 위올란트는 마개조 전문, 특수취향 반영이라는, 훈장인지 불명예인지 구분이 조금 어려운 평가를 유저들에게 받고 있었다.

당기기도 힘든 장궁, 둔기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은 날이 하나도 서지 않은 대검, 충격 분산을 위해 닿는 즉시 방사형으로 깨지는 방패 등을 판매했으며, 유저가 아이템 강화를 맡기면 제멋대로 이상한 물건을 내놓았다.

제대로 된 NPC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개똥 같은 물건을 내놓으면서도 늘 당당한 태도 때문인지 컬트적인 인기가 있었고, 그 컬트적인 인기에 불을 지핀 것이 과거의 나였다.

위올란트가 파는 물건을 들고 스킬을 활용해서 다른 유저들을 잡아내거나 감히 겁도 없이 약탈 가능 지역에서 나를 레이드하려는 놈들을 죽여 얻은 아이템을 모조리 위올란트에게 맡겨 강화한 뒤 시장에 풀어버렸기 때문이다.

실용성은 0에 가깝지만, 아이템의 본래 주인들을 능욕하기에 그만큼 찰진 일이 드물었다.

그때의 위올란트는 늘 ‘모든 무기는 위대하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지금처럼 포격에 미친 놈이 아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예전에는 입에 담지도 않던 정치 얘기를 하는 것만큼 강력한 위화감이었다.

‘모습만 비슷하고 내가 아는 위올란트는 아닌 건가.’

확신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세계는 내가 하던 서리얼에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분명하다.

다만 그것은 시간적 배경일 뿐, 연속성이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어렵다.

두 세계 사이에 어떤 관계와 무슨 일이 있어서 내가 코마 상태였던 몸의 전주인 대신 이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위올란트가 템페시르나나 이수련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만으로 두 세계 모두를 경험해봤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어쩌면 배경만 비슷할 뿐, 사실은 아예 다른 세계선일 수도 있다.

선택의 분기가 각각의 가지를 뻗어나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평행우주론처럼.

그렇기에 순간, 두려워졌다.

적어도 이 몸에서 눈을 뜬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너무나 달라진 위올란트에게 서리얼에 대한 것을 물었다가 부정당하기라도 하면, 그것은 내 존재에 깊은 상처를 입히는 꼴이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하고 싶은 말이 아닌 해야 할 말을 했다.

“템페시르나 님께서 말씀하시길, 제가 사용하는 무기가 위올란트 님의 손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내 봉도 고칠 수 있다고 들었다능!”

그러자 위올란트가 벌떡 일어나서 내 멱살을 잡고 아래로 끌어내렸다.

이글거리는 그의 화염 얼굴에서 열기가 훅 다가왔다.

“그 이름, 다시 부르지 마. 이곳에서만큼은 트라오윈이야. 내 진짜 이름이 위올란트인 걸 알게 된다면―.”

누가 알게 되는 건지 위올란트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의 이글거리는 시선이 향하는 곳 멀리 공중에 아르기가 떠 있었다.

“나를 포격 장치가 아니라 우주 개발팀으로 이동시킬 거야. 아마도. 그건 못 참아. 내가 왜 관심도 없는 태양청년단에 붙어있는데. 다 포를 쾅쾅 쏘기 위해서라고!”

내게서 조금 떨어진 위올란트가 한쪽 손을 내밀고는 내 허리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얼른 칼자루를 풀어 그에게 내밀었다.

이리저리 돌려보던 그가 결론을 냈다.

“내가 만든 물건이 맞아. 아주 오래전에 말이지. 포에 관심을 가져서 다른 무기들을 거의 만들지 않던 시절로 기억하는데. 이걸 어디서 구했지?”

“제가 어느 시점 이전의 기억이 없어서 답이 어렵습니다.”

위올란트가 피식하고 웃었다.

“더 파묻기도 그런, 좋은 핑계를 가지고 있군.”

정말 위올란트가 만들어낸 물건이었다니.

내가 아는 위올란트도 가끔, 아주 가끔은 꽤 괜찮은 걸 만들어내곤 했다.

그 빈도가 아주 낮아서 다른 유저들이 위올란트를 부르는 이름 중에 ‘주사위형 대장장이’가 있었다.

36면체 주사위인데 1이 서른다섯 면에 있고 6은 한 면에만 있다던가.

위올란트는 나다를 향해서도 손을 뻗었다.

“스님도 그 봉이라는 거. 줘 보쇼.”

나다가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등에 수납이 안 돼서 차에 두고 왔다능······.”

“가져오긴 가져오신 거요?”

“그렇다능!”

그리고 위올란트는 들고 있던 칼자루를 다시 내게 던졌다.

“지금은 바쁘니까, 이따 12시 넘어서 포격 장치 점검할 때 가져와. 스님 것도 그때 같이 가져오쇼. 부러진 걸 붙이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뭐.”

“제 검은······.”

“그걸로 뭘 하고 다니는지는 몰라도 배터리 감당이 안 되지? 크기는 더 작고 용량은 더 빵빵한 놈으로 바꿔주지. 그리고 검 위에 뭔가를 덮어씌워 사용한 흔적이 많던데 조금 더 활용이 쉽게 만져주면 훨씬 나을 것 같고. 그립감이나 무게 중심도 조금 손 봐야겠어. 인간을 기준으로 두고 만든 게 아니라서.”

위올란트가 내 검을 훑어본 시간은 채 10초가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 대충 보고도 내가 검을 사용하면서 약간이라도 아쉬웠던 점을 줄줄 읊는 걸 보니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그가 누가 들을세라 덧붙였다.

“너희가 내 진짜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는 조건이다. 영원토록. 그리고―.”

일렁이는 화염으로 이루어져 완벽한 표정을 잡아내긴 어려웠지만, 그는 왠지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닿은 인연이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그 검도 나름대로 고충을 겪으며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온 것일 테니.”

“예? 마지막이라는 게 무슨······.”

그때, 사이렌이 짧게 끊어지며 다시 울렸다.

들고 있던 맥주를 다시 원샷 때린 위올란트가 일어섰다.

“다시 갈겨댈 시간이니 이제 나가는 게 좋을 거다. 쓰레기에 실려 태양까지 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실제로 여기로 실려 오는 쓰레기 중에서 무연고 시신이 허구한 날 발견되니 가는 길 외롭지는 않겠지.”

포격 장치를 점검하던 사람들이 모두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어느샌가 다시 등장한 안내인에게 떠밀리다시피 아까의 터널로 다시 들어서기 직전, 고개를 돌려 바라본 곳에는 다시 우렁차게 소리를 지르며 온갖 공구들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위올란트와 저 멀리 공중에 떠 있는 아르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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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자정, 온종일 5~7분 간격으로 쓰레기를 쏘아 올리던 포격 장치에 사람들이 달라붙었다.

몇 시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점검을 마무리하고 재가동에 들어가야 했다.

네오-서울이라는 초거대 권역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성장세를 자랑하는 WSS, 마지막으로 전제 군주정인 평양 권역의 확장 야욕에 맞서 늘 긴장 상태인 개성 권역의 쓰레기까지 처리하려면 최대한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포격 장치 위의 임시 막 생성 마법진과 가속 마법진을 관리하는 태양청년단 소속 마법사들이 피곤한 눈을 비비며 짧은 새우잠을 자기 위해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같은 시각, 아르기는 잠들지 않고 집무실에서 구식 수화기를 들고 누군가와 대화 중이었다.

“손님들은?”

-트라오윈에게 안내했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르기가 담배 연기를 뿜으며 혼잣말했다.

“트라오윈. 뭘 감추고 있지?”

그녀의 집무실 한쪽에 있는 홀로그램 투사기에 포격 장치의 아래쪽에 있는 위올란트의 개인 구역이 떠올랐다.

스파이봇Spybot이라 불리는, 곤충 형태의 아주 작은 초소형 로봇이 보내오는 영상이었다.

아르기는 파리나 모기처럼 생긴 스파이봇을 이용해 발사대 내부에서 오가는 소문과 억측을 모두 접하고 있었다.

권역 간 불가침 영역인 한반도 중부 발사대를 자신만의 왕국으로 삼아 때가 되면 첫 번째 태양 위성 기지로 만들겠다는 아르기의 뒤틀린 욕망이 발현된 결과였다.

-왕국에 거주하는 신민들은 왕에게 비밀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아르기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트라오윈이라는 이름을 사용 중인 고위 정령은 그녀가 보기에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었다.

능력이 너무 출중해 파고들지를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누구도 찾는 이 없던 고위 정령에게 최근 화제의 인물이 둘이나 찾아왔으니 아르기가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흐릿했던 홀로그램의 형상이 제대로 잡혔다.

연료봉 일부를 가져와 만든 초고열 용광로와 그 앞에 선 위올란트,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위올란트를 바라보는 오메가와 나다였다.

스파이봇이 감청 모드에 들어갔는지 셋이 나누는 대화가 잡혔다.

-정말 오늘 하루면 되는 거냐능?

-이런 봉을 고치는 건 일도 아니지. 원한다면 법력 포격 기능도 넣어줄 수 있다고. 그런데 검은 좀 걸릴 거야. 감을 좀 살려야 하니까. 내가 내놓은 물건인데 대충 만질 수는 없지.

그때, 오메가의 입이 열렸다.

-아까 낮에 말했던 마지막이······.

삐이이이-

소리가 깨지는 것과 동시에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해당 스파이봇이 파손되었다는 메시지가 그녀의 집무실 패널에 떴다.

“갑자기 왜!”

아르기가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나다의 기감과 오메가의 스킬은 이미 초인의 범주, 그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위치였다는 것이다.

짜악-!

법력의 손바닥을 만들어 한참 멀리 떨어진 날파리를 죽인 나다가 중얼거렸다.

“쓰레기 처리하는 곳이라 그런가 벌레가 왜 이리 많냐능.”

순식간에 털어버려 나다는 알지 못했지만, 그것 중 아르기의 스파이봇이 섞여 있었다.

오메가 역시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

[진기珍技 - 여름밤의 학살자]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바람에 걸린 날벌레들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그러게요. 모기약이라도 가져왔어야 했나.”

결국 접근시킨 모든 스파이봇이 쓸려 나가 아르기가 집무실에서 방방 뛰는 사이, 자신이 무슨 일을 한 건지 알 리가 없는 오메가가 위올란트에게 물었다.

“그래서, 뭐가 마지막이라는 겁니까?”

나다의 봉을 담금질하던 위올란트가 잠시 오메가에게 시선을 주었다.

“내 목숨. 길고 긴 삶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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