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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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청년단이여 자부심을 품어라. 우리는 지구를 정화하는 숭고한 임무와 함께 태양을 향해 다가서고 있으니!
-수성보다 가까운 곳에 태양청년단의 위성 기지를!
-아 태양! 나의 정열! 나의 사랑! 나의 삶!
-끊임없이 발사하여 우리의 존재를 태양에 각인하라!
발사대라 불리는 섬의 내부, 그중에서도 섬의 왼쪽에 있는 건물 내부를 안내받으며 볼 수 있는 글귀였다.
이런 거대한 쓰레기 처리장을 운용하는 단체의 이름이 왜 ‘분리수거단’이나 ‘종량제봉투단’ 따위가 아닌지 궁금했는데,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태양이고 오히려 쓰레기 처리가 부업이었다.
태양을 향해 다가가고 싶다는 열망이 조금 뒤틀린 방향으로 발전된 것이 발사대였던 것.
어찌 됐든 태양청년단이 세계 곳곳에서 운용 중인 발사대 덕에 거대 권역들이 내보내는 쓰레기에 대한 염려를 덜 수 있다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렇다고 태양청년단이 비영리단체는 아닌 것이, 권역들에게 쓰레기 처리에 대한 분담금을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주 기술에 대한 우선권을 부여받았다고 한다.
세계가 권역 체제로 재편된 이후로 각 권역 사이의 견제가 심해져서 어마어마한 비용이 드는 우주로의 진출은 조금 늦어졌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지구 밖으로 향할 때, 가장 선두에 있는 집단이 태양청년단이 될 것은 기정사실이라고 한다.
다만 그 방향이 태양계 바깥이 아니라 태양계 중심부라는 게 문제겠지만······.
“하지만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온갖 기술들을 수집하고 있으니까요. 태양 표면에 닿기는 힘들지 몰라도 수성보다 안쪽에 위성 기지를 만들고야 말 겁니다.”
미친 소리를 너무도 당당하게 해서 말문을 막아버린 이 여성 용인의 이름은 아르기.
태양청년단 한반도 중부 발사대의 총책임자이자, 팔뚝 전체를 수놓고 있는 거대한 태양 문신과 쉬지 않고 뻐끔거리며 피워대는 담배가 인상적이었다.
올라오면서 나다가 미리 귀띔해주기를 아무런 장비 없이 비행 마법만으로 외기권에 도달한 최초의 용인이자 유일한 용인이라고.
지구보다는 우주에 가까운 외기권에서 바라본 태양의 아름다움에 빠져 태양청년단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우주를 열망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아이돌과 같은 위치라고 했다.
내가 선망하는 아이돌이 실내 줄담배를 태우고 있으면 조금 실망할 것 같았지만, 용인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와 다른 파충류 수인들에게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 현묘한 눈빛과 어울려 담배 연기마저 그녀의 신체 일부분으로 느껴졌다.
내 시선이 담배에 가 있는 걸 느꼈는지 아르기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합니다. 당분 금지 중이라서요.”
금연하는 이들이 단 걸 찾는다는 소리는 들었는데 단 거 못 먹어서 담배를 피우는 케이스도 있나?
잠깐 의문을 가질 때, 나다가 입고 있던 가사 안쪽을 뒤적여 공문 하나를 꺼내 아르기에게 내밀었다.
“발사대는 네오-서울의 법령 밖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일단 협조 요청 공문이라능.”
공문을 훑어본 아르기가 물고 있던 담배를 쭈욱 빨자 끄트머리를 태우던 불똥이 담배 안쪽으로 쑤욱 빨려 들어갔다.
“트라오윈은 무슨 일로 찾으시죠?”
템페시르나가 말하길 위올란트는 오랜 시간 무기를 만들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위올란트는 현재 신분을 숨기고 태양청년단 소속이 되어 발사대에서 일하고 있단다.
트라오윈은 그런 위올란트가 사용하는 위장용 이름이었다.
용인의 동공이 좁아진 채로 나다를 바라보았다.
“불살불법不殺佛法.”
그녀의 고개가 나를 향했다.
“퓨어 해결사.”
나다에게 잠깐 머물렀던 것과는 달리 아르기의 시선은 내게 제법 오랫동안 붙어있었다.
“얼마 전 플라워즈 호텔 사건의 주인공들이 우리 동지를 찾는 이유가 뭐죠? 게다가 대상을 콕 찍어서 말이죠. 공문은 매우 모호하게만 적혀 있던데요.”
“태양청년단에 불이익은 없을 거라능.”
나다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르기는 여전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코에서 뿜어져 나온 담배 연기가 수염을 타고 흘렀다.
“퓨어 해결사 오메가. 당신에 대한 소문이 권역 간 불가침 영역인 이곳, 발사대에까지 들릴 정도더군요. 소문은 부풀려지기 마련이지만, 그 원형原形도 굉장하겠던데요?”
“의뢰의 세부적인 내용은 고객분들의 보호를 위해 상세히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고지 드립니다.”
“제법 유들유들하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딱딱하군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대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해결사도 결국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야 하니까요. 어떤 쪽을 원하십니까?”
아르기가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걸고서 담배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구식 수화기를 들어 말했다.
“포격 장치 관리팀에 연락해서 트라오윈을 찾는 손님이 둘 있다고 전해. 준비되는 대로 내게 알려주고. 아니, 나는 안 내려가. 손님들이 트라오윈에게만 관심이 있어.”
수화기를 내려놓은 아르기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포격 장치 관리팀은 지금처럼 쓰레기가 몰려드는 기간에는 잠시도 쉴 틈이 없으니 두 분이 직접 가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면회를 철회하겠습니다.”
곧이어 우리를 안내하기 위한 사람이 도착했고, 아르기의 집무실에서 벗어나려는데, 뒤쪽에서 아르기가 나를 불렀다.
“유들유들한 모습도 궁금하군요.”
잠깐 멈칫했다.
말은 그렇게 했었지만, 막상 하라고 멍석을 깔아주니 조금 움츠러들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언제 고객이 될지 모르니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앨리스에게 교육받았기에 최선을 다해 기대에 부응하기로 했다.
유들유들?
아르기를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자.
“우리 간다. 담배 적당히 피고 쌔꺄. 폐에 구멍 날라.”
문이 닫히고, 나다에게 물었다.
“꽤 유들유들했죠?”
“학창 시절 노는 친구가 내게 다가오는 PTSD를 떠올릴 뻔했다능.”
괜찮게 해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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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올란트는 쓰레기들을 모아 위로 쏘아 올리는 발사 장치에서 일한다고 하고, 그 발사 장치는 섬의 중앙에 있었다.
그렇게 안내를 받아 섬의 곳곳으로 연결된 터널을 통해 발사 장치로 향하던 무렵, 우리 앞에 있던 안내인이 손목에 찬 디바이스를 통해 시간을 확인하더니 우리에게 말했다.
“아무거나 붙잡으세요.”
그리고 일정 거리마다 벽에 붙어있는 손잡이를 꽉 붙드는 모습을 보고 나 역시 엉겁결에 따라 했다.
그리고 안내인이 빠르게 덧붙였다.
“흔들릴 겁니다. 놀라시겠지만 절대로 돌발행동을 하시면 안 됩니다.”
“아니 뭐가 뭔지 제대로 설명을 좀―.”
콰아아아앙-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우리가 서 있는 터널이 마구 흔들렸다.
“이, 이게 뭥미!”
외마디 외침과 함께 나다의 뒤통수에서 휘광이 진해졌다.
사색이 된 안내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진정하세요! 쓰레기 발사에 따른 여파입니다! 진동을 해소하는 장치가 터널에 여럿 설치되어 있으니 곧 잠잠해질 겁니다!”
그 말대로 진동은 곧 잦아들었다.
다리가 풀렸는지 일어서질 못하는 나다를 일으키고 안내인에게 물었다.
“방금 그건······.”
“말씀드린 대로 쓰레기를 위로 발사할 때 발생하는 진동입니다. 발사된 쓰레기는 층층이 쌓아 올린 가속 마법진을 통과해 태양으로 날아가긴 하지만 일단 첫 가속을 위한 단계이니만큼 이런 후폭풍이 발생합니다.”
“이건 마치······.”
조금 다른 단어를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결국 빙의 이전에는 분단국가였던 대한민국에 살다 왔기 때문인지 내 입에서 나온 단어는 아주 위험천만한 것이었다.
“폭탄이 터지거나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 같은데요.”
안내인이 걸음을 재촉하며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여러 권역들이 우주 탐사에는 큰 관심이 없으면서 로켓 기술이나 발사체 기술에는 제법 관심을 보입니다. 왜인 줄 아십니까?”
잠깐의 고민.
타고 오르는 등줄기의 소름.
내가 답을 말하기 전, 안내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켓의 발사 각도를 조금 틀면 미사일이 되니까요.”
나다의 얼굴이 굳었다.
내 얼굴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안내인이 오히려 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농담한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틀리지 않지만, 우리 태양청년단은 발사대를 무기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못 하죠. 그랬다가는 권역 간 발사대 불가침 조약이 자동으로 파기되니까요.”
“그렇게 듣긴 했지만, 관계자 입에서 하는 농담치고는 너무 수위가 높은 것 같다능.”
나다의 지적에 안내인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른 주제를 꺼냈다.
“트라오윈을 만나러 오셨다고 했죠? 아마 정령 중에 가장 태양을 사랑하는 친구일 겁니다. 심지어 정령사들이 불러낸 빛 속성의 정령보다 더요. 그 정도 되는 고위 정령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는 사례 자체가 드물다는데, 트라오윈은 태양청년단에서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일합니다. 그것도 시끄럽고 복잡해서 다들 기피하는 포격 장치 관리 팀에서 말입니다.”
터널의 끝, 두꺼운 철문을 열며 안내인이 한 말이었다.
거대한 기계 크레인이 움직여 쓰레기를 모으는 소리, 포격 장치가 웅웅대며 동력을 충전하는 소리, 이외에도 쇠끼리 부딪쳐 쾅쾅대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포격 장치의 바로 아래쪽이었다.
쾅쾅 소리로 다가가며 안내인이 외쳤다.
“트라오윈! 손님이 올 거라는 소식 들었지?”
거친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손님이고 나발이고 바빠 죽기 직전인 거 안 보여!”
망치 하나가 훅하는 소리와 함께 나와 나다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스패너, 렌치, 라쳇 등등의 공구들이 주위를 날았다.
공구들은 포격 장치의 곳곳으로 달라붙어 준비 신호를 기다리는 육상선수처럼 부르르 떨었다.
트라오윈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이름을 감춘 위올란트가 우렁차게 외쳤다.
스스로에게 외는 주문 같았다.
“쏴야 한다! 더 많은 포격을 갈겨야 해! 포병은 전쟁의 신이며 포격은 전장의 꽃이다! 태양은 착탄 지점에 불과하다! 이 완벽에 가까운 무기를 보라고!”
포격 장치 위에 다시 쓰레기가 쌓이고, 안내인이 우리를 향해 급히 손을 들어 귀를 막으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손을 들어 올리며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소음 제거]
[청력 보호]
공구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발끝부터 머리끝을 몇 번이나 왕복하는 기나긴 진동이 끝나고, 주위에는 미처 올라가지 못한 쓰레기가 휘날렸다.
비행 드론들이 쏟아져나와 그것들을 회수해가는 사이, 마침내 위올란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쩌면 나는 위올란트라는 이름이 타이틀이나 가문의 이름이 되어 사람은 바뀐 채 명칭만이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하고 의심했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포격과 함께 말끔히 날아갔다.
위올란트의 모습은 드워프였다.
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형상은 드워프이되 그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이 금속과 화염이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드워프의 모습을 한 고위 정령’인 것.
정령들은 모습을 쉽게 바꾼다고 하니 종족이 드워프냐는 내 물음에 즉각 아니라고 한 템페시르나도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 드워프의 외형은 내가 서리얼 시절 봤던 것 그대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저들이 가져온 무기를 마개조해서 내놓은 뒤에 외치는 어조가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으면 단어뿐이었다.
“다음 포격을 준비해라!”
예전에는 포격이 아니라 장비를 준비하라고 외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