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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쨔응이라는 심히 언밸런스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나다의 머슬카에 대한 적응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
외관에만 랩핑이 되어 있어서 막상 탑승한 이후에는 그렇게까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운전하는 것이 아니라 조수석에 앉아 가는 터라 더 편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바이크가 손맛과 개방감은 죽여주지만 나는 별일이 없으면 자율주행모드를 사용하지 않는 편이기에 계속해서 주변 상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런 귀찮은 과정 없이 창문을 내리고 팔을 걸친 채로 바람을 만끽하고 있으니 이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시내를 벗어나 도시고속도로에 오르니 점차 사라졌다.
그때, 옆으로 에어로 SUV 한대가 붙었다.
옅게 선팅된 SUV의 창문 안쪽으로 어린 양 수인이 보였다.
손을 한 번 흔들어줬더니 어머니로 보이는 양 수인이 기겁하고는 아이의 눈을 가려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차고가 높은 SUV면 본넷에 랩핑된 커다란 미소녀뿐만 아니라 루프까지 보이려나.
아까 보니 루프에는 각양 색색의 머리칼을 가진 미소녀 여럿이 비치발리볼 하는 랩핑이던데······.
코스믹 호러를 마주한 것 같이 넋이 나간 채로 아이를 끌어당기던 어머니의 표정이 이해됐다.
애송이······너는 아직 오덕을 마주하기에는 어리다!
게다가 나다의 이 차량은 나름대로 유명세가 있는 것인지 주위에 다가오려는 차가 많지 않았다.
‘차주가 나다인 거랑 별개로 차종이랑 외관이 이러면 감히 옆에 붙을 생각을 안 하겠지······.’
호버바이크를 몰고 나가면 깜냥도 안 되는 것들이 옆에 붙어서 시비를 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차는 그럴 걱정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 소중한 바이크에 이런 랩핑을 하지는 않을 거다.
“아무에게나 사쿠라쨔응의 조수석을 내주지는 않는다능! 오메가쿤 정도는 되어야 탈 수 있다능!”
“가, 감사합니다.”
운전대를 잡은 나다의 표정도 밝아 보이니 나쁘지 않았다.
스님이 이런 차량을 가져도 되는 건가 의문이 생기긴 했지만, 이 정도면 이쪽 시대상에 비춰봤을 때 굉장히 구형일텐데 나름의 근검절약 아닐까.
관리가 힘들어 보여서 그렇지 어쩌면 무소유에 근접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배기음을 그르렁대는 머슬카의 위용만 봐서는 마구잡이로 속력을 낼 것 같았지만 나다는 교통 법규를 준수하는 정속 운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양 에어리어를 향해 가던 중, 나다가 내게 물었다.
“오메가쿤! 라나쨩과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물어도 되냐능?”
“어······라나쨩은 누구죠? 저는 아직 사쿠라쨩과도 서로 알아가야 할 부분이 많은데요.”
나다가 폭소하며 손으로 기어봉을 가리켰다.
기어봉 위에 흘려 쓴 글씨가 있었다.
차의 외형에 충격을 받아 내부는 제대로 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기어봉 손잡이의 가죽 부분에 인두로 흘려 쓴 글씨를 천천히 읽었다.
“라나······쿠르네······초프. 어?”
내 바이크 프레임에 적혀 있는 이름이었다.
“지금은 바이크 튜닝만 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차량도 같이 했었다능! 사쿠라쨔응도 라나쨔응이 만져 준 거임! 오메가쿤의 바이크도 라나쨔응이 해준 거 아니냐능.”
“맞아요. 그런데 저는 바이크를 기계 교단의 헤지르 대주교님 통해서 받은 거라 이분이랑 직접 뵙지는 못했어요.”
기계 교단 얘기가 나오자 나다의 얼굴이 굳었다.
“으······나는 기계 교단 별로라능.”
왜지? 불가와 기계 교단 사이에 교리의 충돌이나 신도 뺏어가기 문제가 있나?
나다의 말이 이어졌다.
“계속 사쿠라쨔응의 엔진을 축성해주겠다고 그런다능. 내가 그래도 불가의 승려인데 기계 교단의 축성을 받는 건 좀 이상하지 않겠냐능?”
엔진을 모셔두고 미사를 드리는 기계 교단의 광기를 직접 목격한 이상 이 차의 엔진에 대한 그들의 집착을 이해할 것 같다.
호버바이크의 고요한 울림과는 또 다른 맛의, 심장과 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공명하는 배기음의 묘한 진동이 있으니까.
“양쪽 다 이해가 되네요.”
“그리고 사쿠라쨔응이 퍼지면 폐차하지 말고 자기들이 사들이겠다고 하는데, 그게 말이 되냐능! 사쿠라쨔응은 천년만년 나랑 함께 할 거임!”
아, 기계 교단의 광기보다 더한 광기가 여기 있다.
“라나쨔응이 오메가쿤의 바이크를 보고 자기가 해준 거랑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말을 못 꺼내겠다고 하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던 거냐능.”
“튜닝은 제가 원했지만 그런 방식은 제가 원한 게 아니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럼버잭 모드를 본 건가.
그건 헤지르 대주교의 양보할 수 없는 취향이 가득 묻은 거라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알겠다능! 라나쨔응이 네오-서울에 오면 같이 한 번 보자능!”
그렇게 가벼운 얘기들을 하며 드라이브를 즐기던 무렵, 나를 향해 이유 없는 신뢰와 호의를 보이는 나다이니만큼 공공 집행본부에 관한 것들을 물으면 잘 대답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 집행본부 내에 네오-서울을 망가트리려는 자가 있다는 것은 물증만 없을 뿐 심증으로는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그자가 수연과 연결되어 있고, 그 수연은 이제 대놓고 내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마데르노도 적극적인지 소극적인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수연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네오-서울의 안위나, 동아시아에서의 네오-서울의 지위와 같은 문제는 내게 와닿지는 않았다.
그거야 뭐 높으신 분들이 어떻게든 할 문제 아니겠나.
하지만 그것과 관련된 이들이 내 목숨을 노리는 건 얘기가 달랐다.
슬쩍 운을 띄웠다.
일단 시작은 아직 내가 만나보지 못한 네오-서울의 마지막 공공 집행자에 대한 것이었다.
“제가 다른 공공 집행자분들은 모두 만나봤는데요. 심지어 그분들의 교관이셨던 템페시르나 님도요. 아직 야타가라스 님은 뵌 적이 없거든요. 괜찮다면 어떤 분이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야타가라스는······.”
운전대를 잡은 나다의 얼굴이 심각했다.
“엄격 근엄 진지 그 자체라능. 농담이 안 통함. 그리고 되게 무섭다능. 사천왕이 살아 움직이면 딱 야타가라스라능. 근데 나도 친하지는 않다능. 일 년에 두 번 정도 보면 많이 보는 거임!”
“외부에 들리는 말로는 주로 음지의 일을 맡으신다던데요.”
“나도 그 정도만 알고 있다능! 나 포함 다른 공공 집행자들은 다들 아래 담당 부서나 팀이 있는데, 야타가라스는 공식적으로는 단독으로 움직인다능.”
“그럼 비공식적으로는······.”
“나도 모른다능!”
단독, 음지······얼핏 들으면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포지션 같으면서도, 그런 위험이 있는 일을 담당하는 공공 집행자이니만큼 더욱 깐깐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는 것은 편견을 키우는 일 같았다.
직접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야타가라스를 직접 만날 때까지 더 이상의 판단은 위험하다.
얘기의 방향을 돌렸다.
“그럼 공공 집행본부 내에 뭔가 이상한 흐름 같은 게 있을까요. 내부의 정치라던지, 외부의 압력이라든지요. 네오-서울 시청의 지원을 받는가 싶다가도 여러 가지 제약이나 경계를 받는다고 들어서요.”
“글쎄······나는 공공 집행본부에서 내가 회장으로 있는 애니메이션/만화 동아리 활동 말고는 큰 관심 없다능.”
그러던 나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응시했다.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 보면 역시 공공 집행자에 관심이 있는 거냐능!”
“아니요. 절대요.”
“오메가쿤이 공공 집행자 자리를 탐낸다고 들었음!”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위타천이라능!”
“그 아저씨는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던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는 한다능.”
그래, 나다는 오덕 기운이 심해서 그렇지 생각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고 맥락도 잘 짚는 편이다.
누가 뭐라든 자기 할 말, 자기 할 행동만 우직하게 밀어붙여서 옆에 있는 사람 속 터지게 만드는 위타천보다는 대화 상대로 훨씬 훌륭했다.
그때, 열린 창문으로 코를 찌르는 냄새가 훅하고 밀려 들어왔다.
“윽.”
얼른 창문을 올렸다.
우리는 지금 네오-서울에서 한강 하류를 왼쪽에 두고 이어지는 도시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오른편으로 고양 에어리어의 풍경이 멀리 언뜻언뜻 보였다.
이대로 계속 가면 권역 간 고속도로로 전환되어 개성 권역까지 도달할 것이다.
차량 주변을 보니 트럭이나 무인 트레일러가 보였다.
그리고 많은 수, 아니 대부분의 짐칸에는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내가 맡은 냄새는 저것들에서 흘러나오는 거였나.
“무슨 쓰레기 트럭들이 이렇게나 많이······.”
“처리장이 열리는 날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능.”
“처리장요?”
차의 속도가 천천히 느려지다 이내 완전히 멈춰 섰다.
도로에는 쓰레기를 실은 차량이 가득했다.
나다가 차창 너머의 어떤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양 에어리어의 끄트머리이자 한강 하류와 임진강 하류가 만나는 지점에 거대한 섬이 떠 있었다.
우리가 지금 멈춰있는 도로부터 그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에는 쓰레기 차가 줄줄이 서서 거북이 통행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한강 반대편, WSS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다리의 모습도 똑같았다.
“우리 저기로 가요?”
“알고 있는 것 아니었냐능?”
“저는 못 들었는데요. 그냥 고양 에어리어라고만······. 아니, 그 전에 저기는 뭐 하는 곳이죠?”
“권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곳이라능. 네오-서울, WSS, 개성 권역의 쓰레기를 모두 받아 처리하는데, 정식 이름은 없고 그냥 처리장이나 발사대라고들 부름! 대신 정해진 날이 아니면 쓰레기 안 받을 거라능. 대략 2주에 한 번 정도 열린다고 함.”
“어떻게 처리한다는 거죠? 떠 있으니 매립이 안 될 것 같은데요.”
“요새 누가 쓰레기를 매립하냐능. 그랬다가는 환경 단체에서 당장 들고 일어난다능.”
딥스페이스의 쓰레기장이었던 덤핑 그라운드는 거대한 분쇄기가 불필요한 데이터를 없앴다.
여기도 그런 건가 하고 대충 납득하고 다른 걸 물었다.
“발사대라고 부르는 이유도 있나요?”
그 순간, 섬 위에 거대한 마법진이 층층이 그려졌다.
대략 봐도 10개 이상의 마법진이 섬에서 하늘을 향해 그려져 있었다.
그러자 섬 위로 어마어마한 크기의 쓰레기가 떠오르더니, 섬 바로 위에 생긴 첫 번째 마법진을 통과하자 일렁이는 막이 쓰레기를 감쌌다.
콰앙-
섬의 중심부에서 대포가 발사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쓰레기가 높이 치솟았다.
쓰레기 더미는 섬 위에 그려진 마법진을 통과할 때마다 가속이 붙어서 시야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서 차량 대시보드 위로 고개를 내밀고 하늘을 보고 있자니 섬에서 비행 드론이 한가득 나와 들어 올려질 때 주변으로 떨어지는 쓰레기들을 공중에서 낚아채 다시 섬으로 회수해갔다.
거리가 멀어서 작게 보이는 것이지, 비행 드론들의 크기도 소형차 정도는 되어 보였다.
얼이 빠져서 입을 다물지 못하는 나를 본 나다가 킬킬거리면서 말했다.
“태양으로 쏘아 보내서 태워 버린다능. 누군가는 이 발사대의 존재가 과학과 마법의 조화가 이루어낸 최고의 작품이 아니겠냐고 한다능. 물론 발사대를 관리하는 태양청년단의 역할이 큼.”
이런 곳에 사는 장인이라니.
제정신은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왜 항상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