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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페시르나가 계속해서 말했다.
“전해 듣기를, 아이는 기억이 온전치 못하다고 하더구나.”
이 핑계를 잘 사용하고는 있긴 한데, 요새 주위에서 슬슬 건드리는 추세다.
특히나 내 정보가 안팎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관리하는 스냅샷은 전문 분야가 기억술 쪽이라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최면을 통해 전문적으로 기억을 복원하는 전문가를 소개해 주겠다고까지 했다.
사무실에 오가는 사람들이 그 얘기를 듣고 다들 궁금해했지만, 몸의 전주인을 잠시나마 겪어 본 앨리스만은 극구 반대했다.
지금의 나도 썩 마음에 드는 건 아니지만 예전의 나는 더 별로였다나.
나도 원하지 않는다.
가서 들을 말이라고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밖에 더 있겠나.
그럼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 발생하는 거다.
어쩌겠나, 이렇게 된 거 그냥 뭉개야지.
“예에······.”
“근심하지 말거라. 결국 사람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느냐. 아이의 상처를 파헤칠 요량은 아니었다.”
“상처까지는 아닙니다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구나. 각설하고, 아이의 과거는 나도 궁금하지 않지만, 그 검.”
템페시르나의 시선이 내 허리춤으로 향했다.
“보통 무기는 아닌 것 같더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방산 기업인 예공방에 방문할 때마다 상사를 닮아가는지 갈수록 검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연구원들이 양손으로 내 검을 받쳐 들고 가서 감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심지어 하르파고스 상무는 연구원들에게 내 검과 비슷한 걸 만들 수 없냐고 물었다는데 형태만 비슷하게 만들어낼 수 있을 뿐, 출력의 강도나 그걸 지속적으로 뽑아낼 안정성과 강성은 많이 부족할 거라는 말을 들었단다.
새로 받은 티셔츠의 핵심 기능인 성질 흡수, 해석, 방출의 과정도 검이라는 분출구가 있어서 성립하는 일이기도 했다.
검을 들고 있지 않은 맨손을 통해 해당 기능을 방출하려 했다면 굉장한 크기의 보조 장치를 늘상 메고 다녀야 했을 거라는 하르파고스 상무의 말이 떠올랐다.
-독립 공방이나 장인들이 만들어내는 무구들은 많지만, 이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밸런스가 완벽하게 잡힌 건 없습니다. 어디서 구한 건지 귀띔 좀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어깨 위에 달린 세 얼굴에 있는 여섯 개의 눈을 빛내며 내게 물어온 하르파고스 상무였지만 그때도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뿐이었다.
심지어 스냅샷도 내가 사용하는 검의 연원을 밝혀내지 못했다.
루트의 정보망을 다 뒤져도 내 것처럼 독특한 무기는 없었다고.
“우리가 처음 봤을 때를 기억하느냐.”
“갑자기 지풍을 날리셨죠.”
“그게 그렇게 깔끔하게 양단될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지. 내 일생을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일 것이야. 아이의 솜씨가 굉장한 것도 있지만 검의 역할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지 않았겠느냐?”
아직 몸이 다 회복되지 않은 것인지 숨을 몇 번 고른 템페시르나가 조곤조곤한 말투로 내게 설명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했단다. 위올란트 님이 괴상한 무기들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만들어진 무기가 본인의 작품이라는 표식을 남기지 않으시니까.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 무기도 만들지 않고 계셔서 나조차도 거의 잊고 살았지 뭐냐. 하지만 아이의 검이 그웨지안의 손날을 받아치는 것을 보고 생각했지. 위올란트 님의 물건이 아니겠냐고.”
“어째서죠?”
“글라드 일족이 거주하는 곳은 매우 폐쇄적이지만 그들은 새로운 기술의 도입에 매우 적극적이란다. 그편이 암살을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히말라야산맥은 권역들의 신기술이 모이는 곳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도 있단다. 그런 글라드 일족의 수장이 손을 잃고 새로 단 의수인데 그것이 보통 물건은 아니겠지.”
검과 손날이 충돌한 순간, 그웨지안의 표정에 놀라움이 떠올랐었다.
그런 이유였나.
“하긴, 험하게 굴리긴 하는데 가끔 배터리가 버티지 못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더군요. 관리라고 해봐야 묻은 걸 털어주는 정도가 전부인데도요.”
“들을수록 확신이 깊어지는구나. 혹여 위올란트 님의 물건이 아니라도 그 정도의 검이라면 그분께서도 분명 관심을 가지실 거다. 한 번 살펴 주시기라도 하면 좋은 일 아니겠느냐.”
그 정도만 되어도 의뢰의 대가로는 충분했다.
이제 내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위올란트라는 분, 어떤 분인지 여쭈어도 됩니까?”
“흐음······. 비밀스럽지. 나이는 가늠할 수 없이 오래되었고.”
내가 아는 NPC 위올란트인가 싶어서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혹시 종족이······드워······.”
드워프냐고 물으려는데, 템페시르나가 더 빨랐다.
“이지理智를 지닌 고위 정령이시란다.”
내가 아는 사람과 이름만 같은 건가?
“다만 만나 뵙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란다.”
“멀리 사시나요?”
“사시는 곳은 네오-서울이지만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구나. 그곳에 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지저분하고 위험한 길이니 말이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동행을 붙여주려는데, 아이는 괜찮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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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올란트라는 사람은 네오-서울 북서쪽 경계에 산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네오-서울 편입이 늦어 다른 에어리어에 비해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곳이자 한강 하류를 건너면 바로 WSS로 갈 수 있는 고양 에어리어 중에서도 제일 북쪽에 산다고 했던가.
다만 그곳에 통행할 수 있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 당장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열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2주를 기다려야 한다나.
그때까지 딱히 일을 하지는 않았다.
매티슨부터 템페시르나와 가연까지, 요새 급하게 달려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쉰다고 해서 다 놓아버린 것은 아니고 계속해서 네오-서울을 둘러싼 주변 권역들의 자금 흐름이나 정보 흐름을 수집하고, 매티슨에게 연락해서 계정이 언제 복구되냐고 들볶고 주변 지인들을 통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의뢰 문의를 쳐내기 바빴다.
내가 아니라 앨리스가.
책상에 앉아 잠시도 쉬지 않고 패드를 터치하던 앨리스가 외쳤다.
“사고치고 다닌 건 사장님인데 왜 내가 뒤처리를 하냐고요!”
“그게 네 일인걸. 나는 내 일을 하고 쉬고 있잖아. 내가 밖에서 구를 때 너보고 왜 안 바쁘냐고 하지는 않잖아?”
잠시 고민하던 앨리스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하긴. 그렇죠. 오늘 제법 논리적이시네요.”
“사람이 쉬니까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느낌이야. 휴식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하네.”
그러던 중, 여유가 생겼는지 앨리스가 내게 말을 걸었다.
“스냅샷 씨 아이디를 빌려서 다크웹을 좀 뒤져봤거든요?”
다크웹은 네트워크상의 암시장이라고 보면 된다.
더 설명하면 아주아주 복잡하고 더럽고 추하고 끔찍하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런 걸 찾는 놈이 있어?’와 ‘그걸 구해준다는 놈이 있어?’라는 황당한 물음이 끊임없이 떠오르는 곳이라고 요약하면 편하다.
스냅샷이나 타이린드 같은 정보 조직의 일원들이 늘상 드나드는 곳이기도 하다.
둘의 말에 따르면 다크웹은 가짜 정보도 판치고, 가짜 정보인 척하는 진짜 정보도 드물지 않다던가.
앨리스가 거기까지 진출했다니 다크웹의 미래가 걱정이다.
“그런데?”
“플라워즈 호텔 사건에서 사장님의 역할에 대해 궁금해하는 글들이 많더라고요.”
가연에 대한 암살 시도는 외부에 ‘플라워즈 호텔 사건’으로 알려졌고,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들이 힘을 합쳐 위협을 물리친 것으로 발표됐다.
내게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챈 위타천이 괜히 마고에게 트집 잡힐 건덕지를 주지 않기 위해 내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여서 발표한 것.
애초에 의뢰로 인한 명성은 내 우선순위 중 한참 후순위에 위치하기 때문에 나도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위타천에게 감사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딱히 시간 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봐도 자기 후임이나 동료로 나를 꽂고 싶어 하는 눈치가 요새 노골적이라······.
여튼 내가 리셉션 홀에 있던 걸 본 사람이 많고, 홀의 격리가 해제되자 멀쩡하게 걸어 나오는 것을 찍은 영상이 있었다.
따라서 ‘공공 집행자 둘과 그들의 스승이 있던 전장에서 저 해결사는 뭘 했냐’라는 말이 도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위타천은 공식 발표에서 ‘각자의 역할을 했다’라는 말로 얼버무렸고, 신시아와 야스민 공이 힘을 써서 당시 리셉션 홀의 CCTV는 그 즉시 파기해 버려서 더욱 나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는 것 같았다.
오로지 나다만이 당시에 대해 발언했는데, 문제는 그 발언이 ‘오메가쿤은 나와 비슷하다능.’이어서 내가 중증 오덕이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하려 했지만, 지금껏 아무런 반응도 없다가 그런 걸 적극적으로 해명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의심한다는 앨리스의 만류에 포기했다.
“그런 와중에 사장님이 했던 일들이 다시 화제가 되더라고요. 의뢰를 맡기고 싶다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무슨 의뢰였는데?”
앨리스가 미간을 모아 찌푸렸다.
궁금증을 삭제했다.
“오케이. 안 듣는 걸로.”
“잘 생각하셨어요.”
앨리스가 패드를 들고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사장님에 대한 관심도 많지만, 사장님 검에 관한 얘기도 많아서 좀 정리해봤어요. 보강하실 생각이라면서요.”
위올란트에 대한 얘기는 다른 이들에게 하지 말아 달라는 템페시르나의 부탁이 있었기에 앨리스는 템페시르나의 지인이 내 검을 보강해 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패드를 받아서 살펴보니 칼날 사출 형태냐, 왜 저런 구식 무기를 쓰냐, 겉멋충이다 등등의 얘기가 있었다.
그중 눈에 띄는 댓글이 있었다.
-쓰.발.놈들.알지도,못하면서,떠들기는;;
-직접....봤는데....아주.눈이.휘황찬란.하다!!!!
-이.쉥퀴들.말.고따위로;;할것이냐~!!질얼들을.한다.질얼들을.해
내 시선을 눈치챈 듯, 앨리스가 패드를 터치하자 그 댓글들만 모아 편집한 창이 떴다.
“다크웹은 기본적으로 사용자가 자기 접속 위치를 교란하는 프로그램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접속 위치는 특정하기 어려워요. 그렇지만 이 사용자의 댓글 중에 보시면······.”
-본좌,,,그렇게.안.늘거따.한창이란;;말이다~~!!
-겉멋충이;;무엇이냐??....낭군은.갑충이.아뉜디;;
-젊다고,,,유세떨지마라;;! 캬아아악!! 퉷!!
나도 모르게 얼굴이 구겨지고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정말 흔하지 않지만 왜인지 내게 익숙한 단어들이 몇 개 보였다.
“이거 아무래도······.”
“여기는 딥스페이스랑 달라서 다이브나 뇌파싱크가 불가능해요. 댓글도 직접 손으로 타이핑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옛날 사람은 티가 나요. 아마도 수련 언······.”
그때, 사무실 문이 활짝 열렸다.
문도 보안장치가 되어 있어서 저렇게 우리 사무실 문을 벌컥벌컥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없다.
기껏해야 나랑 앨리스, 신시아, 그리고 출장 중인······.
“낭군! 본좌가 돌아왔노라! 이제 한동안 출장은 없느니라! 신시아는 어디 있느냐! 이 여우 같은 흡혈귀! 진짜 여우인 본좌가 없는 동안 감히 그런 일을 벌여!”
이수련이었다.
앨리스가 내 손에 들려 있던 패드를 뺏어 들고 이수련에게 달려가 들이밀었다.
“언니! 언니! 혹시 이거 언니가 쓴 건가요?”
이수련의 귀가 바짝 서고 얼굴이 붉어졌다.
“보,보,본좌는 이런 경박한 말투를 사용하지 않느니라!”
100%다.
계속 패드를 들이미는 앨리스를 피해 이수련이 외쳤다.
“이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출장 중에 흥미로운 소문을 들었느니라! 낭군이 사용하는 검의 짝이 있다는 소리였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