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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35화 (136/258)

135.

135.

들어서는 나를 확인한 가연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신시아가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준다 싶더니 한 방 먹었네요.”

대기실 한쪽의 스크린에서는 리셉션 홀의 입구를 실시간 송출 중인 방송이 켜져 있었다.

화면 아래쪽에 별도로 마련된 작은 박스에서는 나를 향해 몸을 기울이는 신시아의 모습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었다.

<신시아 야스민의 남자?>, <야스민 공도 인정한 사이? 해결사 오메가는 누구인가>, <흡혈귀 회합 때부터 이어져 온 사이!?> 와 같은 화제성 가득한 타이틀도 화면 아래로 지나가는 것이 아주 작정한 듯 싶었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체취 남기기]의 흔적에 신경 쓰며 가연에게 말했다.

“어느 때나 돌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죠.”

자리에는 가연의 스타일리스트, 코디네이터, 기획사 관련 인물, 경호원들이 있었다.

방송국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놈, 아니 놈들은 위장에 매우 능숙하다.

이들 중 누가 암살자일지 알기 힘들었다.

가연은 긴장도 안 되는지 계속해서 내게 농담을 건넸다.

“합의된 상황은 아니었더라도 서로 호감이 없으면 그렇게는 못 해요. 특히나 여자 쪽에서는요. 더군다나 그 얌전한 신시아 씨가 이렇게 과감한 행보를 보일 줄은 몰랐어요. 혹시 다른 경쟁자가 있는 건가요?”

우리 사무실 내부 한정으로 퓨전 코퍼의 총수보다는 정자 탈취범에 가까워지고 있는 이수련 생각이 잠깐 스쳐 지나갔다.

“글쎄요. 위타천 님이 노괴라고 부르는 구미호가 하나 생각나긴 합니다.”

“우리 자기가 그렇게 험한 말을 썼다고요?”

가연은 정말 놀란 표정이다.

나는 위타천이 연인 앞에서는 정상인처럼 행동한다는 게 더 놀랍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구나.

여기서 괜히 위타천을 깎아 먹을 필요는 없으니까 내가 좀 과장해서 말했다고 수습했다.

가연이 뿌듯하게 웃었다.

“그렇죠? 자기는 고운 말만 쓴다고요.”

대상을 보호하며 표정 관리도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던가.

해결사 일, 쉽지 않다.

그나저나 암살자가 주위에서 맴도는 것이 느껴지는데 사람이 많아 정확히 누구인지 특정하기 쉽지 않았다.

가연 주위로 다가오는 모두를 의심하는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암살을 시도할 수도 있으니 더욱 긴장하게 됐다.

그 사이, 홀에 내빈객들이 모두 입장했다는 소식이 대기실로 전해졌다.

가연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웃었다.

“이 정도면 우리 자기 아니라도 웬만한 남자는 다 유혹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바로 옆에 있는 오메가 씨는 미동도 없네요. 신시아 씨 생각밖에 안 나나 보죠?”

이 여자, 심줄이 보통 질긴 쇠심줄이 아닌 것 같았다.

“긴장 안 되세요?”

“약혼 발표요? 아니면 스토커요?”

“후자요.”

기품 있는 미소를 그려낸 가연이 조곤조곤 말했다.

“저는 배우고, 연예인이잖아요. 세간에서는 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보고 하늘 위의 별이라고 해요. 별은 늘 빛나야죠. 더 큰 빛을 가진 태양이 떠 있어도, 구름이 앞을 가려도 빛나야 해요. 그게 별이니까요. 오늘 같은 날에는 더더욱 그렇죠.”

호선을 그리던 가연의 입꼬리가 차차 내려왔다.

분명 피가 이어지지 않았지만 결연한 가연의 얼굴에서 템페시르나가 보였다.

어찌 되었든 부녀라는 건가.

“아버지도 와 계신 자리에서 제가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죠. 어떤 방해가 있어도 저는 웃으면서 이 자리를 마무리 지을 거에요. 그게 저를 잘 길러주신 아버지에 대한 보답이니까요.”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믿고 우리 자기를 믿어요. 그런데 두 분이 오메가 씨를 믿으니까 저도 믿어야죠.”

가연이 오른손바닥이 보이게 손을 내밀었다.

“우리, 잘해봐요.”

손바닥을 마주해서 살짝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답했다.

“잘해보죠.”

대기실을 벗어나는 가연의 뒤를 따르면서 경호원 하나의 앞을 지나갈 때, 잠깐 걸음을 멈췄다.

“들었지? 그러니까 꺼져.”

[체취 남기기]가 강력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은하낙구천銀河落九天]

하늘을 수놓는 은하수처럼, 뻗어낸 주먹이 빛살이 되어 경호원에게 꽂혀 들어갔다.

내 주먹을 막기 위해 경호원이 한 손을 펴서 내밀었고, 그의 손바닥에서 에너지가 일렁이며 쉴드가 전개됐다.

주먹이 박히는 형태대로 쉴드가 휘어지며 충격을 흘려보냈다.

분명히 상당한 충격일 텐데도 발생하는 소리는 바람이 휙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동력 소모가 보통 아닐 것 같은데. 소음 발생까지 고려한 건가?’

내 추측이 맞는 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사용하는 장비 하나도 암살에 특화된 것이 분명했다.

쉴드가 깜빡일 때, 놈은 몸을 굴려 가연을 향해 뛰어들었다.

갈고리처럼 굽힌 그의 손에서 피부를 찢고 나온 메스가 섬뜩하게 번쩍였다.

[라이징 드래곤 킥]

내 발끝이 놈의 옆구리에 꽂혔다.

우리는 엉키며 대기실의 문을 박살냈다.

갈비뼈 몇 대는 충분히 부술 위력이었음에도 단단한 감촉만이 발을 타고 올라왔다.

‘보호 장비?’

이 자리에서 끝을 낼 수도 있을 것 같아 칼자루를 뽑으려는 찰나, 놈이 몸을 빙글 돌리며 날카로운 손가락을 내게 들이밀었다.

그냥 뒤로 물러서면 놈이 다시 가연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중량화]

[천근중추공]

무게를 가하자 그제야 으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놈이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상태에서도 내 다리를 베려고 들길래 걷어차듯 밀어버리고 놀란 표정의 가연 옆에 섰다.

위장 장비가 고장 났는지 경호원의 귀 끝이 길어졌다 짧아졌다를 반복했다.

몸을 튕겨 일어난 놈이 잔뜩 분노한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많은 이들 앞에서 죽여주려 했는데, 이렇게 먼저 덤벼들 줄이야.”

“그 실력으로 개미 새끼나 죽이겠냐?”

“네게는 관심 없다. 오메가. 어차피 너는 어머니의 몫이니.”

“한대 얻어맞으니 네가 감당할 사이즈가 아니란 걸 알겠지? 가서 엄마 불러와.”

내 도발에 달려들 듯 움찔하던 놈이 순식간에 기운을 사그라트렸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누이여.”

그 말을 끝으로 놈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다른 경호원들이 뒤를 쫓았으나 아마도 잡지 못할 것이다.

나도 [체취 남기기]가 아니면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게다가 [체취 남기기]는 대상과의 접촉이 이루어지면 효력이 급감한다.

아마도 다음에 놈의 기척을 알 수 있는 횟수는 1회 정도가 최선일 것이다.

그것도 지금 이상으로 근접한 상태에서.

사실상 못 쓴다고 보고 의지하지 않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다.

그렇지만 따라가지는 않았다.

기만책일수도 있고, 나는 가연의 옆에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그웨지안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들이 이 꼴이 났는데도 코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완벽한 기회를 위해 몸을 감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괜히 목 주위가 근질거렸다.

한번 스윽 쓸어서 털어버리고 가연에게 말했다.

“축하하는 마음이 커서 대기실까지 오는 팬도 있고, 연예인은 연예인이시네요.”

놀란 표정의 가연이 내 말을 듣고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그 정도는 되거든요.”

이쯤 되면 템페시르나가 어떻게 양육한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아니면 정말 그웨지안의 딸이라서 이런 걸 타고 나는 건가?

그녀에게 말했다.

“빛나러 가실 시간입니다.”

“그래요. 우리 자기 기다리겠어요.”

밤이 어두울수록 별의 찬란함은 더욱 돋보이는 법이다.

어느새 의연한 얼굴로 고개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리셉션 홀을 향해 걸어가는 가연은 누가 봐도 스타였다.

#

리셉션 홀의 무대로 시선을 돌렸다.

테이블 위에는 온갖 방송사의 로고가 붙은 마이크 여러 개가 있었고, 마이크가 향하는 방향에는 위타천과 가연이 나란히 앉아 조금은 긴장한 얼굴을 보였다.

놀라운 점은 위타천이 하와이안 셔츠, 반바지, 슬리퍼가 아니라 제대로 된 옷을 차려 입었다는 점이었다.

한복처럼 재해석한 양복이었는데, 생김새도 그렇고 흑백의 색감도 그렇고 템페시르나가 입고 있는 옷과 매우 흡사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일부긴 하지만 무맥武脈을 계승한 스승에 대한 존경으로 보이겠지만 위타천, 템페시르나, 가연의 관계를 알고 있는 내가 보기에는 위타천이 장인어른을 존중하는 것 같았다.

준비한 순서대로 약혼 발표가 진행되었고, 나는 무대 아래쪽의 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가연을 주시하고 있었다.

때때로 무대 아래쪽의 내빈석으로도 고개를 돌렸는데, 급하게 발표된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글라드 일족의 암살 방식이 대상만을 노린다는 점 덕에 안심하고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저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암살자들을 불러내기 위한 미끼인 셈이다.

물론 혹시나 모를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야스민 가문에서 보내온 흡혈귀들이 장내 곳곳에서 대기 중이었다.

분명 이곳에서 가연을 암살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나 역시 초긴장 상태였는데,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재빠르게 고개를 돌리자 내빈석에 앉은 신시아가 있었다.

놀랐는지 얼른 무대 위로 시선을 돌리는 신시아였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신시아가 앉아있는 테이블에 나다도 있었다.

어제는 승려들이 입는 가사를 입고 있었는데, 지금은······.

살 때문에 터질 것 같은 갈색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었다.

시작 전에 보니까 그 셔츠의 아랫단은 허리까지 추켜 올린 청바지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약혼 발표에 갈 수는 없다면서 먼저 갔다더니 왜 저런 꼴로······차라리 가사를 입고 오는 편이 훨씬 좋았을 거다.

그 테이블 주변에 앉은 사람들도 처음에는 신시아를 바라보다가 기묘하다는 표정으로 나다에게 시선을 옮기곤 했다.

시선 블랙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노덴스 님>이라고 쓰인 자리가 공석인 것이 보였다.

‘팬이랬나. 힘들겠지.’

<야타가라스 님>과 <마고 님> 자리도 비어있는 걸 보니 어쩌면 자리를 비우기 힘들어서 오지 못한 걸까.

내빈 중에는 매서운 눈으로 무대 이곳저곳을 훑는 템페시르나도 있었다.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 둘, 그들의 스승 하나, 야스민 가문의 영애 하나, 앞서 말한 사람들에게 이름값으로는 아주 조금 밀리지만 패기와 실력 하나는 자신 있는 나까지.

진짜 이런 자리에서 암살을 시도하는 미친놈들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대기실의 경호원으로 위장해 있던 놈과 직접 충돌했으니 무조건 한 번은 벌어진다고 봐야 했다.

어느새 약혼 발표는 하이라이트인 케이크 커팅까지 진행되었다.

사람 키만 한 커다란 케이크가 등장하고 그 위로 조명이 비쳤다.

플라워즈 호텔 파티셰들이 다 달라붙어서 만들었다는 말이 있던데 헛소문은 아니었는지 화려하고 동시에 먹음직스러웠다.

두 명의 요리사가 미는 수레 위에 실린 케이크가 내 옆을 지나갈 때, 망설이지 않고 케이크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내빈석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케이크에 박은 손을 휘저었다.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흐릿했지만 내게 느껴지는 것은 [체취 남기기]의 마지막 흔적이었다.

그 순간, 케이크가 무너져 내리며 안에서 뭔가가 튀어 나갔다.

생크림 인간이 향하는 방향은 정확히 가연이었다.

벌떡 일어난 위타천의 손에 영력이 뭉쳐 들며 채찍을 만들었고, 채찍의 끝이 공기를 찢는 소리를 내며 암살자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암살자는 마치 공간을 접어 움직이는 듯한 보법으로 위타천의 채찍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냈다.

템페르시나가 무대 위로 몸을 날리고는 망설임 하나 없는 연결 동작으로 멀쩡한 손을 앞으로 뻗었다.

암살자를 향해 쏟아지는 기의 탄환.

순식간에 엉망이 된 약혼 발표였지만 이미 예상했던 터였다.

나도 무대 위로 올라가려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번제의 시작을 장식하거라.”

그웨지안의 목소리.

정면의 공간이 찢어지며 그녀가 걸어 나왔다.

마치 원래부터 그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위화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녀에 손에 불길하게 번뜩이는 휘어진 단검이 들려 있었다.

단검이 내 목을 향했다.

이런 젠장, 가연은 위타천도 있고 템페시르나도 있지만 나는 누가 지켜주나.

나 혼자 지켜야지.

곧바로 칼자루를 두 번 틀어 칼등과 광자 검날을 솟게 만든 뒤, 단검의 궤도에 틀어넣어 막아 세우려 시도했다.

하지만 광자 검날에 닿기 전, 보기만 해도 으스스한 기운을 뿌리는 그웨지안의 휘어진 단검을 멈춰 세우는 것이 있었다.

‘설마 신시아가?’

하지만 단검과 내 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이미 본 적 있는 무기였고, 적어도 신시아가 쓰는 건 아니었다.

무기의 주인이 내 옆으로 훅 다가왔다.

“오메가쿤! 이 3D 리얼 다크 엘프와 무슨 관계냐능?”

봉을 든 나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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