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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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는 다섯이 있지만 모두 조금씩 성향이 다르다.
위타천은 자신이 정한 선에서 아주 약간이라도 모자란다면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선의 끄트머리라도 지우는 것이 보인다면 몸소 출격해서 부수고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문제가 있다면 그 ‘선’의 위치나 강도를 본인만 안다는 것.
위타천 아래에서 일하는 이들도 대체 위타천이 어떤 기준으로 일을 받아들이고 쳐내는지, 받아들인 일 중에서도 어떤 걸 우선순위에 두고 몸소 출동하는지 알기 힘들어했다.
부관인 장도 이제는 그냥 포기하고 가자고 하면 따라 나가는 정도고, 위타천이 들여다보지도 않는 일을 울며 겨자먹기로 처리하곤 했다.
반면 노덴스와 나다는 위타천보다는 조금 사고 흐름이 정상적이었다.
날이 갈수록 다각화되고 고도화되는 범죄에 대응하려 애썼으며 네오-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범법행위를 막기 위해 뛰어다니기 바빴다.
양지의 일보다는 음지의 일을 처리하느라 공공 집행본부에서 오랜 시간 일한 이들 중에서도 얼굴 본 사람이 드물다는 야타가라스와 거의 모든 시간을 가상공간에서 보내는 마고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밖에 모습을 보이는 공공 집행자는 위타천, 노덴스, 나다까지 셋.
셋 중 과격파를 고르라면 모습을 드러냈을 때 대여섯은 우습게 죽이는 위타천이 꼽혔다.
하지만 범죄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공 집행자는 과격파 위타천이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중도파로 분류되는 나다라고 알려져 있었다.
위타천이 뜨면 어차피 다 죽일 생각인 걸 알아서 필사적으로 저항하지만 나다는 죽이지 않는 대신 목숨만 붙여놓고 신체에 영구적인 손상을 가해버리기 때문.
그리고는 불살이니 교화를 중얼거리며 불경을 읊으니 그걸 당한 범죄자들은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망가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나다에 의해 타의로 신체 일부를 교체한 범죄자가 다시 덤비자 바꿔놓은 곳만 기가 막히게 발라냈다는 믿기 힘든 도시 전설도 전해지고 있었다.
재미있는 점은 두 공공 집행자의 방식을 각각 지지하는 쪽이 있었다는 것인데, 위타천은 강령술 협회나 장기조직혈액관리원 같이 시체를 사용하는 집단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반면 나다는 인공사지 보급 장려 위원회나 장기 배양 센터처럼 없어진 부위를 다시 달아주는 곳의 명예 홍보 대사이자 해당 기업이나 집단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후원회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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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 사지 교체자 나다다!”
“요양원 직행열차!”
공식적인 나다의 법명은 자심慈心이며, 불가와 공공 집행본부에서 밀고 있는 일종의 닉네임은 불살불법不殺佛法이지만 범죄자들 사이에서는 사지 교체자, 요양원 직행열차, 살려만 드릴게 등등의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그런 별명들을 외치는 걸 실제로 듣고 있으니 웃음 가득한 후덕한 얼굴로 봉을 빙빙 돌리며 맨몸으로 바이크의 속도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잡는 이 공공 집행자의 위엄이 새삼 느껴졌다.
“오메가쿤, 무슨 일이냐고 물었잖슴. 대답해주라능.”
물론, 입만 열면 그 위엄이 모두 깨져버렸다.
아니다. 범죄자들 입장에서는 사지가 다 부서진 채로 벌벌 기고 있는데 ‘흐흐흐, 앞으로 나쁜 일은 하지 말라능. 그럼 이만······이랄까. 훗.’ 이런 발언을 듣는 그 상황이 더 무서울 것 같다.
실제로 나다가 등장한 이후 멀리서 따라붙는 놈들은 있어도 바이크 근처까지 접근하는 놈들의 수가 확연히 줄었다.
나다가 내 장기나 사지 중 하나를 가져갈지도 모르지만, 일단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없는 대림 에어리어의 외곽 지역으로 바이크를 몰며 나다와의 소통을 시도했다.
“누군가 제 목에 현상금을 걸었나 봅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그 덕에 쫓기는 중입니다.”
“흐음. 해결사라는 직군이 원한을 사기 쉽다고는 하지만 이런 건 처음 본다능. 오메가쿤······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을지도? 설마 사실은 해결사가 아니라 뒷세계의 거물······이라는 것?”
나다가 말을 할 때마다 어디선가 쿰척쿰척하는 정체불명의 의성어가 들여오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나저나 나다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인데 나다는 내 이름과 직업을 알고 있었다.
그가 하는 공공 집행자 일이 가지는 특수성으로 미루어 보면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나다가 나를 대하는 태도에는 적대감이 하나도 없었다.
그다지 내키지는 않지만······나를 친구 대하듯 편하게 대한다고 느껴졌다.
“죄송하지만 우리가 예전에 만난 적이 있습니까?”
한쪽 날개의 깃털이 모두 날이 잘 선 금속으로 이루어진 하피harpy 한 놈을 베어내며 물었다.
나다가 즐겁다는 듯 길어진 봉을 휘둘렀다.
건물 사이를 타고 넘으며 달려든 표범 수인의 팔이 나다의 봉과 얽혀 우그러졌다.
“얼굴 본 건 처음이라능! 하지만 나는 오메가쿤의 비밀을 알고 있는······. 후후후”
내 비밀?
나다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내게 흘러들고 있었다.
-놀라지 말라능! 음성에 법력을 감싸서 전달하는 혜심통慧心通이라는 기술임! 오메가쿤도 이 정도는 할 줄 안다는 걸 알고 있다능!
“죄송하지만 다른 사람이랑 헷갈리신 거 아닙니까? 저는 그런 거 못 합니다.”
-어이어이 오메가쿤! 다른 사람 눈은 속여도 이 나다 눈을 속이긴 아직 멀었다능! 마고가 데려간 곳에서 나올 때, 불가의 가르침을 이용했잖슴! 나도 그때 본부 안에 있어서 분명히 느꼈다능! 지하에서 느껴지길래 깜짝 놀라서 찾으러 갔는데 이미 사라져서 초 아쉽.
그리고는 후욱후욱하는, 흥분된 숨소리를 내는 나다였다.
[홀딩 마인드]를 말하는 건가?
정신계 공격이나 침투에서 유발되는 상태 이상 효과의 제거를 가진 스킬이자 마고에게 잡혀갔을 때 그곳에서 나오기 위해 사용한 스킬이다.
서리얼 시절에도 해당 스킬에 대해서 유저들이 평하길, 사용한 직후의 느낌이 수양이나 명상을 한 이후의 것과 비슷하다고 하기는 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다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적당히 맞장구를 쳐서 이 상황을 모면했겠지만, 사지 교체자이자 공공 집행자인 나다에게 괜한 오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정말입니다.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흐응······그런 컨셉인 거냐능······. 역시 보통 이상!
이 새끼······전혀 믿는 눈이 아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나다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너무 예민해서 알아채 버리긴 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능. 너무 자책하지 마셈. 대신 조금 도와주겠음!
말을 마친 나다가 공중으로 뛰어올라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의 뒤통수에 맺혀있던 휘광이 더욱 진해지며 빛을 터트렸다.
그러자 나다가 들고 있던 봉이 거의 5m 길이까지 늘어났고, 나다가 그걸 휘두르자 뒤쪽에서 따라붙는 놈들의 급소만을 정확히 찌르거나 때렸다.
탈 것에 타지 않은 놈들의 미간, 인중, 명치, 낭심에 봉끝이 박혔다가 빠져나왔다.
낭심에 맞은 놈들은 차라리 죽는 게 편할 것 같은 표정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멀어졌다.
바이크나 차량에 탄 채로 쫓아오는 놈들도 있었는데, 나다의 봉이 정확하게 바퀴나 엔진을 찌르는 바람에 폭발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고, 바이크를 타고 제법 멀어졌음에도 매캐한 냄새를 계속해서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따라붙는 놈들도 거의 없어져서 속도를 줄이자 다시 옆으로 붙은 나다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오늘도 무사히 불살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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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귀한 사무실, 앨리스가 계속해서 뒤쪽의 손님용 테이블을 흘끔거리면서 나를 향해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그래서, 공공 집행자를 사무실에 데려왔다고요? 우리가 지금 불법에 발 담근 일이······.”
손님용 테이블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SSR!! SSR!!”
“으어어! 자코쿤! 내 운을 다 빨아 간 것 아니냐능!”
“나다님 가챠 제물 잘 빨아갑니다!”
정현, 자코, 나다가 통신 디바이스를 이용한 반인반우伴人伴牛 미소녀 경작 시뮬레이션 게임 가챠를 돌리고 있었다.
처음에 나다가 쭐래쭐래 사무실로 따라올 때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 사무실 보안을 위해 출동한 정현과 자코가 하던 가챠 게임 이야기를 듣고 셋이 의기투합했다.
처음에는 서로 좀 어색하더니 곧 애니메이션이니 피규어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오덕계의 라틴어인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 ‘아니다. 문화 권력은 권역의 영향력과 비례한다. 오덕계에서 한국어의 위상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통신 디바이스가 제공하는 번역 소프트웨어로도 충분하다.’와 같이 심오한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는 남의 사무실에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열광하고 있다.
테이블 쪽으로는 시선도 두지 않은 채로 나도 목소리를 낮춰 앨리스에게 빠르게 말했다.
“나다가 등장한 이후부터 떨거지들이 싹 사라졌잖아! 그 상황에서 그냥 보내리? 그리고 나에 대해 이상한 착각을 하는 것 같아.”
“뭔데요.”
“내가 불가의 승려인데 모종의 이유로 그걸 감추며 살아간다고······.”
“사장님이 승려요? 허이고 난리가 났네. 안드로이드가 애를 낳지.”
“나도 아니라고 했어! 그랬더니······.”
앨리스의 콜을 받고 달려와 있던 신시아가 말끝을 잡으며 되물었다.
“그랬더니요?”
“암살의 위협에서도 컨셉을 안 버린다고 대단하대요······.”
신시아는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으며, 앨리스는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다가 곧 허탈한 너털웃음을 내뱉었다.
내가 그런 둘을 진정시켰다.
“일단 좋게 생각하자고. 내 몸은 신경 덜 쓰고 의뢰에만 집중할 수 있는 거잖아.”
“그게 좋은 쪽이라면 뭐······. 일단 카지노에 상황 알렸어요.”
스냅샷에게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는 소리다.
앨리스의 말이 이어진다.
“키클롭스 사장님도 저 둘 남겨놓고 그쪽 사무실로 돌아가서 다른 사설 집행자들한테 연락 돌려서 사장님 습격한 놈들 싹 다 알아보겠다고 하셨고요.”
덧붙이는 신시아.
“저희 가문에서 그런 쪽에 관계된 사람들도 풀었어요.”
하지만 쉽사리 해결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중얼거렸다.
“꼬리가 아니라 머리를 알아내야 할 텐데······.”
앨리스와 신시아가 침통한 표정으로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즈음, 우리가 모여 있는 내 책상 쪽으로 나다가 걸어왔다.
“오늘은 내가 계속 있어 줄 테니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능!”
정현과 자코도 쭉 있을 거라 했으니 셋이서 밤새워 놀 모양.
누가 누굴 지키는 건지 알기 힘든 그림이다.
그런 나다에게 앨리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나다 님? 공공 집행자 업무가 굉장히 빡빡하다고 들었는데 그건 괜찮으신 거죠?”
“걱정 말라능! 노덴스가 그러는데 한동안 잡일은 전부 위타천에게 넘겨도 된다고 했다능!”
“왜요? 위타천 님은 약혼 발표 준비 때문에 바쁠 텐데.”
“그건 모르겠다능! 근데 노덴스가 숙취에 절여져서 집행본부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뭐라고 그랬는데······! 아! ‘가연을 데려간 위타천을 죽인다. 처음부터 그 생각뿐이었다.’ 이랬다능!”
영문을 몰라서 앨리스와 내가 얼어있을 때, 신시아가 설명해줬다.
“노덴스 씨는 가연 씨의 오래된 팬이에요. 데뷔했을 때부터 공공연하게 응원한다고 밝히고 그랬을 거예요. 충격이 큰가 보네요.”
우리의 말을 듣던 나다가 후덕하고 복스러운 얼굴에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다능.”
그래, 이 오덕 안드로이드 승려가 보기에도 가연이 위타천과 약혼하는 건 이상할 거다.
하지만 나다의 발상은 나를 뛰어넘었다.
“왜 현실의 여자를 만나는 거냐능? 가상의 여자를 좋아하는 편이 훨씬 편한데?”
나, 앨리스, 신시아는 나다의 의문을 해소해주지 못했다.
어쨌든 나다가 사무실에 버티고 있어 준 덕인지 더 이상 나에 대한 암살 시도는 없었고, 다음 날의 해가 떴다.
위타천과 가연, 가연과 위타천의 약혼 발표가 있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