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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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날고 마법이 전승되는 세상이다.
그것들이 악惡으로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꼭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인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곤 했다.
신화나 전설의 영역에 존재하면서 선先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들을 초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들이 대변하던 선이라는 것의 정의와 명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해져만 갔다.
게다가 세상은 동화가 아니다.
여전히 용이 날고 마법이 전승되지만, 그것들에게 악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없게 되었으며 선천적 요소나 후천적 요소에 영향을 받아 쏟아지는 초인들에게 함부로 선이라는 입장을 강요할 수 없게 되었다.
초인의 초超는 넘어서다, 뛰어넘다라는 뜻을 지닌다.
무엇을 넘어서고 무엇을 뛰어넘는가.
사람, 종족, 질서, 규범, 능력······다양한 대답이 나오겠지만 그것들은 ‘평범함’을 넘어선다는 대분류로 묶어낼 수 있다.
이미 많은 자들이 과학과 마법, 기타 방법으로 평범해지고 있지 않은 세상에서 그런 이들까지도 ‘저 사람은 나와 다르다. 특별하다.’ 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바로 초인인 것.
그런 초인들이 의문을 가졌다.
‘왜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가.’
스스로 질서를 세울 능력이 있는데.
하지만 초인을 제외한 대다수는 특별하다는 이유로 사회에 혼란을 불러오는 초인들을 크게 두려워했고, 초인 중에서도 이런 입장에 선 이들이 있었다.
두려움은 공포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공포는 두려움의 근원을 삭제하려는 욕망을 건드린다.
그렇게 욕망과 욕망이 서로를 물어뜯으려 애쓴 결과, 초인의 발생 빈도와 그들이 지닌 능력의 강력함은 역사를 통틀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초인들을 제압하거나 사살하기 위해 연구, 개발된 병기들 역시 전성기를 맞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통틀어 WAS(Weapon Against Superhuman)나 대 초인 병기라 불렀다.
그런 대 초인 병기 중 제법 흔한 축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유기물 분해 감옥 생성기’는 절대로 만만하지 않은 무기다.
전방 좌표를 지정하고 발사하면 탄환이 나가고, 지정 좌표에 도달 즉시 탄환이 터지며 목표의 주위에 직육면체 형태의 변형 자기장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삼중으로 탄환 내부에 격리 보관되어있던 박테리아가 터져 나온다.
유기물 흡수 및 소화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려 배양시킨 특수한 박테리아다.
많은 초인들이 더 많은 힘을 위해 신체 여러 부분을 다른 소재로 교체하지만, 심장과 뇌 같은 핵심 부분은 잘 건들지 않는다는 심리를 이용한 무기다.
세포의 수명을 결정짓는 말단소립, 텔로미어를 극단적으로 짧게 조정해놨기 때문에 박테리아는 약 5분간의 열렬한 소화 활동을 마치면 그대로 먼지와 같이 변한다.
따라서 자기장 구역을 뚫고 나올 정도의 능력이 없다면 살아 있는 채로 신체의 유기물 부분이 먹혀들어 가는 것을 눈 뜨고 보는 수밖에 없다.
아마 그 눈도 곧 먹힐 테지만.
그렇기에 오메가를 처리하기 위해 보내진 갱 단원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적어도 주어진 정보에 따르면 해결사 오메가의 신체에는 별다른 무기물 파츠가 없으며, 박테리아에 저항할 수단도 없었기 때문.
박테리아 덩어리가 자기장 구역 안쪽에 서 있는 오메가의 표면을 열심히 휘젓고 있었지만 아무리 봐도 먹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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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괴]
신체와 옷, 들고 있는 검 위에 얇은 내력의 막이 쳐졌다.
원래 서리얼에서 사용했던 [금강불괴]라면 이 상태로도 움직일 수 있겠지만 딥스페이스에서 사용했던 감각과 사용법을 현실에 가져와 사용하는 지금의 나에게는 제자리에 서서 내력의 막을 빠르게 순환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움직이려고 애를 써도 슬로우 모션처럼 움직이는 것이 최대한의 속도였다.
[원영신]처럼 열화판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고나 할까.
‘어째 쉬운 게 없냐.’
온갖 스킬을 뚝딱뚝딱 사용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면 배가 부르다 못해 터져서 내장에 있던 음식물이 줄줄 흘러나온다며 한 소리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용하는 내 입장에서는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그리고 내 몸을 덮고 있는 이거, 대체 뭔지 모르겠다.
강 근처에서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하루살이 같기도 했고, 벌들이 뭉친 군집 같기도 했다.
밖에서 내 모습을 본다면 온몸에 벌을 붙인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마치 방송에 가끔 등장하는 양봉업자들처럼.
일단 대포처럼 생긴 것에서 발사되길래 탄환을 베려는 순간 안에서 뭔가 쏟아져나오더니 이런 모습이 됐다.
정체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일단 [금강불괴]로 막아내긴 했는데 어째 몸 여기저기를 훑는 것이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아직 앨리스와의 통신도 복구되지 않았다.
트레일러에 여러 장치가 실려 있던데, 그것 중 하나를 부수면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나저나 이건 언제쯤······어?’
얼굴 위를 가득 덮고 있던 이 군집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 외부의 상황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주변을 감싼 직육면체 형태의 공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뭐지?’
반투명한 재질이라 공간 바깥이 보였는데, 나를 덮친 놈들이 하나 같이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에도 내 몸에 붙어 있던 것들은 조금씩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뭔지 모를 저것들이 몸에서 말끔하게 떨어져 나갔을 때, [금강불괴]를 해제하고 검을 눕혀 들고 반투명한 벽에 쑤셔 넣었다.
강한 반발력과 함께 광자 검날 주변에서 어마어마한 스파크가 튀었다.
놀고 있는 손도 검 자루에 얹었다.
[취중실천지]
원래는 양손 대검이나 대도에 어울리는 스킬이지만, 강한 힘이 밀어내고 있으니 내게 느껴지는 무게와 힘은 중검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서서히 검을 옆으로 밀어내자 보기에는 얇은 재질의 벽에서 우지지직하는 굉음이 나오며 찢어지기 시작했다.
튀어 오른 스파크가 상체에 닿는 것이 느껴졌다.
별도의 공간을 찢어버리고 밖으로 나서자 수가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나를 향해 무기를 들이밀고 있는 놈들이 보였다.
트레일러와 탑차가 밖에서는 이쪽의 상황을 보지 못하게 감싸고 있었으며, 자율주행으로 돌려놓은 바이크도 그 안에서 스로틀을 조정하며 잘 따라오고 있었다.
“조직명이랑, 너네 대가리 이름 얘기해. 그럼 죽이지는 않는다.”
철컥―
놈들 중 한 놈이 용도를 알 수 없게 생긴 무기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
“죽겠다는 대답으로 알겠다.”
검과 벽이 충돌한 순간에 발생한 스파크를 받아먹어 파동을 발생시키던 티셔츠의 소매 부분에서 광자 검으로 회로가 길게 이어졌다.
검을 휘두르자 광자 검날을 타고 오른 파동에서 반투명한 벽이 만들어졌다.
나를 격리해 둔 벽과 비슷해 보였다.
반투명한 벽에 막힌 탄환들이 엉켜 폭발했다.
폭발과 폭음이 잦아들기 전, 놈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글라드 일족에게 내 정보를 넘기지 않기 위해 그간 검술을 사용하지 않고 억눌렀던 반동일까, 오늘따라 몸은 가볍고 검은 휘날린다.
[파도천波滔天]
하늘까지 닿는 파도라는 뜻의 스킬 이름처럼, 내게 베인 것들이 뿌려대는 혈액, 체액, 부동액, 신체 일부가 탑차 곳곳에 흩뿌려졌다.
질척거리는 액체 중, 내 몸에서 나온 것은 단 한 방울도 없었다.
바이크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 트레일러에 타고 있던 놈들이 이런 나를 보고 다시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바이크 위로 몸을 날려 안착한 뒤, 자율 주행모드 해제.
상승 노즐 출력 증가.
이내 지상에서 2m 정도로 떠오른 바이크.
[균형 감각 조정]
그대로 스로틀을 반대편 트레일러 쪽으로 돌려 방향을 틀고 세게 당기자 바이크는 노즐에서 엄청난 양의 공기를 뿜어대며 사이드 도어가 열린 트레일러 위로 올라갔다.
윈드스크린 너머로 당황한 놈들의 모습이 보이기 무섭게 트레일러의 옆면에 광자 검날이 앞을 향하도록 검을 꽂았다.
[근력 강화]
[임전무퇴臨戰無退]
혹시나 팔이 빠지거나 검이 박혀서 안 빠질 수 있으니 준비 단단히 하고!
엔진 출력을 올리자 지금까지 고오오오하는 작은 울림만을 내보내던 노즐이 콰아아아 소리를 내뿜는 것과 동시에 바이크가 앞으로 내달렸다.
바이크에 치이기 전에 달리는 트레일러 밖으로 몸을 날리는 놈, 호버 바이크인 점을 이용하려고 했는지 아래로 기어들어 갔다가 노즐에서 분사되는 공기와 열에 얼굴 피부가 다 벗겨지는 놈, 바이크에 치여 허리가 접히는 놈 등등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그리고 벽면에 꽂힌 채로 이동한 덕에 트레일러에 뱀처럼 긴 상처를 만든 광자 검날에 [혈계조검술]을 이용해 피를 덧씌워 거대한 대검을 만든 뒤 그대로 머리 위로 올려 들었다.
끼이이이―
철판이 접히는 소리다.
덜렁거리는 트레일러의 옆면과 윗부분이 바람에 휘날리는 빨래처럼 나풀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바이크를 옆으로 눕혀 미끄러진 뒤 검을 내려 트레일러 앞쪽에 쌓인 장비들을 쓸어버렸다.
-······장님! 사장님!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충 처리했어. 그런데 말이지.”
뚜껑이 날아간 트레일러 위에서 바이크를 바로 세운 뒤 뒤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제는 숨길 생각도 없는지 무기를 실을 수 있게 개조된 트럭들 몇 대가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퇴근까지는 시간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사무실 보안 시스템 작동하고, 키클롭스 아재한테 그쪽 식구들 다 데리고 우리 사무실 좀 지켜달라고 해. 신시아한테 연락하는 것도 생각은 해보고.”
바이크를 조종해 트레일러에서 내려 도심으로 들어오자, 건물을 타 넘거나 낮게 날면서 내게 붙으려는 놈들이 있었다.
접근하는 놈들에게 모두 따끈따끈한 광자 검날을 쑤셔 박았다가 빼주었다.
“이 정도면 몸값은 제법 쳐 준 것 같아서 기분 나쁘진 않네.”
참······묘한 감정이었다.
날 죽이려 드는 놈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도 통일된 지령을 받지는 않은 모양인지 서로 욕하고 싸우는 놈들도 있었다.
감히 어떤 놈이 이런 판을 설계했는지가 궁금할 뿐.
그렇게 호버 바이크를 타고 대림 에어리어의 도로라는 도로를 모조리 누비며 암살인지 집단 이지메인지 모를 이 난리판을 헤쳐나오는 도중, 이질적인 소리가 들렸다.
“······래······래.”
쿠웅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금빛 손바닥이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급하게 스로틀을 틀어 피해 지나갔지만, 내 곁을 따라오던 놈들 중 몇은 손바닥에 깔려 그대로 몸이 구겨졌다.
토옹- 토옹- 하는 경쾌한 소리가 바이크 옆으로 따라붙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낯선 얼굴이 보인다.
얼핏 보면 탐사단의 일원이었던 깡통과 제법 흡사하지만, 얼굴상이 조금 더 후덕하다.
깡통을 떠올린 이유는 아마 둘 다 대머리고, 무엇보다 깡통과 내 옆의 낯선 얼굴의 이마에 찍힌 계인戒印 때문일 터.
불가의 승려들이 이마에 찍는 붉은 점이 계인이다.
깡통은 살심을 이기지 못해 사미승일 때 파계 되어 3개의 계인만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 내게 보이는 낯선 얼굴의 이마에는 9개의 계인이 찍혀있었고 무엇보다 후덕한 얼굴 뒤쪽으로 둥근 휘광輝光이 어른거리는 것이 깡통과는 달랐다.
바이크 HUD에 표기되는 속도는 시속 100km/h.
이마에 9개의 계인이 찍힌 이 사람은 맨몸으로 달리면서 내 호버 바이크와 속도를 맞추고 있었다.
처음 들었던 토옹- 토옹- 소리는 이 자의 발이 땅에 닿을 때 나는 소리였던 것.
그리고 직접 보는 것은 아마도 처음일 테지만, 나는 이 자를 알고 있다.
“여래여래如來如來······이게 다 무슨 일이냐능. 폭주단들 항쟁인 줄 알았잖슴. 후덜덜.”
말을 마친 낯선 얼굴이 등에서 작은 막대기를 꺼내 휘두르자 막대기가 쑥쑥 자라 긴 봉이 되었다.
확실하다.
공공 집행본부에 갔을 때 홍보 브로슈어에 있던 모습 그대로다.
불가佛家에 소속된 안드로이드 승려이자 오타쿠 말투를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 불살불법不殺佛法 ‘나다’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