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124.
나는 사무실을 집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리모델링 전에도 내가 개인적으로 쓰는 옥탑방이 있었고, 리모델링을 마친 지금도 맨 위층의 절반은 내가 사용하고 있었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하는 곳이 사무실이었지만, 그곳은 어디까지나 일을 하거나 빈둥거리는 곳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달랐을까.
사무를 돕는 것 외에도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테이블을 닦고, 의자 아래의 먼지를 쓸고 탕비실의 컵을 닦았다.
앨리스가 하는 것도 빨랐지만 내가 스킬을 사용해서 해치우는 것이 효율이 좋아서 매번 건성을 가득 담아 내가 하겠다고 했지만, 그때마다 앨리스는
“시키면 사장님이 잘하는 건 알죠. 그런데 할 때까지 너무 오래 걸려서 안 돼요. 그리고 제 손이 닿아야 오일 샌드를 먹을 때 보람이 있어요.”
라며 굳이 작은 몸을 열심히 움직이곤 했다.
그리고 내가 위층의 방으로 올라갈 때도 앨리스는 사무실에 남아서 한편에 놓인 충전장치 위에 몸을 얹었다.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면서 따로 사용할 방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는데도 본인은 사무실 한쪽이 제일 편하다고 극구 사양한 결과였다.
보안, 경비 장치를 자기가 컨트롤하니 다른 곳에 있으면 안 된다나.
그렇게 앨리스는 내가 방에서 내려오기 전부터 사무실에 있었고, 내가 방으로 떠난 후에도 사무실에 있었다.
그렇게 같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게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그 잔소리가 기분 나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은 오히려 내가 앨리스의 잔소리를 약간 ASMR처럼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얘기를 했더니 앨리스가 눈을 흘겼다.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만큼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신뢰한다는 의미를 담아 건넨 말이었다.
#
문 너머로 보이는 사무실은 리모델링 이전과 이후가 혼재되어 있었다.
다른 부분은 모두 리모델링 이전의 모습이었지만, 내 책상이 있는 곳은 새로운 사무실의 모습이었다.
앨리스가 내게 당찬 목소리로 말했죠.
“보셨죠, 아저씨? 여기가 제집이에요. 다른 집은 없어요. 그러니 어서 가서 움직이세요.”
하지만 나는 내 책상으로 향했다.
“아저씨!”
앨리스가 내 뒤를 졸졸 따라왔다.
다른 곳들은 앨리스가 늘 정리하고 쓸고 닦는 모습 그대로였지만 내 책상 위는 너저분했다.
물건을 사용할 때 꺼내놓고 제대로 정리하지 않는 내 습관 때문이었다.
사무실 문을 닫기 전, 앨리스가 내 책상 주변으로 와서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라고 투덜거리며 내 책상에 널브러진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내 나름대로는 일과의 마무리로 여기고 있었다.
중얼거렸다.
“여긴······정리가 안 되어 있네.”
남의 집에서 뭐하는 거냐며, 어서 나가라고 계속 종알거리던 앨리스의 말이 멈췄다.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볼펜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앨리스가 날카롭게 반응했다.
“건드리지 마요!”
“왜?”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하는 앨리스가 띄엄띄엄 답했다.
“그냥······그래야만 할 것 같으니까요. 제가 쓰는 자리는 아니지만,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서글픈 마음을 억지로 눌러 가라앉히며 다시 물었다.
“그게 누군데.”
무거운 침묵, 앨리스의 얼굴 근육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마침내 드러난 표정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같이 서러움을 한가득 묻힌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앨리스는 안드로이드이기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아이가 첫 옹알이를 시작하듯, 노인이 마지막 유언을 읊조리듯 선명하고 조심스러운 말이 앨리스의 입에서부터 번져 나온다.
“저의 소울메이트요.”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너의 소울메이트고 너는 나의 소울메이트이니.
네가 눈물을 흘릴 수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
이제는 돌아갈 시간이다.
혼란스러움과 서러운 감정이 넘쳐흐르기라도 하는 것인지 앨리스는 주춤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앨리스에게 말했다.
“네가 틀리는 날도 있네. 그것도 두 가지나.”
나를 바라보는 앨리스의 눈에는 여전히 혼란한 감정이 가득하다.
“먼저, 기다리는 건 네가 아니라, 나야. 바지사장만 있고 실무자가 없으니까 사무실이 굴러가지 않더라.”
뻣뻣하던 앨리스의 입가가 천천히 호선을 그린다.
소녀의 미소다.
나도 따라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다른 하나는 소울메이트가 아니라는 거지.”
이제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는 앨리스와 내가 같은 단어를 말한다.
““서울 메이트””
내 몸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호테키의 수작으로 몸이 굳어질 때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스킬이다.
[홀딩 마인드]가 정신계 공격이나 침투에서 유발되는 상태 이상을 제거하는 스킬이라면 이 [어웨이큰 프롬 나이트메어awaken from nightmare]는 강제로 명정 상태를 유지하는 스킬.
[광란] 같은 버프 스킬을 지우는 데 유용하면서, 동시에 디버프 상태에서 천천히 회복되게 해주기도 하는, 쌍방향으로 사용 가능한 스킬이다.
주술과 연금술을 익힌 유저들 중에도 지원 특화 테크트리를 극성으로 타야 해서 나는 사용할 일 없던 스킬이다.
이걸 받은 유저들이 내게 달려드는 건 많이 봤어도 나는 받아본 적 없는 스킬이기도 했다.
그때마다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지.
터져 나온 빛이 닿자 사무실이 깨져나가고, 온통 새하얗던 공간도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마 안드로이드의 의식인 것 같은, 단상 주위에 모여서 각자의 행동을 하던 사람들도 모두 멈추고 내게서 쏟아지는 빛을 받아들였다.
“‘집’에서 보자.”
앨리스가 밝게 웃으며 끄덕이는 것이 내가 그곳에서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
빛이 사라지고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메카의 어깨 위에 있었다.
앞으로 닌닌과 매티슨의 등이 보였다.
그리고 그들 너머로 시꺼먼 직물로 만든 질감의 번데기 같은 것이 보였다.
“저건······.”
입을 열자 매티슨과 닌닌이 동시에 뒤로 돌아보며 외쳤다.
“아니키! 갑자기 움직임이 없어져서 어떻게 된 건가 했소!”
“오메가 씨! 다이브를 마친 것도 아닌데 아바타가 오프상태였어요!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모른다.
호테키라는 놈이 뭔가를 하려 했는데 잘되지 않았거니 하고 예상을 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설명도 어렵다.
몸을 움직이고, 간단한 스킬을 몇 개 사용해보니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설명은 못 할 것 같으니 넘어갑시다. 저건 뭡니까.”
새카만 번데기가 꼿꼿이 서서 맥동하고 있었다.
“호테키입니다. 오메가 씨가 움직임을 멈춘 후에 다가오려다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서 발작하며 뭔가를 뱉더니 저런 꼴로······.”
확실히 뭔가를 하려다 꼬인 모양.
그때, 메카가 출렁이며 경고음을 내뿜었다.
뒤로 고개를 돌려 메카의 얼굴을 바라보자 이마에서 뭔가를 사출하기 시작했다.
그걸 본 매티슨이 외쳤다.
“안드로이드의 의식이 담겨 있던 용기! 저게 깨지면 안 됩니다!”
“가죠!”
닌닌과 매티슨이 떨어지는 용기를 잡기 위해 각자 익숙한 스킬을 사용해 비행을 시작했다.
나도 몸을 띄우려는 순간―
“너는······뭐지?”
호테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름이라도 먹인 듯 번들거리는 새카만 번데기가 갈라지며 호테키가 걸어 나왔다.
그의 어깨와 날갯죽지에 나비 날개처럼 생긴 여러 겹의 날개가 있었다.
다만 생긴 것만 나비의 날개를 닮았을 뿐, 호테키의 것은 끈끈한 기름 같은 것이 뚝뚝 떨어지며 역겨운 질감을 내비쳤다.
“내게 동화시키려 했는데 어떻게 더 깊은 곳에 있는 안드로이드들의 집단의식까지 내려간 거냐. 몸에 아무런 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이상 내 손아귀를 벗어나기는 불가능에 가까울 텐데.”
쿠우웅-
메카가 다시 한번 이마에서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이 담긴 용기를 사출했고, 동시에 메카의 오른쪽이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호테키는 그런 것쯤은 어떻게 되어도 좋다는 듯이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상관없다. 너도 먹어 치워주마.”
뒤로 접혀 있던 호테키의 날개가 퍼덕이며 나를 향해 스킬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무슨 스킬인지 가늠도 되지 않을 만큼 역겨운 것들을 피한 뒤, 양손을 앞으로 모아 뭉쳤다.
[파천황]
[무구 소환]
붉게 빛나는 얼음의 검이 손에서 피어오르고, 곧이어 시퍼런 불꽃이 검을 타고 올랐다.
광자 검날이 번쩍이지 않는다는 것을 빼면 완벽하게 내가 바깥에서 들고 다니는 검을 모방한 형태다.
“새로운 맛도 끌리지만 역시 익숙한 맛이 편하단 말이지.”
“가소롭다. 나는······.”
놈의 말이 끝을 맺기 전, 달려들었다.
[순간 이동]
측면으로 이동한 후,
[즉참]
여전히 스킬을 쏟아내는 날개를 벤다.
‘됐나!’
하지만 잘려 나가던 날개 한쪽이 확 넓어지며 나를 덮쳤다.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뻗자 푸른 화염이 뻗어 나와 날개를 삼켰다.
잘린 단면에서 새로운 날개를 뽑아낸 호테키가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지금이라도 다이브를 멈추면 내게 먹히는 것을 피할 수 있다.”
“배려해주는 건가?”
“사실을 말했을 뿐.”
아직도 메카는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을 뿜어내고 있었다.
어떤 용기가 앨리스의 의식을 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
닌닌과 매티슨이 저것들 모두를 확보해 덤핑 그라운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밖으로 내보낼 때까지는 내가 이놈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면―”
호테키의 날개가 메카의 일부를 덮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너도 새로운 제국의 거름이 될 뿐이다.”
“제국뽕 맞은 정신병자 맘대로 되게는 안 두지.”
충돌이 이어졌다.
수십 회, 수백 회······그 이상의 충돌이.
#
“이게 마지막이오?”
지친 목소리의 미츠아키가 매티슨에게 물었다.
매티슨과 미츠아키는 쏟아지는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을 모두 낚아채 다른 지역에 가져다주는 일을 몇 번이나 반복한 뒤였다.
플로우에 초미세 데이터가 섞여 있지 않은 다른 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들이 용기를 열어 해방했고, 안쪽에서 힘을 잃어가던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은 바깥을 향해 항해하며 나아갔다.
“네······이게······마지막!”
사납게 광선을 뿜어대는 메카 머리통도 다 무너져서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황, 매티슨은 사출구에 몸을 다 밀어 넣다시피 해서 마지막 용기를 뽑아냈다.
다른 용기들 중앙에 있었던 것으로, 복잡한 회로의 구성을 얼핏 보아 다른 의식들을 통제했던 것이 아닐까 하고 매티슨은 생각했다.
그것이 앨리스의 의식이라는 것은 둘은 알지 못했다.
앨리스의 의식을 손에 쥔 매티슨이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같은 곳을 바라본 미츠아키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아니키······.”
그곳에서는 오메가와 호테키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내기 위해 필사적인 힘을 짜내고 있었다.
호테키의 날갯짓이 만들어낸 바람이 쓰레기의 산을 밀어냈으며 오메가의 검격이 지나갈 때마다 하늘이 찢어졌다.
어찌나 격렬한지 멀리서 눈으로 보기에 둘이 하나인지, 하나가 둘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웠다.
“호테키라는 놈이 말하길 육신마저 버리고 이 딥스페이스에 의식만을 남겨두었다고 했소. 처리할 방법이 없는 것이오?”
“의식······의식······.”
중얼거리던 매티슨의 말이 빨라졌다.
“의식만 남겼다는 건 플로우를 타고 움직인다는 소리고, 그렇다면 일종의 데이터라고 봐도 되는 건가? 데이터 정령? 데이터를 소멸하려면?”
매티슨이 시선이 미츠아키가 메고 있는 배낭으로 옮겨갔다.
아바타에 쌓이는 초미세 데이터를 걸러내기 위한 장치다.
“초미세 데이터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쿠르르릉-
오메가와 호테키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다른 소음이 멀리서 번져왔다.
둘이 동시에 외쳤다.
“분쇄기!”
어떤 데이터도 제 구실을 못하게 미세한 입자로 갈아버리는 분쇄기라면 호테키라도 갈아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매티슨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알립니까.”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에도 오메가는 저 멀리로 튕겨 나갔다가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방법을 전할 길이 요원했다.
“이대로 아니키에게 맡기는 건 어떻소?”
“보고도 믿기지 않긴 하지만 일단은 둘이 비등비등하긴 합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호테키를 분쇄기에 넣을 수만 있다면······.”
그때, 매티슨의 손에서 작은 진동이 전해졌다.
용기 안쪽에서 앨리스의 의식이 꿈틀대고 있었다.
다른 의식들은 모두 기진맥진해서 반응도 거의 없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매티슨은 용기가 자신을 한쪽으로 끌고 가려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쇄기가 있는 쪽이었다.
그걸 본 미츠아키가 용기를 북돋웠다.
“아니키는 혼자 바깥으로 향해도 될 텐데 우리를 위해 시간을 벌었소. 이제 우리가 도울 차례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인 매티슨이 날아올랐다.
오메가와 호테키의 싸움에 엮여 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매티슨은 분쇄기의 상공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앨리스의 의식에서 빛이 터져 나왔다.
앨리스가 ‘집’이라 불렀던 사무실에서 오메가 보여준 것처럼 자신의 존재를 온 세상에 알리듯 선명하면서도 따뜻한 빛이 덤핑 그라운드를 밝혔다.
예상치 못한 빛에 잠시 전투를 멈춘 오메가는 분쇄기 위에 떠 있다가 멀어지는 매티슨과 그의 손에 들린 앨리스의 의식을 보았다.
그리고 곧바로 호테키를 향해 스킬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바인드Bind], [집착 고리], [빙결옥], [마비]······모두 움직임을 멈추게 하는 스킬들이었다.
호테키는 어렵지 않게 스킬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움직임을 멈춘 아주 짧은 순간, 오메가의 [금나수]가 호테키의 날개 한쪽에 파고들었다.
날개에서 뻗어 나온 촉수와 집게다리가 오메가의 팔뚝을 타고 올랐다.
아바타를 탈취하고 동화하기 위한 안간힘.
오메가가 시선을 멀리로 돌렸다.
하늘을 베고 땅을 부수는 둘의 전투 덕에 애초에 멀쩡한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던 덤핑 그라운드는 더더욱 텅 비어있었다.
오메가의 시야에 분쇄기가 담겼다.
[매스 텔레포트Mass Teleport]
시전자만 이동하는 [순간 이동]과는 달리 주변의 인물이나 사물까지 한 번에 이동시키는 스킬.
오메가와 오메가에게 붙잡힌 호테키의 아래로 살벌하게 돌아가는 분쇄기의 이빨이 있었다.
[유성낙하]
곧바로 아래로 치닫는 둘.
호테키가 벗어나려고 애를 썼으나 오메가도 계속해서 악착같이 스킬을 퍼부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놔, 놔라!”
“육신을 버리고 의식만 남겼다고? 그 자부심, 데이터 쪼가리가 되어서도 유지할 수 있나 보자고!”
“아, 안돼! 너는 대체 뭐길래······!”
“사장이다. 직원을 책임지지.”
호테키의 발악에 멀쩡한 구석이 없는 오메가의 아바타가 소름 끼치도록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거든. 너랑은 다르게.”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은 오메가의 아바타가 호테키와 함께 분쇄기 저 먼 안쪽으로 사라진다.
덤핑 그라운드에 남은 것은 분쇄기에서 피어오른 한 줄기 바람.
모든 것을 눈에 담은 미츠아키의 혼잣말만이 남았다.
“한 줄기 바람이 제국주의라는 옛 망령을 끝장냈구나.”
그리고는 후련하다는 듯 눈물까지 찔끔 보이며 껄껄대고 웃는 미츠아키였다.
#
사무실 건물 1층의 차고에 바이크를 대충 던져두고 한 번에 계단을 몇 개나 밟아가며 위로 올랐다.
네오-서울 남동 에어리어에서 대림 에어리어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속도 감지 드론 몇 대가 따라붙어서 윙윙대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위로 올라갈수록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가 커졌다.
환호와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번갈아서 들려왔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소파에서 몸을 일으킨 앨리스, 그 옆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신시아, 눈물 콧물 가득한 얼굴을 앨리스에게 비비는 이수련이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사무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너는 앞으로 딥스페이스 금지다, 앨리스.”
일주일 넘게 누워있다 일어난 애를 처음 보자마자 그게 할 소리냐며 신시아와 이수련이 성화를 내던 것이 잠잠해지자 앨리스가 말했다.
“다녀왔어요.”
“어서 와라, ‘집에’.”
“딱딱하시긴.”
“그럼, ‘Hello, World!’라도 기대했어?”
“으······사장님 진짜 구린 거 알죠?”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몰라.”
분명 엄하게 혼내야지 하고 다짐했는데, 나도 웃고 있었다.
아주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