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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23화 (124/258)

123.

123.

[금강불괴金剛不壞]

벡이 있던 연구소에서 백호 수인과 싸울 때는 사용하지 못했던 스킬이지만, 여기서는 다르다.

몸 안에서 밖으로 투사된 내력의 흐름이 내 몸 위를 감싸고, 삽시간에 단단한 외피가 되어 나를 보호했다.

앨리스의 목소리를 내는 메카가 계속 울부짖었다.

-음료수 마셨으면 컵 헹궈두라고 했죠오오오!

-바이크 헬멧 또 안 쓰고 바이크 탔죠오오오오!

-사장님 방 환기하라고 했죠오오오!

한마디를 할 때마다 유성에 뒤지지 않는 크기를 가진 주먹이 내 위로 떨어졌다.

이대로 맞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형도無形刀]

[금강불괴]를 위해 몸 전체로 퍼져 있던 내력이 손에 모이더니 그 자체로 면이 널찍한 도 형태를 만들어냈다.

내가 죽어라고 옆으로 피해 봐야 거대한 로봇이 팔 조금 움직이면 상황은 같아진다.

그렇다면 주먹을 부숴버리겠다.

[무기 회전]

[굴착]

[한 점 돌파]

내력으로 만들어진 도를 머리 위로 올려 들자 내 손에 잡힌 곳을 제외한 도의 날 부분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드릴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그것에 메카의 주먹이 닿자 어마어마한 불꽃을 튀기며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된다!’

그리고 [폭발적인 각력]

투콰콰콰- 하는 귀를 긁는 소음과 함께 그대로 메카의 주먹을 뚫고 위로 솟구쳤다.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의 드릴은 메카의 주먹을 뚫는 드릴이다!

굴착꾼 오메가······!

알 수 없는 고양감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

공중에서 본 메카는 정말 거대했다.

쓰레기 산이 만들어낸 중력 때문인지 머리가 지면을 향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더더욱 기괴해 보였다.

그 순간, 메카가 눈에서 광선을 뿜어냈다.

-책상에 물건 어질러 놓지 말라고 했죠오오!

“우왁!”

예상치 못한 공격에 [비행]을 사용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균형을 잃고 말았다.

순식간에 지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뭔가가 내 목덜미를 훅하고 낚아채 갔다.

“도노!”

무슨 스킬을 쓴 건지 등에서 날개를 퍼덕이고 있는 닌닌이었다.

“나이스!”

또 터져 나오는 내 높은 목소리.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져 버렸다.

메카의 주먹과 광선을 피하면서 닌닌이 소리쳤다.

“로봇의 주먹을 뚫고 나올 때, 나는 결심했소이다! 이제 도노라 부르지 않겠소! 부디 아니키(兄貴:형님)이라 불러도 좋다고 해주시오!”

“맘대로 해!”

메카의 어깨 부근에 무언가가 보였다.

[시력 강화]

[확대]

비행 중인 매티슨이 메카의 위에 올라타려고 애쓰고 있었다.

“닌닌! 피해!”

메카가 우악스럽게 뻗은 손이 내 발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또 귀찮은 일은 저한테 짬 때리고 도망가는 거죠오오!

당황스러운 기색이 잔뜩 묻은 닌닌의 물음이 내 귀에 꽂혔다.

“아니키, 저 메카와 무슨 관계라도 있는 것이오? 악착스러운 분노가 전해지고 있소.”

“모······몰라.”

앨리스가 깨면 잘 대해줘야겠다.

정말로.

“일단 우리를 못 찾는 것 같은데?”

고개를 좌우로 돌리고 있는 메카를 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메카가 거대한 팔로 주위의 쓰레기 산에 있는 쓰레기를 긁어모아 자신의 몸에 붙이자 내가 분쇄했던 주먹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메카의 몸이 쓰레기를 흡수해서 한 층 커졌다.

“이거······위험해 보이오만······.”

“내 생각도 그래. 일단 매티슨한테 가서 이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자.”

메카의 시선이 언제 돌아갈지 몰라서 조심스럽게 접근할 때쯤, 매티슨이 메카의 어깨 언저리에 올라간 것이 성공한 것이 보였다.

나와 닌닌도 그곳에 안착하는 데 성공했고, 우리는 불쑥 튀어나온 쓰레기가 그늘을 만들어서 메카의 시선이 바로 닿지 않는 곳에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팀원들은 다 어디 있고요.”

“모두 다이브가 강제로 종료되었습니다. 재접속도 당장은 힘들다고 하고요.”

그리고 매티슨은 이런 일을 벌인 호테키라는 인물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주었고, 이 메카를 움직이는 것이 앨리스를 중심으로 한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메카가 되었든 그 호테키라는 놈이 되었든?”

내 물음에 매티슨은 씁쓸한 것을 씹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호테키 놈이 딥스페이스 초기 개발에 참여한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때 저도 모르는 이스터 에그를 넣어놓은 건지 이 메카에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됩니까.”

메카는 자신이 태어난 쓰레기 산을 거의 흡수한 상태였다.

“끝없는 허기를 메우기 위해 탐식하는 존재······. 아귀와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이오.”

매티슨이 끄덕이며 닌닌의 말에 동의했다.

“덤핑 그라운드라는 엔트로피에서 태어난 아귀. 이 메카는 아마 딥스페이스를 모두 먹어 치울 겁니다. 막을 수 있는 건 호테키 뿐이겠죠.”

그렇다면······.

매티슨에게 물었다.

“바깥의 팀원들과 연락이 됩니까?”

“네.”

“바깥의 작전은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봐 주십쇼.”

위타천이 주도한 사메의 현실 근거지를 덮치는 작전.

성공했다면 사메에 가담한 놈들 뿐 아니라 머리 격인 호테키라는 놈도 확보했을 테고, 그렇다면 메카를 멈추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바깥의 팀원들에게서 전해진 소식은 모두를 당황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경악이 뚝뚝 묻어나는 매티슨의 음성.

“안쪽까지 모두 뒤졌는데도 호테키를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다른 사메들도 호테키의 실물을 본 적은 없다고 하고요.”

낯선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렸다.

“없애버렸지. 육신은 너무 거추장스러운걸.”

비쩍 마른 남자가 메카의 어깨에 서 있었다.

매티슨이 목에 핏대를 올렸다.

“호테키! 당장 멈춰!”

보면 매티슨도 순진한 부분이 있다.

말로 해서 될 거였으면 이렇게까지 오지도 않았다.

[심즉살心卽殺]

내가 마음으로 그려낸 검 여러 자루가 호테키의 몸에 박혀 들었다.

이거, 편하긴 한데 역시 손맛이 없다.

광자 검날의 그 옅고도 묵직한 진동이 슬슬 그리웠다.

“망설임이 없는 걸 봐서 그쪽이 매티슨보다는 결단력이 좋군.”

몸에 검이 꽂힌 채로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호테키였다.

[이기어검以氣馭劍]

꽂혀 있던 검들이 스스로 뽑혀 나와 호테키의 몸을 난자하기 시작했으나 역시나 호테키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히려 그가 손을 휘두르자 여러 자루의 검이 한 번에 끌려들어 가더니 모조리 부러졌다.

“나는 육신을 버렸다. 의식만을 남겼지. 딥스페이스를 시작으로 전 세계의 가상공간과 네트워크를 장악하기 위해 말이다. 네놈들에게 이 정도의 각오가 있나?”

“그건······.”

“그래, 매티슨 너 같은 겁쟁이는 위험한 일이라며 지레 겁먹은 일이다.”

호테키의 눈에서 광기가 새어 나왔다.

“네가 만든 세상은 내 것이 된다. 나의 세상, 나의 제국, 나의 모든 것이!”

매티슨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떨리고 있었다.

호테키가 어깨높이로 손을 드나 싶더니 갑자기 공간을 겹치듯 그의 손이 훅 가까워져 매티슨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네 아바타는 내가 흡수해 사용하도록 하마.”

[만사재시 매사필종]

광자 검날보다는 못하지만 [무형검無形劍]으로 만들어낸 기의 검을 가지고 호테키의 손을 잘라냈다.

비록 잘려 떨어지나 싶던 호테키의 손은 다시 붙었지만, 닌닌이 매티슨을 데리고 뒤로 빠지는 시간을 벌기에는 충분했다.

“네 몸부림은 발악일 뿐이다.”

호테키의 손아귀에서 시커먼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고 몸으로 밀어내듯 돌파한 뒤, 호테키의 본체를 향해 달렸다.

계속해서 오만한 미소를 띠고 있던 호테키의 미간이 움찔했다.

“어째서 통하지 않는 거지?”

“그러게. 그건 네가 알아봐야지?”

[연하일휘]

검의 궤적이 부드럽고 유려하게 놈의 목젖을 향한다.

그래, 이제야 내 몸에 맞는 스킬을 사용하는 기분이다.

하지만 검이 호선을 미처 완벽하게 그려내기도 전―

콰드득-

검의 끝부분이 언어 그대로 구겨지며 잘려 나간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기고만장하구나. 애송이.”

동시에 놈이 내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몸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재빠르게 몸을 뒤로 뺐다.

삐걱거리는 움직임을 보이는 나를 보고 호테키가 사악하게 웃었다.

“공격을 무효화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너와 동화하면 되지 않겠나? 어떻게 될지 궁금하군. 스스로를 무효화하려나? 아니면 또 다른 내가 태어나는 건가?”

놈의 목소리가 몇 번이고 울린다.

시야가 둘, 셋으로 나뉘어 보인다.

머리에서는 깨질듯한 두통이 시작됐다.

[큐어]도, [신의 축복]도, [정화]도 통하지 않는다.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온 닌닌과 매티슨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놈이 내게 손을 못 대게 해.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탁······.”

의식이 침잠하고, 시야가 암전된다.

#

“으헉!”

눈을 떠보니 온통 낯선 천장이다.

낯선 것은 천장뿐만이 아니다.

내가 몸을 일으킨 공간 전체가 백색만이 가득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직 딥스페이스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바깥으로 튕겨 나온 것인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스킬을 써보려 했지만, 단 하나의 스킬도 사용할 수 없었다.

“미치겠네.”

엉거주춤 일어나니 멀리서 작은 소음이 들렸다.

한 명이 외치고 여럿이 답하는 소리 같았다.

조심스레 다가가니 백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행동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는 삽질을 하는 듯했고, 다른 누군가는 뜨개질을 하는 듯했으며, 다른 누군가는 음식을 먹는 것 같았다.

확신하지 못하고 추측하는 것은 그들이 마임 하듯 행동하고 있을 뿐, 도구나 음식을 들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만 기이한 것은 각기 다른 행동을 하면서도 조금 전 메카가 앨리스의 목소리로 터트리던 구호를 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메모지에는 낙서하지 말고 메모만 하랬죠!”

“문 쾅쾅 닫지 마시라고요!”

“누가 후드를 한 번도 안 빨고 한 달 내내 입냐고요!”

왠지 모르게 작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 머리를 감는 것 같은 모션을 취하고 있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기······.”

그 사람은 나를 보더니, 샴푸가 눈에 들어가서 잘 안 보인다는 듯 찡그린 표정을 하고 턱짓으로 연신 앞을 가리켰다.

“앞으로 가라고요?”

끄덕끄덕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앞으로 향하자 사람 키만 한 단상이 보였다.

그리고 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단상 위에서는 앨리스가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구호를 외쳐대고 있었다.

양손을 입에 가져다 대서 손나팔을 만든 다음 힘껏 외쳤다.

“앨리스!”

단상 위에서 발을 쿵쿵 구르던 앨리스가 내 쪽으로 달려와 고개를 쑥 내밀었다.

“아저씨도 새로운 동지인가 보죠? 저쪽으로 가세요. 어서요. 아저씨는 뺀질뺀질하게 생겼으니까 소파에서 뒹굴거리는 행동을 하시면 될 것 같네요.”

“아저씨······?”

별것 아닌 단어지만 앨리스가 내게 그런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 몰려왔다.

“아저씨를 아저씨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해요.”

이를 악물고 침을 삼켜서 분한 마음을 삼켰다.

어쨌든 앨리스를 데리고 나가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나는 아저씨가 아니라 네 사장이고, 너는 여기 있으면 안 돼.”

“까다로운 동지가 왔네.”

“나랑 같이 가자.”

“가긴 어딜 가요.”

“어디긴 어디야 집이지.”

큰 의미 없이 그냥 여기서 벗어나자는 의미로 꺼낸 말.

그 말에 앨리스가 단상에서 내 옆으로 폴짝 뛰었다.

“뭘 착각하시나 본데, 제가 사는 집은 따로 있어요.”

“상황이 복잡해서 설명이 길어지는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은 앨리스가 갑자기 앞에 생긴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보세요! 여기가 제집이라고요.”

안쪽으로 들어선 나는 다시 한번 이를 꽉 물어야 했다.

이번에는 화나 분한 마음이 아니라, 먹먹함을 참기 위해서.

띄엄띄엄 한마디씩 말을 꺼냈다.

“여기가······네······'집'이구나.”

문 너머로 펼쳐진 것은 대림 에어리어, 그중에서도 나와 앨리스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우리의 사무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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