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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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 고도 이상 상승해서 하늘에 위치한 거대한 산에 다가가자 중력이 역전되어 몸을 잡아끄는 것이 느껴졌다.
아래가 아닌 위로 끌려가는 기묘한 감각에 지배당하지 않게 주의하며 속도를 조절했다.
그렇게 나, 매티슨, 닌닌을 비롯한 사메 추적 팀이 쓰레기 산의 중턱에 발을 붙이는 데 성공했다.
이곳에서 보면 저 멀리 하늘에서 분쇄기가 돌아가는 것 같았다.
“기묘하네.”
내 혼잣말을 들은 건지 닌닌이 맞장구쳤다.
“실로 그렇소이다.”
나를 제외한 다른 아바타들은 모두 배낭같이 생긴 것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계정에 들러붙는 초미세 데이터를 따로 분리 배출하기 위한 장치라고 했다.
시선을 매티슨에게 돌려서 말했다.
“이 쓰레기 산이 간토 권역 변두리에 있는 산과 똑같다면, 산의 동쪽에서 안으로 진입하는 길이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지인분께서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십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움을 그대로 내비치는 매티슨에게는 미안하지만, 그 지인이 위타천이라는 소리는 안 했다.
위타천이 직접 나선 걸 알게 되면 기겁할까 봐서다.
그렇지 않아도 위타천의 이례적인 장기휴가에 대해 숙덕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공 집행자가 아닌 개인으로서 나를 돕기 위한 것이었지만, 위타천 건강 이상으로 인한 장기 휴가설 기사를 본 매티슨이 ‘공공 집행자들은 절대로 그냥 쉴 리가 없다. 계속 의심해봐야 한다.’라면서 그 좋아하는 감자칩 먹는 것도 멈추고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때는 조금 소름이 돋기도 했다.
마고에게 얼마나 시달렸으면 공공 집행자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이 이렇게까지 커졌나 싶었다.
그래도 위타천이 일본 열도 내의 인맥들을 긁어모으고 심지어 본인이 직접 넘어가기도 해서 탐색과 포위가 빠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산의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 날카로운 소음이 귀를 긁었다.
철커덕-
묵직한 쇠붙이가 맞물리는 소리였다.
덫이 발동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원영신]으로 만들어 퍼트려 놓았던 기의 육신 중 하나의 아래에서 꼬챙이가 솟아나 그대로 육신을 꿰뚫었다.
‘아무런 징조도 없었는데!’
아무리 내 본래의 능력보다 많이 부족한 분신들이라고는 하지만 모두 탐색이나 감지, 기감 활용을 극대화하는 스킬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솟아나는 꼬챙이에 반응하지 못했다.
다행히 내 아바타를 베이스로 해서 공격이 먹히지 않았는지 아무렇지 않게 꼬챙이에서 벗어난 분신이 주위를 경계했다.
이어서 다른 꼬챙이들이 솟아나며 매티슨에 데려온 사메 추적 팀원 몇의 몸을 꿰뚫어 버렸다.
팀원들의 상황을 체크한 매티슨의 얼굴이 굳었다.
“그대로 아바타 데이터가 뒤틀려버렸어요. 계정도 먹통이 되기 직전이고요.”
위기감을 느낀 다른 이들이 재빠르게 방어 스킬들을 사용하거나 공중으로 몸을 띄워 올렸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라는 듯, 쓰레기 산의 지면이 부르르 떨더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꼬챙이가 계속해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이 당황할 때, 나와 내 원영신들 그리고 닌닌만큼은 차분하게 대응했다.
“이렇게 날카롭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아래 무언가 있는 것 같소이다! 제대로 온 것 아니겠소, 도노!”
어디서 꺼내왔는지 모를 언월도를 들고 마구 휘둘러 기파를 내보내 꼬챙이들을 썰어버린 닌닌의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묻어났다.
용병의 직감 일터.
“동감이다. 근데, 그건 언월도치고 날이 좀 얇다?”
“나기나타(薙刀,なぎなた)라고 하는 무기올시다. 바깥에서는 이렇게 능숙하게 다루지 못하지만, 여기서는 다르지 않겠소이까.”
이후로도 닌닌은 사슬낫, 수리검, 손톱날 등 닌자 하면 떠오르는 아키타입의 무기들을 꺼내서 사용했다.
바깥에서는 사용하는 걸 한 번도 못 봤는데, 저런 걸 쓰고 싶다는 내면의 욕망을 여기서 충족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헤이안 시대 때부터 내려온······.’, ‘원가류 조상이 개발한······.’ 이런 쓸데없는 닌자 무기 TMI를 듣고 있으면 ‘그게 뭔데 씹덕아.’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사이, 내 아래에서도 꼬챙이가 몇 개 튀어나왔지만 역시나 아무런 위해도 입히지 못하고 그냥 허공을 찔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만 해당하는 사항일 뿐, 꼬챙이에 찔린 다른 이들은 아바타가 뭉개지거나 뒤틀리며 사라져버렸다.
“이대로는 진입도 힘들 것 같습니다!”
매티슨의 외침.
“모두 잠깐 피해 있으세요! 닌닌 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꼬챙이의 추격을 피해 위로 떠 오르거나 범위 밖으로 멀어졌다.
그 사이, 나는 기의 육신들을 불러 모았다.
이것 역시 주로 혼자 플레이하던 서리얼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는 스킬이었다.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동안 나와 다른 분신들을 지켜.”
내 말에 가장 처음 만들어낸 원영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원영신을 데리고 앞으로 나섰다.
그들의 숫자는 열여덟.
다른 이들과의 협력을 통해야만 발현되는 동조 스킬, 혹은 화합 스킬이라 불리던 스킬이 발동된다.
[십팔나한진十八羅漢陣]
내 분신들은 주황빛 가사를 입지도 않았고, 대머리도 아니며, 이마에 계인을 찍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킬의 발동에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
상서로운 금빛 광채가 그들의 몸을 감싸 안았고, 잡초를 베어 길을 내는 농부처럼 찔러 드는 꼬챙이들을 꺾어버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활약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리자, 다른 분신들이 쓰레기 위에 그려낸 거대한 마법진이 보였다.
분신들은 마법진 요소요소에 자리를 잡고 또 다른 스킬에 힘을 더할 준비를 마쳤다.
서리얼에 많고 많은 마법사 위주 길드 중에서도 극소수 길드만이 아주 한정적으로 사용하던 동조 스킬이다.
내가 마법진의 중심에 서자 솟아난 빛이 차츰 마법진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분신들이 각기 다른 수인을 맺고 영창을 읊조렸다.
그들이 밀어 보낸 마력이 마법진을 한 바퀴 순회해 다시 내게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양손을 머리 위로 들고, 심상을 그린다.
산 정도는 단번에 뭉개버릴 압도적인 힘.
이 쓰레기 산은 하늘에서 땅을 향해 뻗어 있으므로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손이 향한 곳은 처음에 매티슨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다준, 이 섬의 지면이다.
그리고 그 지면에는 역시나 위에서 쏟아진 쓰레기들이 한가득이었다.
지금, 그 쓰레기들이 떠올라 스스로 뭉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눈덩이만 했던 쓰레기 집합이 불어나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다.
이윽고 어마어마해진 쓰레기 더미가 만들어낸 그림자가 산을 덮을 즈음, 들고 있던 양손을 있는 힘껏 앞으로 뻗었다.
[서먼 메테오Summon Meteor]
힘을 다한 기의 육신들이 사라지고, 빛을 발하던 마법진도 흐려진다.
떨어지는 쓰레기 유성을 막기 위해 쓰레기 산 위에 쉴드가 분명한 장막이 쳐지고, 수천수만 가닥의 꼬챙이가 서로 엮여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유성과 쉴드가 충돌하며 굉음이 발생했다.
분쇄기가 내뿜는 소음 정도는 가뿐히 덮어버리는 굉음 사이로, 꼬챙이가 유성을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산의 한쪽에서 아바타들이 쏟아져나온다.
초미세 데이터의 유입을 막기 위함인지 놈들이 쓰고 있는 기계 장치가 달린 마스크 위에 상어의 이빨을 형상화한 마크가 선명했다.
그들이 각자의 스킬을 발동해 나를 향해 접근했다.
유성에서 떨어져나온 쓰레기들이 사방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기의 육신들을 모두 몸에 흡수한 후, 옆에 떨어진 거대한 쇳덩이에 주먹을 박아 넣었다.
쇳덩이의 표면이 출렁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날카로운 창으로 변해 주위로 방출됐다.
[스틸 레인Steel Rain]
테오릭 경이 새로운 티셔츠의 실험을 위해 약한 버전으로 내게 쏘아 보낸 마법이다.
“유성도 그렇고 강철 창도 그렇고 마법사들은 이 좋은 걸 자기들만 사용하고 있었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닌닌이 기대감 섞인 목소리를 냈다.
“도노! 여기라면 ODC에서 보여줬던 그걸 다시 할 수 있는 것 아니오? 유물의 힘을 빌렸던 것 말이오!”
“이거?”
[파천황]
하지만 이전과는 다르다.
상상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딥스페이스다.
화염계와 빙결계말고 얼마든지 다른 시도가 가능하다는 말.
몸을 측면으로 틀고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왼손을 앞으로 쭉 내민다.
그리고 왼손이 있는 곳에 오른손을 가져다 댄 후, 귀 끝까지 주욱 늘렸다.
손에 들린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긴장감의 근원지였던 오른손을 놓았다.
무형의 화살이 공간을 가르며 만들어내는 기류가 선명하게 보였다.
화살이 나를 향해 접근하던 놈들의 중간 즈음에 이르렀을 무렵―
“지금.”
[파천황]을 발동했을 때부터 왼손에 맺혀있던 뇌전 한줄기가 튀었다.
다음 순간, 나는 화살이 날아가던 곳에 있었다.
산에서 튀어나온 사메놈들이 당황하는 사이, 그대로 뇌전을 퍼트렸다.
계속해서 쏘아내는 무형의 화살에 뇌전의 기운이 실렸다.
번개가 긁고 간 주위 일대가 초토화됐다.
뇌전 도술과 궁술의 융합이다.
어찌어찌 내게 접근한 놈들이 자신들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절망적인 목소리를 냈다.
“뭐야! 아무런 공격도 통하지 않아!”
“라이진(雷神:일본 신화에서 번개를 다스리는 요괴)이다!”
“타케미카츠지(タケミカヅチ:일본 신화의 군신軍神. 궁술, 번개를 관장하는 신.) 가 현신했다!”
그게 뭔데 씹덕들아.
사메에도 개발자가 많다는 말이 헛소리는 아니었는지 놈들은 즉각적으로 스킬을 변형시키거나 아예 뜯어고쳐서 나를 공격하려 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나마 통한 것이라면 악마 비슷한 걸 소환해서 나를 먹어치우려 한 것인데, 다른 스킬들은 아무런 위해도 입힐 수 없었던 반면 악마의 지독한 입 냄새는 나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후 악마는 토막 쳐서 없애버렸다.
“버그! 버그다! 아바타를 무력화 시킬 수도, 계정을 탈취할 수도 없어!”
당황한 놈들이 주춤거리고, 일부는 도망치려 했다.
저 멀리 우회한 매티슨이 팀원들을 이끌고 쓰레기 산의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발을 떼자 뇌전이 튀면서 도망치려는 놈들 앞으로 순식간에 이동했다.
놈들 중 몇몇이 다이브를 그만두고 사라졌다.
하지만 곧 다시 들어와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지트가 공격받고 있어!”
위타천도 바깥에서 조여들고 있는 모양.
“빨리 도망치는 걸 추천한다. 그쪽에 있는 사람 성질이 보통이 아니거든.”
모든 시선이 내게 모여들었다.
번개를 한 줄기 내던지며 말을 끝마쳤다.
“도망갈 수 있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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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티슨은 팀원들을 이끌고 쓰레기 산 안쪽의 비밀 기지 내부를 마구 나아갔다.
마주치는 사메들을 족족 계정 밴 시키면서도 탐색 스킬의 사용을 멈추지 않았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사메와 함정 때문에 팀원 몇몇도 다이브를 그만둬야 하긴 했지만, 그들은 나아가고 있었다.
쓰레기 산의 내부는 초미세 데이터 농도가 엄청났고, 며칠 간의 크런치 모드를 통해 개발하고 적용한 배낭의 수용량도 아슬아슬했다.
“더는 저희 아바타도 위험합니다!”
어느 팀원의 떨리는 외침.
하지만 매티슨은 멈추지 않았다.
밖에서 분투 중인 오메가와 닌닌을 보고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아바타를 못 쓰게 된다 해도, 계정을 파기해야 한다 해도, 그들이 자신에게 보냈던 신뢰와 믿음에 비하면 작은 희생이었다.
그때, 매티슨의 탐지 스킬에 이상한 것이 잡혔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여러 개의 의식과 아주 그립지만,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은 아바타 하나.
매티슨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오세요.”
팀원들을 뒤로 물린 매티슨이 양손으로 뭔가를 감싸 쥐는 모양을 만든 뒤 허리춤으로 당겼다.
그리고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감싸 쥐었던 손 모양을 펴자―
[초고열융해빔]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광선이 손에서 뻗어 나오며 탐지 스킬이 잡아낸 것들이 있는 곳으로 가는 직선 통로를 만들어냈다.
그곳으로 달려간 매티슨은 과거의 동료였던 자의 아바타를 직면했다.
“호테키······네가 왜 딥스페이스에······.”
호테키는 딥스페이스 개발 극초기, 매티슨과 발상을 함께 했던 개발자였다.
하지만 호테키는 가상공간의 필요성에 대해서만 매티슨과 의견이 일치했을 뿐, 노선이 아예 달랐다.
오픈소스가 아니라 클로즈드소스를 주장한 것에서부터 매티슨과 감정의 골이 깊어졌으며, 딥스페이스를 엔터테인먼트 분야에만 적용할 게 아니라 세뇌, 통제용 버전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매티슨은 호테키와 인연을 끊었다.
딥스페이스를 통해 전체주의, 제국주의의 재림을 꿈꾸고 나아가 다이버들 뿐만 아니라 현실의 권역들도 그렇게 통제하겠다는 호테키의 검은 속내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안드로이드의 의식이 담긴 통들을 만지던 호테키가 뒤를 흘끗 돌아봤다.
그가 손짓하자 매티슨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 모두 강제로 다이브가 종료됐다.
“매티슨······이 좋은 가상공간을 개발해놓고 고작 사용하는 게 엔터테인먼트 영역이라니. 그때나 지금이나 한심하기 짝이 없잖아.”
사악-
매티슨이 공중에서 만들어낸 칼날이 호테키의 목과 몸을 분리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호테키는 손을 뻗더니 잘린 머리를 몸 위에 얹었다.
“이렇게 성격이 급했나?”
“너는 여기 있어서는 안 돼.”
“왜? 세상 사람들 모두 네가 개발한 걸로 알고 있는 딥스페이스가 사실은 내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될까 봐?”
“여전히 자의식 과잉이야. 네가 한 건 불평불만이나 쏟아놓으면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지껄였던 게 전부야.”
신랄한 매티슨의 말이 칼날이 되어 호테키의 가슴을 긁어내렸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이젠 아니야. 나는 딥스페이스와 다이버들을 아래에 두는 황제가 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서 너는 울부짖겠지.”
계속해서 매티슨이 스킬을 날려댔으나, 호테키는 가볍게 쳐낼 뿐이었다.
“이거, 보이나?”
호테키가 안드로이드의 의식이 꿈틀거리는 용기를 들자 매티슨도 공격을 멈추었다.
이들이 있는 곳은 덤핑 그라운드.
저 용기가 깨지고 초미세 데이터가 가득한 플로우가 안드로이드의 의식에 닿으면 원래 상태로의 복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매티슨을 보고 비릿한 미소를 보인 호테키가 중얼거렸다.
“안드로이드의 의식이야. 왜 안드로이드였는 줄 아나? 가상공간에 가장 익숙한 존재들이거든. 사회에서는 다른 종족들에 비해 몇 배나 많은 일을 하는 일종의 하층민인데 말이야. 요새 안드로이드들의 여가는 두 가지야.”
손을 꼽는 호테키.
“전자마약, 그리고 딥스페이스. 이들에게는 이미 딥스페이스가 낙원인 거지. 여기서는 고달프지 않거든.”
호테키가 들고 있던 용기를 위로 던졌다가 다시 낚아챘다.
“딥스페이스에 가장 익숙한 안드로이드들의 의식을 엮어서 활용하려고 보니까 문제가 있었어.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 녀석이 없더라고. 그런데, 마침 좋은 걸 찾았지. 딥스페이스에 절여져 있으면서도 주도적이고 능동적인 녀석이 있을 줄이야!”
들고 있던 용기를 곁에 있는 홈에 밀어 넣는 호테키.
쓰레기의 산이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너는 나를 패배자나 쓰레기라고 생각했겠지? 나는 이제 패배자들의 왕, 쓰레기들의 군주가 된다. 바로 네가 그토록 공들여 가꾼 이 딥스페이스에서! 현실의 그 어떤 권역도 넘볼 수 없는 영토를 가진 제국의 황제가 되는 거다! 네오-서울? 내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신 간토 권역의 시작을 목도해라, 매티슨.”
#
쓰레기 산에서 무언가가 일어서고 있었다.
잡동사니와 폐자재로 이루어진 거대한 메카로봇.
조악하고 괴악한 메카의 눈에 불이 들어오고, 그것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입을 열자, 천둥처럼 거대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목소리가 매우 익숙했다.
-사아아자아앙니이이임! 소오파아에에 누워어이있지이 마아알래애앴죠오오!-
평소 같으면 귀찮아도 몇 대 맞아주고 말았을 앨리스의 솜주먹이 어마어마한 크기가 되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메테오를 역소환하는 스킬은 왜 없지.”
콰아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