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20화 (121/258)

120.

120.

오메가가 닌닌이라고 부르는 사루와타리 미츠아키猿渡 光昭는 전원 원숭이 수인으로 이루어진 닌자 집단인 원가류猿賀流의 치료계통 기술, 활인술活人術을 익혔다.

부상자의 내부 활력을 활성화하여 자연 치유를 돕는 방식의 기술이고, 여러 최첨단 닌자 도구들의 사용도 능숙하다.

원가류가 태초에 일본 열도에서 발생한 집단이므로 미츠아키의 출생과 배경도 당연히 일본 열도였다.

하지만 열도의 여러 권역에 충성하는 원가류의 다른 닌자들과는 달리 미츠아키는 용병 일에 뼈를 묻기로 다짐했다.

그렇기에 세계 각지를 떠도는 일이 잦았고 가끔 원가류로 복귀할 때마다 다른 닌자들과의 충돌을 빚었다.

대부분은 사상 문제였는데, 원가류의 닌자들은 일본 열도에 있는 권역의 통합을 통해 대 일본 제국의 부활을 외치는 자들이 많았다.

그렇게만 되면 네오-서울과 한반도의 다른 권역으로 넘어간 아시아의 패권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

이후 대동아공영권이니 하는 헛소리가 들릴 즈음, 미츠아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물 안 원숭이들의 말에 더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사루와타리 미츠아키는 우경화되지도 않았으며 혐한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에게 문제가 있다면 용병 일이 없을 때의 무료함을 견디기 위해 딥스페이스에 손을 댔다는 것과 ‘딥스페이스는 제2의 현실이니까 현실에서의 정보를 완전히 공개해놓는 것이 좋아요.’라는, 속이는 놈만 있고 속는 놈은 없는 헛소리에 넘어가 이력서처럼 빽빽이 적힌 개인 프로필을 ‘모두 공개’ 상태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는 것이다.

그러다 사메의 말단 중 하나의 눈에 띄게 되었고, 친목 단체로 속아 발목이 잡힌 상태였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친목 모임이 아닌 것을 알고는 끼어들어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미츠아키는 사메에 협력할 것을 완강히 거부했다.

하지만 사메는 쉽게 미츠아키를 놓아주지 않았다.

용병 중에서도 늘 수요가 있는 치료계통의 용병인 미츠아키를 자신들의 수족으로 묶어둘 심산이었던 것.

바깥의 생활을 엉망으로 만들겠다는 협박과 함께 계속해서 미츠아키에게 접근했다.

심지어 미츠아키의 계정에까지 접근해 딥스페이스에서 영화를 보거나 다른 게임을 하고 있었음에도 언더비스로 끌고 오곤 했다.

미츠아키도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스킬인지 뭔지 하는 딥스페이스 내의 기술을 익혀서 사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사메는 사상이 극도로 우경화되어있고, 입만 열면 혐한발언을 내뱉지만, 실력만큼은 괜찮은 열도의 개발자들을 많이 확보한 상태였고, 이들의 아바타는 개조와 업그레이드, 코드 수정을 거듭해 미츠아키가 익힌 스킬들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튕겨낼 정도였다.

그들이 가볍게 휘두른 주먹에 미츠아키의 아바타는 바닥을 굴러야 했고.

그런 사메 개발자들의 공격이―

“어째서! 맞지를 않는 거냐!”

“피격 즉시 공격을 무효화하고 있어! 아예 맞은 적이 없던 것처럼!”

“그런 스킬은 들어본 적 없어! 확률 조작이라고!”

오메가에게는 단 하나도 통하지 않고 있었다.

#

이놈들, 생각보다 정상적으로 말한다.

사설 대화방을 잠깐 엿봤을 때는 ‘시네!(死ね:죽어)’라고 외치면서 나를 공격할 줄 알았는데 내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그나저나 이 슈퍼 가드라는 거, 엄청나게 편하다.

방어를 아예 생각하지 않고 전투할 수 있다.

이렇게.

[순간 이동]

내 시야가 닌닌을 린치하던 세 명의 등 뒤로 옮겨간다.

요즘은 여러 스킬의 발전과 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서리얼’에서 익힌 스킬 외에는 사용하지 못한다.

따라서 내가 익히지 않은 물질계 마법 중에서도 상위 트림에 있는 이 [순간 이동]은 바깥의 나였다면 절대 사용하지 못하는 스킬이다.

하지만 여긴 딥스페이스.

상상력이 구현되는 세계.

내가 알고만 있던 스킬들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체험하기에 이만큼 좋은 곳이 없다.

게다가 서리얼에서 밸런스를 맞춘답시고 스킬 후에 오는 반작용이 여기서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

듣기로는 [순간 이동] 이후 극심한 멀미 증세가 있다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놈들 중 하나가 손을 집게처럼 변형시키며 몸을 돌려 내 허리를 잘라내려고 시도했다.

바로 반격했다.

[카포에라Capoeira - 강슈Gancho]

몸이 리듬을 타듯 탄력이 붙고, 갈고리처럼 뻗은 뒤꿈치가 놈의 집게 관절에 작렬했다.

기공으로 때울 수 있다고 생각해 배우지 않았던 체술 스킬 중 하나인 카포에라다.

“이거 재밌네.”

그대로―

[꼬또벨라다Cotovelada]

팔꿈치를 들어 올려 강슈로 흔들리는 관절에 꽂자 갑각류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집게가 꺾여 몸에서 분리됐다.

“잡아!”

한 놈의 외침에 집게 하나를 잃은 놈의 남은 다른 집게가 내 허리춤을 붙잡았다.

나를 잡으라고 외친 놈의 손끝이 터져나가더니 수초와 촉수가 되어 나를 향해 뻗어왔다.

그 사이, 집게를 달고 있는 녀석은 어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허리춤을 잡고 있어야 할 집게가 아무 저항도 없이 짤깍거리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놈의 집게에도 잡혀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도 공격으로 인식해 아예 흘려버리는 것 같았다.

곧 내 몸에 닿은 수초와 촉수도 마찬가지로 나를 옭아매나 싶더니 곧 힘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팔랑거리고 있었다.

“도노······!”

선망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닌닌.

그리고 그와 반대로 낭패라는 감정을 얼굴에 띄운 채로 주춤주춤 멀어지는 놈들.

“저 녀석들, 사메냐?”

“그걸 어떻게 아신······맞습니다!”

그래도 나와 좀 지내봤다고, 즉답하는 닌닌이었다.

탐사단에 있을 때, 내 질문에 질문으로 답해서 좋은 꼴을 본 적이 거의 없긴 했지.

“우릴 건드린 걸 후회하게 될 거다!”

목소리만큼은 아주 장군감이 따로 없는 놈들을 향해 일갈했다.

“나는 후회 안 해. 너희가 하게 될걸?”

닌닌에게 린치를 가하던 셋의 모습이 사라졌다.

[반향정위]에 잡히지 않는 것을 보면 아예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았다.

내 옆으로 허겁지겁 달려온 매티슨의 얼굴이 밝았다.

“저놈들 아바타 로그를 모조리 긁어냈습니다. 저는 추적 팀원들을 모아서 이걸 분석하고 오겠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로 사라지는 매티슨.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닌닌을 바라보았다.

원래 원숭이 수인의 모습도 그리 괜찮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아바타에 뒤집어쓰고 있는 복어 스킨은 더 구렸다.

“얘기 좀 하자.”

그나마 한적한 곳으로 가서 [차음막] 스킬을 통해 소리가 새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아까 내 옆에 있던 오랑우탄 닮은 물고기 있지? 그 사람 덕에 너희 사설 대화를 봤어. 넌 왜 사메에 들어가 있는 거냐.”

닌닌이 울적한 표정으로 자기 얘기를 풀어놓았다.

기구하긴 했지만, 나는 분명 유적지에서 경고했었다.

얇다 못해 팔랑거리는 귀 조심해야 할 거라고.

“그럼 너도 사메에 좋은 감정은 없겠군.”

“그렇소이다, 도노. 마음 같아서는 한놈 한놈 메스로 얇게 껍질을 벗긴 다음 다시 붙이고, 또 박피하고, 또 붙이고······.”

사메에게 얼마나 시달렸는지 닌닌은 유적지 안에서도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분노를 여과 없이 풀어내고 있었다.

그런 닌닌을 제지하고 사메에 대한 것을 조금 더 자세히 물었다.

“아까 너랑 같이 있던 셋도 사메지? 그놈들은 사메에서 뭘 하지? 사메의 규모는 어느 정도나 되고? 딥스페이스 내에 놈들의 근거지가 있다던데 혹시 가 봤나? 그들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뭐고?”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내 물음에 닌닌이 버거워하다 나를 진정시켰다.

“이렇게 흥분하고 조급한 도노의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소.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이오. 나도 힘껏 돕겠으니 차근차근 말씀해보시오.”

맞다.

앨리스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안드로이드 몸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혹여나 이상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수련과 신시아가 바로 이쪽으로 연락을 주기로 했다.

마음이 조급해서 놓치는 게 있는 것보다는 천천히 확실하게 접근해서 사메라는 집단을 뿌리 뽑고 앨리스의 의식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것이 중요했다.

깊은 곳에 있던 호흡과 함께 조급이라는 감정을 흩어버리려 애썼다.

그걸 본 닌닌이 내게 말했다.

“내가 알던 도노의 모습이 되셨소이다.”

“지금까지는 아니었나?”

“조금? 목소리가 영 그래서······.”

가면 이거 버려 버리든가 해야지.

#

닌닌도 알고 있는 것은 그닥 많지 않았다.

자신을 린치하던 셋도 개발자긴 하지만 실력은 그리 좋지 못해서 사메에서 허드렛일이나 하는 처지였고, 사메의 규모는 대략적인 규모로 500명 남짓이라고 했다.

“500이나?”

“저처럼 같이 얼떨결에 끌려든 것이 아니라 제대로 활동하는 놈들의 수만 얼추 추리면 그 정도가 나올 것으로 생각하오.”

“더 많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열도에 위치한 권역의 다이버들에게 주로 접촉하지만 다른 다이버들도 들어온다고 했소이다.”

“기준이 있는 건가?”

“혐한. 그중에서도 네오-서울에 반감이 있는 다이버.”

사메에 대해 시종일관 신중한 태도를 보이던 닌닌의 단호한 발언.

“왜 그렇게 생각하지?”

“생각이 아니외다. 자세히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나는 그런 인간들이 득실대는 곳에서 자랐소이다. 떠나고 나서야 그곳이 얼마나 기형적인 집단이었는지 알 수 있었소. 단언컨대 사메에서 내가 느꼈던 것은 그곳에서 보였던 광기와 편향이었소이다.”

직감이 늘 옳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직감이 무서울 정도의 통찰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나 역시 자주 경험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번만큼은 닌닌의 직감에 무게를 실어보기로 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사람들을 이런 가상공간에 모으는 거지? 그리고 누가 그런 짓의 중심에 있는 거고.”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소이다. 너무 꺼림칙해서 더 이상의 접근은 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날, 나는 다시 다이브한 매티슨에게 닌닌을 소개해주고 닌닌이 처한 상황에 대해 알려주었다.

매티슨은 잠깐이지만 사메에 있다 나왔던 닌닌에 대해 많은 흥미를 가졌고, 사메에서 닌닌의 계정에 붙여놓은 트래킹 프로그램과 계정 잠식 스파이웨어를 제거해주었다.

아예 새 계정으로 세탁을 해준 셈.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겠네요. 이미 사메 쪽으로 넘어간 닌닌 씨의 개인 정보는 건드릴 수 없어요. 본인이 열어놓고 다닌 거라······.”

나를 따라 자연스럽게 닌닌이라는 호칭을 입에 올리는 매티슨이었다.

“내 부주의니 누굴 탓하겠소. 고맙소이다. 도노의 클라이언트라하니 나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소.”

그렇게 사메 추적 팀에 닌닌도 합류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들을 최대한 풀어놓았다.

최소한의 수면과 휴식, 식사만을 번갈아 시행한 지 사흘, 도망친 사메 따까리 셋의 아바타 로그와 닌닌이 현실에서 용병이라는 것을 밝힌 뒤에 사메로부터 초대받은 곳이라 증언한 곳의 좌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동안 추적을 계속하면서 모일 일이 있으면 빠르게 모이기 위해 아예 장소 지정 포인트로 삼았던 언더비스의 그 공원, 매티슨이 자신이 서 있는 앞쪽을 손으로 쓸어내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모래 알갱이 같은 것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딥스페이스 내의 컨텐츠와 커뮤니티를 형상화한 지도입니다.”

매티슨이 가장 구석의 당장이라도 꺼질 듯 끔뻑이는 알갱이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우리가 있는 언더비스입니다.”

그리고 몇 개나 되는지 세기도 힘든 알갱이 위를 넘어 대각선 정 반대편에 있는 알갱이 위에 손가락 끝을 위치시켰다.

“딥스페이스 내의 사메 근거지가 있는 곳으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그동안 우리와 함께하며 어느 정도 설명을 들은 닌닌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렇다는 말은 안드로이드 희생자들의 의식도 그곳에······.”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동안 못 찾을 만도 하더군요. 여긴 딥스페이스 내의 불필요한 데이터들을 처분하기 직전에 모아두는 일종의 쓰레기 집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무지막지하게 복잡하죠.”

“여기보다 더 말이오?”

닌닌의 말에 매티슨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언더비스는 그나마 도시 꼴이라도 갖췄지만 저긴······저도 대충 설계만 해두고 신경 쓴 적이 없습니다. 뭐가 있을지 몰라요.”

“쓰레기 집하장이니 쓰레기가 있겠죠.”

내가 툭 던진 말에 둘의 시선이 내게로 닿았다.

“얼른 쓰레기들을 치우러 갑시다. 앨리스가 없으니까 사무실 일이 안 돌아가요. 이제 한계입니다.”

긴장감 때문인지 미간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매티슨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팀원들이 그곳에서 대기 중입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매티슨의 손이 지휘봉을 든 지휘자처럼 매끈하게 움직이고, 어디선가 나를 끌어당기는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