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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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아래 있는 수중 도시인 카르타고 권역을 모방해서 딥스페이스에 구현한 곳입니다. 다만······.”
카르타고 권역은 지중해, 보스포루스 해협, 지브롤터 해협을 꽉 잡고 있다는 어류형 수인 중심 권역이다.
바다 아래 있어서 우중충할 것 같다는 느낌과는 달리 굉장히 밝고 산뜻하며, 치안 좋기로도 손에 꼽히는 권역 중 하나다.
하지만 그 카르타고 권역을 모방해서 만들었다는 눈앞의 해저도시의 분위기는 우중충한 것을 넘어 갑갑함을 느끼게 했다.
오물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벽과 도로,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싸움질, 단 1초도 쉬지 않고 다른 목소리로 들려오는 욕설까지.
느그······로 시작하는 대상을 알기 힘든 찰진 패드립이 BGM으로 꽂힌다.
대림 에어리어보다 더 한 곳이 여기 있었다.
매티슨이 민망한 웃음을 보였다.
“보시다시피 이런 꼴이죠. 누군가가 코드를 뜯어고쳐서 이곳에서만큼은 무슨 짓을 해도 괜찮게 만들었거든요. 가상공간에 존재하는 익명성의 자유도시. 모두가 거칠 것 없이 행동합니다. 이곳에 질서를 세우겠다고 들어섰다가 계정이 먹통이 되어버린 세이프 가드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다이버들은 여길 언더비스라고 부르더군요. 언더 어비스Under abyss. 심연보다 아래를 보고 싶으면 이곳만 한 곳이 없다고 하면서요.”
“······가만 놔두는 겁니까.”
“저는 딥스페이스가 마냥 청결하고 깨끗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곳도 있어야죠.”
말을 마친 매티슨의 목에 가느다란 선이 생기더니 그곳이 뻐끔거리며 물방울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몸에 가득했던 털도 작은 지느러미와 비늘로 변해가고 있었다.
“제 아바타는 나름대로 알려진 편이라서 이대로 다닐 수는 없습니다.”
오랑우탄 물고기가 된 매티슨의 모습은 솔직히······기괴했다.
내게도 하라는 소리를 할까 싶어서 선수 쳤다.
“저는 아바타를 막 만들었으니 괜찮겠군요.”
“아뇨. 바깥의 모습과 연관될만한 것은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다이버들의 수가 많은 만큼 또라이들도 많거든요. 진짜 신분을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신체를 변형하면 움직임이나 간격 잡기가 힘들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매티슨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나무결이 그대로 드러나는 조잡한 가면이었다.
눈구멍과 콧구멍만 덩그러니 뚫려 있는 가면을 받아들었다.
“그거면 얼굴이랑 목소리를 감추는 데는 충분할 겁니다.”
가면을 쓰고 아-, 아- 하며 목소리를 내자 아주 새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헬륨가스를 마신 것 같았다.
“이건 좀 무게감이 없지 않나요?”
“얕잡아 보일수록 저희에게 접근하는 놈들이 많을 겁니다.”
솔직히 그 말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매티슨은······막말로 X밥처럼 보였다.
툭 건들면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있는 거 없는 거 다 내놓을 것 같이 생긴 게 지금 매티슨 아바타의 모습이었다.
새로 나온 게임 소프트를 산답시고 용산 전자상가를 서성이던 과거의 나를 보는 용팔이들이 이런 기분일까.
안 건들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그 옆에서 내가 헬륨가스 마신 목소리로 짹짹대고 있으면······.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냐는 말로 시작된 대화가 3마디 안에 사실래요, 맞을래요로 발전해도 이상하지 않다.
“접근하는 놈들 중에 사메가 있을까요? 아니, 그 전에 사메라는 걸 알아볼 수는 있는 겁니까?”
내 물음에 매티슨이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실시간으로 아바타 로그를 훑으면 됩니다.”
“그게 뭡니까.”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에 나는 후회해야 했다.
‘딥스페이스에서 이용하는 컨텐츠에 따라 아바타에 묻어나는 플로우의 재질과 구성 입자의 농도가 다르다.’, ‘다이브를 마치게 되면 즉시 정화 과정을 통해 계정과 아바타에 남은 플로우 흔적을 지운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개발자라서 어렴풋이 흔적을 추적할 수 있다.’, ‘그걸로 딥스페이스 중에서도 은밀하고 어두운 곳의 흔적이 묻어나는 놈들은 우선적으로 찾아내면 된다.’, ‘물론 아무나 하지는 못한다. 나라서 하는 거다. 이거 되게어려운 거다.’ 하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자뻑을 계속해서 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X밥처럼 생긴 오랑우탄 물고기가 옆에서 뻐끔대며 자기자랑하는 꼴을 보고 있으니 진짜 얼굴에 죽빵 한 대 꽂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대충 알겠으니까, 일단 들어갑시다.”
말을 끝내자 짜증이 확 올라왔다.
매티슨의 얼굴보다 내 목소리가 더 X밥 같이 들리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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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진짜······.”
언더비스 내부에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서 탄식을 내뱉었다.
그리고 동시에 오른 주먹을 휘둘러 허공을 때렸다.
경쾌한 타격음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곳이 꿀렁거리더니 얼굴을 부여잡은 문어가 하나 나타났다.
“어떻게······!”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반향정위]랑 [간파] 덕이지.
문어의 얼굴에서 뻗은 촉수에 지맥탐지기 같은 것이 잡혀있었다.
매티슨의 설명에 따르면 계정 탈취에 쓰이는 비허가 도구란다.
그렇게 만들어진 깡통 계정을 중화권이나 시베리아권 권역에 헐값에 넘겨서 광고 계정으로 쓴다고도 했다.
당황하는 문어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흠씬 두들겨 팼다.
이 문어가 언더비스를 돌아다니는 약 2시간 사이 내 계정을 탈취하려고 덤벼든 정확히 7번째 버러지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연예인 노출 사진(딥페이크 기술로 얼굴과 종족 변경 가능) 구매 의사를 묻는 놈이 스물둘, 불법 개조한 다이브 디바이스를 사지 않겠냐고 접근한 놈이 열셋, 암호화폐 그룹 가입 권유가 여덟, 권역 간 전쟁에서 흘러나온 스너프 필름 판매상이 넷, 다짜고짜 주먹부터 휘두르는 놈이 다섯 등등.
고작 2시간 동안 주위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며 걷는 동안 마주친 인간 군상치고는 질이 너무나 안 좋았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딥스페이스의 위엄이 느껴졌고, 그 딥스페이스에서도 갱생불가, 구제불능의 다이버들이 머문다는 언더비스라는 곳에 진절머리가 날 정도였다.
여기에 비하면 대림 에어리어는 이상향이고 무릉도원이며, 극락이고, 천국이다.
“이거, 왜 이래! 으억! 불량! 불량품을 팔았어! 그 개새끼가!”
아무리 봐도 지맥탐기지인 물건을 내 몸에 가져다 대면서 문어가 울부짖었다.
진짜여도 안 통했어. 이 쉐끼야.
놀랍게도, 지나가는 그 누구도 나의 폭력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미 일상화된 폭력.
여기가 유독 그런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꼬라지를 보면 딥스페이스를 통제해야 한다는 마고의 입장을 향해 슬금슬금 다가가고 싶어진다.
꽥꽥 울부짖던 문어가 사라졌다.
다이브를 그만두고 아예 바깥으로 도망쳐버린 것.
그러자 다른 놈이 내게 거리를 두고 접근한 다음 빠르게 중얼거렸다.
“다이버 추적 프로그램 필요하신 것 같은데, 하나 사시렵니까? 접속 권역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모조리 가짜, 엉터리라는 것을 매티슨에게 들었다.
“꺼져.”
그러자 군말 없이 사라지는 잡상인.
여기서 접근한 놈들 중에 내 관심을 끈 건 딱 하나뿐이다.
만화 ‘사냥꾼X사냥꾼’ 미발매 완결 원고를 팔겠다는 것.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따라갈 뻔했지만, 티타늄 척추와 고밀도 합금 근육 이식 수술을 받은 원작자가 만화를 그리고 있다며, 다음 달에 180권이 나올 거라는 매티슨의 말을 듣고 사기인 걸 알았다.
여기서는 나오고 있다니······.
충격적인 소식을 뒤로 하고 정신을 차렸을 때 그 사기꾼 역시 재빠르게 몸을 숨긴 뒤였다.
다시 벤치로 돌아와 앉자, 옆에서 매티슨의 아바타가 생겨났다.
여기서 판을 치는 그 많은 불법행위를 괜찮다며 넘어가던 매티슨도 아동 성착취 영상을 팔겠다는 놈을 보고서는 이건 아니라며, 영구 밴과 수사 의뢰 좀 하고 오겠다고 나갔다 온 것이었다.
“뭐 좀 건지셨습니까?”
“파괴된 제 정신을 건져 올려야 할 것 같은데요. 여기서 그놈들을 찾은 건 맞습니까?”
“네. 위장한 세이프 가드가 사메에 대한 얘기를 하는 놈들을 목격했습니다. 너무 빨리 사라져 트래킹 프로그램을 심는 데는 실패했지만요.”
“이런 식으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사메를 추적하던 팀원들도 계속해서 활동 중입니다. 급한 건 알겠지만 마음을 차분히 하죠.”
매티슨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래, 가상공간에서 범죄를 계획하는 놈들이 아무 데나 흔적을 질질 흘리고 다닐 리가 없다.
그리고 매일 자는 시간만 빼놓고 샌디 비치로 출근해서 그 더럽고 역겨운 언더비스를 뒤진 지 사흘째 되는 날, 우리는 사메의 꼬리를 잡는 데 성공했다.
아주 반가운 녀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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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비스 사흘 차, 나도 이 답 없는 진흙탕 해저도시의 일원이 되어가는 건지 다이브만 하면 절로 욕이 중얼중얼 나왔다.
“저 염병할 놈의 새끼들, 또 처 싸우네.”
잠시 쉬기 위해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자니 멀지 않은 곳에서 투닥거리며 몸싸움을 하는 놈들을 보고 있었다.
늘 새로운 얼굴들이 늘 비슷한 곳에서 싸우고 있으니 신기할 노릇이었다.
가변 NPC냐고 물어봤는데, 매티슨이 말하길 지금은 딥스페이스에서 특정 게임을 실행한 것이 아니라 딥스페이스 자체 UI라서 NPC가 하나도 없단다.
NPC도 아닌데 매일 비슷한 광경을 연출해주고 있으니 그게 더 대단하다.
이딴 걸 종일 보고 듣고 있으니 사람이 피폐해지지 않고 배기나.
나 대신 사무실에서 앨리스를 봐주고 있는 신시아와 이수련이 대체 딥스페이스에서 뭘 하길래 갔다 만 오면 사람 눈에 독기가 가득해지냐면서 걱정의 말까지 건넬 정도.
둘은 나를 돕고 싶다고도 했으나 이수련은 잘 티가 나지 않지만, 신체를 거의 로봇에 가깝게 개조를 해서, 신시아는 체내의 나노봇과 항상성 조절 장치들 때문에 힘들 것 같다는 게 매티슨의 의견이었다.
둘은 나처럼 샌디 비치에 직접 오지 않고 익명의 데이터를 내게 넘기는 방식으로 적합성 검사를 했는데, 둘 다 신체에 전자기기가 있지만 굉장히 세밀하고 개별 신체에 딱 맞는 방식으로 적용되어 있다면서 매티슨도 놀랄 정도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평범한 쪽이 아니라는 걸 알았는지 내 눈앞에서 둘의 데이터를 완전히 파괴하는 걸 보여주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최소한의 눈치는 있는 것 같았다.
그 후로 몇 시간 정도는 내게도 눈치를 좀 보는 것 같더니, 자신이 만들어낸 딥스페이스의 심연, 언더비스를 함께 뒤지면서 서로 육두문자를 남발하고 다녔더니 눈치 보는 것도 곧 사라졌다.
옆에서 매티슨의 아바타가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바로 다이브하려고 했는데, 감자튀김 배달이 와서요. 따뜻한 감튀는 못 참죠. 인정?”
“감튀는 못 참······잠깐만요. 쟤네 좀 이상한데요.”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놈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들의 숫자는 넷.
셋이서 한 명을 린치하고 있었다.
그들의 몸싸움은 이제 무기와 스킬 사용도 불사하고 있었지만 정작 서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뭔가 갈등이 있는데 그걸 밖으로 보이면 안 되는 것 같죠?”
“사설 대화 채널을 이용하고 있나 보군요. 잠시만요.”
곧 매티슨이 그들의 아바타 로그를 캐냈고, 손을 뻗어 내가 쓴 가면을 툭 건드리자 눈앞에 간략한 채팅방이 나타났다.
“저들의 대화 채널입니다. 핵심적인 개인 정보는 알 수 없을 겁니다. 그건 저도 안되는 영역이라서요.”
[A: 그만두다니? 누구 마음대로?]
[B: 멍청한 바가야로WWW]
[C: 꽤나 똥 같은 발언草草草]
[D: 나는 이런 곳인 줄 알지 못했소. 분명 친목 위주의 모임이라고 하지 않았소이까!]
D가 린치를 당하는 쪽인 것 같았다.
[A: 모든 열도 다이버 간의 친목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스스로 들어온ww]
[B: 너 같은 하층민은 ‘사메’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
[C: 나가도 좋다! 하지만 대신 네놈의 신상 정보가 온 딥스페이스에 메챠쿠챠 뿌려질지도?www]
[A: 어이! 그건 너무해! 하지만 나쁘지 않을지도草.]
[D: 딥스페이스에서 현실의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나를 속인 것도 당신들이잖소!]
[B: 에-? 속은 놈이 어리석은. 어째서 우리 탓으로 돌리는 거야!]
[C: 바깥에서도 피곤해지지 않으려면 우리 말 잘 들으라고! 우효옷! 쵸-럭키 노예 녀석 겟또다제!]
[B: 현실에서는 용병인 내가 딥스페이스에서는 사메를 위한 노예인 건에 대하여! 라이토 노베루의 주인공이냐구웃!]
그와 동시에 세 놈 중 하나의 주먹에서 날아간 파장이 린치당하던 놈의 배에 꽂혔다.
[D: 무엇!(なのだ!)]
다음 순간, 대화창을 보며 그들에게 접근하던 나는 쓰러지는 D의 어깨를 붙잡았다.
D의 얼굴은 복어와도 흡사했다.
“원래 얼굴도 못생겼는데 여기서도 그런 걸 택했냐.”
“누구······?”
현실에서는 용병, 의심 없이 하라는 대로 하는 얇은 귀, 그리고 ‘무엇’을 난다(なんだ)가 아니라 통역 디바이스도 제대로 통역하지 못하는 나노다(なのだ)로 사용하는 문어체 풍 말버릇.
본인도 알고 있지만, 예전부터 이렇게 사용해와서 교정이 매우 힘들다고 하던 녀석이면서―
대충 봐도 닌자 옷을 입고 다녀서 열도와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던 녀석이기도 하다.
“나다, 닌닌.”
자신을 부르는 호칭을 알아들은 닌닌의 표정이 밝아진다.
“오메가 도노(公)!”
“이름은 빼라. 가상공간이잖아.”
고개를 끄덕인 녀석의 다음 질문에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목소리가 왜 헬륨가스를 마신 것처럼······?”
"그 질문을 한 번만 더 하면 반으로 갈라 죽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