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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16화 (117/258)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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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했는데 그 흔한 혈관 청소용 나노봇 하나 없을 줄이야.”

현실의 성남 정도에 위치한 네오-서울 남동 에어리어, 그곳에 있는 샌디 비치 사옥에서 내 신체 스캔 결과를 보며 매티슨이 터트린 탄성이었다.

분명 비영리 조직이라고 들었는데 샌디 비치는 7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고 있었다.

임대료와 인건비를 비롯한 기타 비용은 모두 매티슨의 주머니에서 나온다고 하니 얼마나 부자인 거야.

스캔을 위해 벗어두었던 티셔츠를 입자, 설정해둔 정도로 부드럽게 사이즈가 맞춰졌다.

“다음은 뭡니까. 이제 다이브인지 뭔지를 하면 됩니까?”

어깨에서 뻗어 나온 의수로 감자칩을 한 주먹 집어서 쩝쩝대며 씹던 매티슨이 가볍게 답했다.

“아직입니다. 하이퍼 계정은 거의 완성 단계지만 양산형 다이브 디바이스는 하이퍼 계정을 통해서 전해지는 플로우를 온전히 버틸 수가 없어요. 방금의 스캔을 통해서 얻은 오메가 씨의 신체 정보를 이용해서 커스텀 디바이스를 만들어야 합니다. 사흘은 걸릴 겁니다.”

“신체 정보는······.”

내가 하려는 말을 이미 다른 이들에게 많이 들어왔던 건지 매티슨이 선수 쳤다.

“디바이스 제작 후 곧바로 파기 됩니다. 어디에도 기록이 남지 않죠. 마고 씨가 이끄는 네오-서울 사이버수사대에서 매년 감사를 나오고 있어도 걸린 적 한번 없습니다.”

“이번 일도 그쪽에 맡기면 빠르지 않았겠습니까.”

매티슨이 유인원 수인 특유의 두꺼운 윗입술을 들어 올려 잇몸을 내보이며 질색팔색을 했다.

“마고 씨는 말입니다. 분명 능력이 좋습니다. 그런데 사상이 좀······그래요. 어떻게든 자기 시야 안쪽에 둬야 안심하고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랄까요. 자유로 얻을 수 있는 다양성은 뒷전이고 문제점을 먼저 본다고나 할까요. 그의 능력과 헌신은 인정하지만, 저랑은 좀 결이 안 맞습니다.”

내게 능력 제한 법령 낙인을 찍으려 들던 마고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고에 대한 매티슨의 평은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굉장히 흡사했다.

“저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누구······설마 마고 씨를 직접 만난 겁니까? 어떻게 생겼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무슨 종족입니까? 개발자들 사이에서 사실은 마고 씨가 네오-서울의 네트워크를 헤매는 일종의 AI 정령이 아닌가 하는 게 요즘 화제입니다.”

눈이 휘둥그레진 매티슨.

흥분해서 그런지 입을 쭉 내밀고 우!우! 하는 소리까지 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어 마고의 공간으로 끌려갔으니 직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얘기하고 다닐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해결사의 덕목 중 하나가 무거운 입이니까.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딱 잘라 선을 그었음에도 아쉬웠는지 몇 번이나 더 물어보는 매티슨이었다.

하지만 팔짱을 낀 채 고개만 젓자 결국 포기했는지 다시 패드와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내가 물었다.

“생각보다 여유롭군요. 딥스페이스 사용자들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있는데도요.”

나를 흘끔 바라본 매티슨이 시선을 다시 앞쪽의 거대한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의 눈 한쪽 위에 얹어진 보조 장치의 렌즈 위에, 여러 문자열이 반사되어 비쳤다.

“사망자가 생긴 게 아니니까요.”

“적어도 아직까지는요.”

어깨를 으쓱하며 내 말에 반응하는 매티슨.

“우리가 파악한 건 사메라는 조직이 일본 열도 어딘가에 있지 않겠냐는 것 정도입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죠.”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매티슨.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입니다.”

그의 보조 의수 하나가 다시 감자칩을 집어 가는 것이 보였다.

“게다가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죠.”

다행?

이 오랑우탄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다음으로 이어지는 매티슨의 말은 순간적으로 내 사고를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피해자가 다 안드로이드니 말입니다. 상황이 여의찮게 흘러가면 폐기하면 그만입니다. 다소간의 잡음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과학기술을 통해 외형적으로는 인간의 모습을 모방하고 사고적으로는 AI를 탑재한 인공 생명체인 안드로이드를 개별적 지성체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이쪽 세계관의 정론이다.

하지만 그런 안드로이드들의 집합을 종족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종족種族은 서로 생식이 가능하고, 서로 간에 자발적으로 생식 활동을 하며, 그렇게 해서 나온 자손이 생식능력이 있는 무리를 뜻한다.

생식 가능한 2세를 생산할 수 있는 무리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유전 세포 제공을 통한 체외 수정, 인공 자궁을 통한 태아 성장이 익숙한 이곳에서는 조건들을 조금 느슨하게 적용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종족宗族이라는, 부계로 이어지는 같은 조상을 모시며 뭉친 혈연 집단이라는 정의를 가져와도 안드로이드에게 적용할 길은 요원해 보인다.

다양한 외형과 용도에 따라 차등을 둔 인공지능을 장착한 채로 세상에 나오긴 하지만 안드로이드가 나오는 곳은 기본적으로는 공장이며, 그들에게 주어지거나 줄 수 있는 유전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안드로이드는 지성체로는 인정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법과 연금술로 만들어낸 인공 생명체인 호문쿨루스나 골렘과 같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후자의 둘보다는 대체적으로 지성의 정도가 더 정교하고 발달 되어 있음이 분명함에도 말이다.

따라서 안드로이드를 정말 가족이나 친구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소모품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도 수가 적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스스로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지위가 불안정한 안드로이드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헤지르 대주교의 행보에 찬사가 쏟아지는 것이다.

기계 교단의 세를 넓히기 위한 정치적 수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긴 하지만, 그건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나는 단 한 번도 앨리스를 소모품이라 생각해본 적 없다.

앨리스가 없으면 사무실이 굴러가지를 않으니 오히려 우리 사무실의 본체라고 생각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러니 매티슨이 아무렇지 않게 뱉어내는 발언에 심기가 편치 않았다.

‘시각이 다른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그래도 클라이언트니······.’

그렇게 넘긴 채 나오려고 했다.

가능하면 빨리 준비해달라는 말과 함께.

하지만 등 뒤로 들려오는 매티슨의 태평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일렉트로닉 코마에 빠진 오메가 씨 사무실의 안드로이드. 사무용이라고 했죠? 기본 탑재 기능 중에 중요 데이터는 자동 백업하는 기능이 있으니 정 안되면 폐기하고 새 안드로이드를 알아보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백업해 둔 데이터만 이식하면?”

뒤로 돌자 밝게 웃는 매티슨이 보였다.

“짠! 사용에는 전혀 지장 없는 새 안드로이드가 생기는 겁니다. 비록 안드로이드 간의 기억 전송이나 이식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허가되지 않고 있어서 익숙했던 예전 안드로이드만 못하겠지만 새 안드로이드가 생겼으니 그 정도는 감안해야죠.”

떠나려던 마음을 접고 커다란 사무용 의자에 앉아있는 매티슨을 향해 다가갔다.

지금 나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어이가 없다는 표정?

화가 난다는 표정?

슬픈 표정?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모르겠다.

다만, 말을 하기 위해 입 주변의 근육을 움직일 때 놀랍도록 굳어 있는 느낌이 났던 걸 보면 무표정이지 않았을까.

매티슨 곁으로 가서 그가 앉아있는 의자를 돌려 스크린을 향하게 했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매티슨과 상체 높이를 맞춘 후, 손을 뻗어 책상 한쪽을 짚었다.

파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에 감자칩이 뭉개지는 감각이 전해져 올라왔다.

내 행동을 예상하지 못한 듯, 불안한 표정을 하고 큰 덩치를 움츠리는 매티슨.

눈에 보이는 스크린에서 수십, 수백 개의 문자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최대한 사무적인 말투를 꺼냈다.

“클라이언트께서 말씀하신 방법대로라면 새로운 사무용 안드로이드를 들이는 건 어렵지 않겠군요.”

분명 감정 없고 차분한 말투로 꺼낸 말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곧 으르렁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사무실에 맞는 안드로이드는 앨리스 말고 없으니까 그런 말씀은 자.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셨죠? 특히나 본인 앞에서는 더더욱요. 아시겠습니까?”

고개를 비틀어 매티슨을 바라보자 그는 눈물까지 고인 눈으로 열심히 머리통 상하운동을 진행 중이었다.

“그래요. 알아들으신 것 같네요. 그리고 아마 주위에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한 말씀만 더 드리면 앨리스처럼 안드로이드 중에도 우리 클라이언트분 팬이 있을 수 있으니까 말은 항상 조심하시고요.”

상하운동에 가속이 붙는다.

이제 허리를 펴고 물었다.

“언제까지 됩니까.”

목울대가 크게 움직인 매티슨의 간신히 벌어진 입에서 목소리가 떨려 나온다.

“마, 말씀드렸던 것처럼 사흘은 걸립니다.”

이 오랑우탄 녀석, 문맥 속에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게 영 늦다.

사회성이 여실히 부족하구만.

너드라는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어.

눈에 힘을 주고 물었다.

“언제까지 됩니까.”

드디어 의미를 캐낸 건지 매티슨의 넓적한 얼굴에서 땀이 송글송글 솟았다.

“조금 재촉하면 이, 이틀······.”

“개발자들은 크런치 모드(Crunch mode:비상근무 체제, 조이기 모드. 개발자들이 좋아죽는 단어)라는 게 있다면서요?”

이 와중에도 슬금슬금 감자칩 봉지로 향하는 의수의 손목을 낚아챘다.

“이 손도 과자 집어 먹는 데만 쓰지 말고 일에 좀 쓰시고 하면 더 빨리 되지 않겠습니까?”

“어······.”

사람 좋은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다.

“그렇죠?”

분명 넉넉한 웃음이었을 텐데, 내 웃음을 본 매티슨은 불안을 넘어 공포에 잠식된 표정을 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연락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매티슨의 어깨를 두드리고 나간 내게 샌디 비치의 연락이 온 것은 하루하고 반나절이 지난 뒤였다.

여전히 편안한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있는 앨리스와 그런 앨리스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신시아, 이수련에게 말했다.

“갔다 올게요.”

#

샌디 비치의 사옥 7층, 소수의 개발자와 연구원만이 들어 올 수 있다는 곳에서 나는 몸 곳곳에 패치를 붙인 채로 앉아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헤드셋을 낀 매티슨이 보였다.

새로운 티셔츠를 받으러 예공방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괜히 티셔츠 목 쪽을 한 번 잡아당겨 봤다.

얘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유리 너머로 낯선 사람들이 바라보는 장면이란.

매티슨의 목소리가 방에 울려 퍼졌다.

“퓨어가 딥스페이스에 다이브 했을 때 어떤 피드백이 돌아올지에 대한 데이터가 저희 쪽에도 없기 때문에, 일단 모든 감각을 최하로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내부에서도 제가 서포트 할 테니 놀라거나 당황하더라도 제 지시를 따라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옆에 놓인 안경을 착용하시죠.”

얼핏 보면 이수련이 종종 얼굴을 가릴 때 사용하는 바이저 같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렌즈가 조금 작은 형태의 안경이었다.

밖에 쓰고 나가도 렌즈가 조금 특이한 선글라스로 알 것 같은 디자인.

의자 아래쪽에서 발판이 나오고 비스듬히 기울어졌다.

뒤쪽 쿠션에 머리를 대고 안경을 썼다.

“눈 감으시고요.”

매티슨의 말처럼 눈을 감았다.

“눈을 뜨면, 초기 설정 공간일 겁니다. 첫 다이브 때는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곳은 개개인의 기억과 경험, 상상에 의존하는 공간이니 저희도 엿보거나 할 수 없습니다. 제가 권한을 이용해 목소리를 전해드리는 게 전부죠. 초기 설정이 끝나면 곧 저와 만나실 수 있으실 겁니다. 준비되셨습니까?”

다시, 끄덕.

“좋습니다. 다이브.”

렌즈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뜨니, 서울이었다.

거리에는 인간만이 거닐고, 탈 것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지 않고 도로로 얌전히 달리는 곳.

나는 지금 네오-서울 강남 에어리어가 아니라 서울특별시 강남구 강남대로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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