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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14화 (115/258)

114.

114.

예공방 대림 생산기지의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고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길, 그래도 자문 역으로 몇 번 와봤다고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목례를 했다.

다만 어쩐지 오늘은 조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다.

뭔가를 의심하고 있은 것 같은 낌새.

생산기지에서도 가장 내부에 위치한 개발실로 나를 데려가는 드워프도 계속해서 나를 흘끔흘끔 바라봤다.

“오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다들 왜 저렇게 저를 흘끔거리죠?”

잠깐 몸을 움찔하더니 ‘아닌가?’ 하는 말과 함께 고개를 갸우뚱하는 드워프였다.

그리고 내게 말을 꺼냈다.

“혹시 얼마 전에 화제였던 WSS 연안 부두 영상 보셨습니까?”

뜨끔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에는 성공했다.

“아뇨.”

“당장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여기는 내부 통신망만 작동하는 구역이라 보여드릴 수는 없겠군요. 여튼, 거기에서······그······.”

한참이나 말을 고르는 드워프.

“······망측한 단어가 크게 들리는데 연구원 동료 중 하나가 그 목소리가 오메가 씨의 목소리와 비슷하지 않냐고 해서요.”

이 정도면 얼굴 찍힌 영상이 없는 걸 천만다행, 천우신조로 알아야 한다.

만약 그랬다면 진지하게 성형 수술을 알아봤을 거다.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히 목소리를 깔며 말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역시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메가 씨처럼 점잖은 분이 그······런 단어를 크게 외치고 다닐 리가 없죠. 정다운 연구원 아시죠?”

“정다운 연구원?”

“쌍두 오우거요.”

“아, 알겠네요.”

머리가 두 개라서 물리적 듀얼코어를 돌리는 연구원이다.

정다운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두 개의 머리통이 거의 늘상 싸우고 있던데, 그 연구원은 왜?

“좌다운이랑 우다운 사이 의견이 하나로 통일되는 일이 거의 없는데 그 건에 대해서는 두 머리가 한 의견으로 강력하게 주장하더라고요. 그런 거 처음 봤어요. 밥 먹을 때도 국을 먼저 떠먹어야 하네, 밥부터 입에 넣어야 하네 하면서 싸우는 좌다운이랑 우다운인데······.”

감이 좋은 꼬맹이, 아니 쌍두 오우거는 싫다.

마음 같아서는 쓱싹 해버리고 싶지만, 누구를 탓하겠나.

남들 다 들리게 섹스를 외쳐댄 나를 원망해야지.

몇 번의 엄중한 보안 절차를 통과하면서 주위를 지나는 사람이 적어지자 드워프 연구원이 비로소 보호구에 대해 얘기를 했다.

밖에서는 한 마디도 뻥긋하지 않는 걸 보면 실력 좋은 극소수의 믿을만한 연구원으로 팀을 꾸렸다는 하르파고스 상무의 얘기가 입에 발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원료를 제공하신 분이 오메가 씨라고 들었습니다. 굉장하더군요. 연구원 생활 20년이 넘었는데 그런 건 처음 봤습니다. 예민하고 섬세하긴 하지만 그런 소재라면 응당 그래야죠. 상무님께서 말씀하시길 더 이상 구하기는 힘들 거라고 하던데, 너무 아쉽습니다.”

보호구를 구성하는 섬유가 마도공학 유물을 제련해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 하뮬 교수, 테오릭 경, 하르파고스 상무까지 넷뿐이다.

내가 우연히 입수한 원료를 페룬 마탑에서 받아 공정을 거쳐 나온 재료라는 것이 다른 연구원들이 섬유에 관해 알고 있는 전부다.

마도공학 유물을 둘러싼 위험으로부터 연구원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다.

그런 이유로 오늘 시제품 공개에 테오릭 경은 참여하지만 하뮬 교수는 오지 않는다.

비록 알짜 기능은 내가 빼먹긴 했지만, 유적지에서 가지고 나온 반지로 인해 학계를 넘어 미디어에까지 얼굴을 비추고 있는 하뮬 교수가 이곳에 오는 것만으로 마도공학과 관련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까.

“상무님도 노력 많이 하셨습니다. 예산도 부족하지 않게 끌어다 주셨죠.”

“그러면 팀의 존재를 들키는 거 아닙니까?”

드워프 연구원이 씨익 웃었다.

“상무님이 그걸 감출 역량은 되시죠. 그리고 이사회에서 몇 년 내에 지금의 사장을 쳐낼 거라는 말이 돕니다. 사실 감사 이후로 지금도 바지사장이나 다름없죠. 방산기업인 예공방 분위기상 외부인사 수혈은 극히 드문 일이니까 사장 자리가 비면 내부 인사가 올라갈 겁니다. 애초에 저 몇 년도 우리 상무님이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기간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상무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사장을 가시권에 두고 있단다.

술자리에서 젓가락 여섯 개 뽑아 들고 아수라 육도류 어쩌고 하길래 ‘이 남자······다른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궁금하다!’ 싶었는데 그 실력을 다른 곳에서 십분 발휘하고 다니나 보다.

물론 술자리 말고 다른 영역에서도 능력이 있기에 저런 소리가 나오는 거겠지.

“이번 일도 거의 저희와 함께 여기서 먹고 자고 하면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상무님은 연구원 출신도 아니잖아요. 괜히 방해만 하신 거 아닙니까?”

“전혀 아닙니다. 상무님은 대신 현장 경험이 풍부하시지 않습니까. 실제 사용 피드백을 정말 세세하게 주시더군요. 저도 놀랐습니다.”

지금은 검에 미친놈이 되어 있지만 하르파고스 상무가 한창 용병으로 활동할 때는 플라즈마를 뿜어대는 거대한 멜팅 건을 두 손에 하나씩, 세 개를 들고 전장을 녹여댔다고 하니 은퇴한 지 조금 되긴 했지만, 그의 피드백이 녹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 연구원도 공을 다 상사에게로 돌리는 걸 보니 보통 사회생활 능력이 아니다.

편견일 수 있겠지만 여기서 만난 연구원들은 대부분 자기가 빠져 있는 분야가 아니면 외골수라고 해도 좋을 정도가 많던데 이 드워프는 나중에 뭐가 되도 크게 될 인물 같았다.

드워프가 목에 걸고 있는 사원증을 슬쩍 훑었다.

<크레이그>

마침 마지막 문이 열리고, 저기 안쪽에 하르파고스 상무와 테오릭 경이 보였다.

“저기들 계시네요. 안내해줘서 고마워요, 크레이그.”

크레이그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이름을 어떻게······?”

슬쩍 웃으면서 손가락을 사원증을 가리키고 두 분이 기다리는 곳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훨씬 특징 있는 쌍두 오우거의 이름은 기억 못 했으면서 자기 이름은 기억했으니까 더 감동하겠지?

나도 이 정도 사회생활은 할 줄 안다고.

#

얼굴 셋 모두 뺨이 홀쭉해진 하르파고스가 튼튼해 보이는 박스의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위쪽을 열어 올렸다.

안에 있는 물건을 본 테오릭 경이 신음과 가까운 어조로 말을 흘렸다.

“이건······.”

하르파고스 상무가 조심스럽게 손으로 물건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테오릭 경의 말이 그것을 정확히 묘사했다.

“검은색 티셔츠 아닌가. 보기엔 평범한데.”

하르파고스의 얼굴 중 테오릭 경 쪽으로 향해 있는 하나가 눈을 흘겼다.

“티셔츠이긴 합니다만 저희 예공방의 최첨단 기술이 잔뜩 들어간 티셔츠입니다. 물론 그 섬유가 아니었다면 실현 불가능한 기술들도 몇 있지만요.”

“그런가?”

금세 흥미를 보이는 테오릭 경.

그 반응에 하르파고스 상무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보시는 편이 빠를 겁니다. 일단 기본적인 방어 능력부터 시작하시죠.”

상체만 있는 마네킹에 티셔츠를 입히자, 티셔츠가 알아서 수축하며 사이즈를 조정했다.

“오토 사이징 기능입니다. 정도는 설정할 수 있습니다. 방오, 방습, 탈취는 어떤 기능성 의복보다 낫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연구원들이 마네킹을 한쪽 벽이 유리로 되어 있어 내부의 상황을 볼 수 있는 방 안에 가져다 놓았다.

곧이어 방 안은 개판은 됐다.

검을 든 로봇 팔이 티셔츠를 난자하고, 블래스터 기관총 탄환이 쏟아져도 티셔츠는 실밥 하나 풀리지 않았다.

다만 과도한 압력이 앞뒤로 가해질 경우, 뼈가 부러질 수는 있다는 하르파고스 상무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제품은 저거 하나가 전부인 건가요?”

“예. 혹시 테스트 과정에서 손상될 내구성을 걱정하시는 거라면 그 걱정은 접어두셔도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테스트 전과 후의 데이터를 비교했을 때 변화된 수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여분이라도 있으면 야스민 공 챙겨드리려 했는데 그건 힘들 것 같다.

테스트가 끝나고 말했다.

“확실히 굉장하긴 하네요.”

하르파고스 상무가 의미심장하게 답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보호구의 진짜 가치는 이제부터입니다. 저희도 구상만 하고 있던 기술인데 섬유 덕에 구현이 가능해졌습니다. 보여드리려면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한데 잠시 도와주시겠습니까?”

그 말에 나와 테오릭 경은 하르파고스 상무의 뒤를 졸졸 따라 조금 넓은 공간으로 향했다.

크레이그가 마네킹에게서 벗겨낸 티셔츠를 잘 접어서 가져왔다.

“한 번 입어보시죠.”

그 말에 윗옷을 훌훌 벗고 티셔츠를 입었다.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딱 맞는 온도를 맞춰주었다.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가볍게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티셔츠의 표면에 잔잔하게 파동이 생겼다.

“오! 뭐죠?”

“탐색 중인 겁니다.”

“탐색요?”

“예, 칼자루를 쥐고 한 번 전개해보시겠습니까?”

칼자루를 뽑아 완전히 전개하자 오른손 팔뚝에 닿아 있던 티셔츠의 반팔 소매가 내 피부를 타고 주욱 늘어지며 손등, 손가락을 넘어 검까지 이어졌다.

이질감은 전혀 없었다.

“사용 중인 무기를 탐색해서 무기를 사용 중일 때 노출되거나 신경 쓰기 어려운 부분을 보호하는 겁니다.”

“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죠.”

그리고 하르파고스 상무는 테오릭 경에게 티셔츠가 보호하고 있는 부분을 향해 약한 강철계 마법을 사용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어렵지 않지.”

수인을 맺은 테오릭 경이 발을 한번 구르자 바닥이 출렁이더니 내 바로 앞에서 바닥이 변형되며 금속의 창이 솟아올랐다.

배를 가볍게 친 창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티셔츠가 파동을 일으키며 방금의 충돌로 만들어졌던 충격파를 검 쪽으로 옮기는 모습이 생생했다.

다 해서 열 명이 되지 않는 연구원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 상태에서 무기를 사용하시면······.”

사람이 없는 방향에 세워진 마네킹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파동이 검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콰드드득-

광자 검날이 베고 지나가기 무섭게 날카로운 금속 질감이 베어낸 곳을 한 번 더 헤집었다.

바라보던 모두의 눈이 커졌다.

심지어 나까지도.

“이건 방금 맞았던 마법과 비슷한데······!”

하르파고스 상무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얼굴에 띄워냈다.

“충격을 흡수했다가 방출하는 보호구는 많았지만, 사용자의 무기를 통해 성질 자체를 방출하는 보호구는 현재로서 이 티셔츠 하나가 유일할 겁니다. 비록 저장량이 많지 않고 방출 타이밍을 기껏해야 5초 정도 조절하는 게 한계라면 한계지만요.”

그런 약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보호구는 미쳤다.

비록 아직은 화염계와 빙결계가 전부지만 스킬 계통을 융합할 수 있게 하는 [파천황]이 있다.

티셔츠로 흡수한 성질을 융합하면······?

상상만 했는데도 히죽거리는 웃음이 새어 나올 지경이다.

#

“오셨어요.”

사무실에 복귀하자마자 짠! 하고 티셔츠 자랑을 하려고 했는데 앨리스는 또 딥스페이스 안경을 쓰고 흑인 홍길동에 빠져 있었다.

“너 종일 그것만 붙잡고 있으면 중고로 팔아버릴 거야.”

안경을 내려놓은 앨리스가 쪼르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사장님도 이거 보시면 그런 말씀 못 한다니까요. 조선을 떠나 닿은 곳이 아메리카 대륙인 게 밝혀질 때의 그 충격이란! 거기서 원주민 부족들과 협력해서 율도국을 세웠을 때 저 못 참고 울어버렸잖아요.”

각색 정도가 아닌데.

황당함에 말을 잃은 내가 흥미를 보인다고 생각한 건지 앨리스가 열심히 내용을 설명했다.

“로키산맥과 오대호를 넘어 대서양이 보일 때 영상미도 미쳤어요. 거기서 시즌 끝났는데 다음 시즌도 이미 제작 중이래요. 대서양을 넘어서 유럽으로 간 다음 백인들을 밀밭 노예로 쓴다던데 서사 미쳤죠?”

“그거 북아메리카나 유럽에 있는 도시 권역들이 항의 안 한대?”

“논란은 좀 있는데 인기작들은 원래 그런 거죠. 숙명 아닐까요.”

그제야 아예 입고 온 새로운 티셔츠를 발견한 앨리스가 디자인도 깔끔하니 괜찮다고 칭찬을 했다.

그리고 다시 안경 얘기다.

“가상공간으로 다이브 하는 거라 홍길동 팬들끼리 정모 하듯 모일 수도 있고 같이 게임도 할 수 있어요.”

“게임은 조심해라.”

“왜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앨리스에게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하여튼 조심해. 댓글도 조심하고.”

게임하다 어디론가 끌려갈 수 있다고 말하기는 좀 그랬다.

그때, 앨리스 자리에 있는 패드에서 통신 알림이 울렸다.

“오! 의뢰다!”

패드를 확인한 앨리스의 목소리가 내 책상 한쪽에서 들렸다.

“헤지르 대주교님이 소개하신 분인가 봐요. 그쪽 라인이라고 뜨네요.”

자기 자리로 가서 한참이나 상담을 이어가던 앨리스가 통신을 종료하고 내 자리로 다가와서 딥스페이스 안경을 내밀었다.

“이거랑 관련한 의뢰 같아요. 사무실로 오시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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