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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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해서 시행 중인 금욕이지만 그게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송도국제지구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연안 부두의 창고에서 색승의 목소리가 울렸다.
“혹시 다이어트 중인 사람의 곁에 있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들숨에 성질을 벌컥 내고 날숨에 성질부린 걸 사과합니다. 보고 있자면 정신병자가 따로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만큼 욕구의 결핍이 무섭다는 말입니다. 가장 근원적이면서 강한 욕구가 무엇입니까. 식욕, 성욕, 수면욕 아닙니까? 식욕도 그러할진대 제게 성욕은 식욕 그 이상입니다. 현재 소승은 성욕 다이어트 중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말이죠. 술로 그걸 억누르고 있던 차에 갑자기 들이닥쳐 주먹부터 휘두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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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색승이 색공을 익힌 이후로 이렇게 장기간 몸의 대화를 멈춘 적이 없었다.
젠에게 패해 도주할 때도 멈추지 않았던 그 짓을 오로지 오메가에게 쏟아붓겠다고 참고 있는 색승은 지금 극도의 욕구불만 상태였던 것.
술로만 억누르고 있다는 말도 100% 사실은 아니었다.
허리 아래의 물건을 사용하지만 않았을 뿐, 며칠간 암흑가에서 머물면서 밤마다 난다긴다하는 화류계 종사자들을 옆에 끼고 논 색승이다.
그리고 손만을 사용해서 암흑가의 화류계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에게 홍콩 권역 행을 선사했다.
남녀 관계없이, 심지어는 무성욕자까지도.
진하게 현타를 맞은 화류계의 꽃들이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상황이 여러 업소에서 벌어지는 진풍경을 빚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모두 그들의 사정일 뿐, 정작 당사자인 색승의 허기는 깊어져만 가고 있었다.
오로지 오메가의 등짝을 보겠다는 일념으로 고통의 동굴을 통과하고 있었던 차에 진오가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리벨리온은 트라이포드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겠다고 선언하니 색승의 인내심 심지가 다 타버렸다.
모아둔 것은 오메가를 위한 것이니 범하지는 않겠지만, 복날 개 패듯 다뤄서 자신의 무서움을 알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색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전에 진오와 샴록을 제압하고 성별을 뒤바꿀 때 간만에 몸을 격하게 움직여서 그런지 아주 일시적이고 미세하게나마 성욕이 잠잠했던 것도 같은 경험도 일조했다.
‘며칠 더 있었으면 알아서 원래대로 돌아갔을 텐데, 아예 평생 여성으로 살게 해주겠습니다.’라는 나지막한 읊조림과 함께 시작된 둘의 전투.
전해진 소식에 샴록이 만사 제치고 달려왔을 때 보이는 것은 반파된 건물 몇 개, 운집한 채로 웅성거리는 수백에서 수천의 사람들, 건물 잔해 위에 선명히 새겨진 거대한 주먹 자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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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으으으······.”
창고 안쪽에 널브러진 진오의 신음소리.
신분이 노출될 수도 있음에도 가면을 벗어던졌다.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면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계룡 권역에서 오메가를 통해 목격했던 ‘순수한 거신족’.
부스트 건틀렛과 손목을 붙일 때 시술한 ‘말단 비대 조절 나노봇’을 통해 그때의 거대했던 주먹에 뒤지지 않을 주먹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진오였다.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파괴력은 굉장했다.
문제가 있다면 상대였던 색승이 진오의 주먹이 만들어내는 파괴력 이상이었다는 것.
주력이라 할 수 있는 색공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기이할 정도로 유연한 몸의 움직임만으로 진오를 피떡으로 만든 색승은 억지로 가면을 씌워 진오의 몸을 작게 만든 뒤 이곳, 연안 부두의 폐창고로 데려왔다.
그리고 몇 번의 점혈과 근육 터치만으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만들고는 진오의 몸을 마음껏 능욕하는 중이었다.
“그······그만······.”
신체의 오른쪽은 원래의 모습인 남성, 왼쪽은 여성의 모습을 한 진오의 입에서 중성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으나 간만에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색승이 멈출 리가 없었다.
“다른 종족들에 비해 혈도의 위치가 조금 다르군요. 대신 기혈은 아주 튼튼하고요. 근육 섬유의 장력도 놀라울 정도입니다. 웬만한 케이블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겠어요. 거신족은 거신족이군요. 과거에는 세상의 주인이었다는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었어요.”
간신히 고개를 위로 들어 시선을 아래쪽으로 향한 진오의 눈에 얼굴 가득 음란함을 담은 색승이 모습이 보였다.
“그런 거신족이 내지르는 교성은 어떨지 아주 기대가 큽니다.”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키려 애쓰는 진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마치 다른 존재가 몸을 누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가면을 쓴 진오의 머리맡으로 다가온 색승이 손을 뻗었다.
남성적인 부분이 사라지는 진오의 신체.
순식간에 완전 여체화된 진오의 머리에 닿은 색승의 손에서 핑크색 내력이 꾸물꾸물 흘러 진오에게로 향했다.
동시에 그의 등껍질 일부에서 작은 액체들이 분사됐다.
호르몬을 극도로 응집시켜 정제한 일종의 향수.
위기감을 느낀 진오가 그것을 들이마시지 않기 위해 숨을 참았으나 색승의 거친 손짓이 뺨에 날아들자 자신도 모르게 호흡을 터트리고 말았다.
“흐읍!”
재빨리 다시 숨을 참았으나 그 잠깐 사이 진오의 호흡기를 통해 흡수된 호르몬 향수가 코 안쪽의 점막을 통과해 그의 뇌로, 척수로, 모세혈관으로, 신체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뜨거워지는 진오의 몸.
그였지만 지금은 그녀라 불러야 할 것 같은 진오의 입에서 달큰한 숨이 터져 나왔다.
그걸 본 색승의 눈이 음란하게 휘었다.
“성감을 극도로 증대시키는 기공입니다. 밀교 본산에서 이 기공을 수련할 때, 스승님들조차 위험하니 함부로 내보이지 말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던 기억이 나는군요.”
색승의 등껍질이 닫히고, 향수 분사가 멈췄다.
계속해서 진오를 향하던 색승의 핑크빛 내공도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거북 무서운 줄 모르고 주먹부터 꺼내는 거신족에게는 내보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호르몬 체계 교란 장치를 업데이트한 이후에 최초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니 영광스러워해도 좋습니다. 소승이 독자 개발한 이 기술의 이름은······.”
색승이 검지 손가락을 펴서 가면 아래로 보이는 진오의 턱선을 쓸었다.
“흐으으윽!”
억누르려 했지만 결국 터져 나오는 진오의 신음 너머, 즐거움을 감추지 못하는 색승의 목소리가 창고에 퍼졌다.
“‘감도 50배’. 300배까지 준비되어 있으니 천천히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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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버 바이크를 타고 네오-서울과 WSS의 접경 지역 아래로 뻗은 권역 간 고속도로를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 멀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른 고층 건물 숲이 보였다.
송도국제지구다.
곧 암흑가에 진입할 거라는 얘기이기도 했다.
“목적지 좀 띄워줘.”
윈드스크린을 겸하는 바이크의 스크린에 송도국제지구와 강화산업지구 중간 즈음에 있는 연안 부두의 위치가 떴다.
평소 같으면 여긴 뭐가 있네, 저런 게 위험하네 했을 앨리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까마귀에 이어 붕어까지, 자기 말 안 들었다고 삐져 있는 게 분명하다.
“긴급한 사안이었다니까 그러네.”
-늬예늬예. 저랑은 한마디 상의도 없이 가실 만큼 급하셨겠지요.
“이럴 거야?”
-사무용 안드로이드인 제가 사장님을 무슨 수로 막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가고 싶은 데로 가셔야 직성이 풀리시는데.
“긴급한 사안이라고 했잖아.”
-바로 이틀 전에 쏘아붙이고 온 사람들을 구하러 갈 만큼 긴급하시죠. 늬예늬예 제가 그 깊은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마음대로 하소서 즈어어언하아아아.
사극 말투로 날 비꼬는 앨리스였다.
-서울 메이트라 하신 것은 사장님이시옵니다. 이리도 쉬이 무너질 약속이라면! 어이하여 그런 말씀을 하셨나이까. 서울 메이트를 서울 메이트라 부르지 못하고, 사장님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못하니, 우리의 약속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딥스페이스 안경이란 게 있어서 그걸 쓰고 영상을 보면 사극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다, 영상 감상뿐만 아니라 게임이나 가상공간 모임도 할 수 있다, 어쩌구저쩌구 노래를 부르길래 그 안경을 사줬더니 이 사달이 난 것 같다.
앨리스가 맨날 그거 쓰고 패드를 틀어놓고서 본다는 게 홍길동 퓨전 사극이었다.
건카타 액션을 선보이는 흑인 홍길동이라 나도 한 번쯤은 보고 싶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앨리스가 단단히 삐졌다는 게 중요했다.
귀걸이를 조작해 앨리스에게 뭔가를 보냈다.
당일 가까울 즈음에 서프라이즈로 준비한 건데 아무래도 이 정도는 되어야 삐진 게 풀릴 듯싶었다.
반응이 즉각 돌아왔다.
-청람 예약 영수증이네요? 안드로이드 전용 코스?!!!
“가보니까 좋더라고. 나만 먹긴 미안하잖아. 하뮬 교수 통해서 제일 가까운 날짜로 잡아달라고 했어. 그런데 뭐······서울 메이트가 아니라고 하면······취소······.”
-누가 아니래요! 누가! 어느 누가!
<앨리스의 충성심이 상승했습니다>라는 시스템 사운드가 들리는 것 같다.
그 사이, 바이크는 계속 달려 연안 부두에 들어섰다.
짭조름하고도 묵직한 바닷내음이 얼굴로 들이쳤다.
부두 곳곳에 있는 웅덩이에 고인 물들 위로 바이크가 지나갈 때마다 수면이 부르르 떨었다.
허름한 자재 창고 주위로 샴록의 소환수들이 보였다.
바이크를 멈추자 얼굴에 근심 걱정이 가득한 샴록이 다가왔다.
“와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나는 원래 대가 없으면 일 안 해. 이 건은 후불이니까 생각 잘해.”
몇 초 뒤에 다시 샴록에게 물었다.
“아직도 내 도움이 필요해?”
고개를 끄덕이는 샴록.
이틀 전에는 완전히 우락부락한 보디빌더 같았는데, 지금 모습은 선이 고운 남자 같은 모습이었다.
“저 창고 안에 진오와 색승이 있어요. 함부로 진입했다가 어떤 일을 당할지 몰라서······.”
“안에 들어가야 알 수 있다는 소리네. 슈뢰딩거의 연안 부두 창고인가?”
“예?”
샴록의 되물음은 무시하고 앨리스에게 말했다.
“럼버잭 모드.”
예약 영수증 덕분인지 앨리스가 우렁차게 답했다.
-라져 댓!
곧바로 바이크의 차체 옆에서 여러 대의 체인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대로 돌격.
체인톱이 그리 얇지 않은 창고의 철판 문을 종잇장 자르듯 찢어발기기 무섭게 안쪽으로 들어섰다.
먼지 가득 앉은 조명 때문에 낮인데도 불구하고 어둑어둑한 창고 내부, 바닥에 누워있는 여성화된 진오와 그의 머리맡에 있는 색승이 보였다.
“후우우-.”
색승이 진오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었다.
“아흐으응!”
진오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생각지도 못한 장면에 잠시 얼어 있던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비속어가 나와버렸다.
“존나 더럽네.”
-네? 뭐가요?
사무실이 영세 규모 사업장으로 분류돼서 내 통신 디바이스에 시야 공유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것은 불법이다.
악용될 여지가 많아서 중견 기업 이상에게만 엄격한 심사를 거쳐 허용 여부가 가려진다고 한다.
앨리스는 그 법령 덕에 이 끔찍한 광경을 목격하지 않아도 됐다.
더럽혀진 것은 나의 눈과 그 기억이 저장될 뇌로 족하다.
한편, 문을 부수고 들어온 덕에 눈을 가늘게 뜨고 이쪽을 보던 색승이 나를 알아봤다.
“오메가 시주!”
진오를 뒤에 내버려 두고 앞으로 달려 나온 놈의 세 번째 다리가 바지 위로도 보일 정도로 흉악한 윤곽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진짜 있네.”
분명 잘랐을 텐데.
색승이 나를 보고 기꺼운 목소리를 크게 냈다.
“찾아와주다니! 참으로 기쁜 날입니다! 오메가 시주 다음엔 진오 시주를! 그다음에는 다시 오메가 시주를 범하겠습니다!”
바이크에서 내려 칼자루를 뽑아 검을 완전히 전개했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자재 창고 안, 뻗어 나온 광자 검날이 사납게 웅웅거렸다.
“오늘은 안 놓친다.”
“소승도 오메가 시주를 놓치지 않을 겁니다! 얼마나 참아왔는지 아십니까!”
더 이상 저 새끼와 말을 나누는 건 내 머리와 감정만 더럽히는 일이 분명하다.
저번에 놈의 물건을 자를 때 사용 했던 것이 [농작물 수확 - 고추]였던가.
오늘은 [타작]과 [빻기]까지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결판을 내고야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