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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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
이명이 귀를 가득 메웠다.
밖에서 밀려 들어온 게 아니라, 머리 안쪽에서 고막을 때리고 있나 하는 착각을 할 만큼 이명의 강도가 거셌다.
올라가지 않는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온통 어두웠다.
하뮬을 비롯한 조사대원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내 곁에 모여 뭐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지만, 이명 때문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에어 글러브]를 사용해서 빛을 내뿜기 시작한 폭탄을 집어 들고 입구를 향해 던졌다.’
던져진 폭탄 안쪽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졌다.
‘[히미르], [흐림수르사르], [표르긴]을 연속으로 사용했었나.’
기억이 확실치 않다.
폭탄의 폭발력이 상상 이상일 경우, 빙결계 마법으로 만들어낸 얼음들이 깨지며 뒤쪽으로 파편을 뿌릴 가능성이 있었지만 일단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히미르]로 폭탄이 얼음 속에 감겨들 즈음, 폭발이 이루어졌고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흐림수르사르]로 빙벽을 더 치려고 했으나 시간이 부족했다.
공기 중에 냉기가 응결되어 꽈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빙벽이 퍼져나갈 때부터는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
‘[표르긴]까지는 사용하지 못했나 보군.’
여전히 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아 마치 마임을 하는 것처럼 입만 벌렸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는 하뮬 교수를 밀쳐내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손이 허전했다.
[암적응]
폭발의 충격으로 놓친 검이 덩그러니 저 멀리 놓여있었다.
광자 검날은 사라지고 얇은 칼등만이 덩그러니 올라 있는 모습이 서글펐다.
뻣뻣하게 움직이는 손을 들어 검을 향해 움찔거리니 조사대원 하나가 내 검을 발견하고 가져다주었다.
더듬거리는 손으로 칼자루를 돌렸으나 광자 검날은 뻗어 나오지 않았다.
배터리 때문인가 싶어 배터리를 넣어두었던 외투 부분을 더듬거렸지만, 손가락은 허무하게 주머니를 통과해버렸다.
폭탄 파편과 얼음 파편이 찢어버린 건가.
“되는 일이 없으려니까.”
분명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근육의 움직임이 둔한 게 느껴졌고 이명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내가 정확히 말했는지 확실하지 않았다.
아마 주위에 모인 다른 사람들에게는 ‘애은 이이 어으려이까.’ 정도로 들리지 않았을까.
내가 말을 한 직후 자기들끼리 당황스러운 시선을 교차하는 걸 보면 틀림없다.
칼자루를 여러 번 틀자 광자 검날은 나오지 않았지만, 칼등을 역전개하는 데는 성공했다.
항상 결속해놓는 허리춤에 꽂자 그래도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자연 회복]과 [급속 회복]이 몸 상태를 빠르게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이명이 빠르게 잦아들었다.
아래위로 쥐어짜는 것 같았던 근육의 고통도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여보니 뼈가 부러지거나 내부 장기가 손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마침내 주위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내 말에 하뮬 교수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이에요! 폭탄을 맨몸으로 막아서 그대로 죽은 줄 알았습니다!”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봤던 지구라트와 넓이는 거의 같았지만 디테일이 많이 달랐다.
정교하고 세밀하게 만들어진 지구라트가 아니라, 어디 석굴이나 움집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무거운 습기가 얼굴로 훅 밀려들었다.
진정하라는 의미로 하뮬의 어깨에 손을 얹고 물었다.
“진정하세요. 여긴 어딥니까.”
“환경이 원래대로 돌아간 겁니다. 폭발의 여파 때문에 유물의 위험반경 안으로 날아간 사람이 있었던 것 때문에요.”
“유물을 확보했습니까?”
“여기 안쪽 어딘가로 날아간 것 같아요. 계속 찾고 있지만, 장비들도 다 망가져 버려서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어디론가 튕겨 나간 걸 본 사람이 있다고 하니까 분명 여기 어디 있을 겁니다.”
알겠다고 말 한 뒤 바깥의 상황을 보기 위해 일어서려는 찰나, 휘청이며 중심을 잃는 바람에 한 손으로 땅을 짚어야 했다.
“오메가 씨!”
“괜찮습니다. 조금 어지러운 것뿐이에요. 곧 멀쩡하게 돌아올 겁니다.”
바닥에 닿은 손에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조심히 쥐고 살펴봤다.
아이템, <연산 보조 장치>였다.
튕기다 내가 쓰러져 있던 곳 아래로 굴러들어온 모양.
하뮬에게 전해주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아래쪽의 상황을 알아야 했다.
반지 형태의 연산 보조 장치를 남들이 보지 못하게 잠시 한쪽 손에 쥔 채로 귀걸이를 만졌다.
다행히도 귀걸이의 작동에는 이상이 없었다.
-하뮬 교수! 위에 무슨 일이야!
-폭탄이 들어간 건가?
-대장님! 응답 바랍니다!
-일단 저 휠체어부터 어떻게 해! 내 개들이 움직이지 않아! 기계에도 통하는 저주가 있다고는 들어본 적 없어!
-눈깔의 왼팔이 저주에 닿았다!
-나는 눈깔이 아니야! 아지만이다! 그리고 빨리 내 팔 잘라! 몸까지 타고 올라오기 전에!
-갑자기 왜 껌껌해진 건데? 땅은 왜 이렇고 공룡은 다 어디 갔어!
“나다. 펠루다. 아래쪽 상황 보고해.”
혼돈의 카오스였던 호위대원 통신 채널에 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목소리와는 다르게 속은 분노로 끓고 있었다.
호위대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펠루다의 보고를 정리했다.
“눈깔과 송곳니, 적토마가 전투 불능 상태. 바리케이드도 위험한 상황. 적의 총원은 서른에서 서른 다섯 정도로 예상. 맞나?”
-그렇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계단이었던 곳은 산비탈이 되어 있었고, 광원이 사라져 어둑어둑한 천지에 블래스터, 호버 보드, 각자의 무장이 번쩍이는 것으로 사위를 구분할 수 있었다.
녹스 카트와 짐으로 만든 바리케이드는 이미 몇 개는 불에 타고 반파되어 있었다.
“전원 석굴 입구까지 후퇴한다. 거동이 힘든 녀석을 챙겨라.”
호위대원들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그때까지 손에서 굴리고 있던 반지를 들어서 오른손 검지에 끼웠다.
감각이 트였다.
처음에는 안쪽이었다.
몸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하나 자연스럽게 이해됐다.
신체 곳곳을 지나는 신호와 그에 따른 반응.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히 그렇게 해왔던 소소한 것들.
전신에 묻어있던 폭발의 여파를 털어냈다는 것을 직감한 순간, 감각이 바깥으로 확장됐다.
공기의 미묘한 흐름, 그 안에 섞여 피부에 닿는 습기, 아래쪽에서 타고 올라오는 전투의 소음, 짐이 타면서 만들어내는 매캐한 냄새, 밟고 있는 땅의 촉감.
내가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영역 위에 서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확장되던 감각이 다시 몸 안으로 향했다.
그리고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찰나의 찰나라고 말하기도 짧은 순간, 기억은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선택은 단 한 번뿐이니 신중하고 또 신중해도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연산 보조 장치>
이 투박한 이름의 아이템이 지닌 걸로 공개되었던 능력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최초 획득자 특전에 가까운 능력이었다.
‘타 캐릭터의 능력 추출(1회)’
쉽사리 이해가 안 되는 이 능력은 다르게 말해 ‘캐릭터를 육성하면서 만난 다른 캐릭터의 능력을 1회 사용 가능'.
직접 목격한 것이어야 하냐, 그렇다면 목격의 거리는 어느 정도여야 하냐, 아니다 직접 몸에 맞아봐야 한다 등등 커뮤니티에 토론을 빙자한 아는 척이 난무하게 된 능력이었다.
일단 직접 맞아보는 건 틀린 가설로 확인됐다.
스쳐 지나간 기억 중 내가 직접 맞지 않았던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템이었을 때는 캐릭터였지만, 지금은 그냥 인물이어도 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수도 없이 몸으로 맞아야 했던 능력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누구보다 강한 자의 능력임과 동시에 다대일 상황에서 이만한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
“우오오오!”
옆구리에 다리가 부러진 적토마를 끼고 뛰어 올라오던 왕발이 나를 발견하고 기쁜 표정을 했다.
녀석은 두 개의 블래스터 중 하나는 어쨌는지 적토마를 끼운 반대편 옆구리에 한 개의 블래스터만을 챙겨 올라오고 있었다.
나를 향해 올라가라는 손짓을 하는 왕발.
“내 걱정은 말고 올라가라.”
파짓-
내 오른손에 맺힌 뇌전이 튀어 오르는 것을 본 왕발이 흠칫하더니 우오오오!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뛰어 올라갔다.
올라오는 호위대원들과는 반대로 계속해서 내려갔다.
녀석들은 내게도 올라가자는 말을 했지만 나는 고개를 젓고 발걸음을 아래로 옮겼다.
호위대의 가장 후위에는 이제 제대로 작동도 되지 않는지 등껍질 쉴드 몇 개가 깨진 펠루다가 있었다.
“대장!”
이제 손에 맺힌 뇌전은 내 주변을 밝히는 걸 넘어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이들의 길을 밝히는데 이르고 있었다.
“고생했다. 늦어서 미안하다.”
뭔가 말하려던 펠루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쉴드를 회수한 채 전력을 다해 위를 향했다.
아래쪽에서 호버 보드 소음과 함께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어딜!”
호버 보드 무리의 선두에 있는 듀라한이었다.
오른손을 뻗어 휘둘렀다.
부드럽고, 동시에 강인하게.
수없이 눈에 담았던 젠의 움직임처럼.
맺혀있던 뇌전이 꿈틀거리며 앞으로 쏘아졌다.
뇌전으로 빚어낸 푸른 박쥐 떼가 언덕 아래를 휩쓸었다.
듀라한은 곡예에 가까운 방향 전환으로 호버 보드 끄트머리가 타는 정도에 그쳤지만, 그의 뒤를 따르던 열댓 명 정도의 다른 이들은 그대로 번개 박쥐에 먹혀 바닥으로 떨어져 아래로 굴렀다.
몇몇은 그대로 숨을 거뒀는지 김을 피워내며 미동도 하지 못했다.
반지에서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
형태는 그대로지만 살짝 가벼워진 느낌.
담겨 있는 무언가가 날아간 것 같았다.
‘특전은 끝인가.’
아직 상대해야 할 이들이 많았다.
-유물의 힘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군요! 역시 오메가 당신은······!
머릿속을 헤집는 마데르노의 사념파.
그가 타고 있는 휠체어 아래, 그림자가 꿈틀거렸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길 원하는 것처럼.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저놈을 죽이는 것.
지금 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내가 있는 공간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으며 나의 안쪽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지금이라면!
뇌전의 저릿함이 사라진 오른손에 열기를 피워 올린다.
그리고 동시에 왼손에는 냉기를 응집한다.
젠과의 수련에서 가장 집중했던 부분이지만 활용은커녕 유지도 쉽지 않았던 부분.
힘의 배분, 탄력적인 유지, 스킬 그 이상의 것.
양손을 천천히 몸 앞으로 가져가 맞대자 서로를 잡아 먹으려 들던 열기와 냉기가 어느 순간 자연스레 한 몸으로 엮인다.
반지에서 후끈한 열기와 차가운 냉기가 번갈아 느껴졌다.
연산 보조 장치의 두 번째 능력, ‘스킬 융합’이 발동됐다.
이 상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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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가 유적지로 떠나기 며칠 전.
야스민 저택의 지하에 있는 체육관.
공중에 떠서 명상 중이던 젠이 눈을 떴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체육관의 한쪽 벽.
얼었다 그을리기를 반복한 탓에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 위에 새겨진 거대한 검흔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끌어내고 싶다고 했던가.’
젠과는 스승과 제자, 친구 사이 등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오메가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빙의 되었고, 예전부터 익히고 있던 스킬을 사용하기 때문에 퓨어임에도 여러 능력을 할 수 있다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다만 오메가는 요즘 위기감과 갈증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 익히고 있던 스킬로만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이대로는 발전 없이 멈춰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기에 주로 사용하는 검술, 화염계 마법, 빙결계 마법의 다양한 활용에 집중했다.
최종적으로 세 부류, 혹은 그 이상을 자유자재로 융합해서 사용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젠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말았다.
수많은 이들이 꿈꿔왔던 경지지만, 그 누구도 이른 적 없는 곳이다.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거나 신체 강화를 통해 한쪽 계열이 다른 한쪽을 보조하는 경우는 많지만 완전한 융합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많은 것을 배우며 깊이 있기가 어렵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이며, 새로운 계열을 창시하는 것은 다른 이들의 도움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이유다.
수명의 증가로 시간적 한계는 늘어났지만 스스로 길을 닦을 만큼 재능있는 자는 그리 흔치 않다.
어쩌면 재능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젠은 왠지 멋쩍게 웃고 있는 이 해결사가 언젠가는 그런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에브레를 가르치다 보니 나도 미래를 볼 수 있다는 착각이라도 하는 건가.’
가볍게 상념을 털어낸 젠의 눈에 무언가를 고민하는 오메가가 보였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어떤 쪽을 먼저 할지요.”
“융합 말입니까.”
“네.”
젠이 할 말을 잃은 사이, 오메가가 혼잣말을 늘어놓았다.
“검술은 지금 있는 그대로도 마음에 든단 말이죠. 굳이 융합할 필요를 못 느껴요. 워낙 몸에 익은 스타일이라 그런가······.”
“그럼 역시 마법 쪽이 좋겠군요.”
“네. 빙결계 마법도 꽤 익숙해졌거든요. 다른 두 계열의 마법을 번갈아 사용하려면 시간 같은 제약사항이 있었는데 융합에 성공하면 그런 것도 없을 것 같아요.”
말이 쉽지 한 계열을 창시한 대종사들이나 가능할 법한 일을 쉽게 얘기하는 오메가에게 젠이 웃음을 지었다.
실제로 처음부터 같이 수련을 할 때부터 시도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두 계열의 마법을 동시에 발현하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오메가가 젠에게 물었다.
“화염계와 빙결계의 융합에 성공하면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젠이 지어줘요.”
젠도 가볍게 답했다.
“많은 마법사들이 상상만 했지, 그 누구도 성공한 적이 없는 일입니다. 아직 한 번도 있은 적 없는 미증유未曾有이고 사람이 닿아본 적 없는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일이니······.”
생각을 마친 젠이 답했다.
혼원混元을 몸에 품고 있는 오메가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였다.
“천지가 나뉘지 않은 혼돈을 부수고 새로운 것을 쌓아나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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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천황破天荒]