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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102화 (103/258)

102.

102.

“수고했다.”

조련사가 데리고 다니는 기계견 두 마리가 내게 달라붙는 것을 밀어내며 말했다.

눈깔, 조련사, 돌멩이로 이뤄진 척후조가 뿌듯한 얼굴을 했다.

이들은 건물 주위에 미리 도착해서 위험 요소가 없는지 탐색 중이었다.

“다 끝난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 뒤쪽으로 가. 조사대원들이 여기 조사할 동안 접근하는 놈들 있나 없나 봐야 할 거 아니야.”

팍 식어버린 얼굴을 하고 걸어가는 셋에게 말했다.

“우리를 추격하던 쪽이 브리가드라는 걸 확인했다. 관측되면 나한테 알리고 거리 유지하면서 본대까지 빠져라. 전투는 최대한 피해.”

“알겠습니다.”

제단처럼 생긴 건물을 그렇게 크지 않았다.

지구라트 형태였는데, 높이만 봐서는 3층 건물 정도.

그마저도 대부분이 안쪽으로 향하는 계단이 차지하고 있으니, 내부는 넓지 않아 보였다.

“빨리! 빨리!”

하뮬 교수의 재촉에 조사대원들이 흥분감에 얼굴에 홍조를 띤 채로 녹스 카트에서 짐을 내려 열심히 날랐다.

용도를 알기 힘든 여러 장비가 이곳저곳에 설치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제단을 둘러싸고 듬성듬성 박힌 약 2m 높이의 기둥.

얇은 안테나나 전봇대를 지구라트 주위에 둘러친 것 같았다.

“이건 뭡니까?”

하뮬 교수는 얇은 파장이 지나가는 화면에 눈을 떼지 않고 내 말에 답했다.

“초음파를 내보내 안쪽을 탐지하는 겁니다. 미궁 내의 유물에 다가가면 지금 저희 주위에 있는 환경이 한 번에 사라지니까 혹시라도 모를 위험을 방지해야죠.”

안테나들에 불이 들어오나 싶더니 화면 안에 있던 파장이 요동쳤다.

파장이 여러 갈래로 찢어지고, 다양한 각도로 시점이 돌아가나 싶더니 천천히 지구라트 안쪽으로 추정되는 도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밖에서부터 천천히 내부로 그려지는 도면에 나도 모르게 집중했다.

침이 꿀꺽 넘어갔다.

“별다른 함정은 보이지 않는군요.”

도면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지구라트의 중심부만 남겨둔 상황.

정황으로 보았을 때 그곳에 유물이 있을 터였다.

파직-

안테나 하나가 꺼졌다.

파직- 파직- 파직-

지구라트 주변의 모든 안테나가 똑같은 현상을 보이더니 도면은 완성되지 못한 채로 멈춰버렸다.

“이런!”

화면에 붙어 있던 조사대원들 사이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드론이 땅에 처박힐 때부터 예상은 했지만, 안쪽에 있는 걸 쉽게 보여주지 않는군요. 괜찮습니다. 내부 구조를 알 수 있었으니까요.”

하뮬이 펜을 들어 화면에 표시했다.

“여기까지가 대략 3m 거리일 겁니다. 통상적인 연구에 따르면 유물 2m 내에 들어가면 주변 환경이 사라지니 각별히 주의해야 합니다.”

하뮬을 비롯한 조사대원들이 진입 계획을 세우는 중, 송곳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7시 방향, 드론 발견. 이쪽으로 곧장 날아옵니다. 격추합니까?

“해.”

피슛-

송곳니가 들고 있던 슬링샷에서 탄환이 발사됐다.

드론의 회전익을 꿰뚫어버린 탄환.

하지만 추락할 듯 휘청이던 드론의 보조날개가 맹렬히 회전하나 싶더니 비틀비틀 균형을 잡았다.

재빠르게 다음 탄환을 슬링샷에 올리고 잡아당긴 송곳니가 입으로 주문을 외웠다.

그의 주위에 한 줄기 바람이 불었다.

정령사인 송곳니가 바람의 정령을 불러낸 것.

다시 발사된 탄환.

날아가는 방향으로 봐서 드론을 스쳐 지나갈 것 같은 그때, 바람을 받은 탄환의 각도가 휘어져 드론의 오른쪽 날개를 모두 관통하는 데 성공했다.

-드론 떨어진다!

그걸 본 땡중의 등에서 제트팩이 만들어지더니 부드럽게 상승했다.

허공을 걷는듯한 움직임으로 공중에서 드론을 낚아챈 땡중이 폭발 위험이 없다는 듯 고개를 젓고서 내게 드론을 가져왔다.

특정 권역이나 스폰서의 마크가 없는 드론이었다.

심지어 제조사나 생산 공장도 어디인지 알기 힘든 수준.

하뮬이 어렵게 말했다.

“스폰서 마크가 없는 걸 보니 탐사단의 물건이 아니군요. 브리가드에서 추격을 재개한 것 같습니다.”

-다수의 인원이 호버 보드에 탑승하고 접근 중입니다.

눈깔의 말.

“거리, 대략적인 수는?”

-10km 내외, 6인입니다.

곧바로 조련사의 말이 들렸다.

-개들이 폭탄 냄새를 맡았습니다. 4인 정도로 추정 멍!

뒤이어 돌멩이까지.

-3인. 접근 속도가 빨라 존재감을 숨긴 채 천천히 물러나는 중.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눈깔, 조련사, 돌멩이. 셋이 관측 상황이 같거나 중첩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저희 본대가 있는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습니다.

스케이트보드에서 바퀴를 없애고 부양 장치를 박아넣은 호버 보드는 이런 평원 지형에서 빠르게는 100km/h에 가까운 속도를 낸다고 들었다.

저들은 대형을 유지할 필요도, 짐과 같이 움직일 필요도 없으니 움직임이 자유로울 터.

게다가 다른 탐사단에게 보여주는 손속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조사대원들은 진입 준비 마쳤습니다!”

가슴에 장비를 한 아름 품은 하뮬 교수의 말.

“먼저 가 계시죠. 호위대원들에게 지침을 내리고 따라가겠습니다.”

하뮬 교수를 선두로 조사대원들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본 뒤 전파했다.

-척후조도 본진으로 복귀해라. 돌멩이는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복귀에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은 척후조를 제외한 다른 조들이 계단 앞에 모였다.

“녹스 카트와 적재된 짐을 이용해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하뮬 교수가 유물을 확보할 때까지 바리케이드를 거점 삼아 진입을 막는 거다. 다행히도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는 이 계단 하나뿐이다. 우리에게는 천운이 따르는 셈이지.”

내 말에 적토마가 신난다는 듯 앞발로 땅을 굴렀고, 왕발 역시 우오오오!하며 포효를 토했다.

“유사시에는 바리케이드를 버리고 내부로 들어와도 좋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한다. 돌아갈 때 무지 피곤할 텐데 카트를 타고 가고 싶거든. 걷는 건 사절이야.”

가벼운 웃음이 퍼졌다.

묘한 동지애였다.

하지만 풀어져서는 안 됐다.

눈에 힘을 주고 선언했다.

“아마 쉽지 않을 거다. 졸라 힘들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브리가드에게 잘 보일 생각으로 옆에 있는 놈 뒤통수치는 놈. 가만 안 둔다. 끝까지 따라가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인다. 내 일 처리 방식을 눈에 담아뒀는지 모르겠지만 허언은 안 한다.”

마침 척후조도 복귀했다.

여기까지 잘 따라와 준 호위대원들 하나씩 눈에 담았다.

눈깔, 조련사, 돌멩이, 상투, 송곳니, 땡중, 적토마, 버프싸개, 헬창, 젖소, 펠루다까지.

하나가 없어진 것 같지만 첩자는 어떻게 생겼는지 벌써 기억에서도 지워버렸다.

“나는 내부 호위를 위해 들어간다. 유물을 가지고 나왔을 때 다들 멀쩡한 얼굴이었으면 한다. 브리가드를 박살 냈으면 더 좋고.”

몸을 돌려 올라가기 전, 펠루다를 향해 말했다.

“펠루다, 내가 없는 동안 네가 지휘한다.”

“대장님만큼은 못 하겠지만······.”

“나처럼 하는 건 바라지도 않아. 다만 최선을 다해라. 잘하면 더 좋고.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다. 자! 가서 바리케이드 만들어! 척후조도 뭐라도 돕고!”

몸을 돌려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

내부는 어두웠다.

하뮬 교수와 조사대원들이 다양한 장비를 지구라트 내부의 중심부로 겨냥하고 있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떨렸다.

“유물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모르지만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도 분명하고요.”

지구라트 중심부에는 돌로 만들어진 탑 같은 것이 있었고, 간헐적으로 그 틈새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열립니다!”

탑이 모래처럼 무너지는 찰나―

쿠웅-

폭음과 함께 옅은 진동이 지구라트를 뒤흔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눈으로 지구라트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지만,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서 손에 칼자루를 쥔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왕발이 선제포격을 갈긴 걸 겁니다. 곧 전투가 시작되려나 봅니다.”

이내 펠루다가 지휘를 내리는 목소리와 다른 호위대원들이 그에 반응하는 소리가 귀걸이를 타고 전해졌다.

아래쪽에서 브리가드의 공세와 그에 맞서는 호위대원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 유물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시라도 빠르게 이걸 확보하는 것이 다른 대원들을 돕는 길이다.

“형태가 완벽합니다. 보기에는 반지 같은데.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스크린샷은 고사하고 로드맵상의 컨셉 아트로만 접했던 아이템이었다.

공개된 일부 스펙만으로도 밸런스 붕괴, 오버 밸런스 논란을 가져왔던 아이템이 눈앞에 있었다.

<연산 보조장치>

어느 이과생 디렉터가 이름 붙인 건지 네이밍 센스는 투박하기 그지없지만, 그 효과는······.

-테모크!

돌멩이의 이름을 부르는 펠루다의 외침.

-내가 막지! 강화 마법 줘!

상투의 목소리.

-젠장! 대장! 하나 올라가요!

통신을 통해서 호버 보드의 소음이 전해졌다.

“내가 처리한다. 동요하지 말고 틀어막아.”

안쪽에는 조사대원들과 장비가 가득하다.

침입을 허용할 수는 없다.

칼자루를 비틀어 검을 전개하고 달려 내부로 통하는 길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 얼굴을 방독면 같은 마스크로 가린 채 호버 보드 위에 타고 있는 놈이 보였다.

놈이 들고 있던 블래스터를 내게 겨냥했다.

[추진]

블래스터의 총구가 눈앞으로 확 다가왔다.

방독면 안쪽의 당황하는 눈빛이 그대로 읽혔다.

[연하일휘]

빛이 모이던 블래스터와 놈의 상체를 그대로 베어나가는 광자검날.

쓰러지는 방독면과 붕붕거리는 소음을 내는 호버 보드를 발로 차 버린 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바리케이드 근처에서 호버 보드를 탄 인원은 못해도 15명은 되어 보였다.

‘뒤쪽으로도 계속 모여드는 걸 보니 다해서 20~30명은 되는 건가.’

그놈들이 계속해서 바리케이드에 접근해서 뚫으려고 애쓰는 모양새.

한 놈 통과시키긴 했지만, 그럭저럭 잘 막아내고는 있었다.

-역시 당신이었군요, 오메가.

머리를 쪼개는 듯한 강렬한 의념.

시선을 멀리 돌리자 익숙한 모습이 보인다.

축주백건을 눈에 두른 채로 공중 부양하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

마데르노다.

여기서 내 목소리를 그쪽에 전할 방법은 없기에 일방적인 의념이 쏟아진다.

-찾아 나설 정도로 유물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만나니 반갑기도 하네요.

-어때요, 우리와 뜻을 함께하지 않겠어요? 늦지 않았답니다.

-여기 있는 모두의 목숨보다 당신의 목숨값이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답니다.

들을 가치가 없는 내용.

몸을 돌려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마데르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랍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는 없죠.

뚝 끊어진 마데르노의 의념 대신, 당황한 호위 대원들의 통신이 귓가를 때렸다.

-류정이다!

-저 듀라한 새끼! 우리 용병단에도 저놈한테 당해서 살점 하나 안 남은 놈이 있어!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 뒤! 휠체어 타고 있는 놈 좀 봐!

-저 시커먼 거 뭐야!

-저주! 그것도 아주 악독한 저주! 정령들이 공포에 떨고 있어!

-듀라한 새끼 막아! 으아악!

-대장! 하나 더 올라가요! 미안해!

머리통을 옆에 낀 듀라한이 호버 보드를 타고 무섭게 질주하고 있었다.

[에피시]

검을 타고 오르는 불.

그대로 검을 움직여 호선을 그렸다.

[방출]

검이 멈춘 곳에서 뻗어나가는 불줄기.

호버 보드가 속도를 줄여 방향을 틀었다.

투구에 들어갔다 나온 놈의 손에서 반짝이는 것들이 흩뿌려졌다.

폭탄이다.

[표르긴]

내 시선을 따라 생겨난 얼음 돔이 폭발로부터 나를 보호했다.

돔을 없애니 듀라한은 바리케이드 쪽으로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듀라한 내려간다. 뒤 조심해라.”

그리고 다시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몇 걸음 정도 옮겼을 때, 삐빅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누가 들어도 타이머가 다 되어가는 소리.

작은 폭탄이 안쪽으로 열심히 굴러 들어가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조사대원들의 뒤통수가 보였다.

폭탄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이머의 붉은색 글자가 보였다.

00:01

마지막 글자가 바르르 떨더니 바뀌었다.

00:00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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