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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99화 (100/258)

099.

099.

“그걸로 끝입니까?”

내 설명을 들은 하뮬 교수의 반응이었다.

다른 호위대원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거미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이 그럴듯하다는 것에 동의 의사를 내비쳤다.

“몸통이 거대한 만큼 엄청난 질량을 버티고 있는 저놈들의 다리에는 어마어마한 압축응력이 작용하고 있을 테니까, 발을 묶어둔 상태에서 한쪽으로 잡아당겨 전단응력을 가하면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 그럴듯해. 그리고 워낙 거대한 덩치를 가졌기 때문에 ‘위’에서의 공격에는 취약할 것이라는 말도 일리가 있어. 주로 노출된 곳을 방어하는 건 당연한 거고, 당연히 공격받아 본 적 없는 부위에 대한 방비는 약하겠지. 실제로 측면과 전후방에서의 공격은 통하지 않는 것 같고.”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나는 그냥 저 공룡들을 상대하는 공략법을 말했을 뿐인데 알아서 살과 논리를 가져다 붙여주는 거미.

요는 그거다.

기암괴석 공룡을 직접 상대하는 것은 너무 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

다리를 묶어 쓰러트리거나 무릎 꿇린 다음, 절벽과도 같은 공룡의 몸을 타고 올라 등 위에서 공격하면 된다.

등 부분은 암석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

다리를 공략하는 것도 직접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형을 이용하면 훨씬 쉬워진다.

“생각보다 쉽군요.”

상투의 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지.”

모두의 시선이 다시 나를 향했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잖아. 모방하기 어렵지 않다는 뜻이니까 우리가 공략을 시작하면 다른 탐사단들도 우리가 보여준 방법으로 곧 공룡들에게 덤벼들 거다.”

다른 탐사단이 안쪽으로 몇이나 들어왔는지는 모르겠다.

확인된 것은 우리에게 대패하고 물러선 혁명발굴단과 아무런 정보 없이 일단 기암괴석 공룡 측면에 공격을 쏟아붓다가 공룡 성만 돋워 버린 서라벌 권역의 수막새 탐사단까지 둘.

우리가 유적지 진입이 먼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래쪽의 수막새탐사단이 지하공간에 먼저 들어선 것을 보면 더 빠른 길이 있을 수도 있었다.

다른 탐사단이 우리보다 뒤에 있다면 다행이지만 먼저 진입해서 매복 중이거나, 우리 쪽의 전략 노출을 기다리고 있다는 최악의 선택지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었다.

“이쯤 되면 안에 마도공학 유물이 있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그러니 가장 중요한 건 전략이 노출된 이후 최단 거리로 유물로 향하는 거다. 알겠나, 척후조? 아래로 내려가는 즉시 척후조의 탐색 우선순위는 유물이다. 조사대에서 드론을 날리겠지만 위에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

눈깔이 같은 척후조인 돌멩이와 조련사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진입도 늦은 지금, 의심되는 놈을 골라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단 안고 간 뒤, 처리한다.

“타겟이 워낙 거대하고 수가 많아서 아마 좌측방 조와 우측방 조 모두 공략에 나서야 할 거다. 즉, 본대의 좌우가 빈다는 소리다. 후방 방어조가 붙어서 전원 커버해야 한다.”

“그건 좀······.”

중얼거리는 헬창을 향해 윽박질렀다.

“내가 할 수 있냐고 물었나?”

단숨에 분위기가 조여진다.

“하는 거다. 그리고 이번에도 탐지에 구멍이 생기면 쓸데없는 더듬이를 잘라버리겠다. 헬창, 명심해라. 이의제기는 네가 맡은 임무를 완벽히 수행한 후에야 뱉을 수 있는 거다. 맡은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하는 이의제기는 무능력자의 불평이다.”

드워프의 머리 위에 솟은 굵은 머리카락 두 줄기가 움찔했다.

나방의 더듬이를 모방해서 몸에 이식한 장치라는데, 저걸로 공기의 변화나 땅의 진동을 읽는 방식의 탐지 능력이다.

헬창도 첩자 의심 범위에 들었으니 밀어붙여서 본색을 드러내게 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용병들의 시선도 받아 내느라 붉으락푸르락해진 헬창에게 조금 더 프레셔를 넣으려는 찰나, 후방 방어조의 마지막 구성원인 젖소가 나서서 나를 말렸다.

“그때는 제가 부주의해서 놓친 겁니다.”

유사시에 블래스터나 탄약을 발사하는 총으로 변형이 가능한 거대한 할버드를 든 젖소 수인이다.

닦아내긴 했지만, 혁명발굴단 몇을 벤 흔적이 남아 있는 할버드 날이 번쩍였다.

하지만 그런 것에 위축될 내가 아니지.

“눈물겨운 우정은 일이 끝난 후에 나눠라, 젖소. 나는 일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내 말에 힘을 잔뜩 줬던 젖소의 눈이 풀리며 원래의 순한 눈망울로 돌아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선을 넘었습니다.”

“그런 태도, 좋다.”

작전을 다듬었다.

“적토마, 거미, 버프싸개의 우측방 조는 전원 공룡 공략에 참여한다. 좌측방 조에서는 상투가 참여하고, 송곳니와 땡중. 둘 중 하나가 참여한다. 누가 갈래.”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땡중은 불가佛家 소속이었던 승려 안드로이드인데, 살계를 어겨 파문된 파계승이었다.

이후 개조에 개조를 거듭해서 전투 안드로이드 이상의 무장을 몸에 품고 있었다.

그 개조가 모두 불법인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땡중은 모든 말을 모스 부호로 하는 놈이었는데, 그딴 식으로 소통할 거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닥치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라고 으르렁댔더니 정말 묵묵히 내가 하라는 대로 하는 특이한 놈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잠잠하다 싶더니 또 모스 부호다.

“땡중 너 그따위로 말하면 구겨서 고물상에 버려버린다고 했어 안 했어.”

손을 번쩍 드는 땡중.

“그래. 차라리 그렇게 행동으로 해. 땡중이 가겠다는데 송곳니, 네 의견은?”

좌측방 조의 트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본대에 남겠습니다.”

“좋아. 공룡 공략이 시작되면 너는 임시로 후방 방어조에 편입돼서 펠루다의 지휘를 받으면 된다.”

정리가 끝나기 무섭게 조사대원 몇몇이 드론을 꺼내 날렸다.

공간의 넓이를 알아보고 유물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련사의 개들이 드론을 보고 컹컹거렸고, 이내 조련사가 그런 개들을 진정시켰다.

“프리스비 아니야. 다들 진정해. 멍멍!”

조사대원들이 드론의 시야와 연결된 화면을 들여다 본지 20분 정도 되었을까.

한 조사대원이 외쳤다.

“여기! 앞에 뭔가가 있습니다!”

하뮬 교수와 내가 달려가서 스크린을 응시했다.

평원과는 이질적인 분위기의 건축물.

그리 높지는 않은 건물의 형태는 제물을 바치기 위한 제단처럼 되어 있었고, 그 제단 위에는 무언가가······.

지지직-

화면에 노이즈가 생겼다.

“어어? 이거 왜 이래.”

조사대원이 쥐고 있던 컨트롤러를 이리저리 움직여봤지만, 스크린에는 노이즈가 가득했고, 결국 땅에 처박힌 화면만 전송되다가 곧 그마저 검은 화면으로 변했다.

“연결이 끊어진 것 같습니다.”

이 조사대원 말고 다른 조사대원들이 날리고 있던 드론도 같은 증상을 보였다.

하뮬 교수의 뺨에 홍조가 생겼다.

“다 와 가는 겁니다. 틀림없어요.”

그가 몸을 부르르 떠는 동안, 나는 조사대원에게 물었다.

“방금 드론, 속도가 얼마나 됐지?”

“70km/h였습니다.”

“직선거리로 움직였나?”

“네. 제 드론은 직선거리로 나아갔습니다.”

“움직인 시간이 대략 30분······. 못해도 35km를 가야 한다는 소리인데······.”

하뮬 교수가 전체 휴식을 건의했다.

중간중간 짧게나마 휴식을 가졌지만 24시간 가까이 움직이기도 했고, 드론이 건진 정보로 간략한 지형 지도를 만드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나도 동의했고, 3시간의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여기저기서 텐트를 펴는 소리가 들렸다.

그마저도 귀찮은 사람들은 녹스 카트의 빈자리에 올라 누웠고, 몇몇은 그것도 귀찮았는지 대충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고 머리를 댔다.

호위대 조별로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 한 명씩을 불침번으로 세우고 나도 잠깐 머리를 대나 싶었는데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떠보니 HQ의 가위바위보 패배자이자 마지막 불침번 담당이었던 닌닌이었다.

“벌써 시간 됐······?”

나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

닌닌이 검지를 자기 입에 가져다 붙이고 있었다.

그가 빠르게 속삭였다.

“아직 20분 정도 남았습니다.”

닌닌의 긴장된 얼굴에 나도 목소리를 낮췄다.

“그런데 왜 깨웠어.”

“순찰하고 나서도 찌뿌둥해서 한 번 더 둘러봤는데, 잠깐 사이 없어진 인원이 있습니다.”

#

보르스나탄 탐사단이 있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유적지 내부, 혁명발굴단의 리더인 리철성 교수가 한 손으로 배를 움켜쥐고 달리고 있었다.

그의 호흡은 거칠었으며, 꾹 누르고 있는 손 아래에서는 피가 번져 나왔다.

손을 떼자, 무언가에게 뜯어먹힌 것 같이 너덜거리는 상처가 보였다.

상처의 살이 검게 변하는 걸 본 리 교수가 욕을 했다.

“갈빗대 순서를 바꿔놓을 종간나 에미나이 같으니라고······.”

우우우웅-

그의 뒤에서 무언가 작동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황급히 뒤를 돌아본 리철성 교수의 눈에 지상으로부터 조금 떠 있는 휠체어, 그리고 그 위에서 두건으로 눈을 가린 채 앉아 있는 남자가 들어왔다.

리 교수의 머릿속에 사념파가 내리꽂혔다.

-길잡이 역할만 하라니까 왜 저항해서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가나요.

“모든 유물은 수령님께 가는 것이 옳기 때문이지비. 내래 그거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서.”

고개를 좌우로 젓는 마데르노.

-지독한 세뇌군요.

“수령님에 대한 충심을 더럽히디 말라!”

몇 마디 되지 않는 짧은 대화 사이, 리 교수의 얼굴에 핏대가 잔뜩 솟고, 검은 코피가 주륵하고 흘렀다.

마데르노의 사념파를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

하지만 마데르노는 사문을 버리고 스승과 사매를 죽음으로 내몬 흑마술사.

망가져 가는 리 교수를 보고도 감정의 옅은 동요조차 없었다.

저주를 맞아 부패가 시작된 상처에서 올라오는 역겨운 냄새를 맡으며 죽음을 직감한 리 교수가 최후의 악을 써댔다.

“우리 아새끼들 전력이 완비만 되었더라믄, 너가티 의자에 앉아 둥둥 떠다니는 간나새끼는 단숨에 허리를 꺾어놓는 거인데. 운 튼 줄 알라!”

죽을 때까지도 허세에 가까운 자신감을 놓지 못하는 리 교수를 본 마데르노가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저주의 강도를 높였다.

리 교수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사라져 간다.

이제 원망에 가까운 혼잣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광자 검을 휘두르는 그 미추과이(미치광이)만 아니었드래믄 이래 외지에서 뒈지는 일도 없지 않았가서? 하뮬 그 미어캣 에미나이가 어디서 그런 괴뢰통치배 같은 놈을 구해온 거인지······.”

거칠게 내쉬던 숨도, 힘겹게 움직이던 가슴팍도 멈춰 섰다.

마데르노의 휠체어가 뒤로 돌자, 리 교수의 상처를 잠식하던 검은 부분이 순식간에 리 교수를 집어삼켰다.

순식간에 백골만 남은 리 교수.

맛있는 뼈를 핥듯 백골을 탐닉하던 검은 기운이 팔랑팔랑 마데르노를 향해 날아가더니―

마데르노의 축주백건에 한 획 검은 줄이 되어 새겨졌다.

뒤쪽에는 류정이 이끄는 브리가드의 정예 전투부대, 자리슨zerrissen이 남은 혁명유물단의 처리를 마친 상황.

옆구리에 머리를 낀 류정이 마데르노를 보고 다가가 맞았다.

“오셨습니까. 리철성 교수는······.”

-처리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제가 제대로 알아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재밌는 말을 하더군요. 광자 검날을 휘두르는 어쩌고라고 하던데. 제가 아는 사람 생각이 났어요.

축주백건 아래로 보이는 마데르노의 하관에 맺힌 것은 진득한 웃음이었다.

-그런 무장을 사용하는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아요. 그렇죠?

작가의 말

드디어 호위대원 전원이 글에 등장했군요.

헷갈리실 수 있을 것 같아 짧게나마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오메가 호칭 기준입니다.

#전방 척후조 : 눈깔(오크), 조련사(인간), 돌멩이(바위 인간)

좌측방 조 : 상투(도깨비), 송곳니(트롤), 땡중(안드로이드)

우측방 조: 적토마(켄타우로스), 거미(아라크네), 버프싸개(엘프)

후방 방어조: 펠루다(거북 수인), 헬창(드워프), 젖소(젖소 수인)

HQ: 오메가, 왕발(예티), 닌닌(원숭이 수인)

이들 중 과연 누가 첩자일까요.

#<연참에 대한 변>....

연참을 해보겠다고 약속을 드렸으나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번 주에 연참을 해야지!’하고 만들어 놓은 분량이 있었는데 수정을 거치면서 다른 편과 합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편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다 쓰고 읽어보니 재미가 없어서 지워버렸습니다.

식당으로 치면 ‘우리 애가 먹어도 괜찮은 음식을 만들겠습니다.’ 이런 건데요.

제가 읽어서 재미 없는 글을 독자님들이 구매하게 만드는 건 양심이 허용치 않았습니다.

연재가 주 7회인지라 저런 상황이 한 번만 벌어져도 남은 비축의 심리적 안정선이 흔들거리곤 합니다.

그래서 송구하지만 이번 주의 연참은 힘들 것 같다는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연참에 도전하겠습니다.

언제 하겠다라고 딱 찍어 말씀을 드리기는 힘들지만, 어느 순간 2편이 올라온다면!

‘한기언 이 자식 성공했구나!’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작가의 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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