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098.
“생각보다 유적지가 훨씬 넓군요.”
옆에서 걷고 있던 하뮬 교수의 말이었다.
시간을 물어보니 탐사단이 유적지에 진입한 지 대략 24시간이 지나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혁명발굴단과의 전투 이후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이동이 계속되었다.
비록 많이 허물어졌지만, 잘 닦여진 원래의 모습을 추정하기 그리 어렵지 않은 길이 있었기에 움직이는 것이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가끔 무너진 벽이나 기묘한 형태의 조각상이 등장했고, 그럴 때마다 조사대원들이 나서서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샘플 채취나 발굴을 안 하냐고 물었더니, 이곳이 미궁이면 마도공학 유물 근처에 사람이 들어가는 즉시 모든 것이 사라지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나.
이곳이 미궁이 아닌 일반 유적지라면 빠져나오는 길에 해도 되는 일이라는 설명과 함께였다.
호위대원들은 조사대원들과 녹스 카트가 멈춘 틈에 조에서 한 명씩 빠져 휴식을 취하거나 안전거리를 확보한 채로 주변 탐색에 나섰다.
쉬기 위해 본대로 합류한 눈깔이 카트에 실린 자기 짐에서 뭔가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금빛 포장, 인간 손바닥만 한 크기, 직사각형, 포장을 뜯자 나오는 새카만 그것.
열량 보충에 좋은 초코바였다.
초코바를 쩝쩝거리며 먹던 눈깔의 시선이 한참이나 녀석을 응시하던 나와 마주쳤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셋.
총 4개인 놈의 눈동자가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렸다.
놈의 고민을 끝내주기 위해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오른손을 내밀었다.
영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다가온 눈깔이 내 손 위에 새 초코바를 올려놓았다.
포장지에 있는 글자를 대충 읽었다.
“전 종족 섭취 가능. 고열량. 식사 대용 불가. 견과류 알레르기 있으면 섭취 금지.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분들께는 에너지 효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좋은 걸 혼자 먹으려고 했단 말이야?”
“개인이 준비한 식량은 원래 혼자 먹는 건데요······.”
“먹을 건 같이 먹으면 더 맛있잖아.”
초코바를 녀석이 먹고 있던 손에 부딪혀 건배 제스처를 취한 뒤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걸터앉아 있던 녹스 카트의 옆면을 툭툭 쳤다.
눈깔은 내 눈치를 보나 싶더니 나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초코바를 우물거렸다.
“척후조가 눈깔 너랑 조련사, 돌멩이 맞지.”
“넵.”
조련사는 기계 개를 두 마리 데리고 다니는 인간이다.
예전에 키우던 개의 의식을 기계 개 플랫폼에 옮기는 걸로도 모자라서 자기의식과 링크 시킨 진성 애견인인데, 사람이 개처럼 행동할 때도 있지만 두 마리의 개가 탐지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스스로 재처리해 ‘사람 말’로 전달할 수 있었다.
돌멩이는 바위 인간으로, 뭘 어떻게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존재감을 극도로 떨어트린 채 주위 환경에 녹아들 수 있었다.
척후조로 쓰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능력이었다.
다만 돌멩이의 문제가 있다면 유사시에 개라도 동원해서 싸울 수 있는 조련사보다 못한 전투 능력.
바위 인간이긴 하지만 몸이 황호석으로 되어 있어 약간의 충격에도 몸이 부서진단다.
그런 몸으로 왜 용병 일을 하냐고 물어봤더니 외부의 충격을 막으면서도 안쪽의 황호석 몸체를 지킬만한 외장 피부의 가격이 매우 비싸서 위험하긴 해도 돈 많이 주는 이런 일을 한다고 한다.
냉정히 얘기해서 다들 어딘가 한군데 이상 결함이 있다.
능력이나, 신체적인 면이나 정신적인 면이나 모두.
용병의 질이 좋은 편이 아니라고 했던 하뮬의 말이 충분히 이해된다.
펠루다는 그나마 멀쩡해 보이던데 왜 이런 곳에 낀 걸까.
혹시 모른다.
그 녀석도 어딘가 결여된 녀석이거나 위험한 과거를 가지고 있을지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눈깔이 조심스레 내게 물어왔다.
“이거 저한테 히트 앤 런 작전인가 그거 하는 겁니까?”
“뭐?”
“채찍으로 후려 팬 다음에 당근 먹여서 마음의 벽을 없애는······그런 거 아닌가요.”
“굿캅 배드캅 아니냐?”
수사 기법의 고전이다.
경찰 하나는 용의자를 압박해 공포감을 생성하고, 다른 경찰은 압박으로부터 용의자를 보호하며 신뢰감을 생성하는 기법.
“그래, 그거요.”
“굿캅 배드캅이랑 히트 앤 런을 헷갈리는 놈한테 내가 잘 대해줄 이유가 있냐? 그냥 온리 배드캅이 훨씬 편한 길인 것 같은데.”
내가 말하느라 멈춰 있던 눈깔의 턱이 다시 열심히 초코바를 씹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하긴, 먹일 거면 당근이 아니라 초코바를 먹이지.”
뻔뻔한 건지 태평한 건지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 나도 아무 말 없이 초코바를 씹었다.
다시 눈깔의 말이 들렸다.
“대장.”
“왜.”
“뭘 좀 말씀드릴까 하는데, 제 생각에 신뢰 문제를 만들거나 이간질 같거든요? 말해도 될까요?”
“해 봐.”
“제가 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 말하고 그러면 안 돼요.”
“안 하니까 해 봐.”
눈깔이 더듬더듬 얘기를 시작했다.
“척후조에 있는 다른 2명의 행동이 의심스러워요.”
다른 조사대원, 척후조를 제외한 다른 호위대원은 모두 내 시야 내에 있지만 척후조는 앞에서 움직이느라 시야가 닿지 않았다.
게다가 갈림길이 나타나면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척후조 각각 개별적인 판단과 움직임을 허용해 준 상황.
“계속.”
“조련사는 거의 저와 함께 움직이긴 하지만, 개를 멀리 보내거든요. 그런데 멀어질 때는 2마리가 같이 움직였던 개가 돌아올 때는 시간 차를 두고 돌아올 때가 있어요.”
“흠······.”
“그렇게 개가 돌아오면 돌멩이가 근처 환경에 동화되어 전진하고, 이상이 없다고 통신하면 제가 가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그런 식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내가 제안한 방식 그대로다.
“그런데 돌멩이가 통신한 지점 근처로 가도 없는 경우가 있더군요. 조금 더 앞이나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데, 혹시 모를 위험이 있어서 살펴봤다고 하니 딱히 뭐라 하기도 어렵지만 뭔가 꺼림칙하기도 해서······.”
말을 안 하고 팔짱을 낀 채로 발끝만 까딱거리고 있었더니 내가 화가 난 걸로 오해하는지 눈깔이 화급히 덧붙였다.
“물론 제가 의심병이 많아서 그런 걸 수도 있으니까 그리 신경 쓰지는 않으셔도······.”
“아냐.”
혁명발굴단이 우리를 따라온 속도가 지나치게 빨랐다.
우리가 유적지에 진입하기 시작할 때쯤, 다른 탐사단들이 허겁지겁 자리를 걷고 트레일러에서 짐을 내리기 시작했다.
유적지 내부에서 갈림길이 등장할 때마다 안전한 길을 확보하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긴 했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는 말.
게다가 후방 방어조에게 최대한 우리 탐사단의 흔적을 없애면서 오라고 말했다.
나도 가끔 후방으로 가서 흔적을 착실히 없애면서 오는 것을 확인했고.
그런 노력이 무색할 정도로 혁명발굴단에게 빠르게 꼬리가 잡혔다.
다른 탐사단이 일제히 움직였을 테니 진입로는 혼잡 그 자체였을 것이고, 설령 진입했다 하더라도 전투는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발굴단에게서 다른 전투의 흔적은 찾지 못했다.
진입 이후 다른 탐사단과의 전투보다는 우리 탐사단의 추적에 열을 올렸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우리 쪽의 누군가가 뒤쪽에서 따라올 수 있게 표식을 남기고 있다면 추적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기습적으로 박스를 작동시켜 혹시 모를 통신상의 정보 유출은 막았지만, 자기들끼리만 아는 표식을 남겼다거나 하는 아날로그 방식까지 제약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위대의 구성원들은 서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상황.
내가 찍어 누르기 전까지는 자기들끼리 으르렁대던 놈들도 있다고 들었다.
용병 구인난을 이용해서 하뮬 교수의 보르스나탄 탐사단을 몰락시키고 싶은 이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의심은 시작이 어려웠지, 살을 붙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후방 방어조의 헬창은 제대로 탐지한 것인가. 일부러 본대로 침입하는 놈들을 무시한 것 아닌가.’
‘하뮬 교수는 본대 내에서 계속해서 위치를 이동하고 있음에도 침입자들은 정확히 하뮬 교수에게로 향했다. 내부에 있던 닌닌이 신호한 것이 아닌가.’
‘왕발이 발사한 두 발의 블래스터 중 한 개의 각도가 낮았다. 우리를 노렸던 것이 아닐까.’
이외에도 그냥 지나쳤던 하나하나가 모두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얘기,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있나?”
“아뇨. 이런 소리를 누구한테 합니까. 다들 처음 보는 사인데.”
“함구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해. 정말 이상하다 싶으면 지금처럼 나한테 다시 와서 말하고.”
낮고 으르렁거리는 톤으로 말하자 눈깔은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이 탐사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싶으니까 방해하는 놈이 있으면 가만 안 둔다. 죽여버릴 거야. 위협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고 지금 네가 제일 의심스러워.”
“예? 왜요!”
“처음에 시정잡배 같은 말투로 시비나 찍찍 걸었으니까.”
“그건 일종의 기선 제압······.”
눈깔의 말을 잘랐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네가 척후조의 다른 둘을 제끼고 내 신임을 얻어내려는 수작일 수도 있으니까. 굿캅 배드캅을 네가 내게 하는 거지. 처음에는 틱틱대다가 협력자 포지션으로. 그런 캐릭터가 잘 먹히지 않겠어? 조금 어벙한 척을 하면 더 효과 좋을 거고.”
“그게······그렇게 되나요.”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도 연기일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복마전이라는 말 아나?”
“복상사는 아는데요.”
성욕의 종족이라는 오크가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는 걸 무시했다.
“복마전은 마귀가 숨어있는 굴이라는 뜻이야. 여기가 딱 그래. 외부의 위협도 위협이지만 내부에 뭐가 있을지 몰라.”
아이가 새로 배운 단어를 읊조리듯 복마전, 복마전이라고 중얼거리는 눈깔을 불렀다.
“눈깔.”
“예.”
“네가 정말 다른 마음 품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손해는 안 보게 해줄 테니까.”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던 눈깔에게 내가 몇 입 베어 문 초코바를 던져주었다.
“너무 달아서 내 입맛에는 안 맞아. 너 먹어라.”
“절반 이상 드셔놓고······.”
“닥쳐.”
때마침 하뮬 교수가 곧 움직일 거라는 말을 전파했고, 눈깔은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렇게 대열이 움직이려는데, 내게 통신 하나가 들어왔다.
-월월월! 멍멍! 멍멍! 월월!
“조련사냐? 너 지금 사람 말이 아니라 개처럼 말하고 있다.”
-월월! 아! 죄송합니다.
개의 의식과 링크해서 그런지 가끔 이렇게 멍멍거린다는데 들어도 들어도 적응이 안 된다.
“본대 곧 출발한다는데 무슨 일이야.”
-개들이 뭘 발견했습니다. 와서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펠루다를 HQ로 불러올려 임시 지휘를 맡긴 후, 눈깔과 함께 척후조인 조련사와 돌멩이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둘의 뒷모습이 보일 무렵, 걸음을 느리게 했다.
돌멩이의 옆으로 다가가자, 나도 모르게 황당한 음색 가득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하루를 꼬박 움직이고 오면서 전투까지 했는데, 이제 시작이었던 거야?”
반대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다란 공간이 펼쳐져 있고, 끝을 모를 만큼 높은 천장에는 번쩍거리는 광원이 있어 갑자기 대낮이 된 것 같았다.
렙틸리비아를 보는 것 같았다.
다만 렙틸리비아의 천장과 벽면, 구조물들은 인공적인 티가 가득했지만 여기는 자연 그대로라는 점.
그리고 아래쪽 공간에는 기암괴석들이 가득하고, 그 사이사이에 강줄기가 흐르는 평원 지형이었다.
“대장······저기······.”
느릿한 돌멩이의 말.
기암괴석이 움직이고 있었다.
네 개의 발, 거대한 몸통, 기다란 목, 목 끝에 위치한 작은 머리.
누가 봐도 거대 초식공룡의 형태였다.
기암괴석 공룡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지축을 울리며 대지를 휩쓸던 찰나, 날카로운 소음이 들렸다.
키야아악-
넝쿨이 몸에 잔뜩 감긴 식물 육식 공룡이 기암괴석 초식 공룡에게 달려드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처럼 눈에 담겼다.
멍하니 그걸 보고 있다가 손을 올려 귀걸이를 터치했다.
“네 교수님. 전원 다 데리고 빨리 이쪽으로 와보셔야 할 것 같아서요. 네. 이건 환경 변화 정도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데 두렵거나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반가웠다고 할까.
“어어? 저기······.”
눈깔의 눈동자가 축소와 확대를 반복했다.
눈깔이 손가락을 뻗은 곳에 우리보다 먼저 진입한 탐사단이 있었다.
그 탐사단의 호위대가 기암괴석 초식 공룡에게 블래스터를 쏟아붓고, 무장을 꺼내 덤벼들었지만 공룡은 멀쩡했다.
오히려 성만 돋웠는지 날뛰는 기암괴석 공룡.
“저거 그렇게 잡는 거 아닌데.”
내 말에 척후조 셋의 고개가 쪼르륵 내게 향했다.
서리얼 시절에 잡아봤던 몹들이지 뭐야.
잡아봤던 것들이랑 색이 조금 다르긴 한데, 게임사들 색깔 놀이는 유명하니까 스펙의 차이만 좀 있을 거다.
어느 정도인지 가늠은 안 되지만, 호위대 애들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못 잡을 수준은 아닐 것 같았다.
공룡이 별다른 기술 없이 체급으로 다른 탐사단을 뭉개는 게 전부인 걸로 봐서 자신감이 더욱 올랐다.
하뮬 교수에게 나머지 말을 전했다.
“제가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