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
097.
감각이 흐트러진다.
왜인지 모르게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 같아 손을 들어 가슴에 댔지만 평온하기만 하다.
앞에 가는 하뮬 교수의 정글모에 붙은 먼지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짐을 실은 녹스 카트가 아래쪽으로 열기를 배출하는 그 작은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처럼 귓가에 크게 울린다.
“닌닌. 내 눈을 살펴봐. 흥분 조짐이 있나?”
“없소이다, 오메가 도노.”
그렇게 말하는 닌닌도 연신 코를 킁킁거렸다.
“너도냐?”
“그렇소이다. 마치 잠재되었던 감각이 모두 깨어나는 것 같소이다. 순수한 고양 상태로 빨려 들어가는 듯 하외다.”
“외부적인 자극인가?”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소인이 지닌 것들 중 반응하는 것은 없소이다.”
호위대를 둘러보니 다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지 각자의 무장을 꼭 부여잡고 있다.
조사대 인원 중에서는 견디지 못하고 토악질을 하거나 발이 걸려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다.
전체 통신으로 하뮬의 살짝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뭔가 있긴 있나 보군요. 다들 각오 단단히 합시다.
그렇게 한 시간 가깝게 몇 번의 갈림길을 통과하고 있을 무렵, 몸 상태가 천천히 정상으로 돌아왔다.
곧 호위대 통신으로 후방 방어조에 있는 펠루다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후방에 다른 탐사단이 관측됩니다. 평양 대학의 문장이 보입니다. 리철성 교수가 이끄는 혁명발굴단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된 권역으로 일컬어지는 평양 권역의 탐사단이다.
믿기 힘들겠지만 평양 권역은 세습 군주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단다.
다른 분야는 근대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권역 시민들을 세뇌하기 위한 뇌과학과 최면, 그리고 반동분자들을 때려잡기 위한 군사 기술 하나만큼은 기가 막힌 곳이란다.
돼지 수인인 ‘수령님’을 광적으로 추종하는 곳이기도 했다.
하뮬에게 다가가 내용을 전달하자 하뮬이 입술을 질근질근 씹었다.
“혁명발굴단이라니. 굉장히 호전적인 탐사단이니 공격에 대비해야 할 겁니다. 저희 뒤를 따라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리 교수가 제게 묘한 적대감을 품고 있어서······.”
거기까지 듣고 곧바로 척후조에게 물었다.
“눈깔, 전방에 위험사항이나 특이사항 있냐?”
-현재까지 없습니다.
“고지대는?”
눈깔의 답과 펠루다의 말이 거의 동시에 전해졌다.
-전방 200m 정도에 상대적 고지가 있습니다. / -혁명발굴단 호위대가 진형을 변경합니다. 후방에 최소 인원만 남기는 걸로 봐서 추진 대형입니다. 속도를 올려 접근합니다.
탐사단 간의 충돌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초반부터 대놓고 적의를 드러낼 줄은 몰랐다.
“눈깔, 척후대 전원. 고지대 점령해. 펠루다, 후방 인원들로 막아. 상투, 좌측방 전부 데리고 후방으로 붙어. 후방과 좌측방 인원 통솔 명령 우선 순위는 1순위가 나, 2순위가 펠루다. 펠루다가 빤스 벗고 소리 지르라는 명령을 해도 바로 질러라. 알았냐.”
““알겠슴다!””
녹스 카트에 실린 짐 위에 올라 뒤쪽을 바라보니 혁명발굴단 측 호위대가 무장을 꺼내는 것이 보였다.
“눈깔이 점령할 고지대까지 이동하면서 방어한다.”
저 멀리 후방에 위치한 펠루다의 등딱지가 열리면서 등갑 조각이 그의 주변을 맴돌더니, 조각에서 쉴드가 전개되었다.
조각을 중심으로 규모는 작지만 쉴드장을 만들어 낸 것.
조각이 아군 호위대에게 가서 붙자 개인 쉴드처럼 활용할 수 있었다.
열린 등딱지 안쪽에서 쉴드 동력원으로 보이는 장치가 쉴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것 말고도 펠루다는 등딱지 안쪽에서 꺼낸 버클러를 팔에 끼우고 있었다.
상투가 이끄는 좌측방 인원들도 후방으로 합류했고 그 위로 혁명탐사단 측의 블래스터 사격이 쏟아졌으나 펠루다의 쉴드장을 뚫은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좋군. 부상자 발생 즉시 말해라. 닌닌이 갈 거다.”
탐사단과 녹스 카트에 속도가 붙었다.
척후조가 향한 고지대로 가기 위함이었다.
“적토마, 버프싸개 데리고 HQ로 와라. 우측방에 남은 거미는 경계 유지하되 본대와 거리 좁혀서 조사대 인원들 보호에 신경 쓴다.”
켄타우로스 용병이 등에 엘프 마법사를 태우고 내가 있는 녹스 카트 곁으로 달려왔다.
켄타우로스 자체도 힘이 좋기로 유명한 종족인데 적토마는 무려 기계 교단 신자라서 하반신 전체를 기계로 교체한 상태.
말에게 최고 마력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이상하지만, 어찌 됐든 최고 700마력을 낼 수 있단다.
데리고 온 엘프 마법사는 강화계 전투마법사로, 생체 강화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사였다.
“버프싸개, 왕발한테 버프 넣어라. 힘 세지는 걸로.”
바로 내 옆에 있는 예티, 왕발에게 말했다.
“본대가 더 이상 속도를 올리면 뒤에 있는 후방조와 좌측방 조가 낙오될 위험이 있어서 그렇게는 못 한다. 그러니까 너는 네 블래스터들고 눈깔이 있는 곳까지 뛰어가서 빨갱이 새끼들한테 갈기면 된다. 남은 블래스터 한 짝은 적토마가 싣고 갈 거다. 알아들었냐?”
“우오오오!”
왕발이 대답했다.
잠깐 대화해본 느낌으로는 얘가 할 줄 아는 말은 이거 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왕발로 부르겠다고 할 때랑 뉘앙스가 비슷한 걸로 봐서 알겠다는 뜻 아닐까?
조사대원 중 녹스 카트 적재를 맡은 대학원생 하나를 불러 말했다.
“왕발이 쓰는 블래스터 꺼내. 두 짝 모두.”
대학원생이 군말 없이 들고 있던 패드를 몇 번 터치하기 무섭게 앞쪽의 녹스 카트에서 무언가 해제되는 소리가 나더니 드르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그냥 눈으로 봐서는 땅에 묻는 커다란 수도관 같은 것 2개가 뒤로 밀려 나왔다.
왕발의 양쪽 어깨에 장착할 수 있는 고정식 에너지 집약 블래스터였다.
그렇지 않아도 2m가 넘는 덩치의 왕발이 버프싸개의 마법을 받아 더욱 커진 상태로 블래스터 하나를 옆구리에 끼었다.
그대로 블래스터에 맞았다가는 머리통에 혹 나는 정도로 끝날 것 같지 않아서 얼쩡거리던 조사대원들에게 내가 외쳤다.
“다 나와!”
그 덕에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다.
“우오오오오!”
블래스터를 옆구리에 낀 왕발이 뛰어가는 사이, 달라붙은 조사대원들의 도움을 받아 남은 블래스터 한쪽을 등에 실은 적토마의 한쪽 앞다리가 꺾였다.
“안 될 것 같나?”
이마에 핏줄이 솟은 적토마가 강하게 외쳤다.
“켄타우로스는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더니 옆구리에 달린 주머니에서 플라스틱 주머니를 꺼내 입에 들이붓는 적토마.
기름 냄새가 강하게 퍼졌다.
은빛 가득한 적토마의 하체에서 김이 뿜어졌다.
그의 상체와 하체가 연결된 부분에서 6개의 피스톤이 미친 듯이 움직이며 하체에 동력을 전달했다.
두두두두두-
심장을 뛰게 만드는 그 소리와 함께 적토마가 바로 섰을 때, 조사대원들 중에서는 감동의 박수를 치는 사람도 있었다.
“가져다 놓고 돌아오겠다!”
왕발의 뒤를 따라 달려 나가는 적토마.
“눈깔.”
-예.
“왕발이랑 적토마 그쪽으로 향했으니까 네가 오던지 아니면 다른 인원 하나 보내서 유도하고, 포격하기 좋은 자리 선정해놔라.”
눈깔의 대답을 듣기 전, 녹스 카트에 위에 있던 나는 대열의 왼쪽으로 몸을 날렸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자루는 어느새 광자 검날까지 밀려 올라온 상태.
[고속이동]
[만사재시 매사필종]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피가 치솟았다.
공간이 일렁이며 검에 베인 곰 수인이 쿨럭거리며 입에서 피를 쏟았다.
“이······종간나 새끼. 무신 수로······.”
“안 보이는 건 그럴듯했는데, 그 덩치로 접근하면 소리도 줄였어야지.”
카트 위에서 불규칙적으로 뿌리고 있던 [반향정위]에 걸려든 놈이었다.
한 놈이 아니었다.
[기막 펼치기]
후방 방어조를 우회하는데 성공한 건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셋이 카트 주변, 특히 하뮬 교수 주변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후방 탐색 담당 헬창 아니었나? 질질 샌다, 질질 새. 거미, 그쪽도 조심해라.”
[연하일휘]
베이는 느낌이 있었다.
놈들의 유언은 가관이었다.
“수령님께 유물을······가져가야······하는데.”
“위대하신 민족의 령도자! 수령님 만세!”
“모든 도시 권역의 적화 통일을 위하여!”
죽은 놈들을 걷어차면서 말했다.
“빨간 애들이 여기도 있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소리가 귀걸이를 통해 들렸다.
-우오오오!
왕발이었다.
“후방, 좌측방 전원. 최소한의 방어 행동만 한 채로 전속력으로 본대로 붙어라.”
펠루다와 상투는 내 지시가 떨어지고 곧바로 몸을 뺐지만, 몇 명은 전투에 취한 건지 조금 반응이 늦었다.
하지만 기다릴 틈은 없었다.
“왕발! 준비됐냐!”
-우오오오오오!
“쏴!”
피유우우웅-
조명탄 같은 거대한 빛 덩어리 2개가 떠올랐다.
보르스나탄 탐사대의 머리를 넘어선 빛 덩어리가 하강하며 속도가 붙었다.
혁명발굴단 위로 몇 겹의 쉴드가 생성됐다.
빛 덩어리는 분열하며 수십, 수백 개의 작은 탄환으로 변했고, 차창을 두드리는 폭풍우처럼 쉴드 위에 쏟아졌다.
몇 군데의 쉴드가 깨지는 것이 보였다.
“한 발 더 안 되나?”
-우오오오······.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우오오!
아쉬운 일이었다.
한 번 더 쏟아부으면 걸레짝이 된 쉴드를 완전히 날려버릴 수 있을 텐데.
그때, 본대의 진행 방향에서 엔진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동시에 들렸다.
“돌아왔다!”
적토마가 블래스터를 옮겨 두고 정말로 돌아온 것.
“후방 방어조, 본대까지 합류해서 닌닌에게 몸 상태 점검받고 펠루다가 임시로 지휘를 맡는다. 좌측방 인원 중 부상 없이 여력이 남은 놈은 따라와도 좋다.”
그렇게 말하고 다가오는 적토마를 향해 손을 흔들어 세운 뒤 녀석의 등 뒤에 올라탔다.
“가자, 적토마!”
“돌격인가!”
“기병 돌격이다!”
“간다아아아앗!”
끓어 넘치는 외침과 함께 적토마의 전면이 거대한 창끝처럼 변형되며 속도가 붙었다.
칼자루를 단단히 쥐었다.
선빵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줄 셈이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질량과 힘을 그대로 때려 박은 적토마 위에서 검을 휘두르며 외쳤다.
“오메가식 민주주의를 맛봐라 북괴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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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비를 위해 보르스나탄 탐사단이 잠시 멈추었을 때, 호위대원이건 조사대원 할 것 없이 대화의 화제는 오메가였다.
“그 정도라고? 그 폭력적인 인간이?”
오메가 호칭 눈깔, 아지만이 다른 호위대원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아지만은 척후조라 전방에 나가 있었던 터라 혁명발굴단과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전장의 화신이라니까! 미쳤어!”
대답한 것은 빈과 함께 좌측방을 맡고 있는 오메가 호칭 송곳니.
원래 풀네임은 로만의 아들 로만손.
오메가가 붙인 호칭처럼 송곳니가 위쪽으로 길게 솟은 트롤이다.
펠루다와 함께 후방 조에 있는 탐색 능력자, 크리스토퍼가 로만의 아들 로만손의 말을 긍정했다.
“인원을 적재적소에 분배하고 대형을 변화시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
크리스토퍼는 오메가 호칭 헬창이다.
드워프 종족 중에서도 유독 근육 발달 정도가 두드러진 탓이다.
펠루다와 더불어 오메가식 호칭에 만족하는 몇 안 되는 호위대원이기도 했다.
크리스토퍼의 중후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지휘 능력 하나는 웬만한 용병단 단장들 이상이야. 이건 너희도 동의할 것 같은데.”
은신 상태로 접근한 놈들에게 다리 끝을 베여 전투의 유일한 부상자가 된 아라크네 종족이자 적토마, 버프싸개와 함께 우측방을 맡은 올리비아 역시 오메가에게 힘을 싣는 발언을 내놓았다.
“비록 마지막에 혁명발굴단에 뛰어든 건 잘했다고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뒤에서 입만 터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했지. 혁명발굴단이 우리를 먼저 공격했음에도 반 이상이 죽고 장비도 못 챙긴 채로 도망쳤으니까.”
“나는 그의 민주주의를 가장 가까이서 봤다.”
고개를 돌린 쪽에 오메가 호칭 적토마, 클라우스가 있었다.
“대장과 함께라면 유물을 확보해서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냥 들이박아서 신나는 거 아니고? 켄타우로스는 돌격이라면 정신이 헤까닥 돌아버리잖아.”
빈의 말에 정색한 클라우스.
덕분에 분위기가 험악해질 뻔했다.
비록 뜨거웠던 전투로 인해 서로 간의 견제와 의심은 조금 녹아버렸다고 해도 결국 이들은 성정 거친 용병과 PMC 요원인 탓이다.
그때, 펠루다가 나타나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싸우는 걸 보면 대장이 좋아라 하겠네.”
펠루다의 시선이 향한 멀지 않은 곳, 녹스 카트 위에 오메가가 엉덩이를 걸친 채로 앉아 있었다.
모두가 오메가의 눈치를 보며 슬슬 오래 쉬었다는 말과 함께 제자리를 찾아갈 때, 오메가는 생각했다.
‘이게······되네.’
서리얼 시절, 현재의 오메가에게 줘터진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자 인맥이나 길드를 불러 복수를 하려한 적이 왕왕 있었다.
처음에는 막무가내식 머릿수 들이밀기와 스킬난사 밖에 없었지만, 오메가에게 각개격파 당하자 점점 공격하는 쪽도 정교해지기 시작했다.
클래스에 맞는 적절한 인원 분배, 유동적인 대형 조정, 화력 집중 타이밍과 습격 대비까지.
<짬통 캐릭터 레이드>라는 이름으로 스트리밍 사이트와 동영상 사이트의 트래픽을 엄청 잡아 먹은 유저 컨텐츠의 탄생이었다.
처음에는 속절없이 밀리던 오메가였지만 자신의 캐릭터가 마치 보스몹 취급당하는 영상들을 수도 없이 돌려보며 파훼법을 찾고 또 찾았다.
결국 마지막에는 대략 5:5 정도의 승률을 만들었다.
공격 측은 적게는 서넛, 많게는 20인 이상의 집단이었기에 5:5만 해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고, 서리얼에서 오메가의 위상은 더욱 올라갔다.
즉, 오메가가 전투 내내 내린 지령과 방침은 ‘맞아가며 배운 지식’이었던 것.
어차피 다른 탐사단도 다양한 장비와 기술을 동원하니, 오메가는 이런 다대다 전투 양상을 자신과 맞붙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규모가 조금 커졌을 뿐이었다.
아까의 전투를 머릿속으로 복기하던 오메가에게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몸을 덜 움직이고 입으로만 싸우는 것도 꽤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