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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96화 (97/258)

096.

096.

“치료, 의료 관련 능력을 가진 놈 있나. 이 오크 놈 얼굴 좀 봐줘라.”

내 말에 누가 봐도 닌자 같은 옷을 입은 원숭이 수인이 앞으로 나와 오크의 얼굴을 살폈다.

원숭이의 손가락 끝에서 나오는 얇은 빛줄기에 오크의 부어오른 얼굴이 닿자 피부색이 돌아오고 붓기가 가셨다.

“그래, 하나 있다고 들었지. 이름이······.”

“소인은 사루와타리 미츠아키猿渡 光昭라고 하외다. 의료인술을 익혔소, 오메가 도노(どの: 일본어의 경칭. 나리, 경, 님 등의 의미).”

“기각. 너무 길어. 탐사가 끝날 때까지 너는 원숭이, 혹은 닌자니까 닌닌으로 부른다.”

“무엇?(なのだ?). 오메가 도노라고 해도 남의 이름을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는······.”

주먹을 쥐어 보였다.

“민주주의?”

그러자 닌닌이 묵묵히 치료를 이어갔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닌닌. 의료인술이라는 그 광선, 어떤 방식이지? 몸에 뭘 넣는다거나 하는 방식이면 나는 유사시에 네 치료를 거부할 거다.”

“세포의 활성화를 유도하는 방식이오. 도노께서 말했던 것과 비슷한 치료도 가능하지만 정말 급한 일이 아니라면 지양하려 하오.”

“좋아.”

닌닌과 오크는 놔두고 다른 용병들을 향해 말했다.

“불만은 없는 걸로 알겠다. 혹여 있거든 찾아와라. 그리고 다들 계약금 넉넉하게 먹고 온 걸로 알고 있다. 기싸움하고 으르렁댈 시간 있으면 어떻게 해야 임무에 충실할지 고민하길 바란다. 이상. 거북이!”

그때까지도 일어서 있던 거북이 수인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답했다.

“예!”

“판단이 가장 빠른 것 같으니 네가 부호위대장이다. 30분 줄 테니 계약금 뱉고 집에 가고 싶다는 놈들 리스트 만들어서 나한테 가져와라.”

그 말에 여태껏 한 마디도 못 하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앞에 서 있던 하뮬이 내게 달려와 속삭였다.

“조사대가 11명이고 호위대가 15명입니다. 이 정도가 구성의 최소인원이라 하나라도 빠지면 대형에서 비는 곳이 생깁니다!”

“딴마음 품거나 대충 하려는 놈을 데려갈 생각은 없습니다. 나약해 빠진 놈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거북이를 향해 말했다.

“거북이, 이름이 뭐냐.”

“펠루다입니다. ㈜한강 PMC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묻지 않은 건 답하지 마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다.”

“옙!”

“거북이도 3글자, 펠루다도 3글자······. 너는 그냥 이름으로 부르지.”

“감사함다!”

“30분까지 취합 마쳐서 가져오도록.”

대형 텐트 밖으로 걸어 나가자 하뮬이 내 옆으로 쪼르르 붙었다.

텐트에서 제법 멀어지자 나도 숨을 뱉으며 긴장을 조금 해소했다.

“후우. 다행히 연기가 먹힌 것 같군요.”

“네? 연기요?”

“기선 제압을 위해 좀 거칠게 나간 겁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고 당장 저들을 휘어잡아야 하니까요. 그리고 제가 악역을 맡았으니까 자기들끼리의 갈등은 잠시 접어두고 뭉칠 수도 있겠죠.”

하뮬이 아무 말이 없길래 고개를 돌려보니 눈을 반짝거리면서 놀랍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다 생각이 있으셨던 거군요! 저는 갑자기 거칠게 행동하시길래 본성이 이런 사람이었나 해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본성 타령은 내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술 마시고 보여주는 게 본성이라는데.

일단 하뮬도 내게 어느 정도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즈음으로 이해하고 물었다.

“출발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다른 탐사단들도 도착하고 있던데요.”

주위에 보이는 베이스캠프만 2개가 더 있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베이스캠프 펼 자리를 찾는 건지 대형 트레일러 몇 대가 선회하고 있다.

미탐사 유적지는 무주지無主地로 구분되기 때문에 특정 권역, 특정 탐사단의 소유가 아니라는 권역 간 협약이 있다나.

그 덕에 현재 탐사단들끼리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앞서 출발하면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유적지를 뚫고 가야 하지만 뒤따르면 선발 탐사단의 흔적을 읽어가며 훨씬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

유물에 가까워졌다고 판단이 서면 선두에 있던 탐사단을 제치고 나가는 전략을 사용할 수도 있다.

제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욕설, 위협, 전투, 살해를 비롯한 일체의 행위는 어떠한 법적제재도 받지 않는다.

법이 닿지 않는 무주지이기 때문.

이렇게만 보면 선두로 출발한 탐사단은 불리한 점만 있어 보이지만, 누가 뭐래도 유물을 가장 먼저 확보할 수 있다는 특출난 메리트가 있다.

게다가 하뮬에게서 보르스나탄 탐사단과 다른 탐사단의 탐사 기록을 좀 받아서 봤는데, 선두로 출발한 탐사단이 매복에 적합한 지역을 발견해서 매복한 뒤 뒤따르는 탐사단을 전부 갈아버린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지진으로 인해 드러난 유적지.

이번 탐사는 사실상 불안한 지반, 낯선 환경을 기본으로 깔고 가는 팀 단위 배틀로얄과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조사대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호위대의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럼 대략 1시간 후에 출발하는 걸로 하시죠. 다른 사람들한테는 알리지 말고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탐사,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번 일, 평소 하던 해결사 일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본질이라. 어떤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문제를 해결하는 거죠. 문제가 좀 크고 여러 군데에 산적해 있을 뿐 아니겠습니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하뮬이 크게 웃었다.

“맞습니다. 그 정도 일일 뿐이죠.”

그리고는 여전히 웃음 지으며 물었다.

“아까 아지만을 때린 것도 연기셨던 거죠?”

“그 오크 이름이 아지만입니까?”

“예.”

“아뇨. 걔는 꼬나보는 눈빛이 영 불손해서 때렸는데요.”

미어캣 수인의 얼굴에서 웃음이 싹 사라졌다.

눈빛에서 불안감이 묻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하뮬에게 당부했다.

“한동안은 계속 딱딱한 척 연기해야 할 것 같으니 적당히 맞춰주셔야 할 겁니다.”

#

“29분.”

내게 배정된 터치식 천막으로 뛰어 들어오는 펠루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대원들이 대장님에 관해 묻는 통에 답해주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PMC와 용병단의 차이가 뭔가라고 질문하면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은 ‘자기들이 이름 붙이기 나름 아닌가?’이다.

누구는 PMC의 인력, 장비 수준이 더 높다거나 용병단이 더 잡다한 일을 한다는 식으로 구분 짓기도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여러 권역의 전장을 누볐던 테오릭 경에게 물었을 때 답은 이랬다.

-PMC가 조금 더 군대 같은 분위기지. 용병단은 대체로 자유로운 분위기고.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며 테오릭 경은 덧붙였다.

-상장을 앞두고 멀쩡한 용병단 이름을 버리고 PMC를 붙이는 일도 있지. 투자자들에게는 그게 더 매력적으로 들릴 테니까. 그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구성원들 쳐내고 분위기도 다잡으니까 더욱 군대스러운 분위기가 정착하는 것도 있고.

여튼, 펠루다라는 이 거북 수인은 PMC 소속인 만큼 상명하복이 몸에 밴 것 같아서 아주 보기 좋았다.

“이탈자는?”

“없습니다. 전원 참여입니다.”

“좋아. 전부 이 앞으로 모이라고 하고, 조사대에 통신 담당하는 놈 있지? 걔도 박스 들고 오라고 해.”

넵!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펠루다가 튀어 나갔고, 몇 분 되지 않아 내 텐트 앞에 사람들이 모였다.

먼저, 조사대의 인원이 들고 온 손바닥만 한 박스를 바라봤다.

일종의 블랙박스 겸 보안장치로, 가동하는 즉시 미리 등록된 인원들 간의 통신 내역을 저장하고 등록되지 않은 통신 장치의 가동을 탐지한다.

탐사단에 변고가 발생하면 그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인 것.

“디바이스 등록 안 된 사람 있나?”

“호위대장님 말고 다른 분들은 등록 마쳤습니다.”

내 귀걸이를 풀어주니 통신 담당이 재빨리 받아 등록을 마쳤다.

다시 귀걸이를 받고 말했다.

“작동시켜.”

“네?”

통신 담당이 되묻는 동시에 호위대 몇의 불만이 들렸다.

“그건 유적지에 진입한 다음에 켜는 겁니다.”

“건실한 의견 제시군. 상투.”

떨리는 목소리로 의견을 낸 놈은 큰 덩치에 상투를 하고 있는 걸로 봐서 도깨비인 것 같았다.

“어······저는 이름이 빈이라 이름으로 부르시는게 더 짧을 겁니다.”

“그래, 상투.”

도깨비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의견은 좋았지만, 좋은 의견이라고 해서 항상 수용되지는 않는다. 기각. 박스 작동시켜.”

우우웅-

박스에서 가동음이 들려왔다.

“현 시각부로 등록되지 않은 디바이스 사용은 외부 첩자로 알겠다. 이의 있나?”

계속해서 몰아쳤다.

“곧 출발 신호가 전파될 거다. 그 즉시 최대한 신속하게 본인이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 지금 보낸 대형으로 집결한다. 집결 위치는 탐사단장인 하뮬 교수가 있는 곳이다.”

귀걸이를 만져 수송기를 타고 올 동안 하뮬에게 받은 호위대 인원 리스트로 구성한 대형을 대원들에게 전송했다.

오기 전에 앨리스에게 귀걸이 사용법을 전반적으로 다시 한번 살펴둔 게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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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대 총원 15인.

3인 1조가 되어 전방 척후, 좌측방 경계, 우측방 경계, 후방 방어, HQ로 이루어진 간단한 대형.

나는 대형의 중간에서 조사대와 같이 움직이는 HQ로, 의무 담당인 닌닌과 함께 움직인다.

HQ의 마지막 한자리는 대형 블래스터를 양쪽 어깨에 장착할 수 있는 예티.

원래 이름은 쿠마르 싱크람 바리 어쩌구 라는데 왕발로 부르기로 합의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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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신호 전에 미리 자리 접는다고 지랄하다가 다른 탐사단 주의 끄는 놈은 죽여버릴 거니까 알아서 행동 잘해라. 전송한 대형에서 본인의 위치가 마음에 안 드는 놈은 호위대 전체 통신으로 합당한 이유를 제시하면 바꿔주겠다. 합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내가 납득 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민주주의로 진행한다. 알겠냐.”

“넵!”

“눈깔.”

내 부름에 텐트에서 얻어맞았던 오크가 몸을 짧게 몸을 떨었다.

“······예!”

“알겠냐고.”

“알겠습니다!”

“들어가서도 얼빠져 있으면 버리고 간다. 마침 탐지 계열이 너 말고 하나 더 있더만.”

“주의하겠습니다.”

“좋아. 다 사라져.”

얼마 지나지 않아 귀걸이를 통해 하뮬 교수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탐사단, 출발 준비하겠습니다.

텐트 안쪽에 있는 버튼을 누르고 밖으로 나와 텐트의 타프 지지대를 걷어찼더니 곧 텐트가 스스로 구겨지듯 접히기 시작했다.

‘공간 축소식 텐트’

휴대성을 극도로 간소화한 텐트인데 작동원리는······나도 모르겠다.

기가 막힐 정도로 신기하고 편리하다는 것뿐.

손바닥 두세 개 정도로 작아진 텐트를 집어 들자 꽤 묵직했다.

캠프 여기저기서 지지대를 걷어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온테스 사의 마크가 크게 박힌 트레일러 안쪽에서 낮게 부양하는 큰 수레 몇 대가 내려지고 있었다.

이미 짐이 실려 있는 수레도 보였다.

화물 운송 수단인 녹스 카트였다.

밤을 뜻하는 NOX가 아니라 NO-OX, 소 없음.

달구지에서 영감을 받아서 네오-서울 북동 에어리어 어디에 있는 회사가 만든 거라는데, 범용성이 좋아서 온갖 산업 현장에서 쓰인다고.

다만 유적지 탐사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내구성 보강과 특수 배터리 장착을 마친 주문 제작형 녹스 카트를 쓴다고는 하뮬에게 들었다.

텐트를 빈 카트에 던져놓으니 다른 호위대원들도 손에 텐트를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다른 탐사단들도 우리가 움직이는 것을 눈치챘는지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텐트를 실은 인원들이 뛰어가서 각자의 위치에서 경계를 시작했다.

적재를 마친 녹스 카트가 서서히 앞으로 움직였다.

얼마 가지 않아 마치 지옥의 입구처럼 쩍 벌어진 땅의 틈새가 보였다.

하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려 퍼졌다.

-진입하겠습니다.

#

보르스나탄 탐사단이 유적지로 진입하고 약 15분 후, 동해 앞마다에 스텔스 은폐장으로 감춰진 브리가드의 기함이 떠올랐다.

듀라한 류정이 여전히 축주백건으로 눈을 가린 마데르노에게 조심히 말했다.

“보르스나탄 탐사단에 잠입시킨 인원과의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마데르노가 사념파를 발신했다.

-탐사단에 새로 왔다는 호위대장의 정보는 받았나요?

“진입 직전에 통신 예정이었는데 아무런 신호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나 보군요.

“다른 탐사단들도 곧 뒤따를 것 같다고 합니다.”

-몇 개나 되죠?

“현재까지 확인된 탐사단 수는 다섯입니다.”

한 탐사단에 25명씩만 잡아도 125명이 넘어가는 수.

-협력자들을 움직여서 더 이상의 진입을 막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류정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마데르노의 사념파가 한 번 더 그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상륙 준비하세요. 정말 유적지 안에 유물이 있다면 그 유물이 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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