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091.
-제대로 간 것이냐?
귀걸이를 통해 이수련의 말이 전해졌다.
인공 자궁이 있는 공간에 최단 거리로 내려올 수 있었던 방법은 내 [반향정위]와 이수련의 로봇 중 하나가 연구소 내부 네트워크망을 해킹하는 데 성공해서였다.
전력이 집중되는 곳과 가장 넓은 곳을 우선시해서 탐색했더니 나온 곳이 이곳이었다.
이수련이 아니었다면 지하 어디까지 펼쳐져 있을지 모르는 이 연구소를 한참이나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감사와 칭찬은 조금 나중에 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네 왔어요. 그런데 조금 이따 연락할게요. 지금 좀 바쁘거든요.”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며 귀걸이를 만져 모든 연락을 차단 상태로 설정했다.
계속해서 날아오는 백호의 냥냥펀치를 피해 가며 대화를 할 정도로 쉬운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
물론 말이 냥냥펀치지 앞발 크기는 내 얼굴을 다 덮기에 충분했으며 권강까지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바람에 놈의 앞발이 스쳐 지날 때마다 퍼억, 퍼억하는 공기가 폭발하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호랑이나 곰이 발톱을 세운 채로 인간의 얼굴을 살짝 긁으면 얼굴 가죽이 그대로 다 벗겨진다는데 이건 스치기만 해도 전장에서 100년 정도 굴러먹은 것 같은 상처 획득에 성공할 것 같다.
게다가 날아드는 순간, 멀어지는 순간에도 계속해서 네발짐승과 수인 형태를 넘나들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간격을 잘 넘겨주지 않으려 했다.
“그래도.”
타악-
두 손으로 놈의 거대한 앞발을 잡아 옆구리에 끼우는 데 성공했다.
어마어마한 힘이 나를 그대로 옆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중량화]
[천근중추공千斤重錘功]
천근추라고 불리는, 기를 이용해 신체의 밸런스를 아래로 낮추는 스킬.
게다가 중량화를 이용해 실제 중량도 증가시켰으니 밀리는 속도가 현저히 낮아지고 종국에는 밀리지도 않게 되었다.
황당해하는 호랑이의 눈동자를 쳐다보고 말했다.
“잡았다.”
왼손으로 [금나수擒拿手]를 펼쳐 놈의 앞발을 조여 들어가자 잡고 있는 팔의 근육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수인 형태로 변형하고 있는 것.
거대하고 긴 송곳니를 내보이며 나를 위협하는 비글로우.
“날 잡았다고 생각하고 있나 보지? 미안하지만 잡힌 건 내가 아니라 너다. 인간의 내력쯤이야······.”
놈의 팔에 닿아 있는 왼손을 통해 거대한 흐름이 느껴진다.
내력을 일으켜 내 [금나수]를 무력화하려고 시도하는 것.
[에어 글러브]를 사용해 놈의 내력이 내 몸에 침투하려는 것을 막아내자 녀석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스킬 하나를 더 사용하자 내 손가락이 놈의 팔뚝을 잡아두다 못해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안 통하지?”
서리얼에서 무공이나 기공 익힌 놈들 상대하는 건 이골이 났었거든.
“이제 내 턴이다.”
왼손으로는 놈을 붙잡은 채로 오른손을 뻗었다.
[대력장大力掌 - 가차요歌且謠]
퍼억-
붙잡고 있던 놈의 왼손 팔꿈치에 직격한 내 오른 손바닥.
“으아아악!”
체면이고 인내고 없이 순수한 고통에 취해 내지르는 원초적인 비명이 비글로우의 입에서 터져 나온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한 나무를 쥐고 있는 것처럼 왼손에 전해지던 옹골찬 감각이 허물어진다.
꽉 움켜쥐고 있던 놈의 팔뚝에서 왼손을 뗀 뒤 조금 더 위쪽, 아마도 방금의 일격으로 내부가 조각조각 났을 팔꿈치를 우악스럽게 쥐었다.
“어떻게······! 어떻게······!”
“내력으로 보호 중인데 뚫고 들어갔냐고?”
[국소발경局所發勁]
원하는 부위에 힘을 전달하는 스킬.
효율은 극도로 떨어진다.
자갈을 부술 힘이 [국소발경]을 이용하면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것 정도로 깎여나가고 만다.
그렇다면 힘의 크기를 키우면 된다.
자갈이 아니라 바위, 바위가 아니라 태산, 태산이 아니라 세상을 쪼개는 힘이라면 깎이고 깎여도 뼈와 관절을 부수는 데는 부족함이 없겠지.
대력장을 사용하기 전에 미리 사용해두었던 강화 스킬.
[역발산기개세力拔山兮氣蓋世]
[근력 강화]의 최상위 기공 계열 스킬.
서리얼에서는 사용한 이후에 ‘내력 소진’과 ‘극심한 근육통’이라는 디버프가 붙어 며칠간 운신조차 어려울 정도의 반발이 있었기에 중요한 순간에만 사용했던 스킬이지만.
그 효과 하나는 발군이다.
우두두둑-
여태껏 내 왼손에 잡혀있던 놈의 팔꿈치가 찌그러지고 부서지며 피가 튀고, 꺾인 새하얀 뼈가 피부를 찢고 밖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으으아! 이 자식이!”
고통에 몸부림치던 비글로우의 눈빛에 광기가 어린다.
내게 잡혀있는 왼손 대신 놈의 오른손에 주변 공간이 이지러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래. 그런 기개는 있어야지.”
공간이 휘는 것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 정도로 파괴적인 기세의 주먹이 내게 날아오고 있다.
아쉽지만 기공 스킬 쪽 숙련도는 검술이나 마법에 비해 높지 않아서 움직이지 못하는 대신 거의 모든 타격의 위력을 급감시키는 [금강불괴金剛不壞]는 사용하지 못한다.
한참 하위 스킬인 [철포삼鐵袍衫]이나 [금종조金鐘罩] 정도가 사용할 수 있는 방어용 기공.
그리고 설령 사용할 수 있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는 여력이 없다.
[국소발경]과 [대력장 – 가차요]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이 한계이기 때문.
[양의심공兩意心功]이나 [쌍수호박雙手互搏]을 익혔더라면 동시에 서너 개의 기공을 펼칠 수 있었겠지만, 그 역시 숙련도의 문제로 익히지 못했다.
잡캐라지만 특성화 분야는 있는 법 아니겠나.
내 특성화 분야가 기공이 아니었을 뿐.
그 사이, 주먹은 더욱 가까워져 있었다.
주먹에서 밀려오는 뜨거운 기운에 눈을 뜨기 힘들 지경.
놈의 사자후가 터졌다.
“백열호왕권白熱虎王拳에 짓이겨져라!”
귀가 울리고 피부와 머리칼이 저릿저릿하게 일어났다.
이럴 땐 기합과 근성이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
내 오른손에 내력이 몰려들어 하얀 증기를 피워 올렸다.
백호 수인의 팔꿈치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이제 간격이라고 할 것도 없다.
놈의 주먹이 향하는 경로에 어깨를 밀어 올렸다.
주먹에 맞은 왼쪽 어깨가 틀어지는 느낌이 끔찍할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졌다.
하지만 움찔하기는커녕 고개를 틀어 바라보지도 않았다.
공격에 전념하기로 한 이상, 이미 맞은 부위에 신경 쓰는 건 사치고 낭비다.
내게 붙잡힌 것은 놈의 왼팔.
따라서 놈의 왼편은 내게 완전히 개방되어 있었다.
시야 가득 타격지점을 담았다.
보이는 모든 곳.
증기가 맴도는 내 손바닥이 계속해서 꽂힌다.
가차요歌且謠.
노래하고 또 노래하라는 뜻.
노래를 혼자 불러서야 되겠나.
누군가가 박자도 맞춰주고 추임새도 넣어주고 해야 흥이 더욱 사는 게 노래다.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소리가 박자를 맞추고, 놈의 신음과 비명이 추임새로 울려 퍼진다.
하지만 아직 백호 수인은 무너지지 않았다.
다 뭉개진 왼팔을 비롯해서 대력장이 꽂힌 신체 왼편은 걸레짝이 되었지만, 눈빛이 아직 살아있다.
놈이 다시 오른손을 당겨서 2타, 3타를 준비했다.
그 사이, 주먹을 빗겨내느라 가져다 댄 왼쪽 어깨를 잡아다가 오른손으로 끌어 맞추자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달렸다.
이제 남은 건 [자연 치유]와 [급속 치유]가 해결할 거다.
그렇게 믿어야 한다.
주먹이 날아온다.
나도 오른손을 뻗었다.
서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 난타전이었다.
#
먼저 발이 떨어진 쪽은 비글로우였다.
푸헉하는 소리와 함께 역류한 피가 비글로우의 입가를 적셨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난 비글로우.
그걸 본 오메가의 손가락이 하나하나, 느릿하고도 확실하게 손바닥 쪽으로 접혀 들었다.
주먹, 권拳이었다.
비글로우의 주먹을 온몸으로 받아낸 여파로 숨을 몰아쉬던 오메가의 입이 열렸다.
“백열호왕권? 간지러웠다. 안마의자가 더 시원할 거다.”
그렇게 말하는 오메가의 외투는 다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으며, 안에 입은 특수 마공강 티셔츠도 걸레짝과 다름이 없었다.
비글로우는 뭐라도 하고 싶었으나 몸은 성한 곳이 없었고 입에서는 계속 피가 울컥하고 뿜어지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놈이니 권을 보여주지.”
간신히 손등으로 피를 닦고 고개를 든 비글로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오메가가 자신을 향해 주먹을 뻗어 내는 장면.
너무나도 느리고 굼뜬 것처럼 보였지만 주먹에 모여드는 내력과 그것이 발산하며 만들어내는 기파가 기이할 만큼 아름다워 비글로우는 눈을 뗄 수 없었다.
권만을 수련해 극에 이른 무도가가 평생을 끌어모아 내지르는 정권이 있다면 저럴 것 같았다.
[파신권 - 격공지경隔空之境]
힘주어 뻗은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가벼운 주먹.
하지만 뻗어 나오던 주먹이 마침내 공중에 멈췄을 때, 공기의 흐름이 바뀌었다.
찰나의 적막.
그리고 몰아지는 권풍拳風.
“으윽.”
이질적인 감각에 비글로우가 고개를 내려보았을 때, 그는 보았다.
자신의 가슴팍에 선명하게 파고든 주먹의 형태를.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다시 들어 오메가를 바라봤을 때, 비글로우의 입에서 다시 한번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리고 시야가 바뀌었다.
눈이 부셨다.
그것이 지하창고를 비추는 천장의 조명이라는 것을 비글로우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몸이 권풍에 휘말려 멀리 날아가고 있을 즈음이었다.
그 기묘한 자유로움 속에서 비글로우는 생각했다.
‘무슨 인간이 저렇게······.’
기공에서는 몸을 소우주라 칭한다.
품고 있는 복잡성과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함을 우주에 비유하는 것이다.
따라서 몸과 몸의 충돌은 우주 간의 교류다.
기공에 능한 이들은 자신의 우주뿐만 아니라 약간의 접촉만으로도 타인의 우주를 관조할 수 있다.
물론 낱낱들이 파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며 그저 느낌을 받는 것뿐이다.
비록 사문에서 파문당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기공을 발전시켜 온 비글로우다.
지금은 거액의 계약금에 끌려 브로커 소유의 연구소 보안팀장으로 앉아 있지만, 그를 원하는 이들은 상당히 많았다.
양지의 무도가나 기공 수련자들과 비교하면 실전성과 과격함은 훨씬 뛰어나다는 평도 받았다.
그런 비글로우가 관조한 오메가의 소우주는―
혼돈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뒤흔드는 아찔함.
그런 건 어디서도, 누구에게도 본 적 없었다.
지금껏 그가 바라본 소우주들을 모조리 합치면 저런 혼돈이 만들어질까.
근원적 공포가 밀려들었다.
두려웠다.
죽음이 형체를 이룬다면 오메가일 것 같았다.
콰아앙-
인공 자궁을 보호하기 위한 단상 아래에 비글로우가 처박혔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오메가가 걸음을 옮길 때, 그의 발 주변의 땅이 일렁이며 발목을 옭아맸다.
“팀장!”
마침내 도달한 팀원들, 그중에서도 아직 회복이 덜 된 듯 안색이 파리한 적령자가 부적을 던져 오메가의 발을 묶어놓고 있었다.
자화보살이 방울 소리를 내며 비글로우에게 달려와 상처를 살폈다.
“그 짧은 사이에 이렇게나······!”
비글로우가 오메가에게 나가떨어진 시간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올라오는 피를 억지로 넘기며, 비글로우가 자화보살에게 명령했다.
“저놈은 여기 있는 사람을 다 죽일 셈이다. 대피해.”
“하지만 어디로······.”
디바이스를 조작해서 보안 팀장 권한을 자화보살에게 넘겨준 비글로우.
권한을 통해 연구소 밖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확인한 자화보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글로우의 음성이 끊어질 듯 이어졌다.
“실험체들까지 가져가는 건 무리인 것 같으니, 모두 처리해야 할 것 같다.”
비글로우의 말대로 자화 보살이 팔찌 형태의 디바이스를 조작하자 보안팀장의 또 다른 권한이 작동되었다.
단숨에 적령자의 목숨을 끊어버린 핏빛 단검을 회수한 오메가의 귀에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철퍽-
물기 있는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
철퍽- 철퍽-
인공 자궁이 터지며 품고 있던 배양액을 흩뿌렸다.
터진 인공 자궁 안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일 때, 인공 자궁을 받치던 단상 자체가 접히며 안에 있던 것을 분쇄했다.
비상사태에 작동하는 ‘인멸’ 프로토콜.
검을 쥔 오메가의 손이 덜덜 떨렸다.
그의 눈에 핏발이 솟았다.
간신히 토해낸 포효에 물기가 묻어 있었다.
“미친 새끼들아아!”
인공 자궁 안에 있던 아기들은 벡처럼 호흡기가 약한 건 물론이고 기형의 정도도 심하다고 했다.
모두를 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건 오메가가 생각도 하지 못한 끝이었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다고 해도, 본인이 원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의 피가 이어진 아이들이었다.
벡이 자신의 손끝을 잡던 감각이 생생했다.
다른 아이들은 손 한 번 잡아주기 전에 짧은 삶이 끝나버렸다.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억누른 오메가의 손떨림이 멈췄다.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것, 해야만 하는 것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앙플라메]
삽시간에 화염이 오메가의 몸을 둘러쳤다.
흩날리는 불티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것이 계속해서 그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연구소가 전소될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사람이라고는 오메가 혼자뿐일 때까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