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
090.
“침입자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사람을 끌어모으던 놈이 내게 총구를 겨눴다.
방아쇠에 걸려있는 놈의 손가락이 당겨지기 전―
[히미르]
놈의 손이 총과 한 덩어리가 되어 얼어붙는다.
얼음은 장작을 만난 불이 번지는 것처럼 탐욕스럽게 팔을 타고 올라 종국에는 총 든 놈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뒤처리는 본좌가 하겠노라
머리 위를 날던 이수련의 로봇 아홉 대가 일제히 장갑을 열고 작은 단추 같은 것을 뿌렸다.
단추들이 회전하나 싶더니 곧 가속이 붙어 연구소 주위에서 나를 향해 몰려드는 놈들의 몸에 가서 붙었다.
곧이어 연달아 들리는 폭음.
얼어붙어 있던 놈의 신체 일부가 얼음과 함께 흩날려 내 발치에 닿았다.
“사람 껍데기를 쓰고 짐승 이하의 짓을 하는 놈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죠.”
-지극히 동감이니라.
이수련의 로봇 몇 대는 지상에 내려앉아 내가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광자검을 뽑아 들었고, 남은 몇 대는 여전히 공중을 선회하며 고폭탄을 쏟아내었다.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들은 본좌가 맡을 테니 낭군은 안으로 들어가 할 일을 하면 될 것이다!
“부탁 좀 할게요!”
-바깥 정리가 되면 한 대 정도는 들여보낼 것이니 본좌가 없다고 상심하지 말거라!
“그렇지는 않을 것 같네요.”
왼쪽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방출]
검에 맺혀있던 번개 한 줄기가 뻗어나가 창을 들고 접근하던 리자드맨에게 향했다.
리자드맨은 창을 땅에 꽂아 피뢰침 역할을 하게 해 번개를 유도한 뒤 내게로 쇄도했다.
몸놀림이 굉장히 날래고 보법이 예사롭지 않은 것으로 봐서 기공을 익혔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그렇게 내게 다가오는 와중에도 이수련이 쏟아내는 작은 폭탄을 향해 손을 휘둘러 몇 개를 집은 뒤 내게 던지기까지 했다.
[고속 이동]
폭탄을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리자드맨은 내 움직임과 거의 대등한 속도로 나를 따라왔다.
차캉-
놈의 손톱에서 날카로운 금속이 밀려 나왔다.
금속 손톱의 표면에 기가 맺혔다.
리자드맨 특유의 세로 동공이 나를 응시했다.
한 호흡의 승부.
리자드맨과 나 사이로, 이수련의 폭탄 하나가 마치 민들레 홑씨처럼 하늘하늘 회전하며 떨어졌다.
빙글, 빙글 그리고―
마침내 땅에 닿은 폭탄이 몇 번 점멸한 이후, 폭연과 폭음을 내뿜으며 장렬히 산화한다.
치솟는 흙먼지 사이, 어른거리는 상대의 실루엣을 향해 달려들었다.
놈 역시 움직였고 우리는 교차한다.
폭연이 흩어질 즈음, 리자드맨과 내 위치는 바뀌어 있었다.
서로에게 등을 보인 채.
우웅하는 소리와 함께 광자 검날이 흩어졌다.
“이런······.”
손을 외투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잡히는 것이 있다.
그때, 뒤에서 단단한 것이 땅에 떨어져서 내는 철그렁 소리, 이어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몸을 돌려보니 깔끔하게 잘려 흩어진 놈의 금속 손톱과 [만사재시 매사필종]이 만들어낸 검흔을 가슴과 등에 품은 채 쓰러져 숨을 거둔 리자드맨이 있었다.
검에 들어 있던 배터리를 빼고 외투 안쪽에서 챙겨온 배터리를 끼워 넣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광자 검날이 힘차게 솟는다.
“번개를 먹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충전을 제대로 안 해온 건가. 이번 배터리는 유독 빨리 닳네.”
셔터가 닫히는 연구소로 뛰어가며 리자드맨의 시체를 다시 한번 흘끔 바라봤다.
백호 수인도 그렇고, 저 리자드맨도 그렇고 호락호락한 곳은 아닐 것 같았다.
굳게 닫힌 셔터에 검을 박아 넣었다.
마지막까지 그러쥐고 있던 번개를 밀어넣자 칼자루를 감싸고 있던 괴황지가 재로 변해 흩어지는 것과 동시에 셔터가 붉게 달아올랐다.
검을 움직여 한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구멍을 만들어냈다.
들어서니 건물 전체에 경보음이 가득하고, 나를 향해 뛰어오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림만 봐서는 내가 제일 나쁜 놈이었다.
“아빠 된 것도 억울한데, 나쁜 놈 취급도 한다 이거지?”
[업화]
그려진 마법진에서 화염이 흩뿌려지고, 주변의 공기가 삽시간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뿜어지는 바람에 연구소 안은 더 엉망이 됐다.
“진짜 나쁜 새끼들한테 나쁜 놈 취급받으니까 억울해 미치겠네.”
하나도 살려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조금은 깽판을 쳐도 될 것 같다.
검에 피가 많이 묻을 것 같은 날이다.
#
“외부 침입요?”
딜런이 탈주한 이후 새로 수석연구원 자리에 앉게 된 아멜리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런 아멜리에게 비글로우가 급하게 말했다.
“연구원들을 동원해서 인공 자궁을 대피소로 옮겨. 임시 전력이 가동되니 유지에는 무리가 없을 거다.”
“알겠어요. 그런데 괜찮은 거죠? 계약 조건에 절대 안전 보장이라는 문구를 본 것 같아요.”
“별일 없을 거다. 장담하지.”
이런 상황에도 계약 조건 타령을 하는 연구원을 보며 짜증이 솟은 비글로우가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대답했다.
아멜리의 얼굴에 악의는 없었기 때문.
별종과 독종, 특이종이 모여 있는 연구소 내에서도 아멜리는 유명했다.
종족 자체가 희노애락이 매우 희미하다고 평가받는 바위 인간이었고, 그중에서도 아멜리는 감정이 거의 없거나 어딘가 뒤틀려있다고 주위에서 수군거렸다.
마지막으로 딜런과 함께 있던 연구원이기도 했는데, 그녀가 무언가로 딜런의 멘탈을 터트린 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었다.
아멜리 자신은 그저 아기를 안겨준 것뿐이라고 부인했지만.
그녀가 혼잣말인지 아니면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했다.
“하긴, 이런 위험천만하고 돈 되는 연구를 하는 데 평온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멍청한 일이긴 해요.”
일단 연구원들에게 전달하겠다는 말과 함께 아멜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사라졌다.
비글로우는 유리벽 너머, 지하에 지어진 거대한 공간을 바라보았다.
지하창고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아홉 개의 인공 자궁이 뭔지 모를 온갖 종류의 케이블과 전선에 연결된 채로 펄떡이고 있었다.
불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안쪽이 완전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내부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정도는 되었다.
인공 자궁 하나의 안쪽에서 마치 헤엄치듯 빙글 도는 물체가 있었다.
거리가 굉장히 멀고, 그 물체도 큰 편이 아니었으나 오랜 기간 기공을 연마해 온 비글로우의 눈에 그런 것 정도는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팔 하나가 다른 쪽보다 길다.’
그것도 아주 많이.
‘실패한 실험체’들은 다 저렇게 어딘가 결함이 있었다.
개별적 결함 말고도 공통된 결함은 폐와 호흡기.
인공 자궁 밖을 벗어나면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비글로우도 들은 적 있었다.
애달픈 감정이라도 생길 만하건만, 이미 뒷세계에서 닳고 닳은 비글로우의 메마른 감정에는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저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하나 늘었다는 짜증이 조금 꿈틀댔을 뿐이다.
이곳은 다른 팀원들에게 맡겨 둔 채 나가려는데, 비글로우의 목걸이형 통신 디바이스가 세차게 진동했다.
“뭐야.”
-팀장! 침입자는 해결사 오메가인 걸로······으억!
단말마와 함께 끊어지는 팀원의 목소리.
당황할 틈도 없이 통신에서 오메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듣고 있는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는데, 살려줄 마음 없으니까 헛된 희망 품지 말길 바란다. 이상.
주인의 생체신호 이상을 감지한 팀원의 디바이스가 꺼지는 것과 동시에 오메가의 말도 끊겼다.
잔뜩 주름진 비글로우의 미간에 핏줄이 불거졌다.
꽉 움켜쥔 그의 거대한 주먹에 기가 당장이라도 흘러넘칠 듯 넘실거렸다.
“건방진 것도 정도가 있지······.”
목걸이를 조작해 보안팀 채널로 접속한 비글로우가 낮게 명령했다.
“외부에는 최소한의 대응 인원만을 남기고 전원 건물 내부로 집결해 침입자 사살에 총력을 다한다. 침입자는 해결사 오메가. 다시 한번 말한다. 침입자는 해결사 오메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사살할 것.”
비글로우도 올라가려는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다가왔다.
연구원을 통솔하러 간 줄 알았던 아멜리였다.
“우연히 보안팀 채널을 들었는데, 침입자가 해결사 오메가라는 거 정말인가요?”
무슨 방법으로, 어떻게 보안팀 채널을 들었는지 황당한 마음이 앞선 비글로우였지만 이제 수석연구원이 된 아멜리에게 면박을 주거나 지적하는 것도 옳은 것 같지는 않아 적당히 답했다.
“그래.”
돌에 파묻힌 아멜리의 눈이 반짝였다.
“샘플 혈액이 오래돼서 오염 걱정이 많았는데 직접 왔다니 다행이네요. 사살하게 되면 저 좀 불러줄 수 있을까요? 혈액 채취 좀 하고 싶어요. 음······가능하면 머리카락도, 그리고 내장도, 또 정강이나 대퇴골도요.”
그런 아멜리를 보며 속으로 ‘미친년······.’이라는 말을 삼킨 비글로우였다.
그는 답을 하지 않고 지상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직 오메가는 그곳에 있어야 했다.
자신의 주먹에 실린 내력을 흩어낸 오메가를 떠올린 비글로우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었지만, 냉정히 바라보자면 아기를 안고 있던 오메가 쪽이 명백히 불리한 위치였음을 비글로우도 알고 있었다.
전신으로 기를 보낸 비글로우가 탁기濁氣를 밀어내듯 숨을 내뱉었다.
그의 흰 털이 기의 흐름에 따라 물결치는 갈대처럼 출렁였다.
잡념을 지우고 오로지 앞으로 벌어질 전투에만 집중한 비글로우가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릴 때 들리는 통신은 다듬어 놓은 정신을 흐트러트리기에 충분했다.
-오메가가 사라졌습니다!
“뭐?”
-안 쓰는 방으로 들어가길래 포위에 성공한 줄 알았는데, 바닥을 뚫고 사라졌습니다!
“찾아! 당장!”
오메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지하층이었다.
-지하창고입니다!
한창 인공 자궁이 옮겨지고 있을 곳.
엘리베이터를 탈 겨를도 없이, 부하들과 함께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비글로우는 네발짐승의 형태로 변해 마구 달렸다.
조금 전 아델리와 대화를 나누던 곳에 이르자 어떻게 들어왔는지 지하창고에 진입한 오메가가 마구 날뛰며 연구원들의 목숨을 끊는 것이 보였다.
‘돌아 내려가기엔 늦다.’
그렇게 생각한 비글로우가 숨을 한 번 들이쉰 채로 유리창을 향해 목청을 틔웠다.
[사자후獅子吼]
목에 이식한 파장 간섭기가 사자후와 유리 간의 진동수를 맞췄고 이내 바르르 떨던 유리창이 깨지면서 아래쪽으로 파편을 뿌렸다.
비글로우는 망설임 없이 아래쪽으로 몸을 날렸다.
착지한 그의 눈에 오메가가 검을 휘둘러 아델리를 수십 조각의 바위 파편으로 만드는 장면이 생생히 들어왔다.
“지네 맘대로 내 생체정보를 가져다 쓴 것도 더럽게 열 받는데 무슨 생생한 샘플 타령이야. 이 돌덩이년은 보통 사이코패스가 아니네.”
저 별종 연구원이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의 최후를 앞당겼음을 알게 된 비글로우가 이제는 잔해가 된 돌덩이들을 발로 차서 옆으로 치웠다.
진정한 전투가 시작될 터였다.
몸을 돌린 오메가와 비글로우의 시선이 얽혔다.
오메가가 스냅샷에게 입수한 정보를 기억 나는 대로 읊었다.
“비글로우, 백호 수인, 원형방에서 수련, 사문의 허가 없이 지하 투기장에 참가해서 파문. 이후에는 뒷세계 조직들의 경호나 보안 영역에서 한 자리 차지. 이외에 뭐 주절주절 많았던 것 같은데 기억 안 나네. 기억 안 나니까 쓸데없는 거였겠지?”
“말이 많군. 유언인가?”
“사람 죽으면 약력 읊어주는 거 모르냐? 이 사람이 뭘 했고 어떻게 살았고 그런 거. 그거 하는 중이니까 조용히 있어라.”
자신이 죽을 거라는 오만한 선언을 들은 비글로우가 몸에 내력을 돌리며 웅크렸다.
당장이라도 도약할 듯 웅크린 비글로우의 네 발에 권강이 휩싸이기 시작했다.
“꼴에 무인이라 이거지?”
오메가가 검을 회수해 허리춤에 꽂았다.
그리고 양손에 주먹을 쥐고 한 손은 가슴 앞에, 다른 한 손은 가슴에서 조금 떨어트린 위치에서 앞으로 뻗었다.
하체에는 힘을 단단히 주고 무게 중심을 낮췄다.
격투가나 권사가 취할 자세.
“나도 맨손 기공 좀 익혔어.”
앞으로 내민 주먹을 펴서 손바닥을 하늘을 보게 한 뒤, 그것을 접었다 편다.
까딱, 까딱.
“솜씨 좀 보자. 하수.”
명백한 도발.
비글로우가 사냥감을 향해 온 힘을 다해 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