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9.
089.
“아주 짜릿할 것 같구나. 재밌겠어.”
어느새 전원이 들어온 로봇에서 들리는 이수련의 목소리.
아홉 대의 로봇이 스스로 움직여 결속장치를 풀고 있었다.
“뛰는 건 전데요!”
속 편한 소리나 하는 이수련에게 목소리를 높이고 있자니 젠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긴급성, 의외성, 강력함. 오메가 씨가 제시한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저쪽의 진법을 흩트리려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겁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을 사용해야만 했어요.”
“안전은 걱정하지 말거라! 낭군은 본좌가 지켜낼 것이다!”
직접 뛰는 건 그쪽들이 아니니까 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지!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사이에도 번개 줄기가 눈을 멀게 할 듯 엄청난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사라졌다.
최대한 아래를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직······아직이니라.”
로봇 하나가 내 뒤로 다가와 스카이다이빙 강사처럼 내 몸과 자신의 몸을 결속했다.
그리고 내 손에 작은 버튼을 넘겨주었다.
“분리 버튼이니 신호하면 눌러야 할 것이니라.”
그걸 받아들기 무섭게 이수련이 외쳤다.
“내려간다!”
“우와악!”
뒤에서 나를 안은 로봇이 아래로 뛰어내렸고, 남아 있던 로봇들도 줄지어 아래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아래에서 치고 올라오는 바람에 이마 부근의 피부와 머리칼이 당기는 느낌이 너무나 이질적이었다.
로봇들이 등과 어깨에서 푸른 빛을 내뿜으며 고도를 조절했다.
여덟 기의 로봇이 나를 중앙에 두고 둘러싸는 형태.
“고도 조정 완료했느니라! 다음은 연결!”
주위의 로봇들이 가운데서 나를 안고 있는 로봇에게 뭔가를 쏘아 보냈다.
굉장히 촘촘하게 감겨있는 전선.
“이거 잘리거나 다른 기타 이상 생기는 건 아니죠?”
“해저 케이블에 들어가는 전선이니 내구성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으니라.”
“오!”
“그런데 본좌도 이런 식으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니라.”
“예?”
“번개를 모으는데 원격 로봇을 사용하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었겠느냐.”
말을 마치는 사이, 로봇들 사이의 전선 연결이 완료되었다.
가운데에서 나를 안고 있는 로봇에 모든 전선이 모여드는 모양새였다.
파직-
대열의 오른편에 있던 로봇에게 번개가 직격했다.
전선을 타고 오르는 푸른 플라즈마가 내 쪽으로 향하는 것이 눈에 생생하게 들어왔다.
침을 꿀꺽 삼키는 그 짧은 시간, 플라즈마는 나를 안고 있는 로봇을 통해 내게 전해졌다.
엄청나게 강력한 안마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전기가 타고 오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
출발 전에 젠이 손수 걸어준 술법 덕에 감전되는 일은 없었지만, 전신이 저릿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젠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왔습니까?”
“네. 한 발 시원하게 맞았어요.”
“왼손에 있는 부적부터 확인해봅시다.”
밀려드는 바람과 번개가 남긴 저릿저릿함 때문에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왼쪽 손목에 붙어있는 부적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됐어요!”
회색으로 쓰였던 부적의 글씨가 푸르게 빛나고 있었다.
번개의 힘을 저장하는 부적인 축전부蓄電符.
이것 역시 젠이 직접 만들어 준 것이었다.
“좋습니다. 더 빠르게 모아보죠.”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로봇들의 어깨와 등에 안테나가 솟아났다.
저 안테나가 피뢰침 역할을 할 거랬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로봇들에게 벼락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심지어 거의 가로로 날아와 꽂히는 번개도 있었다.
연결된 전선이 끌어모은 번개를 계속해서 가운데로 보냈고 온몸 이곳저곳에 붙은 축전부가 삽시간에 푸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축전부를 모두 연동시켜놨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언제죠?”
이제 아래쪽에 우거진 산림이 슬슬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이런데다가 연구소를 차릴 생각을 한 것도 놀랍고, 그걸 진법과 결계로 감추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곧 진법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겁니다. 모습을 감추는 것뿐만 아니라 감각을 혼란하게 하거나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힘으로 부수기 위해 번개를 모아둔 것이니 가능하면 처음부터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해했어요.”
“축전부에 모인 번개는 모두 검으로 향하게 조치해놨습니다.”
허리춤에 단단히 결속된 칼자루에 촘촘히 감싸진 노란 종이.
부적을 만들 때 쓰는 괴황지였다.
그 순간, 머리가 핑 돌았다.
전기가 오르거나 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마치 딛고 있던 바닥이 갑자기 무너져 아래로 끝없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헤아리기 힘든 감각.
‘들어 온 건가!’
들고 있던 버튼을 눌렀다.
로봇과 나를 단단히 묶어두고 있던 연결장치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낭군······!”
외마디 외침을 마지막으로 이수련과 젠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얼굴에 열기가 확 밀려왔다.
조금 전까지 내려다보던 산림은 어딜 갔는지 자취조차 보이지 않고, 아래로는 마그마가 들끓는 화산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간헐적으로 분출되는 연기에서 계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진법에서 보여주는 환시幻視다.
믿기지 않을 만큼 생생하지만 속아서는 안 된다.
마그마가 꿀렁이는 거대한 구덩이에서 뭔가 솟아올랐다.
용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거대한 도마뱀이 몸에서 마그마를 뚝뚝 흘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떨어지는 나를 단숨에 목 뒤로 넘겨버리겠다는 것처럼 입을 쩌억 벌린 놈의 혀와 입 안에 용암이 가득했다.
허리춤에서 칼자루를 뽑아 두 번 비틀었다.
미리 칼자루에 감겨있던 괴황지가 구겨지는 것과 동시에 몸에 붙어있던 부적들이 생명을 가진 것처럼 펄럭이며 날아가 검을 쥔 내 손을 감쌌다.
부적들이 모아두었던 힘을 뿜어낸다.
작은 스파크에 불과했던 푸른 빛 번개가 순식간에 몸집을 불리며 손에 잡힌 검을 타고 오른다.
검의 끝에 닿았지만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해서 뻗어나가는 번개.
고릴라의 배를 베고 건물 위로 솟을 때 사용했던 스킬은 [유성승천]이었다.
이건 그와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스킬.
[유성낙하流星落下]
[필격살必擊殺]
어마어마한 기세로 어느새 하늘 끝까지 닿은 번개를 쥐고 휘두른다.
내 분노를 대변하듯.
#
연구소로 복귀한 비글로우는 책상 위에 올려진 홀로그램 영사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수의 수면처럼 잔잔하던 홀로그램이 한 번 일렁이더니 목소리가 들렸다.
-딜런을 죽이긴 했지만, 아기를 회수하는 일은 실패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목소리에서 알 수 있는 정보는 남성으로 추정된다는 것뿐이었다.
그마저도 음성변조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브로커’
세계 곳곳의 큰 손들과 연구소를 연결해주는 존재.
이 자 역시 거물이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연구소 내에서는 수석연구원인 딜런만이 브로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자신과 대화할 일도 없는 사람에게 보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비글로우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신시아 야스민에 해결사 오메가까지 있어서 실패라······.
브로커의 목소리에 분노가 실리기 시작했다.
-보고는 올라오지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려워. 너희 같은 놈들을 데리고 뭔가를 한다는 게 너무나 어려워.
비글로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퓨어 아기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 줄 아나? 너 따위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다.
비글로우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 흘러나왔다.
-또 오메가인가.
‘또?’
하지만 그 의문을 내뱉지는 않은 비글로우였다.
-다른 실험체들은 어떻게 되고 있지?
“상품성을 갖추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성공한 데이터가 있으니 재생산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합니다.”
-조속히 진행하라고 일러.
“알겠습니다.”
-일의 뒤처리는?
비글로우는 머리를 굴렸다.
보안팀원 중 한 명인 무당, 자화보살의 말에 따르면 저쪽에서 딜런을 초혼한 것 같다고.
힘을 써서 방해하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나 방해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확실한 건 딜런의 영 자체를 흩트려 버렸다는 것 정도라고 했던가.
자신의 얼굴도 노출되었다.
수가 많지 않은 호랑이 수인 중에서도 백호 수인은 더더욱 희귀하다.
오랜 기간 뒤쪽 세계에서 활동한 비글로우지만, 찾으려고 든다면 자신을 못 찾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한 비글로우가 답했다.
“제 얼굴이 노출되긴 했지만 연구소가 드러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딜런도 완전히 처리했습니다.”
-그 말, 책임져야 할 거다. 연구원들이 동요하지 않게 관리하고 새로운 퓨어를 만드는 데 집중하라고 전해.
알겠다는 대답도 하기 전,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딜런 그 개새끼······.”
혼잣말로 욕지거리를 한번 읊조린 비글로우가 창밖을 바라봤다.
여전히 밖에는 비가 내리고 번개가 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우중충한 동네야.”
그 순간, 그의 눈에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이 들어왔다.
땅에서 하늘까지 이른 거대한 번개가 연구소를 향해 쏟아지는 광경.
“분명······번개를 피하는 법구法具를 묻어놨다고 했는······.”
분명 번개가 흩어져야 하건만 오히려 연구소를 감싸고 있는 진법과 결계가 번개에 말려들어 깨지고 흐트러졌다.
벌떡 일어난 비글로우가 도사인 적령자가 머무는 방으로 달려갔다.
팀장이 지닌 마스터키를 사용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귀환부의 사용 반동으로 며칠간 요양을 하겠다던 적령자가 입에서 시커먼 피를 뿜으며 각혈하고 있었다.
“뭐야! 왜 그래!”
“티······팀장. 누군가가······진법을 통째로······얽어서 부쉈어······.”
적령자는 넓은 연구소 부지를 감추고, 침입자를 파악하기 위해 이상이 발생하면 그 부위에서 통증이 오도록 진법을 스스로의 몸과 연결해 놓았다.
진법이라는 것은 지형지물이나 사물을 기준 삼고 술력을 투사해 원하는 심상을 펼쳐내는 술법.
적령자가 사용한 것은 강력한 효과를 내기 위해 몸을 진법의 일부로 삼는 생신위탑生身爲塔이라는 술법이었다.
그런데 귀환부라는 대규모 이송 술법을 써서 심신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진법이 통째로 흔들리니 역으로 장기에 손상이 간 것.
불길한 직감을 받은 비글로우가 연구소 내의 의사에게 적령자를 맡겨놓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
“잘도 숨겼네.”
도마뱀을 지져버리자, 화산지대는 감쪽같이 사라졌다.
공간이 부서지듯 흩어지고, 안쪽에 숨겨져 있던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아직까지 주위에서는 번개가 치고, 나는 공중에 있다는 것.
[저속 낙하]
낙하 속도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땅에 닿으면 곤죽이 되어 뭉개지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속도였다.
운이 정말 좋아도 틀림없이 정강이 뼈는 부서질 거다.
그때, 뒤에서 나를 단단히 붙잡는 느낌이 났다.
고개를 올려보니 이수련의 로봇이었다.
“신호도 안 했는데 말도 없이 산으로 떨어져 내려서 낭군이 미쳐버린 게 아닌가 했노라!”
그렇게 말한 로봇은 지상에서 2m 정도 되는 곳에서 속도를 낮춘 뒤 나를 떨어트려 주었다.
꼭 쥐고 있던 검을 살펴보니 조금 전의 거대한 번개까지는 아니지만,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여뢰가 검을 타고 파직대고 있었다.
“손 들어!”
총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를 든 놈들이 내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연구소를 지키는 놈들인가.
“뭐 하는 놈이냐!”
방풍 안경을 벗어 던지고 번개가 파직 거리는 검을 어깨높이까지 들어 올린 뒤 답했다.
“네놈들 덕에 아들이 생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