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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85화 (86/258)

085.

085.

으아앙-

내 품에 안긴 벡이 울었다.

괴한 중 몇몇의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아기와 관련 있나.’

이수련도 직감했는지 어느새 눈에서 불빛이 번쩍이는 로봇 헤드를 쓰고 딜런이 엉거주춤 누워있는 소파를 지키고 있었다.

앨리스를 자기 뒤로 숨긴 신시아가 뱃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고오오오-

듣기만 해도 뒤통수가 쭈뼛해지고 소름이 돋는 소리와 함께 새카만 원혼 몇이 신시아를 호위하듯 형체를 드러냈다.

“뭐하는 놈들이냐.”

놈 중 하나가 내 말에는 답하지 않고 고개를 까딱했다.

딜런이 외쳤다.

“연구소의 특작······!”

딜런의 말은 끝을 맺지 못했다.

소파 뒤편이 일렁이더니 불길해 보이는 단검을 든 괴한이 나타났다.

치켜올린 단검이 딜런의 가슴으로 향할 때, 이수련이 몸을 던져 주먹을 뻗었다.

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로봇 헤드에서 부품이 뻗어나가 이수련의 팔을 감쌌다.

“본좌를 앞에 두고 어딜!”

지우우웅-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이수련의 팔과 주먹을 감싸고 있는 장치의 외장外裝이 열렸다.

열린 외장 아래서 드러난 작은 분사구 앞에서 공기의 흐름이 기묘하게 뒤틀렸다.

“힘 단단히 주거라.”

로봇 헤드가 가리지 못하는 이수련의 하관이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지 않으면 곤죽이 될 터이니.”

투콰콰콰콰-

분사구에서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만큼 빠른 속도로 압축 공기가 연사 되었다.

불길한 단검을 들고 있던 괴한의 몸 곳곳이 뒤틀렸다.

옷 너머의 형체만 봐도 뼈가 심하게 부러진 걸 알 수 있을 정도.

이수련의 움직임을 신호로 신시아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끝을 베어 물었다.

그녀의 입술을 타고 흐르는 피가 붉은색에서 검디검은 묵색墨色으로 바뀌었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공중에 휘두르자 그녀 주위를 맴돌던 원혼들이 떨어지는 핏방울을 받아먹고 귀곡성을 질러댔다.

“먹어 치워 너희들의 새 동료로 만들어라.”

신시아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괴한들을 향해 돌진하는 원혼들.

원혼들이 덮치기 직전, 괴한들 사이에서 맑고 청명한 소리가 들렸다.

짤랑― 짤랑― 짤랑―

작은 방울이 울리는 소리, 하지만 소리는 점점 커져 종국에는 머릿속을 가득 메울 정도가 되었다.

[명경지수]를 발동하지 않았다면 머리를 감싸 안고 쓰러질 정도였다.

방울 소리를 마주한 원혼들의 움직임이 굼떠졌다.

그 사이, 괴한 중 하나가 품에서 뭔가를 던져 원혼들에게 박아넣었다.

작은 나뭇가지.

원혼들이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쳤다.

신시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방울에 회화나무! 무가巫家 놈이 있군! 감히 내 원혼을 제령除靈하려 들어?”

그리고 내게 신시아가 외쳤다.

“이놈들, 대비해왔어요!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목표가 신시아는 아닌 것 같았다.

몇몇 괴한들이 계속해서 딜런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으며,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는 괴한 중 무격巫覡(남자 무당=박수)이나 만신萬神(높은 신을 모신 여자 무당)으로 추정되는 이는 신시아를 막아 세울 뿐, 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았다.

괴한 중 한 명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움직임이 가볍다.’

머리가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정도로 덩치가 컸지만 슥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잘 단련되어 있었다.

그가 주먹 쥔 손을 머리 옆으로 들자, 괴한들이 딜런에게 달려드는 것을 멈추고 방울 소리도 아주 작아졌다.

소강상태.

그 짧은 시간에 이수련의 로봇 헤드에는 잔기스가 여기저기 보였고 신시아는 피가 흐르는 손가락으로 수인을 바꿔 맺고 있었다.

덩치 큰 괴한에게서 심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기를 내놓는다면 물러가겠다.”

아직 품에 안고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이름이 벡이라고 했던가.

조금 전까지도 열심히 울어대느라 눈물이 맺힌 눈, 콧물이 흐르는 코 주변.

그런 아기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실방실 웃었다.

“아부~.”

딜런의 말이 맞다면 어딘지 모를 누군가에게 보내져 짧은 생을 마감해야 할 아기다.

“안 됩니다! 그만둬 비글······커헉!”

악을 쓰던 딜런이 말을 멈추었다.

그가 두 손으로 자기 목 주위를 더듬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틀어쥐고 있는 것처럼.

덩치 큰 괴한이 딜런을 향해 한 손을 뻗고 있었다.

딜런의 목을 조르는 손 모양을 한 채로.

기를 이용해 멀리 있는 물체에 간섭하는 [허공섭물]과 흡사하다.

팔을 뻗은 채로 여전히 아이에게 눈을 고정한 괴한이 말했다.

“딜런, 널 바로 죽이지 않은 건 혹시나 마음을 바꿔먹었을까 해서야. 그런데 아닌 것 같군.”

우두둑-

딜런의 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적나라했다.

괴한이 손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딜런의 몸이 소파 아래로 무너졌다.

“이 노옴!” / “죽어!”

이수련과 신시아가 온 힘을 다해 달려들었고, 다른 괴한들이 막아섰다.

한순간에 주위가 난장판이 되었다.

신시아의 기운을 받아 더욱 음산해진 원혼이 무당으로 추정되는 괴한의 팔을 씹어 삼키자 방울 소리가 사라졌다.

이수련은 아홉 개의 꼬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며 자신에게 덤벼드는 괴한의 신체 구조를 변형시켜주고 있었다.

다른 괴한들이 밀리고 있음에도 내 앞에 있는 괴한은 흔들림 하나 없었다.

“다시 말한다. 아기를 내놔.”

내 유전 정보로 만들어진 아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내 의사는 한 방울도 섞여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몰랐고, 여기서도 모른 척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하지만 내가 여기서 외면하면 생물학적으로 내 아들인 이 아기, 벡은 틀림없이 죽는다.

내 품에 안긴 아기의 체온이 따스했다.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닿아 있는 손과 가슴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연구소라고 했었나.

이런 아기들이 벡 하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나는 고결한 성자도 아니고 희생적인 삶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여기서 아기를 넘겨주는 것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 쯤은 안다.

내 의사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지만 피는 한 방울 이상 섞인 아기다.

아이를 안은 손에 단단히 힘을 주며 말했다.

“대가는?”

“이런 상황에서 대가를 원하나?”

변조된 음성에서 기가 찬다는 뉘앙스가 숨김없이 묻어나왔다.

“살려주는 것이 대가다.”

“아니, 그거 말고.”

벡을 안고 있지 않은 손에서 얼음 칼날이 뻗어 나왔다.

“나한테 쾌락 없는 책임을 경험하게 한 대가.”

[고속 이동]

내가 앞으로 다가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건지, 괴한이 뒤로 빠지는 반응이 조금 늦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얼음 칼날로 놈의 얼굴을 그었다.

괴한이 손을 들어 얼굴을 보호했다.

손에서 피어오르는 후끈함에 주위의 공기가 일그러졌다.

그 때문인지 얼음 칼날의 끝이 녹아 깊게 베지 못했다.

복면의 아랫부분이 잘리고, 안쪽에 숨겨져 있던 놈의 얼굴이 드러난다.

‘백색 털, 무늬?’

더 이상의 정보는 파악이 힘들었다.

놈이 달려들었다.

“서로 피곤할 일을 만드는군.”

나를 향해 뻗는 주먹에 무시무시한 기운이 응집되어 있었다.

벡을 안고 있었기에 허리춤에 있는 칼자루를 꺼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벡을 놓아버리기도 위험하다.

‘흘린다.’

대기를 찢을 듯 뻗어오는 주먹을 향해 나도 얼음 칼날을 다시 한번 세웠다.

열기 때문에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놈의 주먹이 얼음 칼날을 부수기 시작했을 때, 나도 마찬가지로 주먹을 쥐었다.

[파신권 – 이화접목移花接木]

꽃 핀 나무를 다른 나무에 접붙인다는 말 그대로, 이 스킬은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반격하는 것에 그 묘리가 있다.

내 주먹과 괴한의 주먹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힘의 방향이 출렁하고 흔들렸다.

복면 너머로 보이는 괴한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그 일그러지는 공간을 훑던 힘이 다시 내 쪽을 향해 뻗어오기 시작했다.

‘이놈, 보통이 아니다.’

벡을 보호해야 했기에 몸의 절반 이상으로 가리고 있어 오로지 공격에 전념하기 어려웠다는 점, [이화접목]은 상대를 끌어들여 힘을 다 받아 낸 뒤 돌려줘야 하는데 자세의 불안정함으로 인해 주먹을 먼저 뻗은 점 등등

스킬을 완전히 펼치지 못한 핑계는 수도 없이 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이런 불안정한 스킬 정도는 뭉개고 들어올 만큼 괴한의 내력이 거대하다는 데 있었다.

결국 이화접목은 돌려주기는커녕 놈의 주먹에 실린 힘을 조금 흩어놓는 수준에 그쳤다.

“오메가 님!”

신시아의 외침이 귓가에 꽂혔다.

하지만 바라보지 않았다.

내 눈은 날아오는 주먹, 그 너머의 괴한을 바라보고 있다.

주먹이 후끈후끈한 거 보니까 양공陽功이라도 익혔나 본데, 얼마나 잘 참나 보자.

괴한의 주먹과 내 눈 사이, 삽시간에 사람 키 하나 정도의 마법진이 그려진다.

[아우토다페]

나이누안마저 얼음 속으로 들어가 피한 그 마법.

불의 엄벌.

화형의 거행.

내가 몸을 뒤로 빼는 것과 동시에 마법진에서 끔찍한 정도의 열기를 지닌 화염이 괴한을 덮친다.

공중에서 주먹을 회수한 뒤 팔을 교차해 앞에 세워 몸을 웅크린 괴한.

화염은 그의 몸에 닿지 않았다.

마치 얇은 막이라도 존재하는 듯이.

“호신강기?”

이수련의 목소리다.

‘앞에서 안 통하면.’

[비스코티Biscotti]

화염계 스킬에 한정해서 이전에 사용했던 스킬을 복제하는 스킬.

놈의 뒤에 마법진이 하나 더 생긴다.

‘뒤에서도 굽는다.’

거꾸로 두 번은 못 태워도 앞뒤로 태워줄 수는 있다.

[아우토다페]가 끝났을 때, 괴한의 양팔과 등판이 새카맣게 타 있었다.

휘청이던 놈이 두 다리로 버티고 섰다.

불에 거의 다 타버려서 쓰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는 복면 너머, 호랑이의 거대한 눈동자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눈을 향해 이죽거렸다.

“호랑이 고기는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아쉽네. 백호라 더 별미일 것 같은데.”

분노 가득한 목소리가 내게 답했다.

“그쪽이 오메가군. 기묘한 인연이야.”

“맞아. 기묘해. 얘가 내 아들이라며?”

백호 수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딜런이 쓸데없는 말을 너무 했군.”

“이런 짓을 할 거면 로열티라도 줘가면서 하면 내가 이렇게 화날 일은 없잖아. 아니다. 로열티를 줘도 이건 허용 안 했을 것 같아. 아직 한창인데 싱글 대디는 너무하잖아. 결혼도 안 했는데 이혼부터 한 거 아니냐고.”

선언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들인지 다 낱낱이 불어. 얘 같은 애가 얼마나 더 있는지도 말하고. 그럼―”

놈이 아까 했던 말을 돌려줬다.

“대가로 살려는 줄게.”

깨진 창문 너머, 빗소리를 뚫고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설 집행자들 몰려들고 있나 보다. 실적 거리가 여기 있네?”

백호 수인의 윗입술이 들썩이자 길게 자라난 송곳니가 얼핏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철수한다.”

그 말에 괴한 중 하나가 주문을 외우며 허공에 불붙은 부적을 던졌다.

괴한들의 몸이 흐려지더니 이내 사라졌다.

“무가에 이어서 도가道家의 귀환부歸還符까지······. 대체 뭐하는 놈들이지? 한 놈이라도 잡아서 뿌리를 캐내야 했는데!”

신시아가 목소리를 높이자 이수련이 곧장 반박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앨리스와 저 아기를 보호해야 했느니라. 상황이 길어졌다면 불리해졌을 게다. 낭군이 일부러 퇴로를 틔워 준 게 최선의 판단이었느니라.”

“그런······거였어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발하되 은근히 퇴각을 종용했다.

이판사판을 벌이면 이쪽이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내 시선이 딜런의 시체에 닿았다.

“하지만 정황을 알려줄 사람이 죽어버렸네요.”

“아뇨.”

신시아의 목소리.

“나가서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주세요. 초혼의식을 할게요.”

“초혼이라면······.”

“망자의 넋을 불러들이는 의식이에요.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일수록 효과가 좋아요.”

아직도 피가 흐르는 신시아의 손가락과 파리한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쉬었다가 하죠.”

“안 돼요. 그 무당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예요. 지금 바로 해서 한마디라도 들어야 해요.”

원혼들에게 꽂힌 회화나무를 꺾어버린 신시아가 이를 부득하고 갈았다.

“아까 그거 분명히 도가 계통이에요. 젠 오빠한테 연락해서 알아보라고 해야겠어요.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감히 나한테 이따위로 망신을 줘?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신시아의 내면 무언가에 불이 붙었다.

신시아에 의해 밖으로 내몰린 내 눈에 급하게 올라오는 키클롭스 아재가 보였다.

“오사장! 괜찮아? 후앙이 신고했어. 뭔가 침입한 것 같다고.”

가까이 온 키클롭스 아재가 내 품에 안긴 아기를 보고 흠칫 놀랐다.

“아기? 어떻게 된 거야?”

이수련이 날 보고 고개를 저었다.

내막을 밝힐 필요는 없다는 의미겠지.

“제 아들이래요.”

잠시 얼빠진 얼굴을 하던 키클롭스 아재가 빵 터져서 내 어깨를 쳤다.

“이런 상황에도 농담하는 거 보니까 심각한 일은 아니겠구만. 안쪽에는 누가 있나?”

“정전 때문에 뭐가 쓰러져서 치우고 있어요. 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래. 신고받고 우리 애들 다 데리고 왔잖아. 비 오면 범죄율이 올라간다는 말 들어봤지? 비 와서 좋을 거 하나 없어.”

“그러게요. 비 와서 좋을 거 하나 없네요.”

다른 사설집행자들에게도 말해주겠다면서 키클롭스 아재가 내려간 뒤, 후앙에게도 적당히 상황설명을 해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돌려세웠다.

앨리스가 나를 타박했다.

“아들이라고 말하면 어떻게 해요? 진짜 아들은 아니지만. 아닌가? 아들인가?”

이수련도 거들었다.

“분명, 하지 말라고 신호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키클롭스 아재나 후앙이 믿는 눈치였어요? 다 내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했잖아요. 자기들은 댈 핑계도 없어서 눈만 피하고 있었으면서!”

내가 잘했네, 네가 못했네, 얼굴이 닮은 것도 같네, 발가락이 닮았네, 이제 어떻게 할 거네 하는 얘기를 나누다 보니 한 시간가량이 흘러갔고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짧은 시간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신시아가 기운 빠진 목소리로 우릴 불렀다.

“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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