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
082.
렙틸리비안 로드를 이용해 대림 하 렙틸리비아로 오니 내 바이크를 보고 탄성을 내뱉는 파충류 수인들이 보였다.
익숙한 시선을 한 번 즐겨주고 렙틸리비아 중앙에 있는 건물로 향했다.
올라가니 저번에 나를 맞이했던 비서가 보였다.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얼른 밖으로 뛰어나와 나를 맞이했다.
“오메가 님 맞으시죠? 저번에 오셨을 때는 미처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오실 거라고 스콰이어 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비서가 스콰이어의 집무실이 있는 곳의 반대편으로 나를 안내했다.
“스콰이어 님은 아드님과 함께 안에 계실 겁니다.”
비서가 빠르게 물러가고, 혹시나 몰라 문에 노크했다.
내 손등이 문에 닿기 직전, 앳된 목소리가 안쪽에서 들렸다.
“들어오셔도 돼요.”
들어서자 악어 수인인 스콰이어와 그의 아들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에브레가 있었다.
스콰이어가 입을 쩍 벌리며 웃는 것으로 나에 대한 반가움을 표현했다.
“오메가! 한번 놀러 오지 않고!”
“근래 바빴어. 요 며칠 사이에 조금 짬이 나서 바로 올 수 있었던 거야.”
“그래.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루트 빌딩에서 고릴라와 치고 박던데. 영화인 줄 알았지 뭐야.”
네오-서울 인프라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는 강남 에어리어 한복판에서 그 난리를 피웠으니 파급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업로더가 삭제한 폐교에서의 인사 영상도 저화질 버전으로 다시 발굴되어서 소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루트는 물론이고 앨리스, 야스민 가문의 여론대응팀까지 진화에 나섰지만, 워낙 본 사람도 많고, 촬영한 사람도 많아서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렇게 쉽게 말할 일인가? 고릴라 수인, 오바산조 맞지?”
“알아?”
“젊은 시절에 한 번 붙은 적 있어.”
“그래? 별로 감명 깊지는 않았어. 네 데스롤보다 감흥 없더라고.”
내 칭찬에 스콰이어가 기분 좋은 얼굴로 껄껄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리고 깜빡했다는 듯 옆에 있던 에브레를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내 아들 에브레. 전에는 얼굴만 봤었지?”
스콰이어의 아들이고, 사춘기 즈음이라고 들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을 줄 알았는데 에브레는 스콰이어와 얼굴만 닮았을 뿐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 행동과 말투에 묻어났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구해주셨다고 들었는데 인사도 못 드렸네요. 병문안도 오셨는데 그냥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간 내 잘못이지. 청운 선생님이 막더라고.”
“청운 선생님한테도 오메가 씨 얘기 종종 들었어요.”
“뭐라고 하시디?”
“침 꽂는 맛이 있는 환자랬어요.”
몸을 부르르 떨자 에브레가 나를 보고 웃었다.
그런 에브레에게 말했다.
“오메가 씨는 너무 딱딱하고 그냥 형이라고 해.”
“아빠가 오메가 씨를 형님처럼 대하던데 저도 형이라고 하면 좀 이상해요. 삼촌이라고 해도 돼요?”
“편한 대로.”
그리고 우리 둘을 흐뭇하게 보고 있는 스콰이어에게 에브레가 말했다.
“그럼 아빠는 잠시 나가 있어 줘요. 오메가 삼촌한테 할 얘기 있어.”
“아빠도 들으면 안 되는 거냐?”
에브레가 입을 다물고 스콰이어를 바라보자 스콰이어가 뒤통수를 긁으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문이 닫히고, 본격적인 얘기를 할 시간이었다.
우리는 방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에브레 네가 자기 아들이라서 납치한 것 같다고 스콰이어는 생각하는 것 같던데, 그 외의 이유가 더 있는 것 같다는 거지?”
머뭇거리는 에브레.
부담을 조금 덜어주기 위해 내 생각을 먼저 이야기했다.
“안타란의 집무실에서, 그러니까 네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스콰이어에게 맞고 있던 스펙터는 다른 곳이 아니라 네가 있던 곳으로 날아갔어. 마치 놓치면 안 된다는 듯이.”
처음 듣는 일인지 에브레의 눈이 커졌다.
어렵사리 그의 입이 떨어졌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오메가 삼촌 혼자만 알고 계셨으면 좋겠어요. 아빠한테도 말하지 말고요. 저를 구해주셨다고 해서 말씀드리는 거예요. 능력 좋은 해결사라고 듣기도 했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브레가 나를 창가로 이끌었다.
우리가 있는 곳은 렙틸리비아의 중앙에 있는 건물이라 렙틸리비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밖을 응시하고 있던 에브레가 다시 입을 열었다.
“말로 해서는 쉽게 믿기 힘드실 테니까 직접 보여드릴게요. 그런데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이게 제 의지와는 관련 없이 발동되는 거라서······저는 ‘그게’ 시작된다고 하는 전조 정도만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을 뿐이에요.”
갈피를 잡기 힘든 에브레의 말.
하지만 그런 말을 꺼내는 에브레는 조금 떨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이 담아놓은 말을 어렵게 풀어놓는 것이 분명했다.
“무리해서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아뇨. 삼촌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순간, 에브레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창문을 연 에브레.
“시작됐어요.”
그의 시선이 건물 바로 아래, 좁은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뱀 수인이 골목을 종횡무진 달려가는 광경, 에브레가 말했다.
“다다음 골목에서 모니터 수인한테 잡혀요.”
“그게 무슨······.”
“타이어가 쌓여있는 골목 코너에요.”
뱀 수인이 계속해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에브레의 말처럼, 타이어가 대충 쌓아 올려진 골목에서 모니터 수인이 튀어나와 뱀 수인의 허리를 잡고 뒹굴었다.
아이들의 거친 술래잡기였다.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 에브레.
“빨래를 너무 많이 했군요. 끊어져요. 붉은색 스카프를 걸 때요.”
낮은 건물의 옥상, 이구아나 수인이 긴 빨랫줄에 빨래를 널기 시작했다.
회색 바지, 흰색 티, 파란 양말 등등 다양한 옷이 착착 빨랫줄에 걸렸다.
빨래통에 가져온 빨래가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이구아나 수인의 손에는 빨간 스카프가 들려있었다.
그걸 조심히 빨래줄에 올려놓은 순간―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빨랫줄이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떡 벌린 채로 그걸 보고 있는 사이, 에브레가 창문을 닫았다.
나를 향해 돌아선 에브레의 한쪽 눈에서 영롱하고 신비로운 빛이 사그라드는 것이 보였다.
“저, 최근에 미래시未來視를 가지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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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자불언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
선생(공자)께서는 괴력난신에 대해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기괴한 일(괴), 초인적인 힘(력), 막 나가는 일(난), 신비로운 일(신)은 인간이 신경 쓸 일이 못 된다는 가르침이다.
하지만 공자도 네오-서울에 데려다 놓으면 그 말을 취소할 거라고 본다.
인간 종족만 사는 것도 아니고 기괴한 일, 막 나가는 일, 신비로운 일이 초인적인 힘을 가진 수많은 사람에게서 자행되고 있으니까.
괴력난신이 판을 치고, 심지어 그걸 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온갖 종류의 계통과 유파로 전승되는 이 세계관에서도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으니 바로 언령言令과 예지豫知다.
언령은 다른 보조도구나 수인手印과 같은 행동 없이 오로지 말로 대상의 사고와 행동을 제약하고 통제하는 기술로, 마법사와 주술사들이 각각 자신들 영역의 최상위계 주문이라고 주장하지만, 개념만 있을 뿐 실체화한 사람이 없어 아직은 상상 속의 영역이다.
오히려 육식 동물이 먹잇감 앞에서 내뿜는 초저주파를 변용해 타겟의 움직임을 아주 짧게 제약하는 IDT(Infrasonic Diffusion Tool, 초저주파 확산 장치)가 더 언령에 가깝지 않겠냐는 자조적인 말도 나오는 상황.
그래도 언령은 어떻게나마 기술로 비슷하게나마 따라 하려는 시도가 있지만, 예지는 정말 타고나야 한다.
물론 예지의 영역을 연구하는 이들도 있다.
라플라스의 악마니, 양자역학성 주역이니 하는 것들.
하지만 모두 이론과 자기주장에 그쳤다.
예지를 위해 슈퍼컴퓨터를 몸에 박아 넣은 계룡 권역의 대군장 같은 이도 있지만, 그의 예언은 너무 다양한 해석을 낳았으며 ‘그런 것을 진정한 예언이라 할 수 있냐. 차라리 시에 가깝다’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항상 존재했다.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에 매료된 많은 이들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예지를 탐구하고 예언자를 만들어내려고 애썼으나 명료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손을 뗀 자들이 하는 말은 한가지였다.
‘예지 능력자는 하늘이 점지한다. 그게 누가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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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예지 능력자 중 미래시 능력자는······도시 권역 간의 판도를 바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동안 에브레가 멋쩍게 웃었다.
“말씀드렸지만 이게 발동되는데 제 의사는 하나도 관여하지 못해요. 그냥 ‘시작이다.’ 하는 느낌 정도가 전부죠. 되게 귀찮아요.”
“이걸 나 말고 다른데 말한 적 있니? 있으니까 스펙터가 널 납치하려고 한 것 같긴 한데.”
고개를 끄덕이는 에브레.
“이렇게 자세하게 얘기한 건 삼촌이 처음이에요. 정말로요. 다만 처음 시작됐을 때, 보르헤스 형한테 은근히 돌려 말한 적 있어요.”
“보르헤스라면 안타란의 수행원이지? 스펙터가 변해 있었다는.”
“네.”
에브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보르헤스는 스펙터가 변해 있던 안타란의 수행원이다.
렙틸리비아 합병 사태가 마무리된 후, 자택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그때가 언제쯤이지?”
“얼마 안 됐어요.”
“스펙터가 그 수행원을 죽이고 모습을 위장해 다닌 뒤라고 하면 설명이 들어맞긴 하네.”
“저 어떻게 하죠? 이게 엄청 위험한 능력이라는 것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래서 아빠한테도 말을 못 하겠어요.”
머리가 아팠다.
알아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진실의 장막을 들춘 기분이 이런 걸까.
온갖 생각이 부양했다 침잠하기를 반복했다.
‘루트에 보호 요청? 지금 임시 휴업 중이기도 하고, 루트에서 내 정보가 유출됐으니 쉽사리 믿기는 힘들다. 스냅샷이 유출 경로를 들고 오기 전까지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
‘위타천이나 마고에게 연락? 공공 집행본부 내에서 스펙터를 놓쳤다. 내통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미래시 능력자를 맡길 수는 없다.’
‘야스민 가문. 이미 야스민 공은 자아 형상화 장치로 예지에 가까운 능력을 체험하고 있으니 에브레를 보호해 줄 것이다? 오히려 흡혈귀로 만들어서 가문에 종속시키려 한다면? 나는 그나마 야스민 공과 거래가 가능하지만 에브레는 그렇지 못하다. 스콰이어가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이라고는 하지만 야스민 공에게는 악어 가방만도 못 해 보일 것 같고.’
‘페룬 마탑? 여다함이 지부장으로 있는 상해 권역에 숨겨? 아니면 디즈에게 부탁해서 계룡 권역에?’
리벨리온이나 스펙터, 수연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에브레를 숨겨야 할 것 같았다.
여다함이 지부장으로 있는 상해 권역이나 자연주의 연합이 번성하고 있는 계룡 권역으로 몸을 피해 있는 편이 좋지 않을까.
정 네오-서울에 있고 싶다면 야스민 공이 아니라 젠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 에브레를 봐달라고 하는 정도.
도가는 천기天氣를 읽는 곳이기도 하니 젠이 에브레를 보호한다면 가장 괜찮을 것 같기도 했다.
이런 생각을 에브레에게 전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데, 에브레의 눈에 다시 영롱한 빛이 감겨드는 것이 보였다.
당황한 에브레.
“어? 이렇게 짧은 간격으로 보인 적은 없는데?”
미래시의 발동.
나는 하려는 말을 거둔 채로 에브레를 바라보았다.
마치 먼 곳을 보는 것처럼, 에브레의 시선이 저 뒤로 향했다.
“하늘이 트여 있어요. 렙틸리비아가 아닌 것 같아요. 남자가 서 있네요.”
빛이 어려있지 않은 눈으로 에브레가 나를 쭉 훑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남자는 삼촌인 것 같아요. 옷이 똑같아요.”
“나?”
“네.”
“표정이······이상해요. 눈물을 흘리는데 입은 웃어요.”
“······.”
“비가 와요. 삼촌이 뭔가를 안고 있네요. 천에 싸여 있는 것 같은데······. 삼촌이 그쪽으로 손을 뻗어요. 그리고······.”
말을 잇지 못하는 에브레.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뭔데!”
“아기. 아기가 작은 손으로 삼촌이 내민 손가락 끝을 잡아요.”
눈에 맴돌던 빛이 사라진 에브레가 나를 보며 한 마디를 더했다.
“아부······아부······. 이거 아빠라고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