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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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종의 일로 루트 건물에 방문했는데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져 자기 보호권을 행사한 것이다.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키클롭스 아재네 사설 집행자 사무실 가장 안쪽의 분리된 공간, 나는 엘림이 아닌 다른 도깨비를 마주하고 있었다.
외형으로 봐서는 당장이라도 막걸리 묻은 입가를 훑은 뒤 논두렁으로 걸어갈 것 같은 엘림과 달리 앞의 도깨비는 몸에 딱 맞는 고급 양복을 입고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비녀가 꽂힌 상투만 아니면 보디빌더처럼 보이는 이 도깨비의 이름은 노덴스.
네오-서울의 공공 집행자이자 기공, 유술, 체술, 무기술에 관해서는 적수가 없다는 인물이었다.
특수한 체질이라 하단전만 3개가 있다는 믿지 못할 소문의 주인공이다.
언더 스카이 파티(Under Sky Party: 천하문天下門)이라는 괴악한 이름을 달고 있는 문파의 문주이기도 했다.
범죄자에게는 가차 없지만, 평소에는 굉장히 유순하고 온건한 공공집행자라서 인기가 높았다.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것인데 엘림의 친형이란다.
어쩐지 체형이랑 얼굴이 비슷하다 했다.
노덴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정확히 이해하셨습니다.”
“루트 건물에서 오바산조가 낙하한 건에 관해서 하실 말씀은요.”
“오바산조가 누굽니까.”
“고릴라 수인이요. 경추가 부러져 목 아래로는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고치려면 고칠 수야 있겠지만 워낙 대수술이라 재활에만 10년이 넘게 걸릴 거라고 하더군요.”
100층에서 수직 낙하하고 살아남은 걸로도 모자라서 10년 재활하면 걸어 다닐 수도 있단다.
대단한 세상이다.
“공격하길래 받아친 것 뿐입니다. 그 주먹에 맞으면 죽게 생겼는데 맞아주고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바산조가 오메가 씨를 공격한 이유는요?”
“묵비권 행사하겠습니다.”
루트 건물을 나오면서 스냅샷이 내게 신신당부 했던 말이다.
누가 이번 일에 대해서 뭘 물어볼 때, 3초 이상 생각해야 할 것 같으면 묵비권 행사하란다.
나를 빤히 바라보던 노덴스가 끄응하는 소리를 내고 한탄하듯 말했다.
“강남 에어리어 한복판에서 120층 건물에서 고릴라 수인이 떨어졌습니다. 내부의 몇몇 층에서는 전투 흔적이 역력하고 루트 내부에서 꽤 높은 위치를 차지하던 해로즈가 죽었습니다. 해로즈가 이끌던 파벌은 몰락하고 대부분 자진해서 루트를 떠나고 있고요.”
깍지를 끼워 테이블에 올려놓은 손 너머를 나를 응시하는 노덴스의 눈이 매섭다.
“해당 사건 직전 루트 건물은 봉쇄되었고, 봉쇄 전에 건물에 진입한 사람은 셋. 오메가, 타이린드, 스냅샷. 누가 봐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루트 쪽에서는 이유를 밝히기 힘든 내부의 사정이었다고 얼버무리며 전혀 협조를 하지 않고 있고, 앞서 말씀드렸던 셋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
“많은 사람이 목격한 사건이 있었고 심지어 사망자도 있었는데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이건 뭐······.”
이런 개똥 같은 케이스라서 위타천 선배가 나한테 짬처리를 했나······하고 푸념하는 노덴스.
위타천이 오지 않은 건 아마 스펙터를 놓치고 나를 볼 면목이 없어서일 거다.
“우리, 까놓고 얘기 좀 해봅시다.”
노덴스가 가지고 온 패드를 두드린 뒤 확인해보라는 듯이 내게 밀어주었다.
건드려도 반응이 없다.
종료한 것 같다.
그리고 상투에 꽂힌 비녀를 조작하며 내게 말했다.
“통신 디바이스로 녹음이나 녹화 중이었으면 종료하시죠.”
저 비녀가 노덴스의 통신 디바이스였던 모양.
온갖 커스텀 형태가 있다고 말은 듣고 제법 다양한 걸 본 것 같은데 비녀 형태는 처음 본다.
나도 귀걸이를 만져 녹음을 껐다.
앨리스가 혹시 모르니 녹음하는 편이 좋겠다고 했지만, 저쪽에서 오프 더 레코드를 원하는 것 같은데 응해야지.
“제가 엘림의 형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네.”
“그놈도 아무 말을 안 해요. 답답해 죽겠습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들으신 그대롭니다.”
얼굴을 찡그린 노덴스가 다른 걸 물었다.
“그럼 걔 얼굴은 왜 그렇게 만든 겁니까.”
내가 입을 떼려니, 노덴스가 덧붙였다.
“부인할 생각은 마십쇼. 엘림이 다른 건 아무것도 말 안 하는데 얼굴은 왜 작살이 났냐고 물어보니 오메가 씨가 그랬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는 다시 입을 닫아버렸지만요.”
치사하게 그걸 자기 형한테 꼰질렀네.
그것도 보통 형도 아니라 네오-서울 공공집행자한테.
내가 루트 건물 내외부를 쏘다니며 헤집어 놓은 걸 조금이라도 말했다면 조사받으러 다니느라 바쁠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고마웠다.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그때 느꼈던 감정을 그대로 말했다.
“그쪽 동생이 꼴 받게 해서요.”
“꼴받······.”
‘어후’하고 책상이 무너져라 한숨을 내쉰 노덴스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도 엘림 그놈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울화가 치밀 때가 있으니 이해합니다. 다만 뭘 한 건지는 얘기 안 해도 그때 당시 오메가 씨가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말을 하더군요.”
굳이 그런 말을?
술 먹고 패긴 했지만, 폭행으로 고소하는 거 아닌가 긴장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는 않으려나 보네.
가만 듣고 있으니 노덴스의 말이 계속되었다.
“듣자 하니 도깨비용 술을 드셨다고요. 도수가 워낙 높게 나오고, 타 종족이 마시게 되면 만드는 데 쓰이는 성분 중 하나가 폭력성을 증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서 도깨비를 제외한 종족의 음용이 금지된 술입니다. 구매 이력이 추적되고, 타 종족이 마시게 되면 마지막 이력이 찍힌 도깨비가 관리 소홀로 처벌을 받을 만큼 위험하기도 하죠.”
어······처음에는 한 대만 때릴 생각이었는데 조금 많이 때리긴 했다.
그게 술 문제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짜 짜증이 폭발해서 되는대로 패버린 거다.
하지만 지금 그런 말을 하는 건 내 입장을 불리하게 만드는 것 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그저 끄덕이며 ‘그런 일이 있을 수도 있었겠군요.’ 하는 표정으로 노덴스의 말을 들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주취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추측되며, 더 파고들면 엘림이 도깨비 주류 관리 법령 위반 소지가 있을 것 같으니 해당 건은 제 권한으로 묻으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주취 폭행과 주류 관리 법령의 교환. 일종의 사법 거래입니다.”
동생 도깨비 챙기는 형 도깨비의 모습이 눈물겨웠다.
형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그렇게 하죠.”
“이외의 일은 모두 루트 측에서 책임지고 수습하기로 했습니다.”
노덴스가 나를 묘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엘림이 오메가 씨를 만나고 뭔가 깨달은 게 있나 봅니다. 루트 운영에 조금 더 적극적이 되어 보겠다고 하더군요. 얼굴을 다 깨놔서 그런지 오메가 씨 얘기를 꺼내면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궁금해하더군요.”
“저를요?”
“네.”
이후에도 문답은 별 진전이 없었고, 결국 노덴스는 이대로 내사 종료하겠다며 밖으로 나섰다.
밖에 있던 키클롭스 아재네 사무실 식구들이 노덴스를 보고 크게 인사했다.
“뵙게 되어 영광이었슴다!”
노덴스는 그들을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주먹만 한 불이 되어 어디론가 날아갔다.
도깨비 종족의 전매특허인 도깨비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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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떨어진 한강변 어디엔가에 내려 앉아 원래의 모습으로 변한 노덴스가 곰방대를 꺼내들어 불을 붙인 뒤 엘림에게 통신을 연결했다.
"어, 보고 오는 길이야. 눈빛이랑 당당한 태도 하나는 일품이더라."
-그지? 형이 봐도 그렇지?
"너는 얻어 맞은 놈이 때린 놈 옹호해 줄 처지냐? 퍼주기도 엄청 퍼준 것 같던데."
-퍼 주는 거 아니야. 충분히 할만한 투자거든? 와신상담이야. 나는 쓸개를 핥고 있는 것 뿐이라고.
"이렇게 고분고분할 줄 알았으면 내가 널 먼저 팰 걸 그랬어."
-동생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네가 하는 꼴이 황당해서 그렇다, 황당해서. 궁금하면 따라오지 그랬냐."
-궁금하긴 한데 직접 가긴 쪽팔리잖아.
"아주 첫사랑 났네, 첫사랑 났어. 곧 있으면 수제 초콜릿 만든다고 까불겠어?"
-첫사랑 아니거든! 내 관점을 변화시킨 거에 대해서 감사하다고 표현하는 것 뿐이거든! 형이 비즈니스를 알아? 영원한 아군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진짜 너 안 되겠다. 요새 기업활동이 아주 신나지? 마고한테 얘기해서 싹 한 번 털어줘? 세무 조사 한 번 받을래?"
-권력 남용이야.
"동생 있다고 안 건드리는게 부정부패지."
-우리 운영 깨끗하게 해.
"구라도 믿을만한 구라를 쳐라."
이례적일 정도로 동생이 관심을 가지는 해결사를 주시해야겠다고 생각한 노덴스가 다시 도깨비불로 변해 훨훨 날아갔다.
#
엘림의 태도에 대해 살짝 예상은 했다.
사무실로 복귀한 다음 날, 루트가 한동안 영업을 정지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내부 정비가 이유였다.
스냅샷의 말에 따르면 엘림이 조직 곳곳에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획실장 되냐고 물어보니까 정말로 엘림이 해로즈 자리에 스냅샷을 앉히려고 했는데 스냅샷이 극구 고사해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단다.
“대신 제게 새로운 직책이 생겼습니다.”
“뭔데.”
“오메가 님 전담 관리인입니다.”
“뭐야 그게.”
“루트의 VIP가 되셨다고 보면 됩니다. 엘림이 직접 부탁하더군요. 오메가 님이 원하는 정보는 최우선으로 제공하고 그 일은 제가 맡아야 한다고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VIP는 조금 솔깃하네. 너는 그렇게 됐고, 타이린드는 뭐래?”
“타이린드님도 내부로 들어와서 한자리 하라는 걸 사양했습니다. 본인은 전투원이 편하시다고 하더군요. 대신 선조치 후보고가 가능한 자율팀을 꾸릴 수 있는 권한은 받으시더군요. 검사 자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선별작업에 들어간 걸로 봐서 아무래도 오메가 님의 활약에 큰 감명을 받은 것 같습니다.”
“내가 그 난리를 피운 게 헛수고는 아니었다는 소리 같아서 기분은 좋네. 그래서 나한테는 뭐 줄 건지 생각은 해봤고?”
농담처럼 던진 말인데 스냅샷이 웃으면서 답했다.
“루트 차원에서 보상이 갈 것 같은데, 기대해도 좋으실 겁니다.”
“응?”
그게 내가 우리 사무실이 아니라 키클롭스 아재네 사무실에서 노덴스를 만났던 이유다.
이번 일에 대한 루트 측에서 내게 제시한 보상은 사무실의 강남 에어리어 이전.
자리도 없을뿐더러, 자리가 난다 해도 대림 에어리어에서 지불하는 임대료를 들고 강남 에어리어에 간다면 코딱지만한 땅 정도를 빌려도 감지덕지다.
자리도 알아봐 주고, 임대료는 대림 에어리어에서 내던 만큼 향후 10년간 동결.
메일을 확인한 앨리스가 놀라서 우왁!하고 소리지를 정도였으니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거절했다.
이유는 바이크와 렙틸리비안 로드 때문.
안탈란과 스콰이어가 내게 제공한 이권이었는데, 이게 엄청난 물건이다.
미리 연락만 하고 때만 맞는다면 나만 이용할 수 있게 수로를 통제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다른 에어리어의 렙틸리비아 구역장들에게도 연락해서 렙틸리비안 로드 이용에 편의를 봐줬다.
내 바이크가 진입할 때만 이용 가능하다는 조건이어서 혼자 아니면 동승자 1인 정도만 같이 이동할 수 있었지만, 렙틸리비안 로드는 네오-서울 전역에 퍼져 있어서 지상의 지긋지긋하고 답답한 교통체증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
바깥 풍경을 못 본다는 단점을 제외하고 빠른 이동이라는 목적을 충족시키에는 이만한 길이 없었다.
다만 네오-서울 전역에 퍼져 있다해도 상대적으로 그 정밀함이 떨어지는 곳이 있었다.
강남 에어리어, 성북 에어리어, 용산 에어리어가 그 지역으로, 네오-서울의 대표적인 부촌이다.
상하수도 정비가 잘 되어 있는 에어리어일수록 렙틸리비아가 형성되기 힘드니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바이크 때문에 그런 거냐며 강남 에어리어로 가자고 나를 조르는 앨리스에게 한마디 했다.
“대림 에어리어에서 좀 잘나간다고 바로 강남 에어리어로 간다? 그럼 바로 이미지에 타격 온다? 맛집들이 잘 된다고 확장 이전하면 그대로 맛이 변했네, 사장이 초심을 잃었네 하는 말 도는 거 몰라?”
“그건······그럴 수도 있겠지만······. 놓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기회잖아요.”
“맛집들이 확장 이전을 안 하는 거지, 리모델링을 안 하는 건 아니잖아?”
내가 이런 의도를 전달하자 루트 측에서는 곧바로 사무실이 세들어 있는 건물주와 접촉해 건물을 매입했다.
그리고 거의 재건축에 버금가는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처음에 스냅샷을 통해 전달받은 도면은 30층짜리 주상복합이어서 기겁하고 돌려보냈다.
결국 몇 번의 조율을 통해 결론 난 것은 5층짜리 건물로, 1층은 몇 겹의 보안설비가 설치된 바이크 차고를 뒀다.
렙틸리비안 로드 이용의 편의성을 위해 조작 몇 번으로 지하 수로로 향할 수 있는 것은 덤.
2, 3층은 다른 가게들이 입점할 수 있는 공간.
이런 곳에 오려는 가게가 있을까하고 물어봤더니 4층에 내 사무실이 있는 것만으로도 들어오려는 가게가 대림 에어리어에서 마포 에어리어까지 줄을 설 거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5층은 반 잘라서 절반은 내 공간, 나머지 절반은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손님들을 위한 상담 공간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통째로 내가 쓰고 싶었는데, 옥탑방에서 살던 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거라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는 않기로 했다.
“50년 장기 무상 임대고, 발생하는 세금 및 기타 경비도 다 저희 쪽에서 부담합니다.”
“건물도 지어주는데 50년이라고? 강남 에어리어 이전 때는 10년이라더니.”
“이렇게 해도 들어가는 금액은 훨씬 저렴할 겁니다.”
“강남 에어리어가 그 정도라고?”
“네. 그 정도 이상이죠.”
혀를 내두르며 조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잘도 이런 조건을 맞춰왔네. 망가지는 거 금방이라고 여기는 리모델링 허가도 거의 안 난다던데. 특히나 이런 단일 건물 같은 경우는 더더욱.”
내 말을 들은 스냅샷이 씩 웃었다.
“루트지 않습니까.”
“어째 그날 이후로 자신감이 넘쳐 보인다? 카지노 가서 밤새 눌러 앉아 있어주랴?”
“제발 다른 카지노로 좀 가주십쇼.”
“다 블랙 먹인 걸 어쩌냐······.”
그렇게 말하고 난 이후에 손목에 걸린 인피면구가 눈에 들어왔다.
계약서에 지장을 찍으면서 스냅샷에게 말했다.
“요새 잘 나가는 곳 몇 군데는 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공사가 시작되었고, 사무실은 임시 휴업을 한 상태로 나와 앨리스는 잠시 야스민 가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
딱히 하는 일은 없었다.
젠과의 대련이나 야스민 공과의 담소를 마치고 신시아와 정원 산책 정도가 정해진 일과였다.
이후에는 바이크를 끌고 페룬 마탑에 놀러가거나, 대림 에어리어로 가서 키클롭스 아재네 사무실이나 후앙네 청소업체 사무실에 가서 뒷짐지고 다니다 훈수라는 이름의 성질 긁기 정도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아직 한신나 권역에 있는 이수련이 몇 시간 간격으로 리모델링 하는 건물에 자기 방도 만들어달라, 2층을 통째로 퓨전 코프 전시장으로 쓰고 싶다하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담은 메일을 보내는 것만 제외하면 간만에 맛보는 평화로움이었다.
그날도 정현과 함께 자코를 놀려먹다 슬슬 돌아갈 때가 되어 밖으로 나섰다.
귀걸이가 진동해서 터치하니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오메가!
“악어!”
대림 하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인 스콰이어였다.
“그래? 이름이 뭐였지? 맞아. 에브레. 벌써 퇴원했다고. 몸은 좀 어떻대? 다행이네.”
아들인 에브레가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연락이었다.
스콰이어의 목소리가 귀걸이를 타고 들려왔다.
-에브레가 너를 만나고 싶어 해. 감사 인사 한번 제대로 못 했다면서.
“뭘, 그런 거 가지고. 우리 사무실 다 지어지면 놀러 오라고 해.”
난처한 스콰이어의 목소리.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게······놈들이 자기를 납치하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대.
“뭔데.”
-모르겠어. 나한테도 말을 안 해. 오메가 너랑만 얘기하고 싶대.
바이크 방향을 돌렸다.
“지금 갈게. 대림 23구역에서 그쪽으로 통하는 제일 빠른 로드 좀 열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