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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79화 (80/258)

079.

079.

당연한 소리지만 안에 사람은 없었다.

아무리 모정母情이 위대해도 문 하나 사이에 두고 있는 복도에서 서로 죽일 듯이 싸우는데 아이에게 젖을 물리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타이린드까지 들어온 것을 확인한 스냅샷이 문 옆의 패널에 손목시계를 댔다.

“어차피 저쪽에서 우리 위치 파악은 했을 테니 이 정도는 괜찮겠죠.”

패널이 경고음을 냈다.

-사용 불가. 3세 미만의 자녀 없음.

“이러면 문이 안 잠기는데.”

당황한 표정의 스냅샷이 타이린드를 바라봤다.

“왜 이래, 나도 애 없어.”

“그게 아니라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시니 한 번 대보시기라도······.”

“미쳤어, 미쳤어. 수유실 들어와 본 것도 처음인데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여기 이런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결국 혹시 모르니 집기들을 문 앞에 쌓아두는 것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빠르게 일을 마치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런 곳은 처음 들어와 보는데······.”

어둑어둑한 수유실 내부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장에 달린 모빌, 엄마 눈높이에 맞게 아기를 앉혀 둘 수 있게 설계된 아기용 의자, 젖병과 아기들 장난감을 세척 할 수 있는 세면대, 살균기까지.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깔끔하고 잘 만들어진 수유실이었다.

다만 잘 만들어진 것과는 별개로 내부의 물건들은 너무 새것이었다.

사람 손을 탄 흔적이 없다고나 할까.

“여기입니다.”

커튼을 내리면 외부에서 밖이 보이지 않게 되어 있는 개인 수유실로 스냅샷이 들어가며 말했다.

그 말에 천장에 달린 모빌을 톡톡 건드리고 있던 타이린드가 냉큼 스냅샷에게 다가갔다.

문밖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여길 이렇게 누르면―.”

안쪽의 의자를 치우고 스냅샷이 벽을 이리저리 누를 즈음, 수유실의 문이 덜컹대며 앞에 쌓아놓았던 집기들이 출렁였다.

손을 멈춘 스냅샷과 순식간에 양쪽 겨드랑이에 총 두 자루를 끼워 조준을 마친 타이린드.

“나랑 타이린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계속해.”

그 말에 스냅샷이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고는 다시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피시]로 검에 불을 붙이자 긴장을 풀기 위함인지 타이린드가 농담을 건넸다.

“그렇게 팍팍 쓰고 다니면 ‘나 화염계 마법 쓸 줄 압니다.’ 하고 광고하는 거랑 뭐가 달라. 이거 약속 지키는 나만 바보 되는 거 아니야?”

잠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런 말 알아요? ‘목격자를 모두 죽이면 그게 암살이다’.”

“들어는 봤어.”

“비슷한 맥락이죠. 제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한다는 걸 안다는 사람을 다 없애면 되지 않을까요?”

잠시 나를 멍하니 보던 타이린드가 박장대소했다.

어둑어둑한 수유실에 경쾌한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해결사인 줄 알았더니 암살자였어! 암살 대상에서 나는 좀 빼줘. 약속 잘 지키려고 노력 많이 하고 있단 말이야.”

“루트에서 온 의뢰에 타이린드 제거도 있었는데 아무것도 안 했잖아요. 이 정도면 약속 잘 지키고 있는 거죠. 그리고 못 들었어요? 전략실장 만들어준다니까요? 이 정도면 엄청나게 우대하고 있잖아요.”

“나는 현장 체질이라. 전략실장 같은 허울 좋은 이름보다 전투원이 좋은데?”

농담을 하는 사이에도 우리의 눈은 덜컹거리는 문에 고정되어 있었고, 마침내 집기들이 밀리며 문이 열리기 직전―.

“됐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휭 하고 불어와 뒤통수를 간질였다.

스냅샷이 만지던 벽이 사라지고, 안쪽의 철골구조와 그 사이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얇은 철판이 눈에 들어왔다.

철판은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이 부서지기 직전, 우리는 조심하며 철판 위로 올라섰다.

뒤에서 수유실의 문이 부서지는 소리와 벽이 생성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다.

안쪽은 온통 컴컴했다.

“잠시만.”

[이땅셀étincelle]

불티라고 해도 좋을 만큼의 작은 불이 생겨나 앞을 밝혔다.

공격용 스킬은 아니고, 어두운 곳에서 간신히 사물 구분을 할 정도의 불을 만들어내는 스킬.

보기에는 반딧불이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화염계 스킬이라 만지면······.

“이런 것도 할 줄 알아? 으앗, 뜨거!”

불에 손을 가져다 대려다 화들짝 놀란 타이린드가 펄쩍 뛰었고, 그 바람에 얇은 철판이 흔들렸다.

“진정! 진정하세요!”

가장 앞서 있던 스냅샷이 거의 절규하며 철판 위에 엎드렸다.

“미안.”

타이린드가 손을 털며 대답했다.

그녀의 손에 맞은 불티가 희미하게 깜빡이면서 아래로, 끝없는 아래로 떨어지다 마침내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떨어지면 어디 하나 부러지는 걸로는 안 끝나겠네.”

타이린드가 내 말에 긍정하며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선 스냅샷이 설명했다.

“여긴 건물의 외벽과 내벽 사이의 공간입니다. 100층까지 이어지고, 100층부터 120층까지는 아예 외부를 통해 가야 할 겁니다.”

어두운 가운데, 타이린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100층 외벽에 나와 있는 난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인지 스냅샷과 타이린드가 대화를 이어갔다.

“네. 설계 미스다, 외벽 청소용으로 만들어 둔 거다, 추측이 많았죠. 건물주도 모르겠다고 인터뷰했고요. 이 용도로 만들어 둔 겁니다.”

“용의주도하네.”

뒤쪽의 벽에서 쿵쿵거리는 울림이 전해졌다.

“우리 찾고 있나 본데 올라가자고.”

천 길 낭떠러지라는 말도 민망할 정도의 높이, 우리는 얇은 철판과 주위에 가득한 골조에 의지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다해 사라지는 [이땅셀]을 몇 번이고 다시 사용할 즈음, 궁금했던 것을 스냅샷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수유실에 이런 통로를 만들어 둔 거야?”

“꼭 필요한데 자주 사용하는 시설은 아니니까요. 자주도 아니죠, 거의 사용하지 않을걸요. 이런 비밀스러운 공사를 하기에는 딱 좋았을 겁니다. 아마 통로 위치에 맞춰 수유실을 만들어 놓은 게 아닐까요.”

“누가 들어 올 수도 있잖아.”

“저나 타이린드 님처럼 루트 내에서 확실히 담당하고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은 이상, 일반 구성원들에게 허용된 구역은 건물의 80층까지입니다. 그들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뜻이죠. 일 중독자가 모여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다. 그런 일 중독자 중에 젖먹이를 80층에까지 데려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루트뿐만 아니라 어느 조직을 가도요. 장담할 수 있습니다.”

명쾌한 해설에 더 이상 반론을 제기하기 힘들었다.

콰아앙-

아래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잡고 있는 골조에 진동이 전해져 왔다.

내벽 하나에서 빛이 뿜어지고 있었다.

결국 통로를 막고 있던 벽을 부수는 데 성공한 건가.

저 먼 아래에서 메아리가 울렸다.

“저기 있다!”

그동안 제법 높이 올라왔기에 빛이 보이는 곳, 즉 우리가 출발했던 지점은 상당히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였다.

아래쪽을 잠깐 내려다본 스냅샷이 골조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잔뜩 주며 말했다.

“100층까지는 멀지 않았을 겁니다. 가시죠.”

그렇게 말한 스냅샷이었지만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도 내심 불안했는지 달달 떨리던 다리가 조금씩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쪽을 향해 총을 겨누는 타이린드를 제지했다.

“타이린드를 못 믿는 건 아닌데 한 발이라도 예상치 못한 곳에 맞으면 저희 안전도 장담할 수 없어요. 일단 위로 향하는 데 집중하죠.”

아쉬운 얼굴로 타이린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골조 전체에 진동이 번져왔다.

스냅샷이 아래를 보려 하길래 다그쳤다.

“앞 보고 계속 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메가아아! 넌 내가 죽인다아아!”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잘라낸 팔을 붙인 고릴라 수인이 마치 밀림 속의 나무 사이를 타듯 건물 골조를 붙잡고 타오르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

펠루다는 거북이 수인이다.

PMC 소속의 호위 전문 요원이었지만 생명공학 대기업인 ABT와의 첫 계약 기회를 거하게 말아먹었다.

연구원 하나 지키라고 계룡 권역으로 보내놨더니 정기 연락, 비상 연락 모두 씹어서 많은 이들의 걱정을 유발하더니, 흡혈귀 회합이 마무리된 뒤에 약에 취해 달이 머무는 계곡 주위를 배회하는 모습으로 발견됐다.

긴급히 네오-서울로 호송된 펠루다는 집중 치료실에서 일주일을 보낸 뒤에야 눈을 떴다.

누군가가 자신의 임무를 가로챘다.

몸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양의 각성제를 단기간에 급격히 흡수해서 임무를 수행할 상태가 아니었다.

알파라는 그 인물이 의심된다.

펠루다는 온 힘을 다해 강변했으나 PMC의 운영진들은 ABT와의 계약을 망쳐놓은 펠루다에게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궁여지책으로 자연주의 연합의 대표인 라이시와 디즈에게까지 절절한 호소가 담긴 메일을 보냈으나 오메가로부터 입단속 할 것을 단단히 주의받은 둘은 ‘사정은 안타깝지만, 자신들이 도와 줄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다’라고 답장을 보냈다.

다만 원래대로의 계약이라면 호위 의뢰의 당사자였던 디즈가 선처를 부탁한 덕에 펠루다가 몸담은 PMC에서 방출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징계성 무급 휴가를 받게 된 펠루다.

휴가 복귀 이후에도 계약직과 같은 처우를 받으며 일종의 땜빵 요원 일을 하고 있었다.

계룡 권역으로의 출장을 위해 새로 정비를 받고 장착을 한 장비가 많았고, 그것들의 할부 계획은 정규 요원일 때를 상정하고 짜인 것.

땜빵 요원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으로는 등딱지를 열고 장비를 반납해야 했기에, 펠루다는 결국 남는 시간에 투잡을 뛰기로 했다.

배달의 성지인 강남 에어리어에서의 라이더 일이 그것이었다.

배달 드론과 경쟁을 하는 신세였지만, 그럭저럭 벌이는 나쁘지 않았다.

지금은 힘들지만 머지않아 다시 정규 요원의 위치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있는 펠루다가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핸들 중앙에 홀로그램 지도가 떴다.

통신 디바이스와의 연동으로 배달 콜을 잡아주는 단말기였다.

그리고 푸슛 소리와 함께 사라진 홀로그램 지도와 배달 콜.

“아, 또 왜 이래.”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 펠루다의 눈에 모든 창문에 검은 블라인드가 내려진 루트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 근처만 오면 이러네. 단가 좋은 콜이었는데!”

일단 통신사 욕을 중얼거리던 펠루다의 머리 위에 작은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뭐야. 비라도 오나?”

머리를 쓸어내린 펠루다의 손에 작은 자갈 같은 것이 잡혔다.

그리고―

쿵, 쿵, 쿠궁

펠루다가 타고 있는 자전거 주위로 건물 외벽 파편이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위를 향해 굳어 있는 펠루다의 눈에 루트 빌딩 저 위에서 무언가가 건물 외벽을 뚫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차륵- 차륵- 차륵-

그의 눈에 이식된 광학 렌즈가 줌을 당겼고, 펠루다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날이 빛나는 검을 든 인간과 그 인간보다 3배는 거대한 고릴라 수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둘의 앞쪽으로는 총을 든 여자와 비쩍 마른 인간이 아슬아슬하게 난간을 붙잡고 위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

입을 헤 벌리던 펠루다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내리고 다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또 환각이 도지네. 약 좀 강한 걸로 처방해달라고 해야겠어.”

그가 떠난 자리에 뒤늦게 떨어진 건물 외벽 조각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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