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7.
077.
스냅샷이 황당한 표정으로 내게 뭔가를 말하려고 했다.
“아까 봤던 고릴라 수인 같은 놈들이 수백은 될―.”
“나는 찬성.”
“타이린드님!”
허리춤에서 손바닥만 한 갈색 상자를 꺼내든 타이린드가 입으로 상자의 포장지 끝을 물어 벗겨냈다.
타이린드는 익숙한 듯 그것들을 위로 던졌다.
떠오른 상자에서 탄환들이 쏟아졌다.
탄환들이 하강을 시작할 무렵, 촤르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타이린드의 팔이 변형됐다.
탄환만을 위한 격납고가 팔에 칸칸이 늘어서 있는 모습.
떨어지는 탄환들을 향해 팔을 한 번 휘두르자 모든 탄환이 타이린드 팔의 빈 공간에 자리 잡았다.
단 하나의 탄환도 떨어지지 않고 팔의 안쪽에 잘 자리 잡자 격납고의 문이 닫히고, 피부가 말끔하게 그 위를 덮었다.
“예비 장전 끝났고.”
총 두 자루를 옆에 낀 타이린드의 머리카락이 케이블 내부의 전선처럼 서로 꼬이고 길어지더니 총의 개머리판 부분에 연결되었다.
“보조장비 연결도 끝.”
“이야······멋진데요.”
솔직한 감상이었다.
타이린드가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내 이름 앞에 전략실장이 붙을 수도 있다는데 이 정도 성의는 보여줘야지.”
“어떤 장비인지 알려줄 수 있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안드로이드인 줄 알겠어요.”
“사격에 도움 되는 장비들을 엄청 이식하긴 했는데 안드로이드는 아니야. 그 이상은 비밀. 내가 저번에도 그랬지?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칠 수도 있다고. 후방 지원이랑 스냅샷 보호는 내가 할 테니까 오메가는 걱정하지 말고 휘저어.”
“믿음직스럽네요.”
“나도 기대 중이야. 요새 제일 화제인 해결사의 진짜 실력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예공방 지하에서는 너무 숨기더라고. 시식 코너에서도 그렇게 감질나게 주면 욕먹어.”
쫓기는 것도 모자라 위로 올라가 이 사태를 만든 원흉을 치자고 하는데도 타이린드는 오히려 즐거워 보였다.
특유의 낙천성인 건지, 아니면 호전적인 전투광인 건지 모를 모습.
하지만 어느 쪽이든 마음에 들었다.
나도 검의 배터리를 빼고 예비로 가져온 풀충전 배터리를 끼워 넣고 있으니 여태껏 멍청한 표정으로 눈알만 굴리고 있던 스냅샷이 그제야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자살행위입니다! 해로즈가 지금 하는 짓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인원들도 있을 테니 일단 탈출해서 그들과 힘을 합쳐야 합니다!”
“정론이군.”
긍정하는 내 말에 스냅샷의 눈에 희망이 잠시 지나갔다.
타이린드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스냅샷이 우리를 못 믿어서 이러는 것 같은데, 타이린드는 어떻게 생각해요?”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타이린드가 말했다.
“사무직은 현장을 잘 모르니까 그렇게 말할 수 있지.”
“그게 아닙니다!”
“아니면 됐네. 그 고블린 턱 밑에 있는 지금이 기회야. 특수 상황이니 특수한 대처를 해야지. 정론은 정상적인 상황에나 가져다가 쓰는 거야.”
눈을 질끈 감은 스냅샷에게 말했다.
“아까 내가 안 막았다면 어차피 넌 죽은 목숨이잖아. 여분 목숨이라고 치자고.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생각해보라는 거야. 널 죽인 놈을 족치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하지 않겠어? 마침 우리는 놈에게 멀지 않은 곳에 있네? 나갔다 오면 늦어. 너무 늦는다고. 기습은 상대가 예상하지 못할 때 해야 기습이야. 스냅샷 너는 따라오기만 해. 명분 역할만 하라고. 칼춤은 나랑 타이린드가 춰줄게.”
“눈이 돌아가신 것 같은데요.”
“아니라고는 안 할게. 합법적인 칼춤 기회는 잘 오지 않거든.”
스냅샷이 말없이 일어나 걸었다.
나도, 타이린드도 아무 말 하지 않고 스냅샷의 뒤를 따랐다.
얼마 가지 않아서 갈림길이 나타났다.
“후우······.”
심호흡한 스냅샷이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위로 향하는 방향입니다.”
이제 망설이던 카지노 지배인은 없다.
조직에서 밀려나 죽음의 위기를 겪고 흑화한 언더 루트만이 있을 뿐.
“칼춤, 잘 부탁드립니다.”
철컥하며 타이린드가 총을 장전하는 소리와 내 광자 검날이 웅웅거리는 진동 소리가 좁은 길에 동시에 울려 퍼졌다.
“가자.”
#
루트 건물 상층부에 위치한 의무실.
“놓치다니?”
해로즈가 고릴라 수인에게 역정을 냈다.
잘린 팔의 절단면에서 나노봇이 신경을 이어붙이고 있던 터라 얼굴을 찡그렸던 고릴라 수인이 얼른 표정을 바로 했다.
“죄송합니다. 수색 중입니다.”
“6명이면 충분할 거라고 했던 게 누구였지? 너였어, 오바산조. 그걸로도 모자라 비상 병력을 다 불러 모았지?”
“오메가가 의뢰에 응할 줄 알고······.”
“그런 변수까지 모두 따져보고 진입했어야지! 그게 네가 할 일이잖아!”
해로즈의 작고 번뜩거리는 눈에 핏발이 섰다.
“생포를 못하더라도 최소한 죽였어야지! 특히 스냅샷은! 멍청한 놈!”
분을 이기지 못하고 해로즈가 던진 패드가 오바산조의 얼굴에 맞아 박살이 났다.
오바산조의 찢어진 피부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 바닥을 적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해로즈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스냅샷은 너무 많이 알아! 다른 생체 허브들에 비해서 접속 권한이 훨씬 많다고! 몇몇 데이터 베이스를 버릴 각오까지 하고서 죽이라고 했던 건데! 그걸 못 해서! 등신 같은 놈!”
눈치를 보던 오바산조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다른 생체 허브들을 통해 접속 권한을 계속 가져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자식을 생포해왔으면 그런 번거로운 일은 없었겠지. 죽였으면 다른 생체 허브들에게 알아서 권한이 재분배됐을 테니까 마찬가지고.”
으르렁대는 해로즈.
키로만 봤을 때 고블린인 해로즈는 고릴라 수인인 오바산조의 허벅지에나 간신히 올 정도였지만, 지금 공간을 장악하고 있는 것은 해로즈의 존재감이었다.
“루트는 더 은밀하고 더 비밀스러워져야 해. 그게 존속할 수 있는 길이야. 지금 꼴을 봐, 일반 기업과 다를 게 없잖아. 커지고, 느려졌지. 그래서 내가 리스크를 지고 움직였잖아. 루트가 망가져 가는 걸 볼 수 없어서.”
천천히 말하는 해로즈가 허리를 숙여 박살난 패드의 일부를 집었다.
그리고 그걸 다시 오바산조에게 던졌다.
“그런데 그 계획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해도 좋을 부분을 말아먹어! 이 쓸모없는 고릴라 새끼야!”
재빨리 웅크려 피한 덕에 패드는 뒤쪽의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해로즈가 중얼거렸다.
“엘림을 확보했으니 정통성은 우리에게 있어. 하지만 내가 타이린드와 스냅샷을 제거하려고 했던 사실이 곧 다른 파벌들에게 알려지겠지. 슬슬 대비해야 해. 그전까지 네가 해야 했던 일을 마무리 지어.”
“건물 외부와 지하에도 애들을 풀었습니다.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봐서 놈들은 아직 건물 내부에 있을 겁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말로는 못 할 게 없지. 나는 신경 쓸 게 너무 많아서 눈알이 터질 지경인데 말이야.”
오바산조의 잘린 근육과 신경을 다 이어붙인 나노봇이 내려와 전원이 꺼졌다.
팔을 한 번 돌려본 오바산조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포해서 잡아 오겠습니다. 다만―”
손을 들어서 오메가의 핏빛 대검이 닿았던 자리를 쓸어내린 오바산조.
“그 해결사는 죽여도 되겠습니까.”
그런 오바산조 앞으로 해로즈가 걸어왔다.
고블린이 신고 있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고급 구두의 뒷굽이 대리석 바닥을 치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오바산조의 눈을 마주한 해로즈.
손을 까딱이자 오바산조가 황급히 얼굴을 해로즈 가까이로 가져다 댔다.
무슨 비책이라도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는 철썩―
한주먹거리도 되지 않을 고블린에게 뺨을 맞은 오바산조의 눈에 독기가 올랐다.
해로즈가 팔을 올려 뺨을 한 대 더 갈긴 후 말했다.
“이제야 눈빛이 좀 사네. 나가 봐. 해결사는 꼭 죽여서 내 앞으로 끌고 오고.”
이를 꽉 문 채로 밖으로 향한 오바산조.
그가 거칠게 열어젖힌 문 너머로 많은 검은 양복들이 늘어서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방금 접합했으니 무리는 하지 마시고······.”
콰앙-!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오바산조가 거칠게 포효했다.
“여기 서 있을 정신 있으면 발로 뛰어서 그 새끼들 잡아 와!”
검은 양복들이 황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옅은 진동이 되어 방 안에 있는 해로즈에게까지 전달될 정도였다.
진동이 잦아들 즈음 밖으로 나와 대회의실로 향하는 해로즈가 중얼거렸다.
“꼭 내리 갈굼을 해야 말을 들어요. 미개한 새끼들.”
#
“아무리 비상 통로라지만 진짜 기이하네.”
제법 오래 걸은 뒤에 스냅샷이 열어젖힌 탈출구로 고개를 내밀어 본 내가 한 말이다.
아래쪽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네모난 바닥이 보이고, 위로는 끝도 없는 어둠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공간 중앙에는 몇 겹으로 꼬인 강철 케이블이 있으니, 내가 지금 얼굴을 내밀고 있는 곳은 엘리베이터 통로였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엘리베이터 상부로 탈출한 뒤에 이쪽으로 빠져나갈 것도 고려한 설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뒤에서 들려오는 스냅샷의 말.
몸을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다른 통로는 없어? 여긴 그렇게 많이 올라온 것 같지도 않은데.”
“다른 통로들은 건물 내부 공간을 한 번씩은 경유하더군요. 화장실, 계단, 탕비실, 세탁실, 휴게실 기타 등등요. 아마 저희를 찾느라 인원들이 쫙 깔렸을 텐데 최대한 노출되지 않고 위로 가는 방법은 이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아마 필연적으로 전투가 벌어질 텐데, 그때 이런 다른 비밀 통로로 진입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고요.”
스냅샷과 내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탈출구로 몸을 내밀려던 타이린드가 황급히 몸을 안쪽으로 웅크렸다.
콰아아아아-
어마어마한 속도로 하강하던 엘리베이터가 스쳐 지나가며 안쪽으로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와······. 코 잘리는 줄 알았어.”
콧잔등을 쓸어보는 타이린드 너머로 통로 벽면에 쓰여진 3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엘림이 몇 층에 있을 거라고?”
“120층에 있을 겁니다. 엘림의 개인 집무실과 대회의실이 다 같이 있는 층이라 잘 벗어나지 않습니다.”
타이린드가 끼어들었다.
“해로즈도 거기 있으려나?”
“글쎄요. 그것까진 모르겠군요.”
“3층에서 120층까지 가야 하는 거면. 확실히 이게 제일 빠른 길이긴 하겠네.”
“아마 2층으로 연결되는 통로도 있을 겁니다. 추적당할 위험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다시 한번 외부에 접속해서 빌딩 통로를 확인하면―.”
“언제 또 돌아가냐.”
어쩌구저쩌구 중얼거리는 스냅샷의 멱살을 잡고 통로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근력 강화]
[에어 글러브Air Glove]
공기막이 손 주위에 쳐지는 것이 느껴졌다.
물이 닿을 때 손이 젖는 걸 싫어하는 사람을 위한 스킬.
이건 익히는 사람들이 좀 있었다.
그런데 이게 손에 물이 닿게 하지 않는 원래의 용도 말고도 다른 용도가 있다는 걸 알아낸 사람이 나다.
글러브라는 이름에 일반적인 장갑이라는 뜻도 있지만, 야구글러브 생각이 나서 에어 글러브를 사용한 채로 공던지기를 했던 것이 그 시초다.
크지는 않지만, 충격을 흡수하고 마찰을 증가시키는 기능이 있었던 것.
그 후에 뭔가를 잡고 오를 일이 있거나, 잡을 일이 있으면 간간히 사용하곤 했다.
지금처럼.
에어 글러브를 사용한 손으로 엘리베이터 위의 이동 케이블을 잡고 아래로 쭉 내려갔다.
손 주변에서 타는 냄새가 났지만 에어 글러브가 타는 거라 아프지는 않았다.
힘을 강하게 준 덕분에 엘리베이터의 상부에 충돌하기 직전에 멈출 수 있었다.
“으억, 크허.”
놀랐는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숨을 몰아쉬는 스냅샷의 멱살을 놓은 뒤 조용히 하라는 뜻으로 검지를 세워 입 앞에 가져다 댔다.
타이린드는 예공방에서 보여준 것처럼 총구를 아래로 향한 채 화염을 분사하는 방식으로 내려오는 데 성공했다.
엘리베이터 아래쪽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나지 않게 주의하며 틈새로 아래쪽을 보니 탑승한 검은 양복 둘이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아 씨바, 이게 뭔 똥개훈련이야.”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개 수인 말라뮤트 종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푸념했다.
“내려가랄 때는 언제고 이제는 올라가래. 가면 계단으로 내려가라고 시킨다며. 뺑이 존나 시키네! 진짜.”
옆에 있던 고블린 검은 양복이 개 수인에게 말했다.
“그럼 내려서 아래부터 위로 계단 훑으면서 오던가.”
“그건 싫어. 위에서 내려오는 게 훨 낫지.”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으면 어떻게 하자고?”
“푸념 좀 한 거 가지고 더럽게 빡빡하게 구네.”
“거사에 참여하는 거니까 집중해.”
“거사는 높은 양반들한테나 거사지 옘병. 아, 너는 고블린이라 해로즈 그 고블린이 동족 챙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냐? 지랄 마라, 지랄 마. 어림도 없다.”
“상관인 오바산조 님이 해로즈 님에게 협력하기로 한 이상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어. 이게 성공해야 너도 살고 나도 살아.”
“오바산조건 해로즈건 니미 뽕이다. 지들끼리 파벌싸움 해서 내 월급이 오르냐?”
“조직 개편하면 인원이 많이 줄어들 테니까 월급은 오르지 않을까. 뭐라도 챙겨주시겠지.”
“그럼 충성해야지. 좋은 일 하고 계셨네.”
개 수인이 층수를 누르는 곳에 있는 검은 패널에 시계를 대서 인증을 한 뒤 그들에게 허용된 최대 층수인 80층을 누르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직전, 위쪽에서 철커덕하는 소리와 함께 상판 일부가 열리고 검을 든 오메가가 엘리베이터 안쪽으로 떨어져 내렸다.
“같이 좀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