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5. (3권 후기)
075.
누군가는 나를 보고 눈앞까지 굴러온 기회를 걷어찬 바보라고 할지도 모른다.
또 다른 누군가는 득실을 계산하지 못하는 멍청이라고 할 수도 있고.
상관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할 뿐이니까.
부처가 이런 유언을 했다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자신을 등불 삼아 스스로를 의지하라.
나는 불자가 아니지만 저 말은 좋아한다.
거친 세상 믿을 건 자기 자신밖에 없지 않겠나.
특히나 나처럼 특수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러고 보니 여기도 부처가 있나?
불가는 있는 것 같던데 석가모니라는 인물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석가모니의 태몽이 흰 코끼리라는데, 코끼리 수인이고 그런 건 아니겠지?
얘기가 샜다.
결국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내가 득실 따질 줄 알면 마이너 스킬들 숙련도를 잔뜩 올렸겠냐는 거지.
손해를 보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
그게 나다.
#
푸확-
검은 양복 중 가장 키가 작은 드워프의 몸에 꽂혀 있던 검을 뽑아내니 피가 치솟았다.
총 여섯 명의 검은 양복 중 완전히 전투 불능으로 만든 건 이 드워프 하나.
팔을 잘라냈더니 순식간에 몸에서 팔이 자라나서 깜짝 놀랐다.
그것도 세 번 정도 더 하게 만들어줬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 비틀거려서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의뢰가 간 걸로 알고 있는데?”
놈 중 가장 앞에 선 고릴라 수인의 말.
검을 휘둘러 묻어있는 드워프의 피를 털어내며 가볍게 답했다.
“너희가 의뢰하면, 내가 다 해야 하냐? 거절이다.”
“생각보다 멍청하군. 너도 여기서 죽게 될 거다.”
타앙-
총소리가 로비를 울렸다.
고릴라 수인의 뒤로 몰래 돌아서 스냅샷에게 접근하려는 인간의 머리가 절반 정도 뭉개져 있었다.
남은 검은 양복은 넷.
연기가 피어오르는 총을 만지는 타이린드가 보였다.
그녀가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총이 하나로 합쳐지며 작은 참호 위에 올라간 기관총처럼 변했다.
기관총 사수가 외쳤다.
“너희가 먼저 시작한 거야!”
기관총의 총열이 매섭게 회전했다.
발사되는 것은 하나하나가 블래스터에서 발사되는 위력 이상의 레이저 탄환.
빌딩 내부를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레이저 포화를 맞고 순식간에 외장이 녹아내려 내부구조를 드러냈다.
“처리해.”
고릴라 수인의 말.
남아 있던 검은 양복들이 눈으로 포착하기도 힘든 속도로 갈라졌다.
타이린드가 있는 곳에 둘, 스냅샷이 있는 곳에 고릴라를 포함한 둘.
‘타이린드에겐 미안하지만, 전투 능력이 없는 스냅샷 쪽을 지킨다.’
스냅샷을 지키는 동안, 타이린드가 쏟아붓던 포화가 멈췄다.
그쪽을 흘끗 보니 기관총은 두 자루의 샷건이 되어 있었다.
투쾅- 투쾅-
두 번의 격발음.
어디서 났는지 모를 장검을 들고 타이린드에게 접근하던 두 양복은 샷건에서 발사된 탄환을 맞고 마치 수영을 하듯 움직임이 느려져 있었다.
“총 쓰니까 어떻게든 붙기만 하면 될 줄 알았냐?”
철커덕-
탄을 갈아 끼운 타이린드가 느려진 둘의 머리를 향해 총구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발사된 탄환이 확하고 터지면서 내부에 있던 산탄이 흩뿌려지나 싶더니 푸른 빛과 함께 각각의 산탄이 또다시 연쇄적으로 폭발해 검은 양복을 집어삼켰다.
반동이 엄청난 듯, 타이린드도 뒤로 쭈욱 밀려났다.
샷건을 들고 있던 팔을 몇 번 돌리는 타이린드.
그사이, 폭발에 먹혀 상반신이 날아간 검은 양복 둘의 하반신이 풀썩하고 쓰러졌다.
“다른 곳도 둘러보고. 여유가 넘치는군.”
고릴라 수인의 말.
내 관자놀이를 향해 놈의 거대한 주먹이 날아들고 있었다.
베어버리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린 순간, 놈의 팔꿈치 아래쪽이 변형을 시작했다.
팔꿈치 뒤에서 노즐이 만들어지더니, 엄청난 압력으로 화염을 분사했다.
로켓과 비슷한 구조.
고릴라 수인의 주먹에 엄청난 가속이 붙었고, 검을 가져다대면 어느 정도 벨 수는 있겠지만 조금 베인다고 해서 저 주먹이 멈출 것 같지는 않았다.
[고속 이동]
몸을 뒤로 빼자, 고릴라의 등과 무릎 뒤에서도 양복이 찢어지며 노즐이 만들어졌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는 거대한 덩치를 피해 손을 뻗었다.
[혈계조검술 – 다가]
스냅샷에게 접근하려는 다른 검은 양복에게 피로 만들어진 대검이 몇 개 날아갔다.
“으악!”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대검이 주르르 박힌 채 비명을 지르는 놈.
이제 고릴라 로켓펀치는 내 지척에 다가와 있었다.
고릴라 수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뭉개주마!”
혈계조검술을 사용하느라 피가 흐르는 팔을 당겨 양손으로 검을 잡았다.
상처가 벌어지며 피를 울컥 토해내고, 검은 마치 물을 기다리던 식물처럼 피를 쭈욱 빨아들였다.
빛으로 이루어진 검날 부분은 제외한 채, 칼자루와 칼등을 타고 오르던 피가 검 끝에 이르러서도 뻗어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날의 아랫부분이 광자 검날로 이루어진 거대한 피의 대검이 내 손에 잡혔다.
[혈계조검술 – 컨플루엔시아confluencia]
기존의 무기에 혈액을 덧입혀 새로운 형태의 무기를 생성하는 술법.
젠이 공언한, 혈계조검술의 극의極意.
내가 구상하고, 꿈꾸는 기술에 이르기 위해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젠의 조언을 받아들여 혈계조검술을 집중적으로 익힌 결과다.
대검의 방향을 살짝 틀어 광자 검날 부분이 놈의 팔꿈치로 향하게 하고 그대로 내리그었다.
[낙목소소하落木蕭蕭下]
쓸쓸히 떨어지는 낙엽처럼, 사지 중 하나를 분리하기 위한 대검 스킬.
이를 악문 고릴라 수인이 팔꿈치의 노즐 각도를 조정해 주먹의 방향을 약간 위로 돌렸다.
광자 검날이 아니라 그 위쪽, 피로 만들어진 날에 닿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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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플루엔시아]를 익히며 내가 제시한 아이디어에 젠이 인상을 찌푸렸다.
“파괴력만 생각했을 때는 분명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소모되는 혈액도 많아질 겁니다. 오메가 씨는 흡혈귀가 아니라서 소모된 혈액을 보충하기 힘들 것 같으니 권하고 싶지는 않군요.”
그 부분은 자연회복과 급속회복으로 어떻게 메워보겠다고 했지만 젠은 그래도 걱정되는 눈치였다.
“이런 방식은 구상도 해본 적 없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군요.”
“저는 알아요.”
“어떻게요.”
“예전에 비슷한 걸 써봤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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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피나espina]
매끈했던 대검의 날 부분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삐죽삐죽 솟았다.
부쩍 당황스러워하는 고릴라의 음성이 내 귀에 닿는다.
“톱?”
“뭘 썰기에 이만한 게 드물더라고.”
콰드득-
그대로 내려와, 마침내 고릴라의 팔뚝에 파고든 거대한 피의 톱.
[로타시온rotación]
가시들이 빠르게 정렬하고, 열을 맞춰 날을 타고 회전하기 시작했다.
콰드드드득-
놈의 피부가 벗겨지고 기계 장치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근육과 뼈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의 톱날이 더 빨리 회전할수록, 내 온몸의 피가 그쪽으로 빨려 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두 번 썼다가는 그대로 골로 가겠네, 이거.’
팔이 다 잘리기 전, 고릴라가 커다란 덩치를 바닥에 굴러 내 간격에서 벗어났다.
당장이라도 따라가서 마무리하고 싶지만, 단시간에 피를 너무 많이 사용한 것인지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
대검을 해제하고 검 위에 덮어씌웠던 피가 몸으로 흘러들자 무겁던 눈꺼풀을 조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피뿐만 아니라 몸 안의 다른 수분까지 끌어간 것인지 눈이 뻑뻑하고 입이 바짝바짝 말랐다.
덜렁거리는 팔을 부여잡은 고릴라가 나를 보고 말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군.”
슬슬 풀리는 혀를 한 번 움직여줬다.
“이 정도면 여유 부릴 만하지? 이제 몸 좀 풀리려고 하는데 다 뒤지고 너밖에 없네?”
“이제 시작이다.”
고릴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건물 밖으로 향하는 문에 두터워 보이는 셔터가 내려지고 있었다.
“건물에 들어온 이상, 너희가 살아나갈 길은 없다.”
건물의 모든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비상계단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제대로 한 방 먹은 건가.
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답답하고 짜증나 미칠 것 같아도 겉으로 보기에는 담담해 보이는 게 유리하다.
“날 엮은 새끼한테 죽여버린다고 전해.”
타앙-
타이린드가 고릴라의 머리를 향해 총을 한 발 쏘았으나 고릴라는 덜렁거리는 팔을 뜯어내서 후려치는 것으로 탄환을 막아냈다.
탄환을 맞은 잘린 팔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뒤틀렸으나 총알이 팔을 뚫고 나오지는 못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화염계 마법의 사용을 고민하는 사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선 스냅샷이 소리쳤다.
“일단 피하시죠, 이쪽입니다.”
“여기서 어디로 피해!”
“따라오세요!”
갓 태어난 가젤처럼 당장이라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어디론가 뛰어가는 스냅샷.
나와 타이린드는 눈빛 교환을 한 번 하고 바로 스냅샷의 뒤를 따랐다.
몰려드는 검은 양복들 사이로 고릴라 수인이 뭐라고 중얼거렸으나 중지를 내밀어 무시했다.
“로켓 원툴인 놈이 말은 더럽게 많아.”
옆에서 듣던 타이린드의 말이 걸작이었다.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오메가는 검을 쓰니까 몸에 발전기 박고 옆구리에 레일 깔아서 레일건 발도를 하는 건 어때.”
“몸에 뭘 하고 싶지는 않네요.”
“아쉽네. 한다고만 하면 소개해줄 장인들은 많은데. 레일건 발도에 성공한 사람이 없어서 실험체 찾기가 힘들대. 하면 다 터져나간다더라. 오메가 정도면 가능성 있지 않을까?”
“없어요. 절대. 네버.”
제법 달려가던 스냅샷이 숨을 몰아쉬며 걸음을 멈췄다.
“허억, 허억. 여기입니다.”
건물 1층 외진 곳에 있는 소화전 앞이었다.
황당해서 말이 쏟아져나왔다.
“물대포라도 쏘자고? 갑자기? 어떤 걸로 쏘면 되냐? 하이드로펌프? 아니면 용의 콧물?”
멀지 않은 뒤쪽의 코너에서 검은 양복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냅샷은 소화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손을 쑥 집어넣은 스냅샷.
톡, 토톡, 톡
독특한 리듬으로 안쪽을 두드리나 싶더니, 소화전 옆의 벽이 없어지며 사람 하나가 지나갈 만한 공간이 드러났다.
소화전에서 손을 빼고 문을 닫은 스냅샷이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와 타이린드에게 말했다.
“몰래 만든 비상 통로입니다. 아는 사람이 몇 명 없을 겁니다. 건물주도 몰라요.”
“어디로 이어지는데.”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여기보단 안전할 겁니다.”
스냅샷을 앞에 세운 우리는 통로의 안쪽으로 들어섰고, 뒤에서 다시 벽이 생성되는 소리와 함께 짙은 어둠이 시야 가득 밀려왔다.
#
루트의 대회의실, 여러 사람들이 심각한 얼굴로 드나들고 있었다.
하지만 대회의실이 바로 보이는 옆방에 이런 급박한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있었으니, 책상 위에 비스듬히 누워 술잔을 홀짝이고 있는 도깨비였다.
우람한 팔뚝이 보이게 걷어 올린 적삼, 종아리까지 끌어올려 대님으로 아랫단을 묶은 바지, 대충 모아 질끈 묶은 상투는 마치 농군이 잠시 새참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의 이름은 엘림.
루트의 수장이자 루트 그 자체로 불리는 인물로, 정보를 다루는 것에 있어서는 공공 집행자 마고 다음 간다는 소리를 공공연히 듣는 인물이었다.
그는 엄연히 따지면 현재 루트 내부에서 권력을 획책하기 위한 파벌 중 하나에게 납치, 감금되어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파벌도 다른 파벌을 뭉개기 위한 행동에 들어간 것이지, 엘림을 어떻게 할 생각은 없었다.
엘림은 아래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각자의 일만 잘한다면 파벌이고 권력이고 아예 관심을 두지 않는 스타일.
따라서 납치한 쪽도 루트의 정통성 확보를 위해 엘림을 모셔두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흐아암-.”
늘어지게 하품을 한 엘림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작은 키, 툭 튀어나온 주둥이, 번뜩이는 눈, 녹색 피부.
고블린이었다.
“정말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으실 겁니까?”
고개를 돌려 잠깐 고블린을 바라본 엘림이 다시 원래대로 고개를 돌렸다.
“해로즈. 사람이 왜 정보에 집착한다고 생각합니까?”
“그야······.”
해로즈라 불린 고블린이 답하기 전, 술을 훌훌 털어 넣은 엘림이 말했다.
“‘정보’는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남의 위에 설 수 있는 명분이고 힘입니다.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우위에 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보는 곧 힘입니다.”
손을 들어 머리를 북북 긁는 엘림.
상투에서 머리칼이 몇 올 더 빠져나왔다.
“힘을 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는 그걸 막을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고여있는 것보다 좋은 일이라고 봅니다. 풍랑은 배를 부수곤 하지만 바다 밑의 양분을 위로 끌어올리는 역할도 하니까요.”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에 해로즈의 표정이 밝아졌다.
일을 벌이고 엘림을 확보하긴 했지만 내심 엘림이 거부감을 표하면 어떻게 하나 하고 걱정했던 것.
“감사합니다.”
손을 내젓는 엘림.
“감사할 것 없습니다. 해로즈가 치는 쪽이 아니라 밟히는 쪽이어도 똑같이 했을 거니까요.”
그 말에 왠지 섬뜩해진 해로즈가 고개를 꾸벅하고 밖으로 나가기 전, 엘림이 술병을 흔들었다.
“일이 끝날 때까지 이게 비지만 않게 해주면 좋겠군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문이 닫히고, 엘림이 술잔에 술을 채운 뒤 혼잣말했다.
“달을 담아 마시는 차가운 불.”
이제는 이름도 전해오지 않는 어느 도깨비 현인이 남긴 말.
썩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차가운 불을 목 뒤로 넘긴 엘림이 생각했다.
풍랑을 견디는 배도 있으며 그 배는 풍랑을 발판 삼아 더 먼 바다로 나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런 배가 나타난다면, 풍랑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도깨비가 호기심과 기대감으로 이루어진 미소를 지었다.
작가의 말
0.
오늘 엘림이 했던 ‘달을 담아 마시는 차가운 불’이라는 대사는 <눈물을 마시는 새>에 등장했던 말을 어순만 바꿨습니다.
술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차가운 불입니다. 거기에 달을 담아마시지요.’라고 했던 비형 스라블의 대사입니다.
저 부분을 읽다가 이영도 작가님의 끝이 보이지 않는 필력에 감탄한 적이 있어 가장 좋아하는 대사입니다.
팬심으로 넣은 작은 오마주 정도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2권 후기를 썼던 게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인데 벌써 3권까지 와 있군요.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어주신 독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사실 연참을 종종 하는 바람에 후기 타이밍이 더 빨리 다가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ㅎㅎㅎ.
2.
51화가 마도공학 경매였고, 이후 이수련이 등장했고, 공공 집행본부로 가서 마고를 선동과 날조로 유린했으며, 렙틸리비아로 내려가서 색승과의 질펀한 결투를 벌인 뒤에 스펙터까지 포획했군요.
이후 사기꾼 듀오를 밟으러갔다가 브리가드와 접촉했으며 지금은 루트의 일에 엮여있네요.
큰 줄기만 따져서 이 정도고 중간중간 이수련과 신시아가 한 판 붙기도 하고, 젠과의 대련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3.
세계관의 외연을 넓히면서 동시에 내부적으로도 인물 간 관계나 새로운 집단의 등장을 재밌게 풀어나가야 했기에 상대적으로 고민을 많이 하며 글을 썼던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고민이 많았던 것과 별개로 글은 재밌게 썼습니다.
4.
3권 분량 중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곳을 꼽으라면 단연 색승의 등장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사이버펑크하면 건물의 한쪽 벽을 다 채운 거대한 스크린에 아슬아슬한 옷을 걸친 남정네와 여인네가 관능적인 몸짓을 하고 있는, 왠지 조금은 성적으로 문란할 것 같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술집이나 클럽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뜨거운 눈빛 교환을 할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묘한 윤리 의식과 성 의식을 글로 표현해보고 싶었고, 결국 다 때려부어버린 게 색승이라는 캐릭터입니다.
5.
색승은 초기 구상 단계에서 이름이 아다가 아니라 색스sax, seax였습니다.
원고에 그렇게 적어서 보내드렸더니 PD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색승이라는 별호도 이미 충분히 중의적인데 이름마저 이러면 너무 나간 것 같아요.”
알겠다고 답한 저는 색스를 아다로 바꿔서 전달드렸습니다.
PD님도 그 이름은 만족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추가 피드백이 없으셨으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속으로는 제 원고를 보고 ‘더 건드리면 뭐가 나올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알겠다고 하자.’라고 하신게 아닐지, 이걸 쓰다보니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요.
6.
3번에서 이어지는 주절거림입니다.
제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연참을 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벌써 2주 넘게 연참을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80% 이상 완성된 원고를 날리거나 구상한 스토리 라인을 폐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렇습니다.
스트레스나 그런건 아니고 ‘더 재밌게 쓰면 좋을 것 같아서’ 입니다.
실제로 80% 이상 완성된 원고를 날린 건 2번 정도 되고 스토리 라인은 5화 이상 구상이 끝난 걸 한 번 폐기했으니 딱 연참이 힘들 분량만큼 날아가 버린 셈입니다.
다시 차근차근 비축을 쌓으려고 시도중이니 되는대로 깜짝 연참을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