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73화 (74/258)

073.

073.

다음날, 스냅샷이 운영하는 카지노로 향했다.

기도 녀석들은 멀리서 나를 알아볼 거리가 되자 황급히 무전을 때리기 바빴다.

이전처럼 번거로운 과정 없이, 내 걸음이 문 앞에 닿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내부로 들어가자 스냅샷이 나와 있었다.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는 스냅샷에게 말했다.

“어후, 뭐 이렇게까지 해. 누가 보면 어디 왕이라도 온 줄 알겠어.”

“근래 들어 가장 이름을 날리고 계신 분 아닙니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냐? 저번에 앨리스한테 듣기로는······뭐랬더라? 상호 간의 신의와 합의 어쩌고, 적극적인 협력에는 어려움 어쩌고 하지 않았나?”

스냅샷은 내게 뒷세계의 정보를 건네고, 나는 그 대가로 경쟁 카지노를 털어주기로 한 약속이었다.

내가 주변 카지노의 블랙리스트에 오르고, 스냅샷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없어져서 흐지부지된 약속이긴 했다.

하지만 내가 꺼낸 말을 들은 스냅샷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 그건······.”

눈에 띄게 당황하기에 주먹으로 스냅샷의 어깨를 툭 쳤다.

장난은 아니고 약간 힘을 실어서.

“해본 소리야. 뭘 그리 당황해. 사정이 있었겠지? 안 그래?”

“그, 그렇죠. 농담! 농담이었습니다! 곧잘 오시던 분이 안 오셔서 투정 한 번 한 거죠. 하하하하.”

“고객 관리가 아주 기가 막히네! 투정 몇 번 들으면 빈정이 팍 상하겠어!”

아예 얼굴이 굳어버린 스냅샷에게 물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세워 둘 거야?”

얼어있다 풀린 것처럼, 스냅샷이 화들짝 놀라서 내 앞으로 나섰다.

“이쪽, 이쪽입니다. 올라가시죠. 타이린드 님도 오신다고 들었는데요.”

“시간 맞춰 오겠지.”

#

응접실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으니 스냅샷이 뒤쪽에서 위스키를 한 잔 따라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잔 속에 담긴 위스키의 찰랑임이 멈추기도 전, 스냅샷을 향해 말했다.

“여기 녹음기기나 녹화기기 있냐?”

“없습니다.”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스냅샷.

“다 여기 저장되니까요.”

“농담하는 거 아니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정말입니다.”

“그래. 그럼 하나 물어보자. 너 루트에서 어느 정도 위치냐.”

정적.

정보를 다루는 조직인 루트의 구성원은 신분이 노출되어도 상관없는 오버over와 신분을 숨기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언더under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타이린드에게 들었다.

타이린드는 오버, 스냅샷은 언더다.

타이린드의 말실수로 인해 스냅샷이 언더 루트라는 걸 알게 됐고, 그 당시에는 이걸로 스냅샷을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카지노에 다닐 만큼 시간이 나지 않았던 이유도 있고, 괜히 타이린드에게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 않나.

그리고 타이린드와는 나름대로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 간의 의리 같은 것이 있었다.

서로 시간이 안 맞아서 나가지는 못했지만, 종종 바이크 타자고 부르는 사이기도 했고.

그러니 타이린드에게 들은 얘기를 스냅샷에게 꺼내는 건 처음이었다.

내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표정 관리가 힘들어 보이는 스냅샷을 향해 말했다.

“표정 꼬라지 보니 이런 질문을 받는 건 처음인가 보네. 누가 물어볼 때마다 그런 얼굴 하면 동네방네 소문나는 데 얼마 안 걸릴 거다.”

“그럼 잠깐 실례 좀.”

스냅샷이 황급히 손을 뻗어 내게 준 위스키를 가져가서 자기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크으-하는 소리와 함께 진한 바닐라 향을 뿜어낸 스냅샷에게 말했다.

“술 마셨으니 계속 들어. 뇌용량확장술, 순간기억마법, 기억데이터전송술을 익혔다고 했지? 아마 이거 말고도 내게 말하지 않은 게 더 있을 거고. 언더 루트의 인적 자원 폭이 얼마나 넓은지는 모르겠는데, 너 정도면 상당히 유용한 능력 아니야? 대림 에어리어 카지노 지배인이라는 신분이 굳이 필요한 건가?”

“여기서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도 우습겠죠?”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체념한 듯한 스냅샷의 표정.

“소스Source가 어디인지만이라도 알려주실 수는 없습니까.”

타이린드를 여기로 부른 이유가 이거다.

스냅샷은 설마 자기 신분을 노출한 사람을 앞에 불렀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겠지.

이제 타이린드만 연기를 잘하면 된다.

타이린드의 실수는 묻으면서, 스냅샷에게 내 존재감을 각인할 수 있다.

“소스를 노출하면 되나. 그리고 정보 조직의 일원이 그걸 묻는다는 것 자체가 너무 아마추어 같잖아.”

떨리는 손으로 위스키 한 잔을 더 따라 마신 스냅샷의 표정이 그제야 조금 차분해졌다.

“여기 자리 잡으면서 누구한테도 들키지 않았는데, 해결사한테 들키다니. 참 황당하군요.”

“원래 인생은 황당함의 연속이랬어.”

“이것 때문에 타이린드 님도 부른 겁니까? 오버 루트의 도움을 받아 제 거취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무슨 소리야. 네 거취는 관심 없어. 여기서 벽에 똥칠하고, 저장된 기억을 입 밖으로 줄줄 뱉을 때까지 살아.”

“예?”

“말했잖아. 루트에서 네 위치가 어느 정도냐고. 대충이라도 그것만 말해. 내 위에 몇이나 있다, 아래로는 얼마나 있다. 그런 거. 그거 외에는 궁금한 거 없어.”

“그건······.”

우우웅-

스냅샷의 손목시계가 진동했다.

“잠시 실례 좀 하겠습니다.”

응접실의 구석으로 갔다 온 스냅샷이 말했다.

“타이린드 님도 오신 모양입니다.”

“그래, 내가 아는 루트가 다 모였으니 얘기를 좀 제대로 해보자고.”

“소스가 누구인지는······.”

“어허, 구질구질하게 굴 거야?”

응접실 문이 열리고, 장총 두 자루를 등 뒤로 교차해서 멘 타이린드가 들어섰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타이린드는 스냅샷에게 달려가 말했다.

“미안해! 내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실수였어, 실수! 원래 사람이 먹을 것 앞에서는 조금 빗장이 풀어지기 마련이잖아. 단 걸 먹어서 기분이 좋아졌을 때 한 실수야!”

아, 타이린드는 내가 스냅샷에게 말했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멍한 얼굴을 하던 스냅샷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소스가 여기 있었군요.”

밝은 표정의 스냅샷과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나를 본 타이린드가 짧은 한마디를 내뱉었다.

“아.”

그래, 바로 조금 전에 내가 스냅샷에게 그랬지.

인생은 황당함의 연속이라고.

#

“오메가 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씀하신 일은 없겠죠?”

타이린드를 향하는 스냅샷의 날카로운 눈빛.

“없어! 정말 없어! 맹세하는데 그거 하나가 다야.”

“혹여 다른 케이스가 있다면 여기서 다 말씀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일이 생기기 전에요.”

타이린드가 손을 앞으로 내밀어 내저었다.

“진짜 없다니까.”

독한 표정을 푼 스냅샷이 말했다.

“차라리 소스가 밝혀져서 다행이군요. 그게 타이린드 님이었던 것도요. 자칫하면 여길 떠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니까요.”

타이린드와 얘기를 마친 스냅샷이 나를 바라봤다.

“한 명씩이긴 하지만 오버 루트와 언더 루트를 한 곳에 모이게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자, 무슨 일로 보자고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루트에 관련된 일이야. 그 전에 루트에서 둘의 위치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야 해.”

타이린드가 머리를 긁적였다.

“나는 뭐 그냥 다 알다시피 오버 루트지. 전투원 겸 조사원이고.”

고개를 끄덕이고 스냅샷을 바라봤다.

“저는 자세히 말씀 못 드립니다.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루트에서 제 위에 있는 사람은 몇 명 없습니다.”

“진짜?”

놀란 목소리는 타이린드의 것이었다.

“도박 중독자라서 좌천된 거 아니었어?”

“위장입니다.”

“간부들이 술자리나 평소에 보이는 추태를 다 저장해놔서 미움 샀다는 건?”

“······일부 사실인 것 같군요.”

그대로 뒀다가는 타이린드가 끝도 없이 질문 세례를 할 것 같길래 제지하고 스냅샷에게 물었다.

“근래 루트에서 내 정보가 나갔는데, 알고 있어?”

“찾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적당한 선까지는 제공합니다.”

“적당의 선은?”

“간단한 프로필 정도일까요.”

“그래? 그 이상인 것 같던데. 루트에서 적극적으로 팔아먹은 내 정보 때문에 이상한 애들이 찾아왔어. 브리가드래. 프라이빗한 경매에 내가 참여한 것도 알고 있더라. 요새는 그런 정보도 간단한 프로필에 적혀 있나?”

타이린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브리가드?”

“그럴······리가요.”

오늘따라 스냅샷이 당황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는 것 같다.

#

스냅샷은 루트 내부에서 독특한 위치라 할 수 있다.

독립 카지노의 지배인 역할을 하며 대림 에어리어 주변 뒷세계의 소문을 끌어모으는 동시에 검은돈을 세탁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언더 루트 중 제법 경력이 오래된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루트에서 스냅샷이 맡고 있는 또다른 역할은 ‘생체 허브’.

스냅샷처럼 기억데이터전송술을 익힌 몇 명이 맡는 역할로, 스냅샷을 제외하면 그 존재가 극히 비밀이다.

하는 일은 루트에서 들어온 정보와 나간 정보를 정리하고 보관하는 것.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만들면 열과 전력 때문에 위치가 특정될 수 있으니 작은 규모의 데이터센터나 데이터베이스를 많이 만들고 중간 허브로 사람을 이용하자는 발상에서 출발한 방법이다.

생체 허브도 등급에 따라 취급할 수 있는 범위가 다른데, 스냅샷은 최고등급의 보안 정보도 받아서 저장하고 있었다.

게다가 스냅샷은 이름을 날리기 전의 오메가와 접촉했던 적이 있고, 카지노도 오메가의 사무실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메가에 대한 것은 중복 여부를 가리지 않고 모두 자신에게 보내달라는 요청을 해놨기에 루트 내외부에서 오가는 오메가의 정보는 모두 자신이 관리하고 있다고 자신하던 스냅샷은 오메가의 말에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

“퓨전 코프에서 요청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곳이 루트라고 들었어. 그 말은 퓨전 코프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요청했어도 내 정보를······.”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나를 말린 스냅샷이 곧바로 목을 위로 꺾었다.

외부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하는 것.

그걸 본 타이린드가 속삭였다.

“오! 말만 들었지 처음 봐. 뭔가 좀 기괴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우두둑 소리를 내며 스냅샷의 목이 내려오고, 흰자만 가득했던 눈에 초점이 잡혔다.

“없습니다. 깨끗해요.”

“뭐가?”

“오메가 씨의 정보에 대한 접근 기록이 하나도 없어요. 다른 보관고들에 있는 것도 확인했는데 마찬가지예요.”

“퓨전 코프의 당사자한테 얘기를 듣고 온 거야. 루트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제공했어.”

스냅샷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 말이 정말이라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오메가 님의 정보를 만지작대고 있군요. 저를 배제한 채 말이죠.”

잠시 생각하다 타이린드에게 말했다.

“누구라고 했죠? 루트를 이끄는 사람? 엘······.”

“엘림?”

“네. 엘림. 저번에 그랬죠. 엘림이 저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좀 되긴 했지만, 그렇지.”

“여기서 우리끼리 머리 굴리고 있어도 답이 나올 것 같지는 않으니까, 엘림을 좀 보러 가죠. 뭐라도 아는 게 있겠죠.”

“지금?”

“네, 지금요.”

#

토옹- 토옹-

공공 집행본부의 어두운 방, 작은 병 안에 갇힌 벌레가 온 힘을 다해 병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하지만 작은 소리만 울릴 뿐, 병이 깨지는 일은 없었다.

스펙터는 몸을 털어 짜증이 가득 담긴 페로몬을 내뿜었다.

집결 의지가 담긴 페로몬을 뿜어도 보았으나, 그녀에게만 반응하게 제작된 유동성 벌레들이 달라붙는 일은 없었다.

‘혼자서는 말도 못 하는 신세라니!’

스펙터는 특수한 벌레 군체들을 이끄는 여왕이다.

신호 하나면 둘러싼 군체들은 신호하는 대로 녹아 움직인 뒤 몸을 경화시켜 그녀의 의지에 따라 여러 인물로 변한다.

‘젠장! 거기서 손에 잡혀 들어갈 줄이야!’

오메가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스펙터.

페로몬 발산을 극대화 하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장치를 달지 않은 것이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해가 뜨면 퓨전 코프에서 온 과학자와 기술자들에 의해 그녀가 가진 비밀이 무엇인지 조사가 또 이루어질 것이다.

조사라는 명목하에 벌써 일주일 넘게 이어지고 있는 고문과 취조에 스펙터는 지쳐 있었다.

‘여기에도 우리에게 협력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이었······.’

문이 살짝 열리고 틈새로 복도의 빛이 길게 늘어져 병 안으로 들이쳤다.

그 빛 때문에 다가오는 소리가 있음을 알아챘음에도 스펙터는 접근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멍청한 것들을 데리고 큰일을 도모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군.”

미지의 인물이 스펙터가 담겨 있는 병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퍼억-

거리가 조금 있었음에도 병의 윗부분이 터져나갔고, 스펙터는 이때다 싶어 붕 떠올랐다.

아직 열려 있는 문틈으로 나서기 직전, 스펙터는 몸을 돌려 자신을 도운 인물이 누구인지 보려 했다.

서늘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돌아보지 말고 나가라.”

말에 담긴 감정만으로도 파닥거리는 날개가 으스러질 것만 같았다.

“수연에게 일을 앞당기라고 전해.”

스펙터는 생각했다.

‘들어본 목소리 같기도 하고······.’

하지만 차마 거스를 용기는 나지 않았기에 알겠다는 의미로 공중에 작게 o를 그린 후 복도를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

스펙터의 탈출과 해당 시간, 해당 구역의 CCTV가 기기점검 중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다음 날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