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잡캐여도 너보단 강함-70화 (71/258)

070.

070.

대한민국의 신체 건장한 남성이라면 훈련소에서 총을 처음 잡아 봤을 것이다.

시커먼 쇳덩어리.

멜빵에 달아서 들고 다닐 때는 그저 던져버리고 싶던 그 물건을 처음 쐈을 때가 기억난다.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 주먹이라도 맞은 듯 뻐근한 견착 부위, 손끝에 느껴지는 얼얼함, 코를 타고 뇌를 찌르는 화약 냄새.

다양한 매체에서 소총이 발사되는 장면을 타닥타닥하고 팝콘 튀는 소리와 함께 묘사하곤 하던데 그게 굉장히 축소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다.

그리고 소리와 충격에 비해 사격을 마치고 확인한 표적지의 흔적이 놀랍도록 작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랐고.

그런데,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레이저 건은 소총과 반대다.

손에 단단하게 잡히는 느낌은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물건이라는 것을 체감하게 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외양은 장난감 같다.

크기는 내가 알고 있는 권총만 하다.

방아쇠를 당기면 광자 검날에서 나는 웅웅 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나고, 총열 끝에서 레이저 탄환이 발사된다.

반동도 거의 없다.

핸드폰 진동보다도 작은 정도.

그립 부분에 닿아있는 손에 잠시 따끈한 느낌이 지나가긴 하지만, 냉각장치가 작동되는지 곧 차갑게 식는다.

파괴력은 아마 소총 이상일 것이다.

안쪽으로 들어오려다가 몸에 구멍이 난 채로 꿈틀거리고 있는 놈들을 보면 확실하다.

부서진 문 너머로 보이는 반대편 벽에 내가 발사한 탄환 자국이 선명하다.

열 때문에 피격 부위가 익어버리는지 맞은 놈들은 피가 그리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총상을 입으면 과다출혈로 이어져서 죽는 경우가 많다던데, 이 부분은 오히려 인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처음에 내게 레이저 건을 발사하려 했던 표범 수인을 포함해서 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놈들의 숫자는 넷.

부서져서 경첩만 달랑거리는 문의 너머에는 여전히 인기척이 있지만 더 이상 진입하려는 시도는 없다.

그들이 숙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청력 강화]

“저 새끼, 블래스터를 뭐 저리 잘 쏴. 커스터마이징된 거라 쏘기 힘들 텐데.”

이걸 부르는 명칭은 블래스터인가 보다.

“그러게. 두 발에 전투 불능을 만드니 어이가 없네. 나는 몸에 있는 보조 장치까지 연결해서 쏴야 저 정도 명중률 나올 것 같은데.”

이런, 이걸 잘 쏘는 건 내 실력이 아니었나.

사격을 보조해주는 스킬들의 영향이 컸던 것 같다.

검술이나 마법만큼 주로 사용했던 스킬은 아니라 숙련도가 높지 않아 걱정이었는데, 가끔 꺼내 들 만할 것 같다.

“아니. 그 이전에 저걸 어떻게 쏘는 거야. 사용자 인증 없이 쏘면 자동으로 핸드 커프Handcuff 모드로 전환해서 쏜 놈 속박하는 거 아니었어?”

“하······. 밀리 그 병신. 매번 무기 들고 나갈 때마다 인증 귀찮다고 징징대더니만 해킹해서 락 풀어버렸나 본데.”

이제 꿈틀거리는 것도 멈춘 표범 수인을 바라봤다.

이름이 밀리인가 본데, 놈의 귀찮음과 안전불감증 덕에 임시방편으로 쓸 좋은 무기가 생겼다.

“저놈, 몇 발 쐈는지 기억해?”

표범 수인에게 뺏었고, 들어오는 세 놈에게 각 2발씩.

총 6발.

벽에 남아 있는 흔적과도 일치한다.

“6발.”

“밀리가 쐈나?"

"모르겠어."

"추가 카트리지 없으면 2발 남았네. 밀리가 쐈으면 1발 남았을거고. 네가 들어가서 탄 소모 유도할래?”

“2발에 전투 불능 만든다니까?”

"1발 남았다니까? 네가 맞으면 모두가 편해져."

"저 놈이 총만 가지고 있냐? 검도 있잖아. 그건 어쩌려고."

"그건 그때 생각할 문제지."

이후의 대화는 끊어졌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뭔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발걸음이 멈추고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카운터 석에 앉아 있던 듀라한의 것이었다.

“······예. 제가 가서 해결하겠습니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는데, 상대의 목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았다.

내 심장 어쩌고, 유키가 어쩌고 하는 헤일의 목소리도 왕왕 들렸지만, 자리에 있는 누구도 그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다시 한번 모텔 카페트를 밟는 무거운 발소리가 들리고, 뻥 뚫린 문 너머 근처에서 듀라한이 말했다.

“어이! 안쪽의 해결사 양반! 살아 있나? 피 울컥울컥 뿜으면서 죽어가는 거 아니지?”

바닥에 쓰러져 있는 한 놈이 옆구리에 차고 있던 단검을 뽑아 뚫린 문 너머의 반대편 벽으로 던졌다.

위잉--

벽에 박힌 단검이 부르르 떨자 듀라한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살아는 있군. 얘기를 좀 했으면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거기 널브러진 우리 애들도 좀 회수했으면 해.”

“헤일, 유키 둘은 뭐고, 너흰 누구지?”

“그러니까 그런 것들에 관해 대화를 좀 하고 싶다는 거야.”

“이런 개판을 쳐놓고 대화를 원하나? 날 죽일 생각인 것 같던데.”

“맹세하는데 죽이지는 않았을 거야. 다만 제압 정도는 했을 수도 있겠지. 예상보다 우리 쪽 피해가 커진 것 같긴 하지만.”

“제압? 블래스터로 쏴대는 게?”

“머리나 심장만 안 맞으면 일단 살릴 수는 있잖아? 설령 거기에 맞았다고 해도 어떻게 목숨줄은 붙여놨을 걸?”

담담한 목소리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싸기는 하지만 미분화 세포를 이용해 결손 부위를 만들어 접합하는 수술도 있다고는 하니까.

더 저렴하게 하고 싶으면 그 부위를 기계로 교체하거나 외장 장치를 붙이면 되는 거고.

“내게 접근한 둘은 인간 우월주의자던데, 너희는 그렇지는 않은 건가?”

듀라한, 표범 수인뿐 아니라 바닥에 쓰러져 있는 놈 중에는 엘프도 하나 있었다.

타종족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블래스터에 맞을 각오까지 하면서 인간 우월주의에 빠진 타종족은 없지 않을까.

“저 둘은 널 여기까지 모셔오기 위한 장치였을 뿐이야. 퓨어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았어.”

“시나리오가 너무 구려서 어떤 놈들 작품인지 구경하러 온 거야.”

듀라한은 말이 없었다.

신파 가득한 구린 시나리오는 저 듀라한의 머리에서 나온 건가 보다.

“크흠······.”

“인간 우월주의자가 아닌데 단지 날 꾀어오기 위해 두 명에게 퓨어화 수술을 풀로 해주나?”

크게 웃음을 터트리는 듀라한.

“우리 자금 걱정해주는 건가? 고맙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해결사 양반의 실력을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으니 윗선에서도 퓨어화 수술 2건에 대한 건 적당한 지출이었다고 생각할 거야. 왜? 저 둘이 걱정되나?”

윗선?

“사기꾼 걱정을 왜 해.”

“그럼 다행이군. 용도를 다했으니 이제 붙여놓은 걸 다시 다 벗겨서 팔아먹을 생각이었어.”

잠시 멈칫한 사이, 듀라한이 말했다.

“쏘지 마.”

문 너머로 뭔가 데구르르 굴러왔다.

듀라한의 머리였다.

“이제 좀 대화를 할 기분이 된 것 같은데, 우리 애들 좀 데려가도 되나?”

투구 안에서 번쩍이는 듀라한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인간 우월주의자가 아니라면, 너흰 뭐지?”

“소개가 늦었군. 우린······.”

#

웨스트 씨 사이드West Sea Side, 인천 권역의 정식 명칭이다.

풀네임을 다 부르는 이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WSS나 인천 권역 따위로 부르곤 한다.

네오-서울과 WSS의 접경 지역, 현실에서는 부천 언저리였을 이곳은 황폐한 언덕과 움푹 팬 구덩이가 가득했다.

권역 체제의 초반기, 네오-서울과 WSS 사이에서 벌어진 권역 간 전쟁의 흔적이다.

두 도시 권역은 종전 이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전쟁의 참화를 기억하자는 뜻에서 황폐해진 이곳을 그대로 남겨두자는 합의에 도달했다.

이곳 지하에는 권역 간 고속도로가 놓여 있지만, 지상에 오는 이들은 흔치 않다.

전쟁이 발발했던 달 전후로 양 권역의 학교들에서 현장학습이나 오는 이곳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은 거북이 수인, 다른 하나는 라미아.

색승과 수연이었다.

“예공방의 상무를 그만두셨다고?”

“뻔히 알면서 묻네.”

“그렇게 걷어찰 거였으면 애초에 없는 편이 나은 신분 아니었겠습니까?”

“양지 신분 하나 정도 있으면 좋잖아. 사장인 오우거 가지고 노는 것도 재밌었고.”

“지금은 필요 없다?”

“무기는 충분히 빼돌릴 수 있을 만큼 빼돌렸어. 주위에서 의심의 눈초리도 짙어지고 있었고. 욕심부렸다가는 내 몸을 빼내기도 어려웠을 거야.”

수연이 한숨을 푹 쉬고 말을 이어나갔다.

“일이 너무 많이 터졌어.”

색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터놓고 말하면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겠소?”

계룡 권역을 장악하려는 계획은 엎어졌고 진오는 무슨 생각인지 슬금슬금 말을 안 들어 먹는 눈치다.

“망령 시주는······살아 있답디까?”

“공공 집행본부에 구금 상태인 것 같아. 거기까지 확인해보고 예공방을 나오긴 했는데 이후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

“집행본부에 있다면 걱정할 건 없겠구려.”

“내 생각도 그래.”

잠시 눈치를 보던 색승이 수연에게 말했다.

“해결사 오메가로 인해 벌어진 일이외다. 자각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수연이 아랫입술을 씹었다.

기계 교단의 성당에서 오메가를 죽였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날 당돌하게도 자신에게 데이터 명함을 주던 해결사를 우습게 봤던 것이 후회된다.

색승의 말이 계속 들렸다.

“수연 시주가 그 해결사에게 관심이 있는 건 알겠는데, 이제 결정할 때가 아닌가 하오. 그를 죽일지, 아니면 끌어들일지. 소승의 생각으로는 끌어들이는 편이······.”

입맛을 다시는 색승.

잠시 생각하던 수연이 결정을 내렸다.

“포섭해야겠어. 할 수만 있다면 큰 도움이 될 거야.”

밝은 표정의 색승이 수연에게 말했다.

“그럼 빨리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소.”

“왜지?”

“친우 하나가 브리가드brigade에 있는데 거기도 오메가 시주를 노린다고 하더이다.”

수연의 눈이 번뜩였다.

“브리가드?”

“그렇소이다. 마도공학 시대의 재림을 원하는 이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사고라는 사고는 다 치고 다니는 곳이잖아.”

“이런 말 하기는 매우 겸연쩍으나, 우리도 세간에서는 그리 좋게 보지 않는 걸로 알고 있소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네오-서울의 정화, 넓게 확장하면 한반도 도시 권역들의 재립再立은 브리가드에 비하면 지극히 차분한 것 같은데.”

“둘이 붙여놓으니 그렇게 들리긴 하는구려.”

“그 얘기, 언제 들었지?”

“좀 지난 일이외다.”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움직였을 수도 있겠네. 행동력 하나는 발군인 놈들이니.”

“그럴 수도?”

“일단 알았어. 바로 방안을 마련해 볼게. 아다 당신은 곧 수술 들어간댔나?”

“결정을 앞두고 있소이다. 색······스즉시공 공즉시색······스.”

그 대화를 끝으로 둘은 등을 돌려 멀어졌다.

수연이 중얼거렸다.

“뺏기고 싶지는 않은데.”

황폐해진 땅에 피어난 식물 하나가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렸다.

#

“브리가드?”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놈들을 듀라한의 몸통이 걸어들어와 치운 모텔 방.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어서 지저분하긴 했지만, 대화를 나눌 정도는 되었다.

“그래. 영원의 시대로 향하는 이들이 모인 곳이지.”

“영원의 시대?”

“마도공학이 번영했던 때를 우리는 그렇게 불러.”

브리가드, 영원의 시대.

야스민 공이 투덜거리면서 말한 적 있었다.

유물과 예술품이 아니라 종교적 맹신에 가깝게 마도공학 유물에 접근하는 이들이 있다고.

유적지 습격을 일삼는 탓에 마도공학 유물의 시세를 출렁이게 하는 장본인이랬나.

“영원의 시대를 향한 열망이 있다면 우리는 그 누구라도 받아들이고 있어. 부자, 빈자, 전 종족 상관없이!”

“나는 열망은커녕 관심도 없는데.”

듀라한의 투구 속에서 능글맞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커머라시 야스민의 대리로 마도공학 유물 경매에 대리로 참가한 거 아니었나?”

“의뢰였을 뿐.”

“당신이 낙찰받은 물건이 야스민 저택의 담벼락에 올라갔는데도? 나름대로 여러 유물을 봤다고 자신하는데 그런 건 처음 봤어.”

야스민 저택이라는 글자가 나타나게 바꿔준 폭죽 글자 생성기가 곧 공개될 거라는 말은 들었다.

내가 했다고 하면 피곤해질 것이 분명해 보여서 잡아뗐다.

“그건 내가 한 게 아니야.”

“그렇지, 그렇게 말하겠지. 우리도 그쪽이 그걸 했다는 증거는 없어. 다만 커머라시 야스민이 당신을 대리인으로 세웠고, 그 이후에 유물이 그렇게 바뀌었지.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야. 이 정도면 정황 증거 정도는 되지 않나?”

그 과정에서 내가 개입한 흔적은 다 지워주겠다고 했는데, 그걸 파헤친 곳이 있었고 이렇게 빨리 접근할 줄 몰랐다는 게 이 사태가 벌어진 원인이다.

“해결사 양반, 우리 솔직해지자고. 당신은 영원의 시대에 대해 뭔가 알고 있지? 그 능력을 좀 지원받고 싶을 뿐이야.”

“흠······. 그 전에 하나 물어봐도 되나?”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 같자 듀라한의 머리통이 들썩거렸다.

“뭐든지.”

“왜 당신이랑 이야기해야 하지?”

“무슨 소리야.”

“이 자리에 있는 그쪽 사람 중 제일 높은 사람이 당신이 아닌 것 같아서.”

듀라한 머리통의 들썩임이 멈췄다.

[반향정위]로 주위를 파악할 때 모두가 벽이나 문 뒤에 몸을 바싹 붙이고 엄폐하고 있었지만, 단 한 명만 방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에 있는 브리가드 중 가장 높은 사람일 것이다.

“아마도 시나리오대로 일이 풀렸다면 그쪽이 내 가짜 사부님 역할이었으려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에 강한 의념이 전해져 왔다.

-알면 알수록 재밌는 분이군요. 해결사 오메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