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9.
069.
“저기 앞에 보이는 곳에서 내리겠습니다.”
헤일이 에어로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우리가 향한 곳은 네오-서울 북동에어리어였다.
현실의 노원구, 중랑구, 의정부시가 합쳐진 거대 에어리어이자 다른 에어리어에 비해 인구에서 인간 종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택시의 뒤쪽에 타고 있어 먼저 내린 나는 헤일이 택시 계산을 마치는 사이 기지개를 켜는 척하며 속삭였다.
“이상한 점 있었어?”
-미행도 없고 추적도 없어요.
“알겠어.”
우리를 내려준 택시가 방향을 돌려 사라졌다.
뒤에는 MOTEL이라는 글자에서 T의 네온사인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무심코 모엘이라고 읽을 것 같은 건물이 있었다.
혼자 모엘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던 내 옆으로 유키가 다가와 얼굴을 붉혔다.
“문파 사정이 좋지 못해서요. 더 비싼 곳을 잡을 여력은 안 됐어요.”
그런 유키를 빤히 바라보았다.
연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속지 말자.
머리에 접속 단말을 잔뜩 뚫어놓은 인간 우월주의자다.
우리를 안으로 이끄는 헤일에게 물었다.
“아프신 분이라면서 병원에 모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미 모셔가 봤지. 몸의 병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라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러더라고. 자기 몸은 자기가 더 잘 아신다고 말씀하시니 더 강권하기도 어렵고.”
유키가 힘찬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렇게 오메가 사형이 왔잖아요. 사부님도 오메가 사형과 만나면 분명히 예전처럼 정정해지실 거라고요.”
헤일은 답하지 않은 채 짧은 숨만을 내쉬었다.
그의 숨에서 긴장감이 느껴졌다.
모엘, 아니 모텔의 카운터에는 주인이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갑주를 입은 주인의 몸만 카운터에 앉아 있고, 목 위에 있어야 할 머리는 중세 기사의 투구를 쓴 채 카운터 앞 책상에서 뒹굴고 있었다.
투구 안쪽에서 나를 향해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뭘 그리 빤히 보나? 듀라한 처음 봐?”
“네. 처음 봅니다.”
“봤으면 꺼져.”
“요새 이런 곳은 다 무인으로 하지 않습니까?”
잠깐의 침묵.
듀라한의 머리가 데구르르 굴러서 앞으로 다가왔다.
나와 머리 사이에는 강화 유리 한 장만이 있었다.
“남들이 다 무인으로 하면 나도 무인으로 운영해야 하나?”
“이런 곳은 범죄의 타겟이 될 가능성이 커서 무인으로 한다는 말을 주워들어서 해본 말입니다. 게다가 대림 에어리어만큼은 아니어도 북동 에어리어는 치안이 그다지 좋지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어이, 그렇게나 남의 일에 신경 쓸 만큼 여유가 넘치나?”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굴러올 때 봤는데 투구 뒤쪽에 흠집이 많더군요. 생활 기스 정도가 아니던데요.”
듀라한은 말이 없었다.
“예전에 생긴 겁니까? 아니면 최근? 무슨 일로 생긴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듀라한의 몸통이 벌떡 일어서서 머리통을 옆구리에 끼웠다.
음산한 음성이 투구에서 흘러나왔다.
“치안 어쩌고 지껄이던데, 그 말 그대로다. 여기서는 너를 피떡으로 만들어도 도와줄 사람 하나 없어.”
“그건 그 쪽한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인 것 같은데요.”
유키가 나를 말렸다.
“오메가 사형! 왜 그래요!”
헤일은 듀라한에게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 사제인데 거친 일을 하고 있어서 조금 예민합니다.”
“당신들 봐서 넘어가는 거야. 올라가 봐. 기다리고 계신다.”
“예, 예. 감사합니다.”
앞에서 헤일이 끌고, 뒤에서 유키가 밀다시피 해서 모텔의 복도로 향했다.
붉은빛이 도는 침침한 조명과 긴 복도가 보였다.
곧바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알약 두 개를 꺼내 하나씩 콧구멍에 넣었다.
알약은 곧 녹더니 코 안쪽을 코팅했다.
공공 집행본부 지하에서 마고한테 당한 이후 마련한 장비다.
이름은 ‘코안에 붙이는 공기 정화제’.
500여 가지 이상의 유독성 냄새 분자의 점막 침투를 막는다는데, 일단 후앙 그 돼지 수인의 독한 방구 냄새를 막는 데 성공하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내가 사이보그였다면 기관지에 정화 필터를 설치하면 되는데, 그렇게 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 임시 장치라도 마련해야 했다.
단점이 있다면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지속시간 동안 계속해서 코 안에서 뻣뻣한 느낌이 난다는 정도.
그 느낌 때문에 내가 손을 들어 코를 쓸어내리며 킁킁거리자 유키가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괜찮아요, 사형?”
손을 들어 신경 쓰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자 유키는 몸을 돌려 헤일의 뒤를 따라갔다.
모텔은 4층짜리 건물이었고, 내부에 엘리베이터는 없었다.
구려도 이렇게 구릴 수 있나 하는 칙칙한 복도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사부님은 4층에 계셔.”
헤일의 뒤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며, 나는 허리춤에 결속된 칼자루에 왼손을 올린 채로 두 걸음에 한 번씩 손가락으로 칼자루를 두드렸다.
톡- 톡-
오래된 모텔에 깔린 카페트에 신발이 부딪히며 내는 특유의 묵직한 소리와 내가 칼자루를 두드리는 소리가 기묘하게 섞여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모텔의 분위기를 더욱 처지게 만들었다.
앞서가던 헤일이 몸을 돌렸다.
“그건 왜 하는 건지 물어도 되나?”
“습관 같은 거죠. 이러면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렇군.”
별 의미 없다는 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사형이나 사매는 칼자루를 별 신경 안 쓰는 것 같네요. 저는 제 손이 바로 닿는 곳에 있어야 마음이 안정되던데.”
“손만 뒤로 돌리면 되니 불편한 점은 없어.”
나는 칼자루를 허리춤에 결속하고 있었지만 헤일과 유키, 두 사기꾼은 등 뒤에 결속한 상태였다.
검은 절대로 가볍지 않다.
그런 걸 옆에 차고 다니면 적응이 되기 전까지는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쏠리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불편해서 칼자루를 뒤로 돌려찬 것이겠지.
뒤에 있는 칼자루가 불편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거짓이다.
둘 다 택시에 타면서 칼자루가 뒤에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고 털썩 앉은 덕에 급하게 허리를 펴고 칼자루의 위치를 조정해야 했으니까.
검술이야 어떻게 속성으로 그럴듯하게 따라 한다고 해도 습관은 단시간에 만들 수 없다.
어릴 적부터 검을 수련했다는 검술 문파의 제자라고 보기에는 허술한 면이 보였다.
405호.
헤일이 멈춘 방의 호수였다.
그는 내게 키 카드를 건네며 말했다.
“사부님은 안에 계셔. 들어가 봐.”
“저 혼자요?”
“방이 좁아서 사람이 많이 들어가 봐야 복잡하기만 할 뿐이야.”
“저는 기억도 나지 않는데요.”
“하지만 사형도 사부님을 보면 떠오르는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두 분만의 시간을 위해서 저희는······.”
유키의 말을 끊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게는 모르는 분과 같습니다. 잠깐이라도 같이 들어가 주시죠.”
둘은 눈을 맞췄다.
헤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자고. 자-.”
다시 한번 키 카드를 내밀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받지 않았다.
“열어 주시죠.”
헤일의 눈꼬리가 떨렸다.
유키가 헤일의 옆에서 나를 향해 말했다.
“사형도 참, 이상한 부분에서 까다로우시네. 어서 들어가 보세요. 사부님이 기다리고 계신다니까요.”
여전히 칼자루 위에 올려놓은 손가락을 움직여 토독하는 소리를 내며 유키에게 차갑게 말했다.
“사매가 열던가. 나는 아무래도 어색해서.”
셋의 눈이 헤일이 잡고 있는 키 카드에 머물렀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헤일이 몸을 문 쪽으로 돌렸다.
“그래, 어색할 수 있지.”
유키는 옆으로 빠져 내 뒤로 움직이려 했지만, 내가 먼저 움직여 가로막았다.
“나를 데려오느라 유키 사매도 고생했는데 사부님께 얼굴 비춰야 하지 않겠어?”
“어······음······.”
앞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유키가 머뭇거리더니 문을 향해 돌아섰다.
둘에게 말했다.
“혹시 사부님을 모시고 저를 찾으러 왔다는 걸 주위에 말씀하셨습니까?”
“그런 걸 왜 말하고 다니겠어.”
조금 떨리는 헤일의 목소리.
“역시 그렇죠?”
“그건 왜 묻지?”
“그냥 혹시나 해서요.”
모텔의 복도를 둘러보고 말했다.
“이상하네요. 모텔이 참 조용해요.”
“그래서 여기로 숙소를 잡았어. 번잡하면 사부님이 불편하실 테니까.”
토독-
마지막으로 칼자루를 두드렸다.
[반향정위]로 퍼져나가고 돌아오던 음파가 그쳤다.
유키에게 속삭였다.
“듀라한 주인장이 뭐라고 한지 기억해?”
“치안 어쩌고 피떡 어쩌고.”
목소리를 더 낮췄다.
“아니지.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네 앞에 서 있는 놈은 말을 안 했다고 했는데 모텔 주인이 어떻게 알지? 그것도 사부라는 사람에게 경칭까지 쓰네?”
우웅-
어느새 내 손에서 전개된 검이 뒤춤을 향하던 유키의 손을 향해 있다.
“익숙하지도 않은 거 쓰려고 애쓰지 마. 손목 날아간다.”
당황한, 아니 당황한 척하는 헤일의 목소리.
“사제, 왜 이래.”
“문이나 열어. 한 마디만 더 지껄이면 팔 말고 다른 곳도 골격 교체하게 해줄게.”
“오해가 있나 본데······.”
스악-
순식간에 움직인 검이 헤일의 왼쪽 아래팔을 자르고 다시 유키의 허리춤에 돌아와 있었다.
굴러떨어지는 헤일의 팔에서 선명하게 반짝이는 금속 골격, 그리고 흐르는 유동액.
유키에게 물었다.
“저게 단면이 퓨어 껄로 보여? 말해봐.”
유키가 옆으로 몸을 굴렸다.
스걱-
정확히 유키의 목을 베어냈다.
피가 사방으로 뿌려져야 하건만, 아무것도 솟지 않는다.
공중에서 날아가는 유키의 머리통이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댔다.
“놈이 눈치챘어! 하라는 대로 유인했으니까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해!”
그러자 헤일이 서 있는 문 안쪽에서 사람이 급히 움직이는 인기척이 났다.
[반향정위]로 판단했을 때, 안에는 최소 셋 이상의 사람이 있다.
주위의 방에도 한둘씩 대기 중이고.
일단 [연하일휘]로 바닥에 떨어진 유키의 머리를 이등분했다.
“유키!”
헤일의 외침이 끝날 때쯤, 그의 몸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방의 안쪽에서 발사된 광선 입자 발사기기, 흔히들 레이저 건이나 블래스터라고 부르는 물건이 만들어낸 흔적.
유키의 머리통을 베기 위해 문에서 정면으로 서 있지 않은 덕에 몸에 구멍이 나는 꼴은 피할 수 있었다.
동시에 모텔 복도의 방문이 좌르륵 열렸다.
“여기 있다!”
바로 옆에 있던 방에서 튀어나온 놈이 크게 외치며 나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왔다.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역려건곤]
발사된 레이저 탄환과 광자 검날이 부딪히는 타격점에서 새하얀 포말이 터져 나왔다.
눈에 띄게 당황하는 놈을 향해서.
[추진]
[어깨 밀기]
어깨 부근을 강화하며 엄청난 가속력으로 들이받았다.
나와 놈은 엉켜서 방 안쪽으로 굴러 들어갔다.
절반 정도 열려 있던 방의 문이 말려들어 완전히 박살 났다.
벌떡 일어나 나를 향해 총을 쏜 표범 수인 놈의 목을 찌르고, 혹시 몰라 팔과 다리의 근맥을 모조리 끊어놨다.
“하라는 대로 했으니, 약속대로 놈의 심장은 줘야 해!”
헤일의 외침이 들렸지만, 곧 이곳을 향하는 발소리들에 묻혀 사라졌다.
표범 수인이 쥐고 있던 레이저 건을 빼앗아 들었다.
“원거리 무기는 손맛이 구려서 안 좋아하는데.”
그렇게 말은 했지만 이미 스킬을 발동하고 있었다.
[원거리 무기 숙련]
[명사수]
[조준 보정]
[호흡 안정]
들어오려는 놈 하나의 가슴에 바람 구멍을 낸 뒤, 부서진 문을 향해 크게 외쳤다.
“드루와. 드루와! 이 씨벌 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