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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68화 (69/258)

068.

068.

“본좌는 많은 퓨어들을 만나보았다. 지금은 낭군말고는 거의 없지만 말이다. 그들에게서는 모두 맑은 기운이 느껴졌느니라.”

젠이 말했던 진기眞氣를 이수련도 보는 건가 해서 물어봤더니 그건 아니란다.

“본좌는 도사가 아니라 그런 것까지는 모른다. 설명하기 어렵구나. 그냥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기운이니라. 일족 중에서도 본좌가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낭군이 거리를 지나가다 다른 구미호를 지나치게 되면 그 구미호는 왠지 모르게 낭군을 바라볼 수도 있다. 이유는 모른 채 말이다. 하지만 본좌는 한눈에 낭군이 퓨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다. 기운이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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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아의 말에 따르면, 내 몸에서는 은은한 향이 난다고 한다.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향이라던가.

그런데 피가 흐르면 신시아의 표현으로는 그 ‘풍미’가 폭발한단다.

인공혈액도 충분히 먹을만한 맛이지만 내 피와는 비교도 안 될 거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향만으로도 내 피가 압승이라고.

“퓨어의 피에 대한 전승들은 모두 거짓인 줄 알았거든요. 한 방울만으로 발이 붕 뜨는 기분이니, 입 안에 닿자마자 전신으로 퍼져나가 활력이 솟는다느니······그런데 오메가 님을 보고 있으면 그게 진짜일 수도, 오히려 전승이 진짜를 다 담아내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다행히도 아직까지 신시아가 목에 있는 내 경동맥을 탐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 나름대로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 같지만, 혈계조검술을 사용해서 팔에 상처가 났을 때 상처 부위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이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어쨌든, 신시아는 흡혈귀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말과 나는 전혀 느낄 수 없는 내 체취로 인해서 나를 ‘퓨어란 저런 거구나.’라고 간접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이수련은 다르다.

그녀는 설명하기 힘든 초감각으로 퓨어를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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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있다. 검을 꺼낼 때, 아닌 척했지만, 검에 전기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를 트리거로 검이 작동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느니라. 낭군이 사용하는 검은 굉장히 희귀하다고 들었다. 아마 그런 전기신호로 내부의 장치를 작동시켜 낭군의 검과 비슷하게 보이려 한 것이 아닐까 싶구나.”

“앨리스는 못 알아챈 것 같던데요.”

이수련이 머리 위에 있는 흰색 귀를 쫑긋했다.

“그러니 더 교묘한 것이다. 안드로이드의 감각을 속일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본좌까지 속이지는 못하지. 본좌는 초천재이지 않으냐.”

양손을 허리춤에 대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이수련이었다.

마지막에 스스로 초천재 어쩌구만 하지 않았으면 굉장히 믿음직스러웠을 텐데······.

“그렇다고 치죠.”

“낭군은 어떻게 알아챈 것이냐? 퓨어는 퓨어끼리 통하기라도 하는 것이냐? 본좌가 과거에 만났던 퓨어들은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그런 능력 없다.

퓨어가 퓨어를 알아본다니, 말만 들어서는 만나자마자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으면서 신상 파악에 들어가는 개들인 줄 알겠다.

‘오늘은 자네한테서 퓨어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데?’, ‘허허허 자네 역시 만만치 않아. 퓨어 포인트가 1 정도 오르기라도 한 건가?’ 이런 대화 따위는 없다는 소리다.

의심을 하게 된 계기는 차치하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순간은 헤일과 유키가 옥상에서 대련할 때였다.

신시아가 말했던 것처럼, 둘의 검술은 나와 매우 흡사했다.

그들이 스킬을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검을 올려 치는 모습은 [만사재시 매사필종]을 빼다 박은 모습이었으며, 몸을 돌리며 급소를 노리는 모습은 [연하일휘]를, 상대의 검격을 받아치며 템포를 빼앗는 모습은 영락없는 [역려건곤]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로 내 검술의 원류가 저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나도 여기까지는 긴가민가하지만 의심의 영역이었다.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내가 서리얼에서 익혔던 검술이 정말로 문파 형태로 계승되어 내려올 수도 있는 일 아니겠나.

하필이면 저들이 보여주는 움직임 중 내 움직임과 다른 것이 거의 없다는 지독한 우연도 있을 수 있지.

하지만 한손검을 사용하면서 검을 들고 있지 않은 다른 손을 상대에게 보이지 않게 몸 안쪽으로 숨기는 모습, 이건 다음 공격을 준비하는 나만의 동작이다.

마법을 사용할 수도 있고, 주머니에 담아두고 있는 씨앗을 던질 수도 있다.

손을 내보여 공격하는 척하며 거리를 좁힐 수도 있다.

헤일과 유키는 이것마저 나와 비슷하게 행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킬을 사용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때 확신했다.

‘이 검술, 나를 참조해서 급조했구나.’

의심의 계기는 간단했다.

‘짜 맞춘 것처럼 시나리오가 완벽하다.’

다른 권역보다 기후가 혹독해 관심 정도가 낮은 태백 권역에서 퓨어들에게만 전승되는 검술 문파.

촉망받는 검사였지만 스승의 기대와 부담에 무너져 방황을 시작한 제자.

마음에 병이 든 스승, 그의 마지막 소원은 떠나간 제자를 만나는 것.

그런 스승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스승을 모시고 하산한 다른 제자들.

간만에 만난 제자는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은 상태.

비록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제자는 아픈 스승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선다.

‘캬, 영화 한 편 뚝딱이네.’

문제가 있다면 나는 몸의 전주인의 과거에 대한 건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점과 감성팔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

내가 감성적인 건 아직 가슴 한편이 촉촉한 남자라는 뜻이지만 남의 감성에 팔려 가는 건 사절이다.

감성팔이가 싫다고 무조건 배척하는 건 나도 이성적이지 못하고 감성에 휘둘리고 있다는 뜻이기에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다.

마침 앨리스가 휴지를 준 참에 일부러 물컵을 쓰러트렸다.

눈물을 흘리던 유키는 잔이 넘어지기 전에 손을 뻗었다.

아주 정확한 방향으로.

가득 맺혀있던 눈물은 시야에 아무런 방해가 안 된다는 듯이.

그리고 유키의 옆에 있던 헤일이 손가락을 펴서 유키를 쿡 찌르는 것도 봤다.

유키는 뻗은 손을 회수했다.

이미 물컵이 넘어간 이후라 소리에 놀라 움찔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키와 헤일은 떨어진 물컵에 당황하는 척했지만, 눈앞에서 펼쳐진 이 기묘한 쇼를 못 본 척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검을 휘두르는 걸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 같아서 옥상으로 이끈 것이다.

게다가 내 앞에 있는 살아있는 퓨어 감정사도 헤일과 유키에게 불량 낙인을 찍었다.

둘은 사기꾼이고 나를 사부라는 놈에게 데려가려고 한다.

아마 사부라는 놈도 사기꾼이겠지.

내가 낚이길 기다리며 가슴 졸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감히 내게 접근하다니, 간이 커도 너무 큰 놈이다.

결론, 사기꾼은 건강한 사회를 좀먹는 벌레고, 그중에서도 감히 내게 접근한 벌레는 박멸해야 하므로 처절하게 응징하도록 한다.

비율로 따지면 1:99 정도로 후자의 이유에 무게를 두고 싶다.

나는 건강한 사회보다는 내 몸 건강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인지라.

어떻게 알아챘냐는 질문을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수련에게 답을 해주었다.

“감성팔이 하는 사기꾼한테는 구린 냄새가 나거든요.”

이수련이 킥킥하는 소리와 함께 웃었다.

“냄새는 낭군보다 본좌가 더 잘 맡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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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사무실에는 나와 앨리스만 있었다.

“청운 선생님과의 식사 자리에서 인간 우월주의자에 대한 얘기를 들었어, 그쪽일까?”

헤일과 유키에 대한 의심을 모두 말한 후 내가 꺼낸 의문에 앨리스가 갸웃했다.

“함부로 의견을 꺼내기는 어렵지만, 그쪽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

앨리스가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 감각을 속일 정도로 정밀한 장비를 사용해서 위장했잖아요. 모르긴 몰라도 가격이 상당할 거예요. 인간 우월주의자들은 그런 자금력이 없어요. 네오-서울에서 차별 금지 조례를 확대하면서 반사회적 이적단체로 찍은 게 특정 종족 우월주의자들이에요. 그 덕에 땡땡 우월주의 어쩌고저쩌고하는 곳들의 자금줄이 싹 말라붙었죠.”

“그럴듯하네.”

없는 거 빼고 다 있는 네오-서울답게 퓨어처럼 보이고 싶은 인간들을 위한 부품도 팔고 수술도 있단다.

필요에 의해 신체 일부 혹은 전체를 강화나 교체했음에도 외관만이라도 퓨어로 보이고 싶어 그 위에 또 다른 파츠를 장착하는 것이다.

처음 앨리스에게 그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들었을 때는 미친 소리인 줄 알았다.

그리고 몇 번을 다시 들은 지금에도 여전히 미친 소리로 들린다.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게 동공반사를 조절하는 렌즈’, ‘상처 회복이 더딘 피부조직’, ‘땀을 어느 정도 배출하는 땀샘 이식 수술’과 같은 것들인데 보험 적용은 당연히 되지 않고 워낙 수요층이 한정적이라 하나하나가 굉장히 비싼 수술이라고 한다.

평범한 네오-시민의 인간 종족 시민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일명 ‘퓨어화 수술’을 풀로 한다면 백 년 가까운 기간의 할부 계획으로도 모자라서 수술 이후의 신체를 담보 잡힐 수도 있는 액수라고.

신시아의 말에 따르면 사후 계약의 공증을 위해 사령술사들을 초청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여튼 단지 퓨어처럼 보이기 위해 쓰는 액수치고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는 것.

그러니 인간 우월주의자들도 수술은 꿈도 못 꾼 채 서로 하프 퓨어니 세미 퓨어니하면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헤일과 유키는 행동에서 실수한 것이지, 외관만 봤을 때는 나랑 다를 것이 없었다.

신시아는 둘에게서 나와 비슷한 향이 난다고 했다.

다만 어딘가 비슷하지만 조금 조악한 향 같다는 말을 부연했다.

내 움직임을 참고해 만든 엉터리 검술 말고도 준비를 단단히 한 것 같았다.

“그럼 퓨어는 그냥 내게 접근하는 미끼였을 수도 있겠네.”

“그럴 가능성도 있죠. 사부라는 사람을 만나야 확실해질 것 같아요. 인간 우월주의자일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제가 말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희박하다는 거지 전혀 없다는 게 아니니까······.”

앨리스의 말을 가로챘다.

“열어는 두라는 거지? 그 정도는 알지.”

“그래요. 사장님이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 년놈이랑은 오늘 만나기로 했죠?”

자신을 속였다는 것에 화가 단단히 난 건지, 앨리스는 헤일과 유키를 단번에 년놈으로 격하시켰다.

사실 사기꾼들한테는 년놈도 아깝지.

그때, 앨리스의 자리에서 딩동-하는 메일 도착 알림음이 들렸다.

확인한 앨리스가 기묘한 표정을 지었다.

“왜?”

“몰래 찍어놓은 년놈 사진을 타이린드 언니한테 보냈거든요. 혹시 루트의 정보망에 걸리는 게 있을까 해서요.”

그 말에 일어서서 앨리스의 자리로 향했다.

패널에 뜬 메일은 제법 길었다.

“이거 다 전과기록이야?”

“전과도 있고 위반기록도 있어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령 위반, 차별 금지 조례 위반에 대한 과태료······. 얘네는 진성 인간 우월주의자인가 본데요?”

네오-서울에서의 기록만 한 페이지가 넘어갔고, 보안상의 문제인지 검게 칠해진 다른 권역의 것까지 합하면 두세 페이지나 되는 기록을 주욱주욱 스크롤 하던 앨리스의 손이 멈췄다.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머그샷이었다.

둘의 사진은 지금과는 현저히 달랐다.

헤일은 양팔의 피부가 벗겨져 안쪽에 덧댄 철제 골격이 훤히 들여다보였으며 유키는 짧게 밀어버린 머리에 용도를 알기 힘든 여러 접속 단자가 가득했다.

메일에 기록된 것 중에는 벌금이나 과태료를 제때 내지 않았다는 기록도 많이 보였다.

탁탁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끝으로 책상을 두드리다가 말했다.

“벌금도 제대로 못 내던 인간 우월주의자가 돈이 어디서 나서 그 비싸다는 퓨어화 수술을 했네. 그리고 눈물 쏙 빠지는 신파 시나리오를 들고 진짜 퓨어에게 접근한다. 하, 어이가 없는 상황이네.”

띠리링-

앨리스의 패드 우상단에 전화기 모양의 아이콘이 떴다.

“사기꾼 새끼예요.”

헤일의 번호였다.

어떻게든 내 연락처를 얻어가려고 했는데, 사무실 번호만 줘서 보냈다.

내가 아이콘을 꾹 누르고 반대편 손으로 귀걸이를 터치하자 수신되었다.

반가운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네, 사형. 벌써 오셨어요?”

무슨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걸린 이상 너는 사형이다.

사형師兄말고 사형死刑.

당연히 엮인 놈들 모두 마찬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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