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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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퓨어가 그렇게 드뭅니까?”
내 질문에 청운 선생이 시계를 한 번 보고 제의했다.
“마침 점심시간이군요. 괜찮으시면 식사 같이 안 하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환자분, 아니지. 오메가 씨와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죠.”
“오후가 오프라 다행입니다. 시간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병원 로비에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정리하고 내려가겠습니다.”
앨리스에게 연락해 점심은 먹고 들어갈 것 같다고 했더니 옆에 있던 이수련이 더 난리였다.
-본좌를 따돌리고 신시아와 식사를 하려는 얄팍한 술수라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라!
제발 로봇 좀 얼른 치우고 우리 사무실 좀 그만 와······.
“병문안 왔다가 예전에 저 봐주신 의사 선생님이랑 만나게 돼서 식사 한 끼 하는 거예요. 오늘은 신시아 안 왔어요?”
앨리스가 이어받았다.
-신시아 언니 오늘 사령술 협회 갔다가 조금 늦게 온댔어요.
신시아는 또 왜 우리 사무실로 오는 건데······.
이수련이 사무실에 늘러붙기 시작한 이후로 신시아도 부쩍 방문이 잦은 느낌이다.
근처 지나가다가 들른 타이린드가 인간, 안드로이드, 구미호, 흡혈귀가 있는 사무실 꼴을 보고 다종족 상담 센터로 전직했냐고 할 정도니 말 다 했지.
“그럼 둘이 점심 해결해.”
이번엔 다시 이수련.
-앨리스에게 낭군이 준 카드가 있다고 들었다. 그걸 사용해도 되는 것이냐?
“퓨전 코프 매출이 얼만데 우리 사무실 카드로 밥을 먹겠대요. 양심은 있어요? 총수님?”
-원래 밥은 남의 돈으로 먹는 게 제일 맛있는 것 아니겠느냐.
진짜 옆에 있었으면 꿀밤 때렸다.
에스컬레이터로 청운 선생이 내려오는 게 보이길래 얼른 마무리 지었다.
“그렇게 해요, 그럼. 대신 비싼 거 먹으면 사무실에 있는 로봇 잔해 바로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릴 거니까 그렇게 알아요.”
-우리가 매입해서 가져가는 걸로 계약서에 싸인도 하지 않았느냐!
“분명히 일주일 전에 로봇 왼손 네 번째 손가락 가져가는 거 봤는데 어제 보니까 생겼더라고요. 설마 몰래 부품 다시 가져다가 붙이는 거 아니죠?”
이수련은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점심 맛있게 먹거라.
그리고 통신이 끊겼다.
돌아가면 앨리스한테 로봇 부품 다 체크하라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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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대식가시네요.”
배고프다며 근처의 스테이크 집으로 나를 안내한 청운 선생은 혼자서 샐러드 2개, 파스타 3개, 자기 손바닥 세 개 크기는 가뿐히 넘어 보이는 스테이크를 4개째 씹어 넘기는 중이었다.
청운 선생의 외관은 사춘기나 왔을까 싶은 어린 소년의 모습.
저게 다 어디로 들어가나 싶어서 입을 쩍 벌리고 보고 있는데, 매장의 직원들은 이런 청운 선생의 모습이 익숙한지 늘 드시던 음료수 서비스라면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레모네이드를 놓고 가기까지 했다.
말을 거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서 한마디도 못 한 상황.
설마 나보고 계산하라는 건 아니겠지?
립rip으로 시작해 안심, 티본을 거쳐 부챗살까지 이어진 청운 선생의 부위별 스테이크 먹방이 끝났다.
그가 나를 보고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민망하군요. 변명하자면 의사 일이 쉬운 게 아니라서요. 제 능력이 굉장한 열량을 요구하기도 하고요.”
“침술 말고 다른 능력이 있으십니까?”
“엄연히 말하면 이 능력 덕에 제 침술이 더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죠. 오메가 씨가 제게 물어보셨던 질문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겠군요.”
그리고 청운 선생은 소매를 훌훌 걷어 올렸다.
그의 팔에는 핏줄을 따라 연녹빛 선이 가득했다.
그것은 어깨 너머로 향하는 듯했다.
“의료용 외장 단전과 이어진 회로입니다. 침술 전문 의사가 되기로 마음먹었을 때 애드온 했습니다. 관안貫眼을 틔우고 정수靜手를 유지해줍니다. 몸이 뼈, 피, 살로 이루어져 있다면 혈 자리와 기맥이 보이고 정확한 자리에 기운을 실어 침을 놓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양한 종족이 제게 찾아오지만, 의료사고를 내지 않은 비법이지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설명을 듣자 청운 선생은 웃으며 앞에 놓인 스테이크를 먹으라는 손짓을 했다.
“대신 열량 소모가 엄청나서 이렇게 식사 때마다 음식을 많이 먹어줘야 합니다. 이래도 모자랍니다. 외장 단전을 달고 나서는 성장에 써야 할 에너지도 빼앗겨 이렇게 어릴 적 모습을 하고 있는 거 보이시죠?”
“그럼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마흔여덟입니다. 아마 외장 단전을 제거하지 않는 이상 평생 이 모습이겠죠.”
“아하······.”
남아 있던 레모네이드를 쭉 들이킨 청운 선생이 말했다.
“퓨어가 드무냐고 물어보셨죠? 굉장히 드뭅니다.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저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제가 외장 단전을 애드온한 나이가 열넷입니다. 그때 그런 판단을 하지 않았다면 몇 살쯤에 의사가 되었을까요? 아무리 이르다고 해도 스물 중반일 거고. 꼬였다면 서른, 어쩌면 마흔 언저리일 수도 있었겠죠. 그때 의사가 되고, 아무런 보조 없이 지금과 같은 실력을 갖추려면 또 얼마가 걸릴까요? 인간의 평균 수명이 150세를 넘어 200세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지만 저는 퓨어 의사로 100년의 수련을 거쳐도 지금과 같은 실력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요.”
내가 손을 들어 직원을 불러 청운 선생이 마실 청포도 에이드 하나를 추가하자 청운 선생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까딱하고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주위에는 인간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양한 종족과 기상천외한 능력이 즐비하죠. 제 동료 의사 중에는 고주파 음으로 심장의 이상을 잡아내는 박쥐 수인도 있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기계 꼬리를 사용해서 한 번에 수술 셋을 집도하는 고양이 수인도 있습니다. 환자의 몸에 부담을 주는 마약성 진통제 대신 노래로 수면 유도를 하는 세이렌 간호사도 있지요. 이들도 온갖 강화 시술과 수술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들과 아무것도 없는 맨몸으로 경쟁한다? 저는 못 합니다.”
맨몸의 순수한 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환경이라는 말로 긴 설명을 정리한 청운 선생이 말을 많이 하니 배가 꺼진다며 파스타 하나를 추가 주문했다.
“그래서 의사 커뮤니티에서 오메가 씨가 굉장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제가요?”
“네. 대림 에어리어에 인간 해결사가 있는데 퓨어라고 한다. 그런데 활약상이 퓨어라고 하기에는 굉장하다. 진짜 퓨어가 맞냐. 이런 내용이었죠.”
“그런 의심 많이 받습니다.”
공공 집행자 중 하나한테도 받죠.
절대로 능력 제한 법령 대상자가 되지는 않을 거다.
젠을 봐라.
언어 그대로 경천동지, 하늘이 놀라고 땅을 움직일 능력을 가졌어도 공공 집행본부의 요청이나 허가가 없으면 눈에 거슬리는 놈 번개로 지지는 게 할 수 있는 전부다.
그것도 안 죽을 정도로만.
서리얼에서의 경험에 비춰보면 어떤 식으로든 이름이 알려지면 추종하는 사람과 비방하는 사람이 생긴다.
비방하는 놈들은 줘패야 제맛인데 젠은 그걸 못한다는 소리다.
나 같으면 울화통 터져 죽었을 것 같은데 젠은 도사라 그런지 용케 참고 산다.
청운 선생이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저희 병원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메가 씨가 진짜 퓨어가 맞냐면서요.”
“알려주셨습니까?”
“아무 말도 안 했죠. 환자 개인 정보 새 나가면 끝장입니다. 전산 부서 말로는 오메가 씨 활약상이 알려진 이후로 전산망 침입이 늘었다고도 하더군요.”
그 시도 중 하나는 마고 아닐까.
에이드의 얼음까지 아그작 씹어먹던 청운 선생이 물었다.
“아! 퓨어하니 생각난 건데 혹시 이상한 사람이 접근한 일 없습니까? 단체나 집단이라도요.”
이상한 집단이나 단체라······너무 많아서 어디서부터 꼽아야 할지 몰라 얼버무렸다.
“글쎄요. 그건 왜 물어보십니까?”
“인간 우월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거의 사이비 종교 수준인데, 퓨어를 자기네들에게 끌어들이고 싶어서 환장한 놈들입니다. 오메가 씨에게 접근했을 줄 알았는데, 그 사이비들도 야스민 가문 무서운 줄은 아나 봅니다.”
신시아가 우리 사무실에 자주 왕래한다는 사실이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사무실에 후앙과 정현이 찾아온 날이 있었는데 형수님 형수님 하기에 앨리스가 별생각 없이 신시아 야스민이라고 알려준 게 화근인 것 같다.
신시아는 자기가 뭐나 되는 사람이냐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둘 중 입 싼 놈이 누군지 밝혀진다면 충분한 응징을 가할 생각이다.
여튼 신시아가 사무실에 있는 동안에는 야스민 가문의 사복 경호원들이 사무실 건물 주위를 지킨다고 들었다.
사이비들은 그 선에서 걸러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퓨어 어쩌고 하는 메일이 와서 죄다 스팸 처리 하느라 골 아프다는 앨리스의 투정을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사이비는 질색입니다. 접근하면 제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맛이 좀 간 놈들이니 가까이해서 좋을 게 없습니다. 어차피 이런저런 시술이랑 수술받은 거 다 아는데 자기들끼리 세미 퓨어니 하프 퓨어니 하는, 학계에서는 통하지도 않을 미친 소리나 하는 놈들입니다.”
그렇게 식사 자리는 끝이 났다.
다음에 에브레를 만나러 올 때 볼 수 있으면 보자고 하고 헤어지려는데, 청운 선생이 깜빡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가장 중요한 걸 안 물어봤군요. 돌아온 기억이나 떠오르는 기억은 없습니까?”
“예. 뭐 없네요.”
어색하게 웃었다.
기억상실증이 아니라 사람이 바뀐 것이니까.
“안타깝군요. 가끔 오메가 씨의 과거는 어땠을까 궁금해집니다. 지금이야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이전까지의 오메가 씨는 퓨어인 사설 집행자였지 않습니까.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글쎄요.”
다행스럽게도 청운 선생은 본인이 먹은 무지막지한 양의 음식에 내 것까지 더해 계산하고 떠났다.
바이크를 타고 돌아오며 생각했다.
‘순수한 인간으로 살아가기 어려운 세상. 몸의 원래 주인은 검술과 화염계 마법을 익힌 퓨어. 어떤 사람이었을까.’
앨리스의 말에 따르면 몸의 전주인이 있던 사설 집행자 사무소는 영세한 곳이었는지 전산상의 폐업 신고만 있을 뿐 남은 기록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위치는 어디였는지, 사장은 누구인지, 동료 집행자가 누구인지 등등 알 수가 없다고.
‘마법은 익히긴 한건가?’
마법은 마탑에 있는 마법사들의 전유물이지만, 마탑에서 뛰쳐나오는 마법사들도 있어서 배우려는 의지와 돈만 그들에게 있으면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다면 몸에 마나 하트의 흔적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깨끗하다.
아마 경력을 부풀리기 위해 적어놨을 가능성이 크다.
검술은······솔직히 모르겠다.
지금 내 검술은 모두 서리얼 시절의 스킬이다.
몸의 전주인이 익히고 있던 검술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마법은 허풍이었다고 쳐도, 퓨어로 살아온 가닥이 있을 텐데 나름대로 괜찮지 않았으려나?
남들 다 원거리 무기 쓸 때 혼자 칼날 사출도 안 되는 근접 무기를 쥐고 다닐 정도면 적어도 뭐라도 할 줄은 알았겠지.
애초에 내가 몸의 전주인에게 보내는 신뢰는 밑바닥 수준이 아니라 밑바닥을 뚫고 한참 내려가 있었다.
대림 에어리어에 사무실을 내서 처음부터 극한 난이도로 설정하는 안목, 첫 의뢰에서 낙상해서 혼수상태로 직행하는 안일함과 나약함 등등.
옆에서 보고 있으면 한숨 제조기였을 타입이 분명하다.
아마 공장에서 찍어내는 수준으로 주위 사람의 한숨과 답답함을 유발했을 것이다.
몸의 전주인을 칭찬할 구석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서 앨리스를 들였다는 것.
그게 전부다.
이러니 그 드물다는 퓨어인데도 누구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사무실 앞이었다.
바이크를 세우고 사무실로 올라가니 문이 닫힌 사무실 안에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가 얼쩡거리고 있었다.
‘앨리스랑 이수련 씨가 아직 안 왔나 보네.’
그렇게 생각하고 그 둘에게 말했다.
“저희 사무실입니다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나를 본 두 사람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웃는 듯, 우는 듯 읽어내기 어려운 얼굴의 변화였다.
여자가 눈물을 글썽인 채로 나를 향해 말했다.
“오메가 사형!”
사형?
죽으라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