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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캐여도 너보단 강함-64화 (65/258)

064.

064.

마고에게 빙결계 마법으로 보이는 것은 밝힐 수 없는 오브젝트라고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영동대교 진입로의 그 흐릿한 CCTV 영상이 흘러 흘러 계룡 권역까지 넘어간 건지 라벤느에게서 영원빙정을 먹고 난 뒤에 빙결계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거냐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그 역시 적당히 얼버무리긴 했다.

내가 극도로 드문 퓨어인데도 불구하고 퓨어가 아닌 이들 이상의 여러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련을 통해 다양한 방향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젠 뿐이었다.

그런 젠마저 내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웠다.

“빙결계 마법은 특수 장비나 오브젝트라고 얼버무렸지만 화염계 마법마저 그렇게 요령 좋게 넘어가기는 힘들 겁니다. 마고 마저 오메가 씨에게 관심이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순간적인 화력만큼은 화염계 마법이 제일 효율이 좋잖아요.”

나이누안의 마나 하트를 흡수하고 영원빙정까지 섭취하게 되어 숙련도와 다양한 사용법을 위해 빙결계 마법을 요새 주로 사용하고는 있었지만, 엄연히 말하면 화염계 마법이야말로 내가 서리얼에서부터 익혀 왔던 스킬이다.

검술만큼 손맛이 좋지는 않지만, 특유의 뒤가 없는 화끈함 때문에 애용하던 스킬들을 남들 보는 눈 때문에 강제로 숨겨야 한다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서글펐다.

젠이 그런 내게 말했다.

“그러니 화염계 마법은 최대한 보는 눈이 적을 때 사용하거나, 아니면.”

“아니면?”

팔짱을 낀 채 흐음하는 소리를 내는 젠.

말을 고르고 있는 것 같았다.

“화염계 마법이 드러나도 어쩔 수 없는 상황, 그러니까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젠은 설명에 애를 먹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나는 대번에 이해했다.

“진심 모드일 때 사용하라는 거군요.”

#

스펙터는 [밀푀유]로 만들어낸 화염에 포위된 상황.

두 손으로 힘껏 찌른 검이 불을 뚫고 놈의 목에 구멍을 내기 직전, 딱 검이 지나갈 만큼의 구멍이 스펙터의 목에 생겼다.

뒤쪽이 보이는 구멍으로 쑥 들어가는 검.

광자 검날이 위로 가게 돌렸다.

그대로 [만사재시 매사필종]을 사용, 놈의 머리를 아래에서 위로 그대로 베어버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모래를 베는 것처럼 검의 움직임보다 약간 빠르게 스펙터의 머리에 실선이 그어졌다가 촤르르륵하고 붙었다.

헤지르 대주교가 녹색 기운을 구슬 형태로 모아 이놈에게 던졌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스펙터가 입가에 비열한 미소를 띄웠다.

“네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아. 재롱만도 못하지.”

나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나를 보는 것은 절로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경험이다.

스펙터를 포위하고 있는 불의 종이가 흩어지기 시작했다.

먼저 부스러지는 쪽으로 움직이는 스펙터.

[플람 수플레]를 통해 그쪽에 숨을 뿜자 불의 종이가 사라지던 곳에 내 숨결로 이루어진 불의 벽이 다가섰다.

스펙터는 검은 모래로 변해 불로 만들어진 포위망을 벗어나는 것에 성공했다.

“놓쳤나······!”

하지만 헤지르 대주교의 방에서 탈출할 때 바람을 타고 멀리 날아간 것과는 달리 스펙터는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다리 한쪽에 불이 붙어있었다.

[플람 수플레]를 피하지 못한 것 같았다.

놈이 짜증 나는 얼굴로 다리께의 불을 털어낼 때, 생각했다.

‘검이나 구슬은 피했으면서 불은 못 피한다는 건가?’

가설이지만 확인해볼 가치가 있었다.

[추진]

발바닥이 바닥을 밀어내는 느낌이 강하게 났다.

반탄력이 종아리와 허벅지까지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고속 이동]만큼 선호하는 스킬은 아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거리를 순간적으로 좁히기에 이만한 스킬이 없다.

[연하일휘]

짙은 안개 속을 관통하는 노을빛은 선명하나 동시에 흐릿하다.

내 손에 들린 검은 그런 모호함을 담은 채 나아갔다.

모호하다고 하여 얕보다가는 그대로 베여나갈 뿐이다.

스펙터는 이번에도 피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의 눈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할 테면 해보라는 듯, 오만함이 가득한 동공.

남들이 보기엔 나도 저랬을까?

내가 봐도 재수 없긴 하다.

그러니 불태워버려야지.

[연하일휘]로 스펙터의 허리가 베이기 시작할 때, 화염계 스킬을 하나 더 사용했다.

[에피시épicer]

장비에 불을 붙이는 화염계 마법.

검을 타고 오르는 불이 일렁인다.

스펙터는 검을 통과시킨 것처럼 불마저 피하지는 못했다.

베인 자리에서 시작해 스펙터의 몸을 태워 나가는 불.

내 얼굴을 한 스펙터가 표정을 마구 일그러트리더니 몸을 뒤로 빼려 했다.

기대 이상의 성과.

간만에 잡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취중실천지]

원래는 양손검이나 대검으로 펼쳐야 하는 검술 스킬이니만큼 한손검에 가까운 이 검으로 100% 위력을 내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중검重劍의 무거움이 아니라 그 움직임에서 나오는 파괴적인 검풍.

화아아-

검의 기세가 바뀌는 아주 잠깐의 순간, 검풍이 터져나가며 검에 붙어있던 불을 실어 나른다.

[취중실천지]의 궤적이 마무리되었을 때, 스펙터의 허리에 붙은 불이 조금씩 위아래로 그의 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젠장! 오브젝트인가? 불을 쓴다는 소리는 없었는데!”

줄곧 나를 재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스펙터가 드디어 당황스러운 외침을 내뱉었다.

‘진오는 내가 화염계 마법을 사용하는 걸 봤을 텐데? 정보 공유를 하지 않은 건가?’

스펙터에게만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수연에게도 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때 했던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건가, 진오?’

나이누안과 셀티스가 죽은 원인이 진오에게 있다고 말했었다.

내가 던진 작은 돌이 이들의 결속에 파문을 만들어 낸 걸지도 모른다.

이 생각은 일단 저편으로 던져두었다.

눈앞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스펙터를 처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어쩌면 스펙터가 내게 지었던 것보다 더 사악한 미소일지도 모른다.

“불은 못 피하네?”

불붙은 검을 들고 놈에게 덤벼들었다.

화륵-

놈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몸을 피하기 시작했다.

잔뜩 굳은 얼굴은 덤이었다.

낭패인 기색이 완연하기에 당장이라도 도망갈 것 같아서 놈에게 [체취 남기기]를 사용했다.

그러다 튄 불똥이 놈의 몸에 닿았고, 뭔가가 후두둑 떨어졌다.

낚아채 보니 새카맣게 타버린 벌레였다.

“파리?”

파리처럼 생겼지만, 날개가 다양한 색으로 빛났다.

관절에도 금속질감이 가득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곤충이었다.

“젠장!”

잠시 파리에 정신이 팔린 사이, 스펙터가 건물 아래로 뛰어내렸다.

[에피시]를 해제해 검에서 불을 없앤 뒤 [저속 낙하]를 이용해 주위의 높게 자란 식물을 밟고 내려와 보니 저 앞에서 뛰어가는 내 뒷모습이 보였다.

아직도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을 밀쳐내며 뒤를 쫓았다.

스펙터의 손 쪽이 꾸물거리나 싶더니 내가 들고 있는 것과 비슷하게 생긴 검이 밀려 나왔다.

꾸물거리는 건 그동안 모래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았는데, 자세히 보니 벌레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형상 같았다.

‘모양을 잡고 날개로 빛 반사를 해서 색을 내는 건가?’

내가 추정할 수 있는 원리는 이 정도가 다였다.

비록 타서 죽은 벌레긴 하지만 주머니에 몇 마리 넣어두었으니 로봇 전문가인 이수련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마구 달리고 있던 스펙터와 나를 알아봤다.

“오메가다! 스콰이어는 어디로 보냈어!”

“두 명인데?”

“어떻게 된 거야!”

앞서가던 스펙터가 그걸 듣더니 옆에 있던 사람을 검으로 푹 찔렀다.

고통 가득한 비명이 퍼져나갔으나 곧 사람들이 각자 질러대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

스펙터는 크게 외쳤다.

“죽어! 역겨운 놈들!”

저딴 짓을 왜 내 얼굴로 하고 다니냐고!

“미친 새끼······!”

일대에 혼란이 퍼져나갔다.

“사람이 찔렸다!”

“스콰이어랑 같이 있던 사람!”

“오메가가 사람을 찔렀다!”

스펙터는 그 짓을 몇 번이나 더했다.

그리고 도롱뇽 수인으로 모습을 바꿔 안타란과 스콰이어가 향한, 외벽에 구멍이 숭숭 뚫린 건물 쪽으로 향했다.

“해결사 오메가가 사람을 죽였다!”

지나치며 보니 배를 찔린 사람도 있고 허벅지를 찔린 사람도 있던데 진짜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문제는 사람들의 주의가 온통 내게 향해 있다는 것이겠지.

[체취 남기기]를 통해 감지되는 스펙터의 위치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안타란에게 통신했다.

“스펙터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 형태는 도롱뇽 수인이에요. 그리고 저 새끼가 제 얼굴로 사람 찌르고 다녀서 거리가 난리거든요? 의사를 보내던지 뭐 조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알겠어요. 봉쇄는 언제쯤 풀 수 있을까요?

“스펙터를 생포해야 해요. 그래야 안타란 씨와 제 누명이 풀립니다. 봉쇄를 푸는 건 그 이후입니다.”

-스펙터를 제 쪽으로 유인하겠습니다. 놈을 놓치지 말아주세요.

“어떻게요?”

내가 묻기 직전 안탈란과의 통신이 끊기고 스콰이어가 치고 들어 왔다.

-에브레를 찾았어! 찾았다고! 안타란의 집무실에 있었어! 그런데 무슨 짓을 한 건지 애가 눈을 안 떠!

스콰이어의 아들인 에브레는 꼬리에 위치 발신기를 숨기고 있다고 한다.

할렘이라 할 수 있는 대림 하 렙틸리비아의 구역장인 스콰이어는 늘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 위험이 에브레에게도 닥칠 수 있기에 행한 수술이라고.

“찾았다니 다행이군. 정신을 못 차리는 건 조금 나중에 생각하자고. 지금 안타란과 같이 있나?”

-맞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스펙터가 그쪽으로 갔어. 외부로 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바로 그쪽으로 향한 걸 보니까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으니 알아둬. 내가 봤을 땐 네 아들이 목적일 가능성이 커.”

-에브레를?

스콰이어의 분노에 찬 저음이 귀걸이를 통해 그대로 전해졌다.

불이 스펙터에게 통하는 것 같다고 할 때쯤, 렙틸리비아 전역에 안타란의 목소리가 가득 울려 퍼졌다.

“대림 상 렙틸리비아의 구역장, 안타란입니다. 다들 급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럽겠지만, 잠시만 제 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혼란의 도가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거리의 사람들이 잠시나마 안타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멈춰 선 사이, 나는 스펙터의 뒤를 따라 달렸다.

“현재 정체불명의 인물이 대림 에어리어 지하의 두 렙틸리비아 사이의 불화를 촉발하기 위해 잠입했습니다. 해당 인물은 국제적인 범죄자이며, 사람의 외형을 복제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범죄자는 제 수행원으로 위장해 저를 죽이려 했으며, 저는 해결사 오메가 씨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안타란과 스콰이어가 있는 건물에서 의사 가운을 입은 뱀 수인 몇이 달려 나와 스펙터가 칼로 찌르고 간 사람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봉쇄 조치는 범죄자의 도주를 막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불편함을 초래한 점에 대해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필요한 행위였습니다. 범죄자를 잡지 못하면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친 듯이 달려 건물에 진입했다.

계단을 오르는 도롱뇽 수인의 축축한 꼬리가 보였다.

건물 안쪽에 안타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오메가 씨로 변한 범죄자에게 찔려 다친 분들을 위해 의사들을 보냈습니다. 피해자분들의 병원 이송을 위해 길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른 의사분들이 계시다면 주위에 있는 피해자들의 응급처치를 부탁드립니다.”

난간을 잡고 마구잡이로 위로 오르던 스펙터가 계단의 문을 열고 복도로 빠져나갔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모두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수습할 책임도 제게 있습니다. 렙틸리비아의 모든 구성원 여러분! 우리는 초유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단합하고 신뢰해야 합니다!”

안타란의 말끝이 떨릴 때쯤, 나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스펙터가 빠져나간 복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체취 남기기] 덕에 스펙터가 한곳에 있음을 알았다.

우드드득-

파충류 수인 모니터monitor 종으로 변한 스펙터가 억센 손톱과 근육이 불거진 팔로 문을 부수고 있었다.

문의 위쪽에 달린 안내판에는 ‘구역장실’이라고 적혀있었다.

스펙터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카멜레온을 죽이고 새끼 악어를 챙겨서 빠져나가면······.”

[고속 이동]을 통해 이동하면서 물었다.

“안타란 씨, 구역장실 안에 있어요?”

-네!

콰앙-

문짝이 부서졌다.

스펙터가 있던 밖에서 안으로 부서진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바깥쪽으로.

나무로 견고하게 짜인 문짝에서 모니터보다 몇 배는 두터워 보이는 악어의 팔뚝이 튀어나와 있었다.

스펙터는 스콰이어의 주먹을 피하며 안쪽으로 진입하려고 애썼다.

복도와 내 귀에 있는 디바이스에서 동시에 스콰이어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오메가! 불!”

스콰이어의 주먹에 뭔가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시선 렌즈]

악어의 손이 불이 깜빡이나 싶더니 순식간에 주먹 전체가 불에 휘감겼다.

스펙터의 일부가 불에 타는 것을 본 스콰이어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씹새끼! 내 아들을 납치하는 걸로도 모자라서 이 지랄을 만들어 놔!”

불이 붙지 않은 반대편 스콰이어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었다.

콰직-

아귀힘으로 술병을 터트린 스콰이어.

술이 줄줄 흐르는 손을 거침없이 불타는 손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불붙은 양손으로 스펙터를 난자하기 시작했다.

한 마디마다 ㅈ과ㅆ으로 시작하는 욕설을 내뱉어 가며.

분노한 아버지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그 압도적이고 파괴적인 폭력에 스펙터는 복도로 밀려 나왔고, 모습이 제멋대로 바뀌기 시작했다.

[에피시]

[취중실천지]

불붙은 검이 스펙터의 상체와 하체를 분리했다.

몸의 중간이 타들어 가는데도 불구하고 스펙터는 전신을 뒤틀며 스콰이어의 주먹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타들어가던 스펙터의 허리 부근이 꿈틀대며 이어 지려 하자 스콰이어가 입을 쩍 벌렸다.

지옥으로 향하는 구덩이처럼 보이는 그의 목구멍에서 금속판이 솟았다.

물고 있는 것이 식도나 기도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인 모양.

덥석-

스콰이어의 거대한 입은 스펙터 상체의 2/3 정도를 물었고, 그 상태에서 스콰이어는 양손과 다리를 바닥에 대고 몇 바퀴나 몸을 굴렀다.

엄청난 박력의 데스 롤이었다.

삽시간에 엉망이 되어버린 복도.

마침내 스펙터의 모습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장 겉면부터 작은 벌레가 되더니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지는 와중, 다른 벌레들보다 조금 커 보이는 벌레 하나가 집무실 구석에 누워있는 어린 악어 수인에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본체다.’

직감이었다.

아직도 스펙터를 다짐육으로 만드는 데 여념이 없는 스콰이어의 어깨를 밟고 도약했다.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져 시간이 극도로 느리게 가는 와중,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검을 쓸까?

불로 구워?

얼음으로 얼려?

안타란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생포해야 해요. 그래야 안타란 씨와 제 누명이 풀립니다.

[진기珍技 - 손 포획]

손으로 벌레를 잡고, 놔줬다가 다시 벌레를 잡을 때 쓰는 스킬.

생활 스킬을 익히는 사람들도 이딴 스킬은 왜 있고 왜 익히냐며 욕했던 스킬.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눈으로도 쫓기 힘들 속도로 손이 앞으로 뻗어지고, 아슬아슬하게 손가락 중간에 뭔가 닿는 느낌과 함께 그대로 가운데 공간을 만드는 느슨한 주먹을 쥐었다.

주먹 안쪽에 감각이 있다.

주먹을 미친 듯이 흔들며 안쪽에서 멍하니 방송기기 같은 것에 입을 대고 있는 안타란을 향해 외쳤다.

“병! 병! 아니면 그릇! 엎어둘 수 있는 거! 빨리!”

안타란은 화들짝 놀라 스콰이어가 빼냈음이 분명한 서재의 빈자리 옆에 있는 술을 꺼내 몽땅 바닥에 붓고 내게 주었다.

아직까지도 흔들고 있던 주먹을 펴면서 안에 있던 것을 바닥에 던졌다.

부서져서 바닥에 흩어진 벌레들보다 확연히 큰 벌레가 비틀대고 있었다.

재빨리 병에 넣고 위를 책으로 덮었다.

안에 있는 벌레를 보고 안타란이 물었다.

“이······게 뭐죠?”

“저도 모르죠. 어쩌면 스펙터의 정체이지 않을까요?”

손에 있던 불을 털어낸 스콰이어가 입에 남은 벌레 잔해를 뱉으며 다가오길래 말했다.

“그 전략, 좋았어. 마침 술이 있어 다행이야. 없었으면 네 살을 태워야 했을걸.”

“술은 내가 안타란에게 준 거야. 안 먹었더라고.”

“그래? 어쨌든 제법이야.”

콧김을 쉭하고 내뿜는 스콰이어가 대꾸했다.

“한 번 당해보니까 할 만하더라고.”

“내 덕이라는 소리로 알아들으면 되나?”

“최고의 동맹이었어. 내 뒤통수만 안 치면.”

“그건 너 하기에 달린 거지.”

스콰이어가 주먹을 내밀었다.

나도 주먹을 내밀어 약하게 부딪혔다.

눈치를 보던 안타란도 조심스럽게 주먹을 가져다 댔다.

스콰이어가 뭔가 생각났다는 표정을 하고 말했다.

"여긴 어떻게 막긴 했는데, 수로를 타고 온다는 리벨리온 놈들은 어떻게 하지? 여기서 인원을 뺄 수 있나? 뒷수습 하기에도 바쁠 것 같은데."

잠시 고민하던 나는 귀걸이의 채널을 조정했다.

"신시아, 이수련 씨. 제 말 들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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