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061.
몸을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었다.
악어의 꼬리는 내 위치가 아닌, 조금 옆에 있는 이미 부서진 책상을 향하고 있었다.
‘술 때문에 제대로 조준이 안 되는 건가.’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악어의 눈에 취기라고는 없었다.
세로로 길게 찢어진 맹수의 눈.
그것은 사냥감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을 뭉쳐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책상을 향하던 꼬리에서 기괴한 소리가 나더니 공중에서 방향을 내 쪽으로 틀었다.
꼬리를 감싸고 있던 금속에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작은 가시들이 무수히 돋았다.
피슛-
숨 한 번 고를 시간도 없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가시들.
‘처음부터 이게 목적이었군.’
[고속 이동]
악어를 향해 달려 나가자, 내가 서 있던 자리에 가시가 들이치며 바닥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만들어낸다.
주머니를 뒤적였다.
흡혈귀 회합 이후 보충해놓았던 씨앗들이 손에 잡혔다.
하나를 집어 들었다.
[과잉 생장]
씨앗에서 길고 탄성이 좋은 넝쿨이 자라났다.
[낚아채기]
[투척]
넝쿨을 휘둘러 술이 담긴 채 바닥에 구르던 술병을 낚아채 악어를 향해 던졌다.
정확히 악어의 머리통을 향해 날아가는 술병.
“이런 것쯤은!”
악어는 손을 휘둘러 날아드는 술병을 깨부쉈다.
쨍한 알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이 도수가 높은 술인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를 뭉개고 바람구멍을 내려는 꼬리와 가시를 피해 가며 넝쿨을 이용해 악어를 향해 술병을 던졌다.
하지만 날아드는 술병 중 악어에게 적중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방향은 나무랄 데 없이 적절했으나 악어가 날아드는 술병을 모조리 깨버렸기 때문이었다.
“이런 쓰레기만도 못한 새끼들. 그렇게 이용한 걸로도 부족해서 죽이려고 암살자까지 보냈다 이거지. 절대 얌전히 혼자는 안 죽지. 그게 이 스콰이어다.”
꼬리로 내가 움직일 곳을 막아선 끝에 육중한 덩치로 문 앞을 막아선 스콰이어가 중얼거렸다.
그의 몸 곳곳에서 술병을 막아내느라 튄 술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마침내 준비가 끝났다.
내 시선이 악어의 손등에 고정됐다.
술병을 쳐내느라 가장 많은 독주가 묻어있을 곳이다.
[시선 렌즈]
돋보기를 통과한 태양 빛이 모이는 것처럼, 일정 범위 내의 시선이 닿는 곳에 아주 가느다란 불꽃 하나를 피워내는 스킬이다.
‘그거 쓸 바에 화염구 갈기거나 아이템 쓰는 편이 빠르지 않나요?’라는 의견과 함께 거의 버려지던 스킬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익혔지.
깝죽대는 놈 손등에 불붙이고 모른 척하는 게 재미있어서······.
악어의 손끝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오르나 싶더니, 불꽃은 이내 악어의 전신을 뒤덮은 독주를 타고 오른다.
“으아아악!”
눈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눈을 감은 채 온몸이 불타는 악어 수인이 꼬리를 여기저기로 내리치며 외쳤다.
“내 아들을 납치하고 안타란을 죽인 걸로도 모자란 거냐! 크아아아!”
그의 꼬리 끝이 부풀었다.
금속 가득 가시가 솟아나는 것이, 죽을 각오를 하고 뭔가를 하려는 기색이 가득이었다.
[스카디]
손끝에서 뻗어나간 냉기 바람이 스콰이어의 몸을 태우던 불을 날려 보냈다.
쿵-
비늘이 검게 그을린 스콰이어는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말에서 끝없는 증오가 느껴졌다.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후회하게 해주마.”
더욱 부풀던 그의 꼬리가 내 한마디에 수그러들었다.
“안타란은 살아있다. 나와 함께 움직이고 있지.”
“너는 암살자가 아니었나?”
“살아 있는 당신이 필요하다고 말했을 텐데. 나는 암살자가 아니야.”
“그럼 정체가 뭐냐.”
“오메가, 해결사다.”
악어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위타천도 피해 간다는 해결사!”
이제 해명도 지겨워서 어깨를 한 번 으쓱해주고 넘겼다.
“의뢰 중이다. 협조해주면 안타란을 여기로 불러와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지.”
#
약 20분 정도 후, 상 렙틸리비아로 향하는 수로 근처에 숨어있던 안타란이 나와 스콰이어가 있는 곳으로 잡혀 왔다.
나를 내보낼 수는 없다며 스콰이어가 부하들을 시켜 한 짓이었다.
아직 인피면구의 지속시간인 6시간이 경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란의 외관은 카멜레온 수인이 아니라 자코처럼 도마뱀붙이 수인이었고, 그 때문에 오해한 스콰이어가 다시 한번 난동을 부릴 뻔했다.
다행히 구역장이었던 둘만 아는 얘기들과 신호로 오해는 금방 풀리긴 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이 안타란이라는 것이 확인되자, 스콰이어는 어울리지 않게 눈물을 뚝뚝 쏟았다.
“아들이 납치돼서 그렇게 자넬 압박한 거야. 미안해. 자네를 부른 것도 놈들이 먼저 손을 쓸 것 같아 내 곁에 두기 위해서였어.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그랬군. 어쩐지 에브레가 요새 보이지 않는다 했지.”
에브레는 스콰이어의 하나 있는 아들로, 스펙터가 납치해 데리고 다닌다고 했다.
스콰이어도 리벨리온에게 길을 내주는 것이 후폭풍이 클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들 때문에 그들에게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것.
둘의 다정다감한 분위기를 보고 있기 힘들어서 한마디 했다.
“악어의 눈물일 수도.”
스콰이어가 나를 잡아먹을 듯 째려봤지만, 안타란이 달랬다.
“나쁜 사람은 아니야. 단지 의심과 불신을 끊임없이 하는 것 같긴 해.”
독고다이, 유아독존식 플레이를 하며 자주 듣던 말이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편하게 대하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심한다는 게 나에 대해 주로 하는 평이었다.
그걸 빠르게 눈치챈 안타란의 눈썰미와 눈치가 놀라웠다.
저 정도는 되어야 한 구역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는 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가지기는 힘든 종류의 재능 같았다.
안타란이 내게 말했다.
“스콰이어가 거친 면이 있긴 해도 제게 거짓말할 인물은 아닙니다. 믿어보시죠. 그리고 어차피 스콰이어의 허가가 없다면 저희는 상 렙틸리비아로 가지 못합니다.”
눈물을 닦아낸 스콰이어는 안타란에게 물었다.
“그래, 상 렙틸리비아로 간다고? 가서 어떻게 하려고.”
“나를 죽이려고 했던 놈이 내 행세를 하고 있어. 잡아 죽여야지. 렙틸리비아는 우리들의 영역인데 다른 놈이 낼름 먹는 꼴은 못 봐.”
“놈은 혼자가 아니야. 곧 지원 병력도 온다고 했어.”
“그러니까 그 병력이 도달하기 전에 쫓아내야지. 기회는 지금뿐이야. 시간이 없어.”
고민하던 스콰이어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가지. 에브레를 내 손으로 구해야겠어.”
“자넨 여기 있는 게 좋지 않겠어? 이럴 때 구역장이 움직인다면······.”
스콰이어는 고개를 저었다.
“수로를 막고 있는 놈 중에 리벨리온에서 보낸 놈들도 있어. 내가 직접 가지 않으면 허가를 했다고 해도 길을 터주지 않을 거야.”
안타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리벨리온에서?”
“대림 에어리어의 렙틸리비아를 시작해서 네오-서울의 다른 렙틸리비아를 장악할 셈인 것 같아. 지하가 완전히 넘어가는 거지. 수연이라는 그 라미아, 수완이 보통 이상이야. 예공방의 상무도 절대 작은 위치가 아닌데 그 여자에게는 위장용 신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말을 마친 스콰이어와 안타란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납치가 아니라 동행이라······. 괜찮은 대안이야. 하지만 하나는 양보 못 해. 스펙터는 내 몫이다.”
“스펙터?”
“안타란 씨의 수행원으로 위장해 있던 놈. 정체 파악이 힘든 악질 범죄자라고 하더군.”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스콰이어.
“놈의 머리통을 물고 데스 롤Death roll을 몇 바퀴나 돌고 싶지만 양보하지. 대신 내 아들의 구출에 협력해줬으면 해.”
“안타란의 의뢰를 완료하는 대로 최우선으로 임하지. 몸에 불 지른 대가로 의뢰비는 받지 않겠어. 얘기는 다 됐나?”
스콰이어가 나를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그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동맹이다. 쓰레기 새끼들을 찢어버리는 동맹.”
만족스럽게 웃는 우리 둘을 안타란이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
“못 갑니다.”
자신만 따라오라던 호기로운 스콰이어의 말과 달리, 우리는 하 렙틸리비아를 벗어나는 수로에서 바로 제지당했다.
리벨리온에서 파견되었다는 놈들인 것 같았다.
스콰이어가 그들을 향해 으르렁댔다.
“못 가? 지금 누구 앞을 막는 건지 알고 있는 거냐?”
제지하던 놈들은 움찔거리며 살짝 뒷걸음질 쳤지만, 여전히 길에서 비키지는 않은 상태였다.
“안타란을 만나러 가야 한다. 나와.”
“누구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렙틸리비아에서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이 자리에는 리벨리온에서 파견된 인원 말고 스콰이어의 친위대도 몇 명 있었기에 순식간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수로를 보고 있던 내 눈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잔잔했던 수로 중앙에 검은 그림자 하나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그림자 주위에서 작은 물보라가 일었다.
“피해!”
검을 전개했다.
아주 작은 구슬 같은 것이 베이는 느낌이 생생했다.
스콰이어가 꼬리를 휘둘러 구슬 몇 개를 쳐냈지만, 물속에서 이쪽을 향해 날아온 구슬의 수가 제법 많았던지라 모든 구슬을 쳐낼 수는 없었다.
구슬은 우리를 가로막던 파충류 수인과 스콰이어의 친위대 몇의 몸통을 그대로 관통했다.
고통 가득한 비명이 수로에 울려 퍼질 때쯤, 구슬들은 작은 푸른색 불꽃을 뿜으며 그것들이 향했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푸화악-
수면 아래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사를 걸친 거북이 수인 승려였다.
구슬들이 승려의 목에 모이더니 기다란 염주 목걸이가 되었다.
좌중을 훑어보는 그의 눈이 왠지 모르게 몹시도 음란했다.
거북이 수인을 알아본 스콰이어와 안타란이 동시에 외쳤다.
“색승色僧!”
물 한 방울 묻지 않은 가사를 정리하며 수면 위에 서 있던 거북이 수인이 인상을 찌푸렸다.
“소승은 그런 망측한 별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편, 옆에서 어깨를 관통당한 동료를 챙기던 스콰이어의 친위대가 하는 말이 내 귀에 들렸다.
“색승? 네오-서울이랑 인천 권역의 렙틸리비아를 돌아다니면서 남녀 구분 없이 다 덮치고 다녔다는 그 미친 밀교승?”
“혈뇌진인한테 져서 도망쳤다고 들었는데!”
혈뇌진인은 세간에서 젠을 부르는 말이다.
동자승 흡혈귀 도사와 색마 거북 수인 승려의 대결.
젠한테 일방적으로 불리해 보이는데 어떻게 이기긴 했나 보다.
아마 거북 수인의 패인은 성별이 여자가 아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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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간에서 색승이라 불리는 거북 수인의 풀네임은 압둘라 다빈 아보Abdula Dabin Abo다.
약칭 아다A.D.A..
밀교密敎의 여러 가지 수행 중에서도 가장 난해하여 익히는 이가 드문 색공色功을 익혔으며, 다리 사이의 물건이 거대해서 마치 3개의 다리가 있는 것 같다고 하여 서드 임팩트Third Impact라고도 불린다.
색공은 남들이 보기에는 무절제하고 음탕한 수련법이지만, 엄연히 말하면 신체, 성性과 즐거움에 대한 공부.
그런 색공으로 경지를 이룩한 아다는 타인의 신체에서 풍기는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수로에서 벗어나 몸을 드러낸 순간부터, 아다의 시선은 한 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유일한 인간, 오메가였다.
단언컨대 저렇게나 탐스러운 기운은 처음이었다.
그의 물건이 반응했다.
움찔.
아다는 생각했다.
‘저 시주가 오메가겠군. 메인으로 아주 적합해. 아미타불.’
그렇다면 오메가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아다의 눈에 애피타이저와 디저트들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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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떠 있는 승려의 사타구니 쪽 가사가 펄럭일 때, 주위의 모든 사람이 웅성거렸다.
“저거 설마······그거야?”
“말도 안 돼. 무릎 너머까지 윤곽이 있었어.”
“오죽하면 다리가 3개라는 말이 돌겠냐고.”
몇몇이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하자, 거북이 수인이 물을 박찼다.
표홀한 움직임으로 사람들의 머리 위를 넘어간 거북이 수인이 수로로 내려올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가로막았다.
놈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주위를 훑고는 끔찍한 소리를 내뱉었다.
“여자는 겁탈하고······남자도 겁탈하겠습니다.”
사타구니 쪽에 모은 놈의 두 손에 금빛 구슬 같은 기가 모여들었다.
“고오환告悟環입니다. 깨달음을 알리는 구슬이라는 뜻이지요. 색...스즉시공 공즉시색...스.”
품이 넓은 가사의 앞쪽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거대한 텐트를 형성하려는 거북이 수인의 하체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역겨워 죽겠네.”
작가의 말
데스 롤은 악어의 사냥방식입니다.
사냥감을 턱으로 물고 강으로 끌고 들어가 자신의 몸을 회전시켜 물고 있던 부위를 뜯어내버립니다.